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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탁월함과 탁월한 사람에 대한 진실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에는 평범한 것과 탁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르는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알아낸다. 그렇다면 탁월한 것의
개략적인 특징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살펴보자.
탁월함은 오래 간다: 짧은 인생을 넘어 세대를 초월한 것은 분명 탁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존재를 불멸의 존재라고 부른다. 한편 짧은 생을 살다 가지만 그 종족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생물도 탁월한 종이다. 환경이 수없이 바뀌었을 텐데도 이를 극복하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그 종이 탁월한 설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어도 그렇고 상어도 그렇다.
탁월함은 보기 드물다: 탁월한 것은 길기도 해야 하지만 흔하지 않아야 한다. 흔한 것은 그저 배경이 될 뿐이다. 개망초가 가득한 들판에 노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면 단연 눈에 들어온다. 그 다름이 탁월함을 일깨운다. 군계일학이란 말도 탁월함을 표현하는 좋은 말이다.
탁월함에는 정교함이 있다: 탁월한 것들은 정교하다. 장인의 공이 가득 묻어난다. 그래서 버리기 아깝고 오래오래 두고 보기 마련이다. 한편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완벽함을 의미한다. 완벽하게 환경에 적응한 생물이 오래 존속되는 것처럼 완성도가 높은 것이 오래간다. 완성도가 높은 것은 기능적 완성도만 높은 것이 아니고 미적 완성도도 높다.
탁월함에는 이야기가 있다: 에밀레종은 탁월하다. 그렇기에 에밀레종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오랜 세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그 종소리는 깊고 깊다. 음향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종의 설계에 탄복한다고 한다. 옛 조상들이 어떻게 그런 신기한 설계를 했는지 놀랄 뿐이다. 이야기는 사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던져주고, 마음에 감동을 던져준다.
이야기는 사람들을 모으고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탁월한 것이 탄생한다.
이야기의 중간에 그만둘 일이 많이 생기지만,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이야기의 감동은 더 커진다.
탁월함이 오는 길목: 우리는 탁월한 것을 만든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하늘이 준 재능이 있는 사람, 그래서 그만이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말하는 천재는 사실 하늘이 준 것이라기보다는, 땅이 식물을 키워내듯 끝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경우가 더 많다. 에디슨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력으로 천재에 이른 사람의 이야기는 매우 많다.
아무리 하늘이 재능을 주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탁월함에 이를 길은 없다. 왜냐하면 완성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폭발적인 노동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것은 하늘이 준 영감의 강도에 비례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엄청난 노동을 통해 영감을 하늘에서 획득하기도 한다. 참고로 고도의 집중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몰입 모드라고 칙센트미하이는 말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서지(surge) 모드에 이르게 된다.
마치 밀물이 몰려들 듯이 온갖 창조적 영감이 밀려드는 상태다.
하늘에서, 땅에서 동시에 탁월함은 온다. 우리는 그 상호작용을 만들어내야 한다.
탁월함을 일깨우는 작은 원인: 탁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작자미상인 탁월한 것에 마주서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작자 자신도 그것이 탁월한 것인 줄 모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재수가 좋아 탁월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들은 아마 그 원인을 스스로 잘 몰랐거나 겸손을 드러내고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예로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학생이 토플이나 토익 시험을 보면 당연히 점수가 잘나온다. 하지만 그 자신은 왜 점수가 잘 나오는지 잘 모른다. 그에게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당연히 잘 모른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외여행 한 번 못해본 사람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높은 토익 점수를 받았다면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가 분명 그렇게 되기까지 남다른 노력을 한 비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저 미국에서 살다보니 늘어난 실력이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찾아낸 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탁월함의 원인 탐구에도 희망이 있다. 탁월한 것에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평범한 사람이 만든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평범함에서 탁월함으로 나아가는 작은 원인들을 모아볼 수 있다.
탁월함은 비교와 승부를 넘어서는 데서 시작된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많든 적든 천재를 주었고, 그 천재를 땅에 묻어두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재를 갖고 경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기를 해야 할까? 인생은 한 판 경기일 수 있고, 사람들은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승자는 많을 수 없다. 그렇다면 모두가 승리하는 경기는 없을까? 우리는 수많은 작은 경기를 치른다.
