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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2에 이어서 계속 3.으로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의 편찬 배경과
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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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 邵子全書의 구성 체계 연표
책수 권수 목록 내용 비고 ㅡㅡㅡ 성리대전 -성리군서구해
1 서 朱國禎과 徐必達의 序/이천격양집서ㆍ이천격양집후서/ 격양집 목록X(無) X
2 권1 황극경세서1 [개요]/ 찬도지요 상 〇(有) X
권2 황극경세서2 찬도지요 하/소백온 계술 〇X
3 권3 황극경세서3 소백온 解관물내편1-6 〇〇
권4 황극경세서4 관물내편7-12 〇〇
4 권5 황극경세서5 관물외편 상 〇〇
권6 황극경세서6 관물외편 하 〇〇
권7 황극경세서5 外書 漁樵問對/無名公傳〇〇
附集 洛陽懷古賦/勸學/誡子孫/太玄論/文中子贊 X X
5 권8 황극경세1 以元經會1-6 / 관물편1-6 역사연표 X X
6 권9 황극경세2 以元經會7-12 / 관물편7-12 역사연표 X X
7 권10 황극경세3 以會經運1-6 / 관물편13-18 역사연표 X X
8 권11 황극경세4 以會經運7-12 / 관물편19-24 역사연표 X X
9 권12 황극경세5 以運經世1-6 / 관물편25-30 역사 X X
10 권13 황극경세6 以運經世7-10 / 관물편31-34 역사연표 X X
11 권14 황극경세7 관물편35-38 성음도 일부 X
12 권15 황극경세8 관물편39-42 성음도 일부 X
13 권16 황극경세9 관물편43-46 성음도 일부 X
14 권17 황극경세10 관물편47-50 성음도 일부 X
15 권18 격양집1 시문 X 일부
권19 격양집2 시문 X 일부
16 권20 격양집3 시문 X 일부
권21 격양집4 시문 X 일부
17 권22 격양집5 시문 X 일부
18 권23 격양집6 시문 X 일부
권24 부록程子<性理><程氏遺書><程氏外書>/上蔡謝氏/呂氏家塾記/
歐陽氏棐/龜山楊氏/朱子/鶴山魏氏/黃氏端節/和靖尹氏/일부 일부
묘지명<明道선생>/行狀略<張㟭> 일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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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리대전 「황극경세서」에 역사연표 부분은 어떤 이유로 생략되었을까.
이에 대해 편찬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본서 62편과 아울러 문하 제자들이 기록한 외편 상ㆍ하편과 합하면 64편이된다.
그 첫 번째 34편은 원회운세로 가로로 갑자를 쓰고 관계된 사건을 기록하여 천시와 인간사의 득실을 증험한다.
그다음 16편은 성음율려로써 다시 창화하여 3840개의 도판을 만들어 만물의 수를 궁구한다.
그 후 내외편 14편의 글은 모두 앞의 두 가지 수의 의의를 부연한 것이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수는 소백온이 이미 「一元消長圖」 등의 그림으로 그 요체를 총괄한 뒤 채원정이 그 그림을 토대로 풀이하는 경세지요 1책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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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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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족히 50편의 의미를 다 들어내었다.
주자가 그들이 소강절의 책에 대하여 남김없이추구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다시 강절의 전서를 모두 포함하지 않고,단지 채원정의 그림에 대한 찬도지요만을 취하고 또한 諸家의 釋例를 추가하여 2권으로 묶어 관물내ㆍ외편 14편의 앞에 배치한다.
바라건대 보는 이가 그림에서 바로 그 수를 밝히고, 글로 인해 그 이치를 구하면 요약한 바를 토대로 해박하게 될 것이다.
다시 어초문답과 무명공전을 뒤에 붙인 이유는 그 문장의 뜻과 이 책이 서로 발명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39)
역사연표의 천지지수와 성음율려의 만물지수는 소백온과 채원정의 찬도지요에서 그림을 곁들인 해설에서 그 의미를 남김없이 요약하였으므로 그두 가지 수에 대한 내용을 모두 싣지 않고 찬도지요만 채택하며 아울러 제가의 해설을 추가하여 2권으로 만들어 관물내ㆍ외편 앞에 배치한다는 안내 글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신흠은 소자전서를 본 뒤 性理大全편찬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소옹역학의 체계를 이해하였던 것이다.
신흠은 앞에서 소개한 글에 뒤이어 의리역과 상수역의 역사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저 易이란 象을 기초로 하여 나온 것인데 상이란 곧 物이다. 그런데 물이나오면서 數가 있게 되는 것인 만큼 역이 바로 수의 근원이라 할 것인데, 수가있게 되면서 그 속에 理가 내재하게 되는 것이니, 上世에 역을 써서 점을 친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後天이 文王에 의해 암시되면서 마침내 易에 글이 있게 되었다. 글이 이루어짐에 따라 시대의 의리가 드러나게 되었다.
