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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식 시인 시집 [질문] 대하여
작성일2024.02.15. 15:16
"어라! 저게 뭐지?" 인간은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산다. 하나의 대상을 온전히 알기까지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물음표가 던져진다.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에 노출되면 정답을 생각할 여유 없이 수업시간에 쫓기어 정답을 빨리빨리 알려주면 학생들은 더 이상 물음표를 닫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물음표를 닫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철학자라 할 수 있다. 철학자를 현생 인류로 분류하면, 질문(question) + 현생 인류(Homo sapiens) = 질문하는 인간(Homo quespiens)으로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탐구와 질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철학자들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자들이 질문을 던지면 또다른 질문으로 답을 찾아가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런 수업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깨우치는 수업'이라 한다. 부모나 선생님들은 아이가 질문하면 정답을 알려줘서 가르치고 있는가. 또 다른 질문으로 정답을 깨우치고 있는가. 자신의 깨달음을 제자들에게 깨닫도록 질문하면 철학자이고, 자신의 깨달음을 시(詩)라는 형식으로 전달하면 시인이다. 여기서 형식은 답답한 틀이 아니라 시인과 독자가 가장 쉽게 만나게 하는 자유로운 도구이다.
김형식 시인은 철학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 경지가 상당히 높아 누가 봐도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래서 김 시인을 만나면 철학자인지 시인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그 눈빛이나 언어는 철학자인데 시집을 받아들면 시인이다. 그 수정같은 눈빛은 마치 어린아이의 눈빛 같아서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지는 철학자가 아닌가. 김 시인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라며 시를 쓰고 있고 시집 이름마저 『질문』이라 했으니 얼마나 철학적인가.
철학은 인간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행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철학을 '육하원칙'이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육하원칙을 기사문을 쓰는 원칙 정도로만 치부했다. 그러니 철학을 육하원칙이라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으로 철학을 했듯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의 질문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진로를 가르치면서 '왜, 어떻게, 무엇을, 누가, 어디서, 언제' 거꾸로 질문을 던진다. '왜' 의사가 되려 하는가. '어떻게' 의사가 되려하는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질문하고 질문하라 / 당신도 질의 문에서 나왔다 // 질문은 생명의 문 /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 // 태양도 지구도 / 석가도 예수도 / 철학도 예술도 / 질문에서 나왔다 // 질문에는 세 가지 갈증이 있다 / 그 하나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요 / 그 둘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 그 셋은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 질문을 던져라 / 인간의 심장을 뜨겁게 하라 //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 죽은 몸이다 / 질문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 질문하고 질문하라 / 질의 문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 「질문」 전문
김형식 시인의 표제(標題) 시이다. 위에서 필자가 장황하게 설명한 것을 시인은 한 편의 시로써 힘 있게 피력하고 있지 않은가. '질문은 생명의 문'이고 '태양도 지구도 / 석가도 예수도 / 철학도 예술도 / 질문에서 나왔다'고 하니 질문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면, 다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왜'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이 더 날카롭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비수 같아서 늘 찌르고 아파한다. '어떻게 글을 쓰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모래시계처럼 주어진 시간은 그 끝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데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신의 뜻이고 /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것도 신의 뜻이다 // 두 발 딛고 / 일어서는 것도 신의 뜻이고 /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 미워하는 것도 신의 뜻이라니 // 내 자의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 생각하는 것조차도 신의 뜻이다? // 신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 그리하여 신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야 한다' - 「신을 죽여야 산다」 전문
역설의 시이다. 독일 실존철학의 선구자 니이체는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했다. 여기서 니이체의 신은 '그리스도 예수'였고, 김 시인의 신은 '부처'이다. 부처님이 모든 문화와 가치의 기준이다. 신의 세계는 불변하는 '초월'이요, 인간의 세계는 변화하는 '현상'이다. 신의 초월 앞에 인간의 현상은 모든 것이 지배당한다. 초월적인 신은 절대적이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나약한 존재가 된다. 니이체가 바로 '신은 죽었다'고 했던 것처럼 김 시인은 '신을 죽여야 산다'라고 외친 것이다. 신을 죽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죽음이다. 그러나 신은 죽지 않는다. 그래서 강한 역설이다.
