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불이(師弟不二)면 광선유포는 반드시 된다
강의
1958년 3월 16일, 우리 스승인 도다 조세이 선생님 슬하에 남녀 청년부 6,000명이 모여 광선유포 기념식을 거행합니다.
“창가학회는 종교계의 왕자다.”
이 도다 선생님의 선언대로 청년문하가 광선유포의 위대한 사업을 계승하는 장엄한 사제의 의식이었습니다. 75만 세대의 서원을 실현하신 선생님은 우리 청년들에게 모든 후사(後事)를 맡기셨습니다.
꿋꿋하게 자라라, 청년이여!
막힘없이 나아가라, 젊은이여!
그 광포의 장엄한 의식에서 1주년을 맞은 이듬해 봄, 도다 선생님은 이미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제(師弟)는 불이(不二)기 때문에 생사를 넘은 선생님의 사자후(師子吼)는 내 마음에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청년부 대표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3월 16일을 영원히 광선유포를 기념하는 명절로 삼읍시다! 싱싱하고 짙푸른 보리와 같은 청년의 계절인 3월에 스승 슬하에 청년부가 결집한 것에는 불가사의한 의의가 있습니다.”
3월은 초여름에 수확하는 보리가 한창 자라는 시기입니다. 보리밭은 지금껏 추운 바람과 서리에 지지 않고 젊고 싱싱한 청년처럼 파랗게 빛나고 있습니다.
“꿋꿋하게 자라라, 청년이여! 막힘없이 나아가라, 젊은이여! 끝까지 승리하라, 제자들이여!” 그것이 도다 선생님의 바람이셨습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부탁한 희망의 길입니다. 생명 법칙의 길입니다.
이번 <화과성취어서>를 배독하고 상쾌하게 승리의 꽃이 활짝 피는 내일을 위해 사제 진수의 길을 함께 나아갑시다.
본문 _ 어서 900쪽 처음 ~ 2행
그 후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소이다. 그런데 건치의 무렵, 고 도젠보성인을 위하여 두 서찰을 써 보낸 것을 가사가모리에서 읽으셨다고 하니 기뻐하고 있소.
현대어역
그 뒤로 소식이 끊겨 어떤 일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건치(建治) 무렵, 고(故) 도젠보성인(道善房聖人)을 위해 써서 보낸 두 서찰을 가사가모리(嵩森)에서 읽어드렸다니 기뻐하고 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밝히다
이 어서는 1278년 4월 니치렌대성인의 고향인 아와지방(安房地方, 지금의 지바현 남부)의 세이초사(淸澄寺)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절 동문 선배인 조켄보(淨顯房), 기조보(義淨房) 두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2년 전(1276년), 대성인이 불문(佛門)에 들어선 당시의 스승인 도젠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노부에서 부보(訃報)를 들은 대성인은 옛 스승을 그리워하며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진심을 담아 <보은초(報恩抄)>를 쓰셨습니다. 여기에 조켄보 앞으로 <보은초 송문(報恩抄 送文)>을 덧붙여 문하 한 사람을 시켜 세이초사로 보냈습니다.
보은초 송문에서 대성인은 조켄보와 기조보가 기요스미산과 도젠보 묘소에서 <보은초>를 읽어드리도록 심부름 간 문하에게 부탁하십니다. 도젠보를 위해 <보은초>를 읽어주어서 대성인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대성인을 지킨 조켄보와 기조보
여기서 대성인과 세이초사 그리고 옛 스승인 도젠보, 동문 선배인 조켄보와 기조보의 인연을 다시 한번 확인해두고자 합니다.
대성인은 열두살이 되던 해에 세이초사에 올라가 도젠보를 스승으로 입문하셨습니다. 세이초사는 태밀(台密, 천태밀교<天台密敎>)의 흐름을 믿는 비교적 큰 사원으로 승방 몇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도젠보는 그런 승방 하나의 주승(住僧)이었습니다. 또 어린 대성인이 입문 당시 가장 친근한 선배로, 가족처럼 친절하게 불법연찬의 기초를 가르쳐준 사람이 조켄보와 기조보였습니다.
이윽고 열여섯살에 정식 승려가 된 대성인은 불법의 간요(肝要)를 구명(究明)하려고 히에이산 등에서 연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이 바로 모든 경전의 왕이며 그 간요인 만인성불의 근본법인 남묘호렌게쿄를 홍선(弘宣)하는 일을 생애 사명으로 결의하셨습니다.
1253년 4월 28일, 니치렌대성인은 세이초사에서 본격적인 종교개혁의 투쟁을 시작하셨습니다. 입종선언(立宗宣言)입니다.
염불의 강신자인 지두(地頭), ①도조가게노부(東條景信)가 금방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인 도젠보는 겁이 많아서 마음속으로 대성인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지두의 권력이 두려워 대성인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속에서 대성인을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불법의 진수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곁에서 봐온 조켄보와 기조보 두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대성인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대성인은 뒷날 이 행동을 “천하제일의 법화경의 봉공(奉公)이며, 후생은 의심할 바가 없느니라.”(어서 324쪽)라고 상찬하셨습니다.
