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으로 읽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 2편
시계와 모공편 (옥포,사천,한산도대첩 분석과 적용)
아들아,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행보를 손자병법으로 한번 더 읽어보자.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제1차 출정에서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승리하였고,
제2차 출정에서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에서 승리하였으며
제3차 출정에서 한산도대첩, 안골포 해전에서 승리하였고
제4차 출정에서 장림포를 시작으로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초량목을 거쳐
부산포에서 승리를 거두며 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다.
손자병법에서 손무가 역시 시계편에서 말한 구절을 보자.
전쟁과 병법의 요체는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故能而示之不能, 用而示之不用, 近而示之遠, 遠而示之近.
(고능이시지불능,용이시지불용,근이시지원, 원이시지근)
그런 이유로 능력이 있어도 없는 것 처럼 보여야 하고,
군사를 움직이려 해도 안하는 것 처럼,
가까운 곳을 노려도 먼 곳을 보는 것 처럼,
먼 곳을 노려도 가까운 곳을 보는 것처럼 해야 한다.
利而誘之, 亂而取之, 實而備之, 强而避之, 怒而撓之, 卑而驕之
(리이유지, 난이취지, 실이비지, 강이피지, 노이요지, 비이교지)
이익으로 유인해 내고, 어지러울 때 공격하고,
상대의 준비가 충실하면 대비하여 지키고
적의 전력이 강하면 피하고, 분노하면 부추기고
얕보게 해서 상대를 교만하게 하라.
佚而勞之, 親而離之, 攻其無備, 出其不意.
(이이노지, 친이리지, 공기무비, 출기불의)
상대가 쉬려하면 괴롭혀서 피로하게 만들고,
가까운 사이는 분열시켜 이간질하고,
방비가 없는 곳을 공격하고, 그들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라.
此兵家之勝, 不可先傳也.
(차병가지승, 불가선전야)
이러한 병법이 승리의 비결이며, 이것이 미리 누설되어서는 안된다.
아들아 그래서 손자병법에 따르면 명장은 당연히 이와 같이 지모가 있어야 하고
그는 여러 방법으로 적을 속이면서 적을 끊임없이 흔들어야 한다.
때로는 아군에게도 숨기고 아군을 속여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기회를 포착하면 과감하게 나아가 싸워 이기는 것이다.
또한 손자병법의 모공(謀攻)편에 보면 승리를 미리 알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을
말하고 있다.
故知勝有五 (고지승유오)
승리를 미리 알 수 있는 다섯가지가 있다.
知可以戰與不可以戰者勝.(지가이전여불가이전자승)
싸울 때와 싸우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자는 승리한다.
識衆寡之用者勝 (식중과지용자승)
무리가 많고 적음에 따라 용병할 줄 아는 자는 승리한다.
上下同欲者勝 (상하동욕자승)
군주 또는 장수부터 병졸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하나로 하면 승리한다.
以虞待不虞者勝(이우대불우자승)
만반의 대비를 한 자가 준비되지 않은 자와 싸우면 승리한다.
將能而君不御者勝(장능이군불어자승)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
此五者, 知勝之道也(차오자 지승지도야)
이 다섯가지가 승리를 미리 아는 방법이다.
故曰, 知彼知己者,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고왈,지피지기자,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그런 이유로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자는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아는 자는 승패를 알 수 없으며,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자는 매번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
아들아, 우리가 손자병법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란다.
여기서 말한 병법이 어떻게 활용되었는가.
대표적으로 옥포해전, 사천해전과 한산대첩의 사례를 보자.
아들아, 통상적으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해전에서 많이 보게 되는 전략, 전술의
요체를 보자면, 아빠가 분석한 내용은 이렇다.
첫째, 탐망을 통해..적의 위치와 군세를 미리 파악한다.
둘째, 전투는 적보다 수가 많거나 대등하거나. 아니면 작아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의 적을 상대로 한다.