'잎은 봄에 / 꽃은 가을에 / 서로 만나지 못하고 핀 꽃무릇 // 아직도 풀지 못했어? / 전생의 업 그리 두터운가 // 심장에 붉은 피는 /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 돌고 도는데 // 무엇이 그리 꼬여 / 얼굴을 돌리고 살아가고 있는가 // 녹여 내야지 /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 그 응어리 녹여내고 / 우리 마주 보고 곱게 피자' - 「화해」 전문
살며 날카로운 '어떻게'를 잘 풀지 못하면 꼬이고 얽혀 풀리지 않는다. 잎은 봄에 피어나 푸른데 가을에 길쭉이 올라와 붉게 피는 꽃무릇을 보면 시인은 잎과 꽃의 거리를 본다. 풀지 못한 인간의 관계가 보인다. 잎과 꽃이 붙어 다정히 피는 꽃들 속에서 꽃무릇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대단한 비유이다. '화해'하지 못해 응어리로 사는 인간의 아픔을 노래했다. 그냥 두면 저절로 풀리겠지 하지만 절대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서로 다정히 오가던 길도 그냥 두면 어느 틈엔가 풀이 무성히 자라 길이 끊어진다. '우리 마주 보고 곱게 피자'는 마무리로 인간의 사랑은 서로 마주 보며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김형식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질문』은 ‘철학’과 ‘문학’이 결합한 멋진 수작(秀作)이다. 깨달음을 철학과 시로 동시에 표출한 것이다. 앞서 '철학'은 '질문'이라 했듯이 김 시인은 그 질문의 답을 '부처님'에게서 찾았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지식'을 공부하지만 그 지식 중에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자연과학'을 뺀 부분을 '인문학'이라 한다. '인문학'은 '행복'을 기반으로 '비유, 상징, 반어, 역설, 풍자'의 기법을 동원한다.
인문학 위에 철학이 있고, 철학 위에 신학이 있다. 철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신학은 '정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왜, 어떻게, 무엇을 등'의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신학은 그 질문에 '정답'을 제시한다. '불경', '성경', 코란' 등이 그 답을 모아 엮은 경서이다. 질문을 던지는 인간은 그 '정답'을 추구하면서도 회피한다. 마치 '신을 부정'하면서도 스스로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행복을 위해 신에 '올인'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한다. 올인하는 사람들은 신이 주는 행복이 가장 큰 행복 곧 '은혜', '평화', '열반'이라고 한다.
김형식 시인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고, 전남대 농경제학과와 무불선학대대학원을 졸업했다. 김 시인에게 그 '질문'의 답을 알려주시는 분은 '부처'였듯이 시 속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읽을 수 있다. 해인총림 고경총서 37권, 성철스님 법어집 11권에 심취, 불가에 입문한 후 말과 글을 기피하고 강원 심산에서 20여 년을 칩거해 온 종교인이자 철학자이다. 그 깊은 깨달음의 세계를 '시'로 표현하니 시의 깊이가 심오하다.
1969년 현대문학 창작입문과정 이수하고, 2015년 불교문학에 시 「그림자 둥지」 외 4편, 2020년 한강문학에 「詩聖 한하운의 詩 어머니에 대한 소고」로 문학평론가 등단했다. 한국청소년 문학대상, 제2회 시가서울 문학대상을 수상했으며, 송파문협 시분과위원장, 불아문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그림자 하늘을 품다』, 『오계의 대화』, 『광화문 솟대』, 『글, 그 씨앗의 노래 』, 『인두금의 소리』, 『성탄절에 108배』 등으로 철학 하는 시인, 시 쓰는 철학자 호모 퀘스피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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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퀘스피엔스 (호메로스)
: 고대 그리스의 시인. 유럽 문학의 최고(最古)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작자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