입학시험이나 자격시험들이 그것이다. 좋은 성적을 얻으면 더 큰 기회가 주어진다. 이것을 우리는 공정한 사회라고 부른다. 나쁜 성적을 받은 사람이 좋은 기회를 얻으면 우리는 분노한다. 정의가 사라졌다고 외친다. 그런데 갑자기 예전에는 전혀 보지 못한 경기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경기장 밖에서 더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경기를 살펴보자.
장내 경기: 운동장에서는 경기가 이루어진다. 경기에는 룰이 있고 등수가 매겨진다. 제일 잘한 사람은 일등이다. 그 다음은 이등, 맨 나중은 꼴찌라고 한다. 사람들은 일등에게 열광하고 박수를 보낸다. 야구에서 비거리가 큰 장타를 날려서 관중석으로 공을 보내면 홈런이라고 한다. 거기다 경기장 밖으로 공이 날아갈 정도로 큰 타격이 나오면 장외 홈런이라고 한다.
홈런을 치면 일등이다.
장외 홈런은 일등이긴 하지만 더 일등이다.
월등이다. 등수를 넘어선 것이다.
그렇다. 탁월함은 바로 승부를 넘어서는 것부터 시작이다.
수많은 일등을 보지만 일등은 결국 일등으로서의 한계를 갖는다.
그에겐 경기장과 규칙이 필요하고, 경쟁자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월등에겐 더 이상 경쟁자가 없다.
그들은 규칙을 만들어내고 경기장을 만들어낸다.
장외 경기: 탁월함은 경쟁을 넘어선 것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얻어질 수도 있지만 경쟁 없이도 도달할 수도 있다.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감히 경쟁을 걸어올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에 갈 수 있다. 이것은 위대함과 다르다. 위대함에는 ‘무엇보다’라는 비교의 개념이 있을 뿐이다. 탁월함은 비교를 넘어서는 것이다.
만일 달리기를 하는데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등장했다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이 경기에서는 운동화만 신고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외 경기장에서는 이런 룰이 없다. 경기자가 많아지면 룰을 만들면 그만이다. 룰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장외 경기가 아니다. 장외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혁신의 참신성이 더 중요하다.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 정신을 갖춘 사람이 장외 경기장의 챔피언이다.
챔피언은 발명가와 모험가를 지원하면서 재산을 송두리째 날릴 위험을 감내한다. 스스로를 후원하는 경우도 있고 팀을 후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혁신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의 곱이다. 모든 탁월한 장외 경기장은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예로 콜럼버스는 이미 사람들이 말한 지구가 둥글다는 아이디어는 갖고 있었으나, 새로운 항로에 대해 틀린 계산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지식으로는 그 계산이 틀린 것임을 입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챔피언이 나타났다. 에스파냐의 여왕이다. 여왕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위한 자금을 지원했다. 콜럼버스는 목숨을 걸고 출항했고, 마침내 원하던 목적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다. 장내 경기의 입장에선 처음부터 이런 위험천만하고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경기 종목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장외 경기에서는 가능하다. 심지어 다른 목표에 도달했어도 성공이다. 참 신기한 경기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장내 경기에서는 룰도 잘 바뀌지 않고 환경도 변하기 힘들다.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세면 이길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탁월함의 장외 경기에서는 큰 것이 오히려 짐이다. 변화를 할 줄 모르는 관성으로 생존하기는 어렵다. 작고 빠르고 신나게 움직여야 한다. 부드러우면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 펀 이것이 요체다. 변신이 자유롭고 이동이 빠른 존재들이다.
경주가 아닌 보물찾기의 세계: 이제 이곳은 무엇보다 더 좋은 것이나, 더 나은 것이나, 이긴 것이 아닌 세계다. 이곳은 여태껏 없던 것, 알려지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미지의 세계다. 이곳은 한마디로 보물찾기 세계다. 보물은 가득하고 열심히 찾으면 된다. 그런데 많이 찾는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만 찾아도 된다. 그리고 그 보물 하나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당신은 새로운 세상을 연 사람이 된다.