西漢의 諸儒가 각각 자신의 주장으로 학파를 세워 시수(施讎)ㆍ맹희(孟喜)ㆍ양구하(梁丘賀)ㆍ경방(京房) 등의 차이가 있게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공통적으로 과거를 점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능하였다.
39)性理大全書 권7, 皇極經世書1. “按本書六十二篇 並門弟子所記 外篇上下 通六十有四篇 其首三十四篇 則以元㑹運世 相經横列甲子 繫嵗紀事 以驗夫天時人事之得失 其次十六ㅡ篇 則以聲音律吕 更唱迭和為圖三千八百四十 以窮夫萬物之數 其後内外十四篇之文 則皆所以敷暢前二數之義也 然前之二數 邵伯温氏嘗著一元消長等圖 以括其要約 後西山蔡氏因其圖而推衍之 著為經世指要一書 足以盡了五十篇之義 而晦庵朱子謂其於康節之書推究縝宻矣 故今不復具載康節全書 但取蔡氏指要諸圖 増以諸家釋例 纂為二卷 列於内外十四篇之首 庻幾觀者 即圖以明其數 因文以求其理 則由約可以該博 復以漁樵問答及無名公傳附於後者 因其文意與是書 有相發明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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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천 선생(伊川先生)이 「傳」을 지으면서부터 역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오로지 文義에만 치중하게 됨에 따라 象數는 은폐되고 말았다. 그래서 세상에는 주역만 있고 羲易(복희역)은 없어지는 결과가 되었는데, 邵氏의 역이바로 복희역이었다.
그 뒤 주희가 이를 취하여 「啓蒙」 및 「本義」를 지었는데 간혹 조금씩 다른 점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인 내용은 소씨의 역을 祖述한 것이었다. 이에 내가 경세서 가운데 사람들이 난해하게 여기는 약간의 말들을 모아 나의 의견을 덧붙이고, 동시에 花潭 徐氏가 추출해 낸 數目을 소개함으로써이를 보고 서로들 분발하게 하는 바이다.40)
즉 소옹역은 복희역을 잇는 상수역으로 성리학에 중요시하는 정이천의 易傳으로 인해 의리역만 강조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선천역을 잇는 소옹역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주희의 역학계몽과 주역본의도 소옹 역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서경덕이 推算한 수 이론이 명쾌하다고 평가ㆍ소개하고 이 글의뒤에 덧붙이어 후인들의 선천학 수리체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조선에서 서경덕 이후 자신이 독학으로 선천학의 체계를 이해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선천규관을 짓고 편찬한 뜻을 밝힌 1년 뒤에 신흠은 어떤 이가 “역은 하나이다. 그런데 그대가 복희와 문왕의 역을 구별하고 또 정자의 易傳이 소씨나 주자의 그것과 다르다” 한 것에 의문을 품었다. 이에 신흠은 다시 상수학과 의리역은 원래 하나의 이치이지만 문왕의 시대에는 상수학이 분명하게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비된 爻辭와 彖辭만을 특별히 문자로 드러낸 것일 뿐이었다. 周 나라가 쇠퇴한 뒤에는 경전이 없어지고 학술이 분열되고 文義만 밝혀졌을 뿐 상수역이 이미 없어지니 대학이나 중용과 같은 유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공자가 大衍에 관한 설을 내걸어 알렸던 것인데, 소옹이 이를 서술한 것일 뿐이었다. 이것 역시 문왕이 상수를 놔두고 爻ㆍ彖만 드러낸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니,
40) 상촌선생집 제55권, 「先天窺管」 발문. 象村稿 권60, 「先天窺管」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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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복희ㆍ문40)왕ㆍ정자ㆍ소자ㆍ주자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복희와 소옹에게서 상수를 구하고 문왕과 정자에게서 문의를 구하여 공자를 통해 집대성시킨다면 조화의 오묘한 이치가 손바닥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공자가 商瞿에게 역을 전하였는데, 공자는 상구에게 다섯 아들이 있을 것을 알았고 상구 또한 공자가 無位일 것을 알았으니,41) 역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문의만은 아니라는것을 알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역을 공부하는 순서로는 역학계몽 관물편 등을 읽고
圖書와 卦劃의 大衍이 일어나는 바를 대략 이해한 후
문왕과 공자의 彖辭 象辭 繫辭를 고찰할 수 있고
인간사의 득실에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圖書와 괘의 획수를 모르고 주역을 읽는다면 역의 반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다시 강조하고 있다.42)
신흠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계에 복귀하여 이조판서ㆍ우의정ㆍ좌의정으로 정치활동을 하다가 인조 6년(1628)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4. 신익성의 통재 편찬
신익성의 현실인식을 회고담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의 문집 自序43)를 통해 간략히 살펴본다.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2년(1599)년 12세에 선조의 부마가 되어 궁궐에 출입하게 되었지만 1613년 선조의 사후 부친이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인조반정으로 다시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으나, 부친의 사후 세상에 뜻을 잃고 불교의 趙州 參法을 구하였지만
허황된 것임을 알고 그만두었다는 특이한 경력이 있다. 글을 좀 배우기는 했으나 그리 능한 편이 아니며 서예에는 좀 능하였다고 밝혔다.
