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끼 밥을 챙겨 먹듯 아이들이 마음을 키우는 밥인 놀이도 날마다 먹게 하자고 엄마들이 모였다. 놀 사람, 놀 곳을 찾아다니다가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 문을 연 ‘와글와글놀이터’. 놀고 싶은 아이는 누구나 와서 놀고 엄마들이 ‘이모’가 되어 함께하는 와글와글놀이터는 현재 다섯 개 초등학교와 두 개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다모임, 교장선생님과의 면담... 놀이터를 열기 전 필요한 일들
방학에 쉬었던 놀이터가 드디어 다시 열린다. 겨울방학을 마치고도 그랬지만 이번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번개를 쳤다.” 이모들 ‘다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여는 다모임에서는 그동안 놀이터에서 성장한 이야기를 하고 놀이와 아이를 보는 시선과 관점을 두고도 생각을 나눈다.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새로운 놀이를 함께 배우고 연구도 한다.
이번 다모임에서는 새 학기 놀이터 일정을 계획한다. 동네에서 놀이터를 연다면 놀이터 여는 날과 시간, 담당할 이모를 정한다. 학교에서 놀이터를 연다면 몇 가지 일이 더 보태진다. 학부모회나 대의원회 대표를 만나 놀이터를 여는 취지와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학부모 봉사단으로 놀이터가 운영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만약 어렵다면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하는 동아리로 놀이터를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고 나서 교장선생님과 만나 운동장을 쓸 수 있는지, 어떻게 수업에 방해되지 않게 할지, 학교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지 의논한다. 또 가정통신문으로 놀이터 회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협조도 요청한다.
놀이터를 열 때 학교도, 보호자도 가장 걱정하는 것이 안전이다. 지금껏 아이들은 안전에 묶여 자유롭지 못했다. ‘위험하니까’ 하지 말아야 할 것,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많았다. 그러나 위험을 두려워하고 피하면 더 큰 위험이 된다. 위험이 왜 위험한지, 어떻게 하면 위험하지 않은지 살피고 스스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실행능력’을 갖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익혀야 하는 실행능력은 몸을 놀려 놀아야 생긴다. 요즘 아이들 가운데에는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치는 아이가 늘었다고 한다. 넘어질 때 손과 팔로 몸을 받쳐야 하는데 반사 신경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위험하다고 바깥보다 실내로 아이를 몰고 몸을 움직이는 일을 줄여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위험하고 안전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물총놀이는 마요네즈병으로
봄가을은 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달리고 뛰며 움직이는 아이들은 겨울에도 추울 새가 없다. 문제는 여름이다. 놀이터가 열리는 공원이나 학교에 그늘이 많다면 모르겠지만, 그늘이 없는 곳은 난감하다.
“더울 때는 물총놀이지. 다음 시간에 물총놀이해요.”
“물총놀이에는 마요네즈병이 제격이다”, “얇은 500㎖ 생수병도 좋다”며 놀기도 전에 신이 나 버린 이모들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다음 놀이 시간 이모들 손에 봉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마요네즈병, 생수병을 죄다 모아 뚜껑에다 구멍을 뚫어 왔다. 집에 말짱한 물총이 있는데 왜 궁색하게 이러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는 말씀이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물총으로 놀아 보라. 훨씬 재미날 테니까.
사실 물총은 가격대별로 크기도 성능이 다르다. 그래서 비싼 물총을 가져와 자랑하는 아이도 있고, 빌려 달라는데 안 빌려 줘서 다툼이 생기는가 하면 샘이 나서 제 물총이 못마땅하다며 새 물총을 사 달라고 조르는 일이 벌어진다. 돈을 주고 사는 놀잇감이 갖는 문제이다. ‘소비한 놀잇감’을 거두고 자신이 만들거나 발견한 놀잇감으로 놀면 놀이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더 즐거워진다. 그래서 와글와글놀이터에는 집에 있는 놀잇감 반입은 금지이다.