그러니 더 이상 경쟁은 없다. 시작은 한 번이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았던 맥메스터 대학에서는
그의 이 강연에서 한 가지 눈에 확 들어온 것은 논문 수의 변화였다. 그가 처음 논문을 쓸 당시에는 논문 수가 적었다. 하지만 그 이후 해가 갈수록 해마다 논문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모든 논문들이 그의 첫 업적을 참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보물찾기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흥분이 가시고 다시 조용해진 어느 날 우리는 다시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닥터 리, 내가 노벨상 타는 비결 알려줄까?” ‘와이 낫’이다. 그는 “날 따라 해” 하면서 커피를 주는 아주머니에게 갔다. “여기 콜롬비아 2/3하고 디카페인 커피 1/3 줘요.” 싱긋 웃는 그를 따라 나도 커피를 칵테일했다. 커피 섞어 먹기도 아마 그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커피숍마다 브랜드 커피라는 것이 이렇게 묘한 배합으로 자기 집의 고유 브랜드를 만들 터인데, 그는 아예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놓았다.
그는 처음 시작했고 그것은 매우 가치가 있었다.
사람들이 뛰어들면서 더 많은 지식이 생겼고 그들은 경쟁했다.
하지만 그는 경쟁하지 않고 창문을 열었던 것이다.
상자 밖으로 나가는 혁신: 혁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상자 안에서의 혁신과 상자 밖으로의 혁신이다. 상자 안에서의 혁신은 틀을 깨지 않으면서 하는 조용한 혁신이다. 개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 하지만 상자 밖의 혁신은 새로운 게임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기장 밖의 게임은 바로 상자 밖의 혁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규모의 혁신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
이 위험을 감내해내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상자 밖의 혁신을 지원할 사회체계도 중요하다.
실패하면 무조건 아웃시키는 가혹한 세계에서 모험을 무릅쓸 사람은 없다.
상자 밖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진정한 후원자들도 중요하다. 콜럼버스에게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이 있었던 것처럼 실패를 용인하며 지속적으로 손실을 감당해줄 챔피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러한 후원자들이다. 정말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장외 경기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들이 대박의 꿈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탁월함을 꿈꾸게 해야 한다.
어디 젊은이뿐이랴.
이제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인생의 이모작, 삼모작을 탁월함을 향해 도전하는
다양한 세대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Part 2 탁월함에 이르기 위한 7가지 조건
마음의 거문고를 울려주는 눈, 인사이트
우리의 눈은 부실하다. 매의 시력과 비교하면 턱없이 희미하다. 더욱이 안경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시력에 대한 자신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눈이 있다. 바로 혜안이다. 혜안은 집착을 버리고 차별의 현상계를 넘어서는 통찰을 하게 해준다. 이면에 숨겨진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이 눈은 마음의 눈이다.
혜안이 열리면 감동을 한다.
마음에 거문고가 울린다.
마음의 거문고는 심금이다.
심금이 울리는 감동을 우린 몇 번이나 경험하며 살고 있는가?
모든 감동에는 영감이 어린 통찰이 존재한다.
인사이트를 갖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감동이 없다.
패러독스를 읽어내는 인사이트: 현대우주론이 발견한 우주 팽창은 올더스 패러독스에 기반을 둔다. 이 패러독스는 간단하다. 밤하늘의 별은 대부분 태양보다 더 밝은 별들이다. 태양 하나만 떠도 대낮이 되는데, 밤하늘에 별이 무수히 많이 떠 있는데도 어찌 밤하늘이 어둡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패러독스다. 허블은 밤하늘을 관찰하던 중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주의 팽창은 모든 빛이 지구로 도달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그로 인해 밤하늘이 어두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올더스는 패러독스를 인지했고 이를 발표했다.
이것이 인류 지성들의 마음속 거문고를 울렸다.
오랜 울림은 마침내 허블의 마음에서 크게 울려난 것이다.
창조적 융합을 위한 새롭게 보기: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전공의 울타리를 넘어다니는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하나의 전공을 익히기도 벅찬데, 다른 곳에 한눈 파는 것에 대해 아마 적지 않은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모든 발전은 변방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분야와 분야가 만나고 충돌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생소함은 새로운 해석과 이해를 주기 때문이다.
다른 것의 융합은 생명체가 자연의 위기를 극복해온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다.
여왕개미들은 거의 동시에 하늘로 날아올라 새로운 유전자를 융합한다.
그래서 종의 강인성과 새로움을 얻어낸다.
남들이 뭐라 해도 지켜나간다, 괴짜정신
앞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의 중요성을 말했다.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대부분 오해를 받는 것이 기본이다. 그 오해가 두려워 자신을 숨기면 그 다음 일은 없다. 반면 고집이 센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오해가 풀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그가 성공을 이루어냈다고 다들 칭송을 한다.
