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배우 황정순이 지난 2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지난 2005년부터 치매를 앓아온 고인은 지난해 9월 병세가 악화돼 입원했다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생전에 아이를 낳지 않았다. 남편과 전처의 소생인 남매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적에는 세 명의 자녀가 올라 있다. 의붓손자(의붓아들의 아들), 조카손녀, 조카손녀의 남동생이다.
이들의 유산 분쟁은 조카손녀가 의붓아들을 고소하면서 드러났다. 황정순은 치매로 인해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이를 두고 조카손녀 측은 “황정순이 치매가 아니었는데, 의붓아들이 치매 병력을 꾸며 고인을 납치해 정신병원에 감금했다”(무혐의 결론)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의붓아들 측에서는 “유산을 노린 조카손녀의 계획”이라고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생전에 고인의 매니저 일을 봐오던 조카손녀는 급기야 고인이 남긴 친필 유서와 육성을 공개했다. 유서에는 “지금까지 나를 희생해 너희들을 뒷바라지한 걸로도 충분하니 내 재산을 한 푼도 상속할 수 없다. 용돈 한 번 준 적도 없고, 고작 1년에 두세 번 식사 대접한 게 전부이니 배신감과 함께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유서에는 도장과 지장이 찍혀 있다.
삼청동 집에 직접 가보니…
그렇다면 황정순의 유산은 어떻게 될까? 유산의 중심은 삼청동 집이다. 이 집은 262.1㎡(약 80평)의 넓은 대지로, 평당 1억 원을 호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삼청동 집을 직접 찾아가봤다.
황정순의 80억 원대 집은 삼청동 번화가에 위치해 있다. 번화가가 마무리되는 지점인 마을버스 종점 부근에 있지만, 예전과 달리 이곳까지 수많은 레스토랑과 갤러리 등이 들어서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대로변에 위치해 있고 그 규모도 집 두 채를 합쳐놓은 것만큼 넓다. 집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2층에 살림집이 있고, 1층은 상가다. 1층 상가에는 샌드위치 가게가 들어서 있는데, 고인은 이 가게에서 나오는 월세로 노년을 꾸려간 것으로 보인다. 샌드위치 가게는 2층과 달리 삼청동 특유의 세련됨이 묻어났다.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근무해온 종업원은 집주인인 황정순을 기억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이곳에 사셨어요. 가게에 필요한 것은 사장님이 의논하셨기 때문에 저는 자주 뵐 일이 없었지만, 한두 번 정도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아프셔서 그런지 거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어요.”
1층에 비해 2층은 더 없이 초라하다. 황정순은 1965년 이 집을 구매해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았다. 세련된 인근 상가나 주택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낙후되어 있었고, 불투명한 창문으로 단출한 세간살이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원의 나무들은 오랫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듯 우거져 있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번화가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그동안 ‘저 집은 왜 팔지 않느냐’는 문의가 있었다”면서, “아마 (매매로) 내놓으면 위치도 좋지만, ‘황정순’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어 금방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족들이 영화인장 거부해
최근까지 교류하던 원로 영화인들은 고인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고인은 최은희, 이민아, 전계현, 신영균, 이대근, 김혜정, 태현실, 이해룡 등 30여 명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신우회’라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시작한 신우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비교적 자주 모였다.
모임을 함께해온 원로배우 이해룡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보도를 정확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한 다음,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명동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황정순 씨를 조카손녀가 모시고 다녔어요. 치매 증세가 아니냐고 하는데…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입원 전까지는 괜찮았어요. 그때는 휠체어도 안 탔는데. 입원했을 때도 내가 남궁원 씨와 병문안을 갔었는데, 말씀도 잘하셨으니까요.”
- 제1회 조선일보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황정순
황정순이 세상을 떠난 뒤 이해룡은 영화인장을 준비했다.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다. 그러나 유족 측은 이를 반대하고 가족장으로 치렀다. 이 이사장은 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장례를 치르기 전) 영화인장으로 (고인을) 모시려고, 오전 10시에 모두를 소집했죠. 그런데 (의붓) 딸이 나타나서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장례는 조의금도 안 받을 거고, 어머니 돈으로 치르겠다’고요. 유족이 그렇게 말하니 저희가 (강행을) 할 이유는 없잖아요. 위대한 분인 만큼 영화인장으로 거창하게 모시려고 했는데…. 바로 철수했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조의금도 다 받던데요.”
이 이사장은 고인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딸이 그런 이야기는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거라고 말해왔다’고.”
실제로 의붓 딸 이일미자 씨는 장례식 당시 “우리가 어머니께 공인이시기에 사후 재산을 환원해 장학 재단이나 연예인 재단을 만드는 것을 권했다. 어머니께서도 늘 그에 동의하셨다”고 인터뷰했다.
황정순이 남긴 위대한 유산은 바로…
그런가 하면,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황정순을 추모하는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3월 29일부터 4월 13일까지 시네마테크 코파(KOFA)에서 ‘사모곡, 고 황정순 추모 특별전’을 마련한다. 이 행사를 마련한 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가 말했다.
“황정순 선생님은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여배우입니다. 4백 편의 영화에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셨죠. 선생님 타계에 맞춰 대표작을 18편으로 추려 상영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그의 이름을 영화계에 널리 알린 <팔도강산> 시리즈 3편과 <장마> 등이 상영된다. 또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뿐 아니라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줬던 <육체의 고백>, <말띠 신부>,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어느 여배우의 고백> 등도 선보인다. 관람료는 모두 무료다.
고인의 영화 사랑은 눈을 감기 전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방문해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고.
“자주 오셔서 영화를 보시곤 하셨어요. 2, 3년 전에는 선생님이 출연했던 <혈맥>이라는 영화를 상영했는데, 몰래 오셔서 뒤에 앉아 보시더군요. 그리곤 제게 영화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고인은 생전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영화 자료를 모아놨다고 알려져 있다. 삼청동 집에 방마다 쌓여 있던 건 전부 한국 영화에 있어서 귀중한 영화 자료다. 그녀는 그 일부를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2008년 여배우 존이 개관할 때 선생님이 모아두신 자료 일부를 기증하긴 했어요. 고인의 유품이 이곳에 오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유족들 뜻이 있으니까요.”
고인의 진정한 유산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와 영화 관련한 유품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