셋째, 전장과 전투의 시기는 조선 수군이 선택한다.
넷째, 조선 수군은 항진도 전투도 대형을 유지하고, 판옥선과 우월한 화포의 위력을
살려서 원거리 함대함 포격전으로 전투를 수행한다.
일본군의 강점인 단병전술을 살릴 수 있는 접근전과 도선전략의 여지를 최대한 없앤다.
즉, 이는 우리의 강점을 살리고 일본의 강점을 없앤다는 뜻이다.
다섯째, 아군의 규모가 일본군의 전함에 열세이므로 유리한 지형, 좁은 물목을 막아
적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해전을 뜯어보면 대략 이렇게 다섯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1597년 9월 명량해전과 1598년 11월 노량해전은 이 원칙에 맞지 않는 예외적인
전투라 할 수 있단다. 물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만.
1592년 5월 7일,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제1차 출정, 최초의 승리였던 옥포해전은..
조선 수군과의 전투라기 보다 남해안의 포구 하나씩 점령하면서 약탈과 육군에 대한
수송의 임무를 크게 본 일본 수군과의 전투였단다.
거제 옥포에서 일본 수군은 정박한 상황에서 해안 주변에 대한 약탈과 분탕질에
여념없었고, 탐망으로 일본 수군의 위치와 규모를 파악한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
연합함대가 옥포만 입구를 봉쇄하고 포위해 버렸지.
경상우수영과 좌수영 수군이 제대로 된 전투없이 그대로 붕괴했기에 적군에 대한
경계를 풀고, 조선군을 경시한 것이 일본군의 첫번째 실책으로..
그들은 무방비 상황에서 그야말로 기습을 당한 격이 되었단다.
일본수군은 급히 승선하여 조선 수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려 했지만 전함 23척이
격침되고 4천 여명의 일본 수군이 수장당했다.
손자병법 모공편의 攻其無備, 出其不意(공기무비, 출기불의) 적이 방비하지 않은 곳을
공략하고 적이 예상하지 못한, 뜻하지 못한 곳으로 진격하라는 구절이 적용된 사례가
바로 옥포해전이란다.
1592년 5월 29일,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제2차 출정의 사천해전은..
아들아, 너도 잘 아는 귀선이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전투로도 유명하지.
전투지역은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성 앞 바다. 너도 가본적 있는 곳이란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사 원균의 경상우수영 연합함대는
귀선 2척, 판옥선 26척의 전력으로 사천선창을 점거한 일본 수군 13척을 공략했단다.
일본군은 전함을 선창에 매어두고 산 위에서 진을 치고 조총으로 응사하며 대항했단다.
그 과정에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체암 나대용 제독이 총상을 입었지.
조선 수군을 상륙시킬 수도 있지만, 단병접전에서 강점을 보이는 왜군을 상대로
육상전을 했을 때, 우리가 공략하는 입장이라면 피해가 클 것이 예측되고..
거기에 조류도 썰물이 가까워 전투에 불리한 상황이었어.
사천해전 현장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성 앞바다)
일본 수군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부상과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공격에 물러나자
산을 내려와 전함에 승선하여 추격해 왔고, 넓은 바다로 끌고 나온 후 곧바로 함대의
방향을 돌려 일본 수군에 반격하여 일본 전선 13척 모두 격침하고 2천여의 일본 수군을
수장시켜 버린 것이 바로 사천해전이란다.
여기서는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編)에 나오는
利而誘之, 亂而取之, 卑而驕之(리이유지, 난이취지, 비이교지)
즉 이익으로 꾀어 유인해 내고,
갑자기 행로를 되돌려 반격함으로써 일본 수군이 당황한 틈을 파고 들었고,
일본 수군을 유인할 때 약하게 보여 그들을 교만하게 하였던 것이 적용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단다.
병법에 이르기를 輕敵必敗(경적필패). 적을 가벼이 여기면 반드시 패한다 했다.