41) 史記 列傳 第7 仲尼弟子列傳. “商瞿年長無子, 其母爲取室. 孔子使之齊, 瞿母請之. 孔子曰: ‘無憂, 瞿年四十後當有五丈夫子.’ 已而果然.”
42) 象村稿 권60 「先天窺管」 讀易說. “讀易者。先讀啓蒙觀物等篇。略知圖書卦畫大衍之所由起。然後方可尋考姬孔彖象爻繫。以參夫人事之得失。不先於圖書卦畫。而只用力於周易。則是截上半道理。遺之也。何以得其聖神幽贊之妙乎。”
43) 樂全堂集 樂全堂集序 樂全居士自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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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성은 부친의 사후 1년 만에 상촌선생문집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병자호란때는 남한산성에 임금을 호종하여 들어갔으며 척화론자 가운데 강경론자에 속하였다. 출성한 이후로 신익성은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산천을 유람하며 생활하다가 산천이 나의 물건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古籍을 수습하다
洛閩(성리학) 諸書를 보고는 자신이 뜻을 잃은 지 반평생임을 알고는 놀랐다고 한다.
이때 비로소 집으로 되돌아와 고서를 읽었으나 오랜 습관으로 잘되지 않으니 땀이 등에 흥건하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통재를 편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1641년 12월에 명나라에 수절한다는 죄목으로 청나라로 압송되어 고문을 받다가, 소현세자가 선조의 부마임을 밝히고 적극적인 청원으로 인해 조선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44)
이와같은 회고담과 행적을 통해볼 때 신익성은 처음부터 소옹역학에 대한 공부는 그다지 하지 않았지만 10년간에 걸쳐 3번 원고를 수정할 때 많은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 신경ㆍ신최도 신흠의 가학을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Ⅲ. 황극경세 紀年의 구성 체계
1. 황극경세의 기년체계
황극경세의 의미에 대해 소백온은 [황극]계술에서 “지극히 큰 것[至大]을 皇이라 하고 지극한 중도[至中]를 極이라 하며, 지극히 바른 것[至正]을 經이라 하고 지극한 변화[至變]를 世라고 한다. 큰 중도와 지극한 바름으로 세상일에 응변함에 모남이 없는 것을 道라고 한다. 道로써 道를 밝히면 道가 밝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를 잘 관찰하는 자는 만드시 物로써 하며, 물을 잘 관찰하는 자는 반드시 도로써 한다.”45)라고 풀이하였다.
44) 인조실록 인조 20년 12월 4일 기사, 11일 병자, 13일 무인, 14일 기묘, 21년 2월 11일 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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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나큰 중도와 지극한 바름으로 세상의 변화에 잘 대처하는 도리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황극경세의 천지수를 구성하는 역사기록은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歷年表 즉 역사연표라 지칭한다.
황극경세 元會運世의 아래에 역사기록을 간지 단위로 연도별로 기록을 하는 체계는 紀年이라 함이 역사 기록의 접근점을 찾는 용어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희도 황극경세 紀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예가 있다.46)
황극경세는 천지인이 함께 하는 천지의 수와 만물이 함께하는 만물의 수로 구성되었다.
천지의 수에는 인간사가 하늘과 합치하며 만물의 수에는 聲音 律呂의 수가 조화를 이룬다.
天地 數는 12만 9천 600년이며, 萬物數 즉 動植飛走物의 數는 28981만6576이다.
찬도지요에 의하면 원회운세는 歲月日辰으로 日月星辰은 水火土石으로 짝을 이룬다.
원회운세는 1년 12월 30일 12시간의 구성 원리로 천지수129,600년을 1원에 배당한 뒤 각각 회ㆍ원ㆍ세에 연수를 배당하는 원리로 이루어졌다.