당신이 괴짜라는 소리를 친구들에게 들었다면 일단 안심하라.
왕따를 당했다면 더 안심해라.
적어도 당신은 일반인이 기대하는 것을 벗어났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이미 경쟁의 줄에서 어느 정도 이탈할 준비가 된 것이다.
왜 괴짜여야 하는가?: 괴짜는 일단 평범한 사람의 기준을 이탈한 사람을 의미한다. 왜 괴짜여야 하는가? 간단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괴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낸다. 욕을 하든, 점수를 안 주든, 취직이 안 되든, 결혼을 못하든 상관없다.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낸다.
스타일링은 탁월함의 조건: 요즘 차별화는 경쟁력의 상징이다. 남과 같으면 쓰러진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해 있다. 일제시대와 6 25전쟁을 겪으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보인다. 그 당시에는 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차별화를 하겠다면 그 순간 왕따를 당하고, 온갖 핍박을 받아야 한다.
21세기는 I-value 시대: 괴짜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스타일을 갖추는 것은 경쟁력의 요체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바로 이 ‘나’라는 가치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iPhone, iPod, iPad의 I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보(information)의 I일 수도 있겠지만, 바로 나라는 가치다. 내 것(my phone)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는 폰을 하고(I phone), 나는 팟(I pod)을 하고, 나는 패드를 한다(I pad)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I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잡스의 I 시리즈에 열광하는 동안 우리는
그만큼 새롭게 자신의 고유성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넘치도록 채우게 하는 원동력, 결핍
부족해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과 비교해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족하기 때문에 발전한 사람도 많다. 오늘날 대부분의 위대한 발명이 차고나 헛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비행기, 로켓, 퍼스널 컴퓨터 이런 모든 것이 다 시시한 재료와 시시한 장소에서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다들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는 이전에도 많았다. 새로움이 없는 시대는 늘 그랬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을 향해 용틀임을 할 때는 개천에서 다시 용이 출몰했다. 그것은 기존의 사회에서 볼 때 부족한 것들이 새 시대의 새로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핍은 부족한 것이기도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익숙한 것을 잘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가서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잘려나간 나뭇가지에는 단단하고 강한 옹이가 생기듯이 그 결핍과 상처를 감싸는 과정에서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결핍인 가난이나 짧은 학력, 못난 용모, 타고난 출신 같은 것은 그 당사자에겐 하늘이 준 형벌 같지만, 이것을 극복해낸 사람들은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의 자리에 이르렀다.
바로 그 부족함을 메우려는 노력이 차고 넘쳐 아무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핍이야말로 탁월함을 이루는 데 좋은 약이자 쓰디쓴 약이다. 그래서 이를 적극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자족한 상황에서 일부러 결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가 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서 글을 쓴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일부러 만들어내는 결핍은 주어진 결핍보다 견딜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고 결핍을 취소하면 안 된다. 주어진 것보다도 더 무섭게 결핍된 환경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채워진 만족한 상태를 자랑하지 말고, 눈물 나도록 억울한 결핍을 감사하라. 가난뱅이로 태어났건, 배우지 못했건, 몸이 약하건, 눈이 보이지 않건, 마음의 상처로 걷기조차 힘들건 간에 이 모든 결핍은 탁월함의 발사대일 뿐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내공, 인문적 성찰
탁월함에 이르는 데는 인문적 성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과학기술자’에게도? 물론이다. 절대 필요하다. 인문적 성찰이 없어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그야말로 개발을 위한 개발을 하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설명할 길이 없이 일이 진행된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한발 늦게 마련이다.
인문 결핍 증후군(HDS; Humanity Depletion Syndrome)을 가장 심하게 앓고 있는 환자는 이공계인들이다. 그저 혼자 책을 많이 읽으면 어느 정도 뒷다리는 긁지만, 대부분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과정을 듣고는 인문은 반납이다. 어쩌다 인문을 만나면 그 현란한 단어에 숨이 막혀 그만 기절한다. 그래서 이들은 기꺼이 생각 없는 개발자가 된다.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은 완성하지만 그 일로 자신이 죽는다(영혼도 없어진다).
