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는
1885년 11월 9일 조선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이다.
아버지 "H. G.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가 세운
벧엘 예배당에서 세례를 받고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자랐다.
군산 앞바다에서 부친이 선박 사고로 순직할 때(1902년)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업을 위해 동생, 어머니와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에서
여학교를 마친 후 "코네티컷州"(Connecticut) 웨슬리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모교인 "쉬픈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30세때인
1915년에 한국에 건너와 이화학당에서 역사와 영어를 강의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인재 육성에 주력했던 그녀는
37세 때 제6대 당장(堂長)이 되었으며, 3년 후인 1925년 대학과 및 예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칭하고
"이화 여자 고등학교"와 분리했으며 자신은 이화전문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35년 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 위치로 학교를 이전했으며,
1937년 한국에서의 교육사업을 인정받아 보스턴대학교에서 교육학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39년에 한국인 "김활란" 박사에게 총장직을 물려주고 1940년 일제의 탄압으로
잠시 한국을 떠났다가 1946년 12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이화여자대학교의 명예 총장으로 일하다가 1950년 2월
학교 체플 시간 예배중 뇌일혈로 쓰러져 순직하였다.
이름 끝의 "우리백가"는 "리베카"를 우리나라 말로 쓴듯하다.
묘비 위에는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마르코 10장 45절)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노라" 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