달리 말하면 1년은 12월을 관장하고 각 월은 30일을 담당하고 각 하루는 12시간을 담당한다는 관점에서 수를 배당하였다.
소옹의 역학은 천지수와 만물의 수의 구성 원리를 선천방원도와 주역의 음양 사상 팔괘 및 64괘 384효와 서로 연관하여 數로 소통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 글에서는 역 철학 이론보다는 실제 원회운세 紀年 구성 체계와 실제적용 과정을 살펴본다.
황극경세에서 원회운세 1元의 연수는 129,600년이다.
이 1원의 역사 안에 천의 개벽과 땅이 열리고 인간과 만물이 생기며 다시 만물이 닫히고 땅이 닫히고 천이 닫히는 과정이 129,600년이다.
이 1원은 다시 12회로 구성되므로 129600/12 = 10,800 즉 1회는 10,800년이다.
1회는 다시 30운으로 구성되므로 10,800/30 = 360 즉 1운은 360년이다.
1운은 다시 12세로 구성되므로 360/12 = 30 즉 1세는 30년이다.
45) 성리대전 권13 황극경세서8. “邵伯溫系述曰 至大之謂皇,至中之謂極,至正之謂經,至變之謂世。大中至正應變無方之謂道。以道明道,道非可明,故善觀道者必以物,善觀物者必以道.”
46) 성리대전 권13 황극경세서7, 부록. “朱子曰 皇極經世紀年甚有法 史家多言秦廢太后逐穰侯 經世書 只言秦奪宣太后權 伯恭極取之 盖實不曾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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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1세대라고 할 때의 30년과 같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日月星辰연간지
1년 12개월 30일 12시간
경세 元會運世
관할 1 12 30 12 30년
총수 1원 12회 360운 4320세 129,600년
간지 甲子甲子甲子 甲午
元 會 運 世 총년수 괘 역사 비고
원 | 회 | 운 | 세 | 총년수 괘 역사비교 |
일 갑 | 월 자1 | 성 30 | 진360 | 년1만800 복괘䷗ |
日 甲
月 자1 星 30 辰 360 10,800 復 ䷗
月 축2 星 60 辰 720 21,600 臨 ䷒
月 인3 星 90 辰 1080 32,400 泰 ䷊ 開物 星之己76 27,001-27,360
月 묘4 星 120 辰 1440 43,200 大壯 ䷡
月 진5 星150 辰1800 54,000 夬 ䷪
月 사6 星180 辰2160 64,800 乾 ䷀ 唐堯始 星之癸180 辰2157 堯임금 21년
月 오7 星210 辰2520 75,600 姤 ䷫ 夏殷周秦漢兩漢兩晉六國南北朝隋唐五代宋
A.D.2017년은 총 경세년수 69,034년
月 미8 星 240 辰 2880 86,400 遯 ䷠
표3 經世天地始終之數圖(황극경세 찬도지요) *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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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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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3은 황극경세 「찬도지요」에 나오는 經世天地始終之數圖이다.
이를 12월괘를 배치한 24절기 방위도로 보면 쉽게 이해된다.
하늘은 자에서 열리고, 땅은 축에서 만들어지고, 사람은 寅에서 만들어져(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47) 신화의 시대를 거쳐 역사의 기록은 요순시대부터 시작된다.
신9 270 3240
月신 9 星270 辰3240 97,200 否 ䷋
月유10 星300 辰3600 108,000 觀 ䷓
月술11 星330 辰3960 118,800 剝 ䷖ 閉物 星之戌315 113,040-113,400
月해12 星360 辰4320 129,600 坤 ䷁
1원 12회 360운 4320세 129,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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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시대는 모든 양이 있는 巳會의 건괘䷀의 시대이므로 유교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정치가 이루어지지만 곧 음이 자라기 시작하는 午會의 구괘䷫의 시대로 접어들어 정치가 쇠퇴기로 들어간다는 역사관이 내재되어있다.48)
위와 같은 패턴으로 구성된 원회운세를 실제 황극경세서에서는 어떤의미를 부여하였을까.
황극경세서 제일 첫머리에
권1-2는 元㑹運世의 총수 즉 이른바 천지 수를
권3-4는 㑹로써 運을 관할하는 世數와 歲甲子 아래에 帝堯부터 오대에 이르는 역사 연표를 나열하여 천하의 이합집산과 치
란의 자취를 보여주어 천시와 인간사를 증험하려 한다고 하였다.
권5-6은 運으로 世를 관할함에 世數와 갑자 아래에 帝堯로부터 오대에 이르기까지
書傳에 기록된 흥폐치란과 邪正의 자취를 기록하여 인사로써 천시에 증험하려는 것이라 하였다.49)
역사연표의 기년은 소자전서에 나오는 것으로 간략히 그 실제를 살펴본다.