이공계인들은 왜 이렇게 살아갈까? 그것은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영양소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문 결핍증이다. 이 부분이 손상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와 목적을 계량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비타민 B가 부족하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각기병이 걸리게 되는 것처럼 HDS는 무서운 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문 결핍 증후군을 치료해나갈까?
간이 처방을 내려보자.
일단 모든 것은 인문학적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공학자가 말했다. “테라헤르츠 전자파를 사용하면 건물 내부에서도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테라헤르츠 전자파를 발생시키고 이를 처리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면 범인을 색출하는 데 좋겠군.” “건물 내부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간단히 알아내겠군.” “이거 잘 팔리겠는데. 김 상무, 우리 한 번 투자합시다.”
이것이 우리 통상의 대화다.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HDS 증상이다.
다시 해보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위치는 물리적 위치, 사회적 위치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물리적 위치는 사회적 위치에 영향을 줍니다. 방이 어디인지 의자의 높이, 사용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이런 사회적 위치에 영향을 주는 물리적 위치를 정확히 아는 기술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테라헤르츠 전자파를 사용하면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용해 위치를 정확히 알게 되면,
건물 내부에 곳곳에 누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건물의 안전은 대폭 증대되겠지만,
개인의 사생활은 심하게 침해될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말을 길게 하면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들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교실에서는 이러한 인문학적 질문에서 출발해 현안에 이르는 훈련이 절대 필요하다. 간단하다. 시를 하나 놓고 출발해도 좋다. 예컨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한편 인문학적 성찰을 증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생겨야 한다. 또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얼마나 탁월함을 이루었는지 증명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문학자들은 어려운 고담을 늘어놓는 산 위의 성곽에서 시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학이 아닌 정신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그 무미건조한 일상에 이야기를 만들어 융합과 소통을 해야 한다.
똑똑한 숫자 기술자들에게 그 너머의 인간을 보게 해야 하고, 이들을 위해 공연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살아 숨 쉬며 이야기하고, 더 좋은 미래를 꿈꾸게 해야 한다. 막연히 크고 효율이 높은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려줘야 한다. 더 나아가 세계가 머리 숙여 존경할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넉넉한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토양에서 자유롭게 수많은 기인기재가 솟구쳐 나올 것이다.
Part 3 탁월함을 위한 실행도구 7가지
항상 휴대해야 하는 도구, 노트
탁월함의 여행에서
반드시 휴대해야 하는 도구가 있다.
바로 노트다.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 자주 춤추기 때문에
이것을 붙잡아내고, 더 키우기 위해서는
노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저 노트의 중앙에 생각 하나를 써넣은 것만으로도 출발은 충분하다. 그러고 나서 그 생각에 생각을 입혀나가면 된다. 여기에서 마인드맵이라는 기법이 탄생한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꼬리 물려 이어가는 과정에서 생각의 전체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 살아나고, 생각의 피가 통한다. 노트를 쓰면 좋은 점이 있다. 여러 일로 정신이 산란해도 노트를 펴면 내가 했던 그 마지막 생각을 잡을 수가 있다.
머리를 비우는 훈련이 현대인에게 필요하다. 머리가 정보로 가득 차면 지식이 결핍되고, 지식으로 가득 차면 지혜가 결핍된다. 오히려 비우면 지혜가 충만하고 지혜는 필요한 지식을 요청한다. 필요한 지식은 필요한 정보를 요청한다. 뇌를 청소하는 비법 중에 하나가 바로 노트다. 노트에 무엇이든지 기록해놓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언제고 찾을 수 있도록 해놓으면, 머리는 언제나 텅 비어 있게 된다. 그러면 텅 빈 상태에서 인사이트가 찾아온다.
도시 속의 수도원, 도서관
도서관에 들어가서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는가? 그것은 그 사람의 침묵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다. 말없는 지적 작업은 지식의 내적 소화, 가공의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탁월함에 이르는 혜안(insight)이 임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것을 지속할 진득한 힘이 생긴다. 회의실의 분주한 토론과 브레인스토밍이 아닌 도서관이라는 숭고한 공간을 마련하라. 그러면 당신은 침묵하며 위대함을 끌어낼 장소에 서 있게 된다.