법화경의 믿음을 관철하지 못한 도젠보
1264년 11월, ②고마쓰바라법난(小松原法難) 직후, 대성인은 아와지방 사이조하나부사(지금의 지바현 가모카와시)에서 옛 스승 도젠보와 다시 만납니다. 이때 도젠보는 “염불신앙을 지속하고 있다. 아미타불상을 다섯체 조립했다. 그리고 내 후생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불안한 심정을 대성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이때 대성인은 충언이 귀에 거슬릴지 몰라도 굳이 엄한 어조로 도젠보의 방법(謗法)을 파절하셨습니다.
대성인의 열정 어린 절복이 큰 기연(機緣)이 되었을까요. 그 뒤 도젠보가 법화경에 귀의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대성인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러나 대성인이 다쓰노구치법난, 사도유죄라는 대난에 처했을 때 도젠보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뒷날 대성인은 이때 일을 “힘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사도의 지방까지 귀양갔는데도 한번도 찾아주지 않은 것은 법화경을 믿었다고는 할 수 없느니라.”(어서 323쪽)라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도젠보가 대성인의 옛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탁월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도젠보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듣고, “불속에라도 들어가고, 물속에라도 뛰어 들고, 달려가서라도”(어서 323쪽) 어떻게라도 묘 앞에 가서 경(經)이라도 한권 독송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심정은 앞에 소개했듯이 <보은초>를 묘 앞에서 읽어드린 일로 결과를 맺었습니다.
준엄한 법리상(法理上)으로는 법화경 신앙을 관철하지 못한 도젠보를 엄하게 가책하면서도 옛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에서 어떻게라도 구하려고 하신 대성인의 진심이 전해집니다. 이 어서의 첫 구절에서도 광대한 마음으로 옛 스승을 감싸는 대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 _ 어서 900쪽 2행 ~ 4행
비유컨대 뿌리가 깊을 때는 지엽이 마르지 아니하고, 수원에 물이 있으면 흐름이 마르지 아니하며, 불은 땔나무가 떨어지면 꺼지고, 초목은 대지가 없이는 생장할 수 없느니라.
니치렌이 법화경 행자가 되어 선악에 걸쳐서 니치렌보, 니치렌보 하고 불리우니 이 은혜는 오로지 고사장도젠보 때문이 아니겠느뇨. 니치렌은 초목과 같고 사장은 대지와 같으니라.
현대어역
비유하면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은 시들지 아니하고, 수원에 물이 있으면 흐름이 마르지 않는다. 불은 땔 나무가 떨어지면 꺼지고, 초목은 대지가 없으면 생장(生長)할 수 없다.
니치렌이 법화경 행자가 되어 선악에 걸쳐서 니치렌보, 니치렌보 하고 불린 이 은혜는 그대로 모두 고인이 된 스승인 도젠보 덕분이다. 니치렌은 초목과 같고 스승은 초목을 기르는 대지와 같다.
‘지은(知恩)’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
여기에서는 제자의 처지에서 스승에게 깊은 보은 감사의 심정을 드러내어 말씀하십니다. 누구 덕분에 내가 지금 있는가, 어떠한 떠받침과 어떠한 인연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가……. 그 유래를 깊이 아는 일이 지은(知恩), 보은(報恩)의 기반이 됩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입니다.
그런 눈으로 배독하면 “뿌리가 깊이 뻗어 있으면 가지와 잎이 시들지 않는다.” “수원에 끝없이 물이 솟아 나오면 흐름은 마르지 않는다.” “불은 땔나무가 없으면 꺼진다.” “초목은 대지가 없으면 생장할 수 없다.”라는 비유에서, 나를 크게 길러준 존재에 대한 끝없는 이해와 감사가 떠올라 가슴에 벅차 오릅니다.③
나는 이 비유에서 ‘생장(生長)’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싶습니다. 제자의 성장(생장)이 바로 사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주제)임이 틀림없습니다.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대하(大河)가 도도히 흐르며, 불꽃이 활활 넓게 번지고, 초목이 쭉쭉 생장하는 모습, 이는 모든 후계의 제자가 성장하는 상징이 아닐까요. 불법을 널리 퍼지게 하여 미래 영원히 전해 남기는 일도, 불법을 이어받아 수지하는 사람인 제자의 성장에 달려 있습니다.
대성인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 뒤를 이어 훌륭하게 성장한 난조 도키미쓰에게 “남(藍, 쪽)보다도 푸르고, 물보다도 차가운 얼음이로다.”(어서 1555쪽)라고 상찬하십니다. ④“남보다 푸르다”입니다. 제자의 성장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대성인 자신에게 진정한 제자의 증거인 ‘성장’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화경 행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법화경 행자’는 탁세말법에서 법화경을 여설수행하는 홍통자(弘通者)며, 대난(大難)을 받으면서 부처를 대신해 악세의 민중을 구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불법을 구명하고 ‘법화경 행자’가 된 연원(淵源)을 살펴보면 도젠보와 사제의 연(緣)을 맺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