1) 소자전서 권8 황극경세1 이원경회1-6 / 관물1-6
47) 소옹이 이 표현을 직접 쓴 것이 아니나 주희는 황극경세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하였다.
청나라 왕식은 그의 저서에서 이를 인용하였다.
朱子語類 권45. 問 “天開於子,地辟於醜,人生於寅”。
曰: “此是皇極經世中說,今不可知。他只以數推得是如此。
他說寅上生物,是到寅上方有人物也,有三元、十二會、三十運、十二世。十二萬九千六百年爲一元。
歲月日時,元會運世,皆自十二而三十,自三十而十二。至堯時會在巳、午之間,今則及未矣。
至戌上說閉物,到那裏則不複有人物矣。”問: “不知人物消靡盡時,天地壞也不壞?”
曰: “也須一場鶻突。既有形氣,如何得不壞?但一個壞了,又有一個。”
王植 皇極經世書解 「例言」.
“朱子 以天開于子 地辟于丑 人生于寅 為邵子之説 又曰 堯時正是乾之九五 是朱子 深有取于配卦之義矣 故亦從黃氏 并録其説 以備參考” 윤상철 역(王植 원저), 2011, 皇極經世 1-5, 대유학당, 5책 17-18쪽 참조.
48) 신흠의 선천규관에도 보이는 역사관으로 소옹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 참조. 趙東元, 1982, 「邵雍의 歷史觀」, 역사와 세계6.
49) 성리대전 권7 황극경세서7, 서론.
“邵伯溫曰 其一之二 則總元㑹運世之數 易所謂天地之數也 三之四 以㑹經運列世數與歲甲子 下紀帝堯至于五代厯年表 以見天下離合治亂之迹以天時而驗人事者也 五之六 以運經世 列世數與歲甲子下 紀自帝堯至于五代 書傳所載 興廢治亂得失邪正之迹 以人事而驗天時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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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甲1
月子1 星甲1 辰子1 황극경세1 以元經會1-6
月巳6 星癸180 辰申2157 唐堯21
원 회 운 세 총년수 기년
日甲1 月子1 星 갑1 辰 자1 1-30년
辰 축2 60년* *정확히는 31-60년이나 총년수인 60년으로 기록.
이하… … 같음
辰 해12 360년
星 을2 辰 자13 390년
… …
星 계10 辰 자109 3270년
… …
84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황극경세 권1-2는 元會運世와 그 紀年 단위인 日月星辰의 일련번호 총수와 堯임금 21년으로부터 宋 仁宗 31년까지 30년 단위의 역사연표 구성 원리를 보여준 것이다.
권1은 日甲1 月子1 星甲1 辰子1로 시작하여 月巳6 星癸180 辰子2160로 끝나며 총연수 64,800년이다.
천지수 129,600의 辰 해120 3600년 절반이다.
星 갑11 辰 자121 3630년
… … …
星 계30 辰 해360 10800년
月丑2 星 갑31 辰 자361 10830년
辰 축362 10860년
… …
月巳6 星갑151 辰자2802 54060년
… … …
星계180 辰자2149 64470년
… …
辰미2156 64680년
辰신2157 64710년 唐堯 21
辰 유2158 64740년 唐堯 51
辰 술2159 64770년 虞舜9
辰 해2160 64800년 虞舜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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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申2157은 64681년-64710년 즉 30년이 속하며 唐堯21은 64681년이다.
그러므로 唐堯의 실제 시작은 辰未2156에 속하며 갑진년은 64661년(B.C.2357)이다.50)
자세한 간지는 황극경세 권3과 권5에 1년 단위의 간지 기년자료에 나온다.
2) 소자전서 권9 황극경세2 이원경회7-12 / 관물7-12
月午7 星甲181 辰子2161 황극경세2 以元經會7-12
月午7 星癸190 辰子2269 宋仁宗250) 요임금의 즉위년을 갑진년으로 확정한 것은 황극경세에서 이루어졌다.
資治通鑑前編
「通鑑前編序」. “履祥 按竹書紀年 載三代以來事迹 然詭誕不經 今亦不可盡見 史記年表起周共和庚申之嵗 以上則無紀焉 歴世浸遠 其事往往雜見于他書 靡適折衷 邵子皇極經世獨紀堯以來 起甲辰為編年歴 胡氏皇王大紀 亦紀甲辰以下之年 廣漢張氏因經世之年 頗附之以事 顧胡過于詳 而張失之簡 今本之以史子傳紀 附之以經 翼之以諸家之論 且考其繫年之故 解其辭事 辨其疑誤 如東萊吕氏大事記 而不敢盡倣其例 起帝堯元載 止周威烈王二十三年 接於資治通鑑 名曰通鑑前編” 박권수, 2006, 「조선후기 象數學의 발전과 변동」,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55쪽 참조.