계시와 영감을 부르자, 특별한 시간
시간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24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받아쓰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은 단지 환경일 뿐 도구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창조의 순간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시간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만일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갖고 있다면 그는 매우 좋은 도구를 갖춘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창조성에서 시간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탁월함을 이끌어내는 시간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욕에 불타며 순식간에 위대한 일을 뚝딱 해치우는 일이 실제로 있지 않은가?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며칠씩 몰두하는 일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마치 밀물이 몰려오듯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해내는 때도 있다.
더욱이 신선한 영감으로 가득 찬 계시의 순간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시간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럴 때 시간은 탁월함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도구가 될 것이다.
살아있는 내 시간을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는 남과 반대로 사는 것이다.
청개구리처럼 말이다. 그런 청개구리들이 의외로 탁월하다.
무슨 재미로 사냐는 비난을 예상하면서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보겠다.
첫째, 수다시간을 줄여라.
수다를 떠는 것처럼 스트레스 풀리는 일이 없다.
하지만 수다를 떨고 나서 잠 못 자며 고민하는 경우는 없었나 생각해보라.
무심히 들은 한마디가 화를 돋우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남의 간섭을 줄여라.
간단한 방법을 소개한다면 이렇다. 아침에 일찍 나오고 저녁에 늦게 퇴근해라.
그러면 아침 시간과 퇴근 이후 시간에 아무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는다.
또한 그 시간만큼 하루 정도 회사에 나오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하루라는 완전한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비수기를 활용하라.
이 또한 물론 잘 알려진 비법이다.
모든 사람이 몰리는 시기를 피하는 것이다.
여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다거나 하는 식이다.
남들이 하지 않을 때 하는 청개구리 전략은 의외로 덕 볼 일이 많다.
넷째,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을 권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만약 본인이 저혈압이면 절대 가입하지 마라.
하지만 혈압이 정상이거나 약간 높으면 이 클럽에 가입해도 무방하다.
일찍 일어나면 남의 간섭이 없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다섯째, 비지니스(Business)가 되지 말고 레이지니스(laziness)가 되라.
인류가 진보하는 데 기여한 위대한 일들은
대부분 근면보다는 게으름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하기 위한 발명이 그것이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자.
게으른 관점을 가지라는 것이지
정말 게을러지라는 것은 아니다.
휴식이 일하게 하자, 자연과 카페
탁월함은 경기장 밖의 소풍이다. 그러니 즐거워야 하고 많은 추억이 결과물이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도 도중에 주워 모은 도토리만 나누어줘도 이미 탁월하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일은 죽도록 일만 하고 도토리는커녕 욕만 바가지로 먹는 경우도 많다. 일중독자들이 대부분 그렇다.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렇지만 끝없이 일하는데 성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본인에게나 주변인에게 불행한 일이다.
열심히 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 것은
자기 성찰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따지지 않고, 정해진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성실함에 도취되어 있다.
일에 빠져 생각할 틈조차 없는 사람에게 탁월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쉼은 우리에게 새 힘과 더불어 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준다. 가장 위대한 혁신은 끝없는 개선이 아니라 휴식 이후의 완전한 변화다. 이것을 온몸으로 입증하는 것이 보잘것없는 곤충이다. 번데기에서 죽은 듯이 있던 애벌레가 화려한 날개를 달고 하늘을 비상하는 위대한 혁신은 고치 안에서의 완전한 휴식이 준 결과다.
탁월함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나만의 휴식을 위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쉴 곳이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쉬면 그만이다.
지금 여기가 공장 바닥이어도 지하철 대합실이어도
밥을 타려고 길게 선 줄이어도 우리는 쉴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해질 수 있다.
한길로 참고 ;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본 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첫댓글 .
*살아있는 내 시간을 만드는 몇 가지 방법.
첫째, 수다시간을 줄여라.
수다를 떨고 나서 잠 못 자며 고민한 경험을 생각해보라.
무심히 들은 한마디가 화를 돋우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둘째, 남의 간섭을 줄여라.
아침에 일찍 나오고 저녁에 늦게 퇴근해라.
아침 시간과 퇴근 이후 시간에 아무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는다.
셋째, 비수기를 활용하라.
모든 사람이 몰리는 시기를 피하는 것이다.
넷째, 아침 5시 클럽에 가입하라.
일찍 일어나면 남의 간섭이 없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다섯째, 레이지니스(laziness)가 되라.
게으른 관점을 가지라는 것이지
정말 게을러지라는 것은 아니다. ^-^
게으른 관점을 가지라는 말씀... 어렵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