이렇게 단순하게 경솔하게 처신해 패전을 자초한 것을 보면 적장 구루지마 미치유키의
기량이 경상우수사 원균의 그것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지.
1592년 7월 8일,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제3차 출정..한산대첩의 날이었단다.
아들아, 한산대첩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로
우리의 큰 승리였고, 일본 수군의 수륙병진책을 좌절시켜 결정타를 가한 큰 의미를 가진
해전이란다.
또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적 함대를 섬멸할 때 펼친 포위섬멸전, 학익진(鶴翼陣)이란
진형도 상당히 유명하지.
의민공 이억기 제독(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中)
조선 수군은 전라좌수사 충무공 이순신 제독, 전라우수사 의민공 이억기 제독(毅愍公
李億祺,1561~1597), 경상우수사 원균이 이끄는 연합함대 귀선 3척, 판옥선 52척의
전력으로 일본수군 와키자카 야스하루(協板安治)가 이끄는 전선 73척에 맞섰단다.
사실 일본수군은 계속된 패전을 만회하고 남해안의 제해권을 쥐고자 병력을 증강하고
서진해 왔는데..와키자카 야스하루 말고도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가 이끄는
함대 40여 척도 있었어.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
일본 수군에게 있어 최선은 와키자카 야스하루,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가
연합 함대를 구성하여 최대 규모의 함대를 조직하고
통영과 거제 사이의 좁은 물목 견내량의 지리적 이점을 취하고 있다가 유리한
물살을 타고 그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조선 수군을 향해 돌격하는 것이었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이런 적의 강점을 무력화 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단계의
작전을 구사했단다.
먼저 일본 수군 장수간 군공을 다투는 경쟁관계를 이용하여 그들 사이를 이간질 하였고
특히 선봉에 선 호전적인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호승심(好勝心)을 자극했어.
손자병법의 利而誘之(리이유지), 즉 이익을 미끼로 적을 유인해 낸다.
親而離之(친이리지), 적의 가까운 사이를 분열시킨다. 이 구절이 적용되었고,
또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우리와 적이 대치할 견내량(見乃梁)이 좁고 길며 수심이
얕고 암초가 많아 우리 수군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우리 수군이 원하는 넓고 깊은
바다..한산도 앞바다로 전장을 삼기로 결정하고, 주변에 주력함대를 매복하게 했어.
판옥선 5~6척을 별동대로 삼아 견내량의 적 함대를 선제공격하여 우리 전선의 약함을
보여 적을 교만하게 하였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배후에서 합류할 아군 함대를 기다리지 않고, 호승심에 눈이 멀고
눈 앞의 적에 교만해져서 전 함대 병력을 동원해서 추격해왔고,
그렇게 유인되어 추격해온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학익진으로
포위하고 사방에서 함포 사격으로 섬멸했단다.
적선 73척 중 59척을 격파하고 6천여의 일본 수군을 수장시킨 대승이었다.
학익진(鶴翼陣,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中)
손자병법의 利而誘之, 卑而驕之(리이유지, 비이교지).
이익으로 꾀어내고, 약함을 보여 교만하게 만들어라는 구절을 제대로 활용한 셈이란다.
兵者, 詭道也 (병자, 궤도야) 전쟁의 요체는 적을 속이는 것이다.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충무공 이순신 제독에게 완벽하게 속아서 대패를
자초했다. 이게 바로 한산대첩(閑山大捷)이란다.
아들아, 어떠냐..
충무공 이순신 제독만큼 知彼知己를 잘하고, 또 兵者, 詭道也.
병법의 요체는 적을 속이는 것이란 그것을 그만큼 제대로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장수가 또 있을까.
이렇게 손자병법으로 뜯어보는 우리 역사 속 전쟁 이야기도 재미있지?
한번쯤은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봐야..그 진가가, 의미가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란다.
-----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