86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원 회 운 세 총년수 기년
日甲1 月午7 星 갑181
辰 자2161 64830년 夏 禹8
辰 축2162 64860년 夏 태강2
辰 인2163 64890년 夏 중강3
辰 묘2164 64920년 夏 왕상20
辰 진2165 64950년 夏 少康23
辰 사2166 64980년 夏 少康53
辰 오2167 65010년 夏 왕 계4
辰 미2168 65040년 夏 망7
辰 신2169 65070년 夏 不降4
辰 유2170 65100년 夏 不降34
辰 술2171 65130년 夏 경5
辰 해2172 65160년 夏 근14
星 을182
辰 자2173 65190년 夏 공 갑23
辰 축2174 65220년 夏 발11
辰 인2175 65250년 夏 癸23
辰 65280 夏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의 편찬 배경과
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87
황극경세 권2는 권1에 이어 月午7 星甲181 辰子2161에서부터 月亥12 星癸360 辰亥4320까지 후반부 황극경세 총년수 64800년의 구성을 총괄하여 제시하였다.
역사연표는 夏나라 禹임금 8년부터 시작되는데 총년수 64801년 B.C.2217년이다.
연표 기사의 마지막 宋 仁宗 32년(31은 오기)은 황극경세 총연수 68070년 A.D.1054년이다.
송 인종 32년으로 끝난 것은
辰 묘2176 년 癸53
辰 진2177 65310년 商 태갑17
辰 사2178 65340년 商 옥정14
辰 오2179 65370년 商 태경15
辰 미2180 65400년 商 옹기3
… …
辰 술2267 68010년 宋 태조5
辰 해2268 68040년 宋 태종19
星 계1903
辰 자2269 68070년 宋 仁宗2
辰 축2270 68100년 宋 仁宗32
… …
月亥12 星 갑351
辰 자4189 125670년
… …
星 계360
辰 자4309 129270년
… …
辰 해4320 129600년
88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辰丑2270이 관할하는 황극경세 총년수 68071년부터 68100년은 A.D.1054-1083년 사이이므로
소옹의 생애가 끝나는 시기(A.D.1077년)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황극경세4에서는 신종 10년(A.D.1077년)까지만 왕의 재위연수가 기록되어 있다.
3) 소자전서 권10 황극경세3 이회경운1-6 / 관물13-18
以會經運1 觀物13
開物始 月寅之中 經星之己76 황극경세3 以會經運1-6
經月之巳6 經星之癸180 經辰之未2156 甲辰 唐堯
권3-4는 開物하는 시기, 堯舜으로부터 송나라까지의 역사를 1년 단위의 60갑자로
국가와 왕명ㆍ연수 등으로 구성된 약연표, 그리고 閉物하는 시기로 구성되었다.
황극경세 권3-4의 기년은 以會經運으로 開物이 시작되는 月寅之中 經星之己76으로부터 시작하여
閉物로 終하는 月戌之中 經星之戌315까지의 연표로 구성되었다.
권3 以會經運之1 / 觀物13에서는 月寅之中 經星之己76으로부터 月巳6 星癸180 辰亥2160까지의 간략 연표로 구성하였다.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의 편찬 배경과
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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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以會經運之2/ 觀物14에서부터 실제 인간 역사가 기록되는
經月之巳6 經星之癸180 經辰之未2156 甲辰 唐堯의 즉위를 기록하기 위한 전단계의 흐름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소옹은 요임금의 즉위부터 연대 고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以會經運之1 / 觀物13
開物始 月寅之中 經星之己76-癸90
원 회 운 세 총 년수 비고
日甲1 月 寅3 星 기76 ‘辰 子901’ 27001-27360 ‘27001-27030’
… …
星 계90 32041-32400
月 卯4 星 갑91 32401-32760
星 을92 32761-33120
… …
星 계120 42841-43200
月 辰5 星 갑121 43201-43560
… …
星 계150 53641-54000
月 巳6 星 갑151 54001-54360
… …
星 계180 辰 자2149 64441-64470
… …
辰 미2156 64651-64680
... ...
辰 술2159 64741-64770
辰 해2160 64771-64800
90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이후 以會經運之2-6 / 觀物14-18에는 世단위 아래에 60갑자를 사용하여
연단위로 왕조와 왕의 기년과 간략한 역사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周나라幽王 4년 66240년 B.C.778년까지이다.
