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신풍속도
한상림
총선을 앞두고 맞이하게 된 송년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하다. 매스컴에서 쏟아지는 여․야 갈등으로 국민까지 분열되어 가고 서민 경제를 챙기는 건 뒷전이다. 점점 양극화 되어가는 정치 성향으로 서민은 더 불안해진다.
추억이 그리워서인지 몰라도 아날로그적 감성이 풍부하던 70-80 송년 분위기가 훨씬 정겹다. 그때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옷마저 귀하던 때라 온몸을 움츠리고 걸었던 도심의 거리가 그립다. 거리에서는 캐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자선냄비 딸랑이는 방울 소리가 행인의 발걸음을 잡았던 훈훈한 분위기였다. 저작권과 소음 때문에 사라진 캐럴 음악이 아쉽다. 그때와 달리 이웃돕기 성금을 SNS로 전달할 수 있고 선물도 직접 배송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면 정확하게 전달되는 시기이니 다양한 방법으로 훨씬 수월해졌지만, 작은 손길로 자선냄비에 넣던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의 손길만큼 따스해 보일까?
송년회는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하면서 단합하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송년회를 한때는 망년회(忘年會)라고 하면서 한 해의 안 좋은 기억을 잊는 데다 더 큰 의미를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어온 송년회 모습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파티의 장에 의미를 더 크게 둔 것인지도 모른다. 음주 가무를 즐기는 우리 민족성이 좋은 풍습이기는 하나 이왕이면 어려운 이웃과의 나눔을 곁들였으면 한다. 연말이 되면 각종 종교단체나 지자체와 소소한 모임에서도 소외된 이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각 동 주민센터에서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고, 희망 온도를 높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회복지기금을 마련하여 다음 해 1년 동안 소외된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얼마 전 모 향우회 회장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단톡방에 쏟아지는 후원금 명단과 후원품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고, 송년회 일정표가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연중 가장 큰 향우회 송년 모임을 성대히 하여서 축하 잔치를 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일부를 이웃돕기 행사로 겸한다면 훨씬 의미가 커질 거 같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바로 임원진과 의논해서 추진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경품을 나눠 간다면 송년 모임의 의미가 향우회 모임에서만 만족하는 것이지만, 이웃과 함께 나눠 가지면 송년회가 가져다주는 기쁨은 두 배가 된다. 고향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해도 좋고,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나눠줘도 좋다. 아니면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해도 좋다.
매년 반복되는 송년 모임의 패턴도 변화해야 한다. MZ 세대들의 송년회 모습을 보면 음주 가무가 주를 이뤘던 종전 모습과는 달리 점심 회식이나 단체 영화 관람 등 새로운 문화가 정착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통적인 송년 모임이 한동안 고물가로 외식 비용의 지출이 부담스럽다 보니 과도한 폭음을 꺼리는 현명한 선택이 만들어 낸 신풍속도이다. 송년회 비용을 아껴서 여러 가지 경품 행사로 가전제품 등을 사원에게 나눠 주기도 한다. 술에 취해서 지내는 송년회보다 훨씬 알차지 않을까.
송년은 가족과 혹은 연인과 친구들과 조용히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이면 좋겠다. 지난 한 해 동안 서로 바빠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면서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작은 선물이나 좋아하는 책 한 권씩 나누는 것도 좋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나눠주면 그 기쁨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