여름에 만나는 놀이터의 또 하나 고민거리는 비다. 비가 오면 놀이터를 열까 말까를 두고 고민하다 열기로 했다. 사실 비는 짜릿한 선물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만큼 더 좋은 놀잇감은 없다. 아이들은 비 사이를 막 뛰며 시원하게 소리 지르고 웃어 제친다. 비가 온 뒤 만들어 놓은 웅덩이에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아이들이 고랑을 내는 대로 큰 바다가 되었다가 섬이 되었다가 근사한 성이 되기도 한다. 더우면 더운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놀이터는 즐겁다.


놀아 본 아이들일수록 스스로 놀이를 찾고, 즐기고, 조절해 간다.
다음을 걱정하며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몸으로 현재를 즐기는 아이들이 미래도 행복하게 가꿔갈 것이다.(위)
서울 상원초등학교에서는 1학기 놀이터 마무리 잔치로 ‘야간개장’을 했다.
잔치 때 함께할 강강술래를 연습하다 보니, 쭈뼛거리며 뻣뻣하던 이모들이 흥이 나기 시작했다.
준비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아래)
마무리는 어른, 아이 모두 함께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모임의 주된 화제는 놀이터 마무리 잔치였다. ‘깨어나고-자라고-쉼’이란 자연스런 리듬을 따라 놀이터도 방학에는 쉰다. 하지만 거두고 쉬기 전에 축제가 있었다. 갈무리이자 시작을 위한 출발. 그래서 우리도 축제를 열기로 했다. 놀아 봐야 놀이의 가치를 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되살려 주려면 어른들이 먼저 놀아야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 등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노는 놀이축제 그것도 ‘야간개장’을 하기로 했다. 일터에 나가 있느라 아이만 놀이터에 보내는 보호자도 함께 한판 놀아보자는 거였다. 방학식이 있는 주 수요일 7시로 날을 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마무리 놀이로 모두 하나 되는 대동놀이 강강술래를 하자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강강술래는 진행해 본 이모가 없어 걱정들이 많았다. 하지만 놀이는 실수하고 실패하며 잘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모들도 놀이터에서 깨우쳤기 때문에 서툰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영상자료를 찾아 노래와 몸동작을 익히고 축제가 열리기 전 두 차례 만나 연습했다. 처음에는 쭈뼛대며 뻣뻣했던 몸이 서서히 풀리고, 소리에 따라 몸이 가락을 타기 시작했다. 몸이 가는대로 맡기자 안 될 것 같았던 ‘청어엮기’가 엮이고 풀렸다.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를 따라 나와 곁에서 뭐하는 건가 지켜보던 아이들도 하나둘 달려와 배우게 되니흥도 나고 웃음도 났다. 축제는 이미 준비과정에서 시작됐다. 마음을 가로막아 팔짱 끼고 지켜보게 했던 걱정이 물러나면서 몸도 마음도 깨어나는 것을 체험했다. 강강술래 가락에 함께 어울리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놀이터를 시작할 때 이모들은 ‘누구의 엄마’였다. 아이를 놀리고 싶은데 같이 놀 친구들이 없는 게 안쓰러웠다. 놀이터에 가도 스마트폰 게임이 놀이를 침범한 현실과 놀 줄 모르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놀이터 이모’가 되었다. 때로는 뜻은 함께하지만 이모라는 역할은 짐이 된다며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아이를 위해 또는 친구 끌림에 못 이겨 이모가 된 지금은, 옆에 다른 이모와 함께 뭐든 할 수 있다는 ‘연대의 힘’을 알게 되었다. 2학기 놀이터에서는 어떤 변화들이 생겨날까? 개학이 기다려진다.
● 와글와글놀이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cafe.daum.net/nolisarang 02-902-9246
↘ 김명선·김수현·이미란 님은 참교육학부모회 동북부지회 놀이터 이모들입니다. 볼이 미어지게 밥을 먹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마음으로, 놀이터에서 놀이밥을 배 터지게 먹는 아이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놀이터를 벗어나서는 역사강사, 동화작가, 상담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