以會經運之2-6 / 觀物14-18
원 회 운 세 간지 총 년수 기사(비고)
日甲1 月 巳6 星 계180 辰 자2149 갑자 64441 갑자-계사
辰 축2150 갑오 64471 갑오-계해
辰 인2151 갑자- 계사
辰 묘2152 갑오-계해
… …
辰 미2156 갑오 64651 (B.C.2367) 을미-임인
계묘 64660
갑진唐堯64661 (B.C.2357)
을사2 64662
병오3 64663
…
계해20 64680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의 편찬 배경과
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91
辰 신2157 갑자21 64681 (B.C.2337)
…
辰 유2158 갑오51 64711 (B.C.2307)
…
계묘60 64719
갑진61 64720 洪水方割命鯤治之
…
계축70 64730 徵舜登庸
갑인71 64731
을묘72 64732 薦舜于天命之位
병진 虞舜64733 正月上日舜受命于 文祖
정사2 64734
무오3 64735
…
辰 유2159 갑자9 64741 (B.C.2277)
…
계미28 64760 帝舜殂落
…
병술31 64763 月正元日舜格于文祖
…
계사38 64770
辰 해2160 갑오39 64771 (B.C.2247)
...
92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병진61 64793 薦禹于天命之位
정사夏禹64794 正月朔且受命于神宗
무오2 64795
…
계해7 64800 (B.C.2218)
관물15 月午7 星甲181
辰 유2161 갑자8 64801 (B.C.2217)
…
관물16 星乙182
辰 자2173 갑자23 65161 (夏孔甲)
…
辰 인2175 갑자22 65221 (夏癸)
…
辰 묘2176
갑오52 65251
을미商湯65252 (B.C.1766)
병신2 65253
…
관물17 星 병183
辰 자2185 갑자10 65521 (商祖辛)
…
신미商沃甲65528 (B.C.1490)
임신2 65529
…
관물18 星 병184
辰 자2197 갑자18 65881 (商受辛)
…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의 편찬 배경과
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93
4) 소자전서 권11 황극경세4 이회경운7-12 / 관물19-24
황극경세 권4 이회경운7-12 / 관물19-24에는 권3의 역사에 뒤이어 간략한 역사연표가
주나라 유왕 5년(B.C.777)부터 소옹이 죽은 해인 송나라 신종 10년 정사년(A.D.1077)까지 이어진다.
신종 10년까지만 왕의 재위 연수가 나오고 이후는 왕의 재위 연수 없이
연호와 왕명만으로 德祐(A.D.1275) 을해년까지 이어진다.
이는 후대에 보완한 것임을 알려준다.
대부분 왕조명과 왕명 연수 연호로만 구성되었다.
唐왕조 中宗의 재위 연수를 기년 체계에 올리고 측천무후의 연호 개변 사실은
그 아래 기사에 수록한 점은 후일 강목체 역사서의 정통론에 일정한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辰 술2207 갑자42 66181 (周厲王)
…
갑술 周宣王66191 (B.C.827)
을해2 66192
…
계사20 66210
辰 술2208 갑오21 66211
…
기미46 66236
경신 幽王66237
신유2 66238
임술3 66239
계해4 66240 (B.C.778)
94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日甲1 月午7 星戌185 辰子2209
황극경세4 以會經運7-12閉物終
月戌之中 經星之戌315 간지 기년은 經辰之亥2280 계해년(68400) A.D.1383년에서 끝난다.
이는洪武 元年 무신년 A.D.1368년이 經辰之亥2280에 속하기 때문이다.51)
그뒤에는 閉物되어 끝나는 시기를 月戌之中 經星之戌315로 비정하였다.
그폐물에 이르는 이전 단계의 연표는 經月之午7 經星之癸190 經辰之子2269(68041-68070)에서 시작하였다.
간지 기년의 시작 갑자년은 송 인종2년에 해당한다.
經辰之子에서 經辰之亥까지 차례로 나열한 뒤 經星之甲191부터는 經星之乙192, 經星之丙193... 經星之癸200 순으로 이어진다. 經星之甲201부터는 經月之未8, 經星之甲241부터는 經月之申9, 經星之甲271부터는 經月之酉10, 經星之甲301부터는 經月之戌11에 속하게 된다.
술회(經月之戌11) 30단위 기년의 절반인 經星之戌315에서 폐물되므로 황극경세4의 연표도 經星之戌315로 끝난다.
51) 正統道藏본 황극경세에는 宋 理宗 紹定6년 계사년 A.D.1233까지 연단위로 기년하다가
그 후 端平 원년부터는 원년만 기록하고 宋 亡이후는 기록이 없다가 元 亡, 洪武 元年 기년이 있다.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의 편찬 배경과
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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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자전서 권12 황극경세5 이운경세 1-6 / 관물25-30
황극경세 권5-6은 요임금으로부터 시작하여 1년 단위의 60갑자로 기년하여
자세한 인간의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天道와 함께 인간사가 진행됨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經日ㆍ經月ㆍ經星ㆍ經辰으로 기년하다가 일률적으로 經世之甲1 經世之巳6 經世之癸 經世之子2149 등 ‘經世’로
통일하여 기년한 것은 인간 세상의 변화를 기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백온의 견해를 다시 인용하면 “運으로 世를 관할함에 世數와 갑자 아래에 帝堯로부터 오대에 이르기까지 書傳에 기록된 흥폐치란과 邪正의 자취를 기록하여 인사로써 천시에 증험하려는 것”이라 하였다.
권5는 經世之子2149로부터 시작하여 經世之丑ㆍ寅ㆍ卯ㆍ辰ㆍ巳ㆍ午를 거쳐 經世之未2156에서부터 간지 甲午가 시작되고 갑진년에 요임금에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였다.52)
96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經世之甲181, 經世之乙182, 經世之丙183, 經世之丁184, 經世之戊185 순서로 권수(2-6)가 바뀌며,
經世之亥222053) 계해년(66600)B.C.418에서 황극경세 권5의 내용이 끝난다.
6) 소자전서 권13 황극경세6 이운경세 7-10 / 관물31-34
황극경세 권6은 권5에 뒤이어 經元之甲1 經會之午7 經運之己186 經世之子2221 갑자년(66601, B.C.417) 周 威烈王 9년부터 기사가 시작되며 經運之庚187, 經運之辛188, 經運之壬189 순서로 권수가 바뀌며(7-10), 經世之酉2266 기미년(67976, 서력959년) 後周가 契丹을 정벌했다는 기사로 황극경세 역사 연표는 끝난다.
52) 甲辰 唐帝堯 肇位于平陽 號陶唐氏 命羲和 欽若昊天厯象日月星辰 敬授人時 朞三百六旬有六日 以閏月定四時成 嵗曰載 建寅月為始 允釐百工庻績咸熈
53) 인터넷 서비본 일본 내각소장 邵子全書 12책 황극경세5의 마지막 부분 經世之酉2218계축년 이후부터 經世之酉2220 임인년까지 총 6면이 누락되었다. 正統道藏본 및 국립중앙도서관 필사본 참조.
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의 편찬 배경과
황극경세 紀年 체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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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재의 기년체계
통재의 범례에는 원회운세에 대하여 앞서 인용하였듯이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하였다.
소옹의 황극경세서는 象으로 數를 일으키고 하늘을 미루어 합일하니 그 편년 기사의 법은 실로 춘추의 법을 취했다.
以元經會는 오로지 천도로써 수가 펼쳐지니 간지만으로 원회운세에 배속하여 천도의 소장하는 이치를 드러냈다.
以會經運은 천도를 미루어 인간사를 합하고 그 인간사를 대략적으로 적어 그 대강을 제시하여 천인이 서로 참여하는 묘함
을 드러냈다.
以運經世는 인간사만을 다루며 그 대요를 기록하여 인간사의 막힘과 풀림의 기미를 드러내었다고 해설하였다.
통재는 단지 이운경세의 법을 썼다.
즉 황극경세 권5-6의 부분을 그대로 가져오고 여기에 동사를 한 칸 내려적고 기사 구분은 〇로 하였다.
그리고 송나라와 원나라의 역사는 세사정강을 토대로 추가하였다.
우리나라 첫 번째 기사는 唐堯 24년 무진년에 수록된 〇檀君爲東方君 國號朝鮮 都平壤<後徙白岳>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통재의 중국사 하한선은 원나라 황제가 죽은[殂] 순제 2년정미년까지다.
무신년 大明太祖 홍무 원년이하는 고려사의 기록만 있다.
고려사 기록의 하한선은 임신년 공양왕이 손위하여 고려가 망하였다는 기록까지이다.
후에 간행되었지만 통감강목의 간지 기년은 정통왕조의 국호와왕명 또는 연호를 大書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황극 경세의 국가와 왕명 재위연수 기년은 經世之子, 經世之丑, 經世之寅 ... 등으로 변화하는
경세 기년 체계에서 30년마다 즉 갑자년과 갑오년에만 나오고 연호의 변경 등은 역사 기사로 서술하였을 뿐이다.
이외에 자세한 분석은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Ⅳ. 맺음말 ========다음페이지에 계속
이상에서 통재의 편찬배경과 황극경세 기년 체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98 韓國史學史學報 35(201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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