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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최우식목사/내 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하소서 /왕하 6:8-23
2012. 12. 31 송구영신 예배에
교회에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성도가 중병으로 입원해서, 목사님이 심방을 갔더니, 목사님께 뜻밖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의 간증의 요지는 이러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가족들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아버님은 매일 아침마다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들에게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으면 다 붙잡는 것이고, 예수님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는데도 왜 우리가 고생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거든요. 결국 저는 가출을 해서 고학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무고시에 합격을 하고,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저의 아버지처럼 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최고로 해 주면서 길렀습니다. 그 결과 저의 자녀들은 모두 대학교수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아버지, 저는 예수님을 붙잡지 않고서도 스스로 해냈어요. 그러니 아버지가 틀렸어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나이가 들고, 늙어서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들어서 구원의 은총을 깨달았기 때문에, 제가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녀들이 마음에 걸려서 자녀들에게 제 아버지가 했던 말을 똑같이 들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다 잡는 것이고, 예수님을 놓치면 다 놓치는 것이다.’ 그러자 제 자녀들이 이렇게 대답을 합디다. ‘아버지, 요즘 많이 약해지셨군요. 평소에 안 하던 말씀을 다 하시고요.’ 그 때서야 저는 과거의 제가 틀렸고, 제 아버지가 옳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 성도의 아버지는 그 성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그 성도는 ‘자기 자녀들에게 아무 것도 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내게 닥친 일과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입니다.
하루는 엘리사 선지자의 수종인 게하시가 이른 아침에 밖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원수의 나라인 아람의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게하시는 당황하며, ‘큰일이 났다’고 생각하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급히 가서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15절) 보고했습니다. 게하시의 보고를 받은 엘리사 선지자는 조금도 놀란 빛이 없이 게하시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보다 많으니라.”(16절)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께 “여호와여,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게하시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눈이 열린 게하시가 보았더니, 불말과 불병거들이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 선지자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너희 눈에는 무엇이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1,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서 보트가 뒤집혀 두 사람이 급류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강가에 있던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간신히 그들에게 밧줄을 던져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그 밧줄을 간신히 잡긴 잡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밧줄을 끝까지 붙잡아 강둑으로 무사히 올라왔지만, 다른 한 사람은 마침 자신의 옆으로 떠내려 오던 통나무를 보고, 밧줄을 버리고, 그 통나무를 붙잡았습니다. 통나무가 커서 더 안전하고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붙잡은 통나무는 그와 함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통나무는 강변과 전혀 연결돼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통나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지탱해 줄 강변과 연결이 안 된 통나무는 통나무를 붙잡은 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통나무는 통나무에게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강변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믿음으로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봐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고 간증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지난 일 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여러분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리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모차르트에 관한 일화입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 다른 데서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수업료를 두 배로 내십시오. 그러나 배운 적이 없다면 수업료를 반만 내십시오.’ 그러자 사람들이 항의했습니다. ‘왜 음악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업료를 반만 받고, 이미 잘 아는 사람에게는 두 배나 받습니까?’
모차르트는 대답했습니다.
‘음악을 아는 사람은 잘못된 것을 옳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려면 내가 애를 먹으니까 두 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노력이 적게 듭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부정적인 자화상을 고쳐 주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정적인 자화상으로 가득 차 있기에 복음을 들어도 ‘나하고 상관없어,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아, 나는 못났어, 나는 안 돼’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엘리사 선지자가 어떻게 합니까?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께 “원컨대 저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엘리사 선지자의 기도대로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는 그 눈이 어두워진 아람 군사들을 사마리아 성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이스라엘의 정예군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아람의 군사들이 거기에 가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앞을 분간하지 못하였습니다. ‘누구의 인도를 받느냐?’ 하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잘못된 사상에 박혀있으면,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것을 고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참된 복음을 가진 성도들이 길을 알지 못하는 저들을 바르게 인도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바른 길로 걸어왔습니까? 내가 산 삶의 모습이 바른 모습이었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고, 잘못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아는 자들입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나도 바른 길로 가고, 다른 사람들도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2013년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살아서,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2013년에는 많은 사람들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여 별과 같이 영원토록비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3,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으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는 아람 군대를 사마리아 성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원수 아람 군대를 다 전멸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왕이 적인 아람 군대를 쳐서 멸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이 너무 좋아서 21절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에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두 번이나 연거푸 말합니다.
이것은 ‘철천지원수 아람 군대를 반드시 쳐서 다 죽여 버려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말합니다.
이에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의 이 강력하고도 결연한 의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22절)
엘리사 선지자는 아람 군대를 죽이려고 했던 이스라엘 왕의 그 결연한 의지보다 더 강한 어조로 ‘포로도 죽이면 안 된다.’는 예까지 들어가면서 두 번이나 연달아 ‘치지 마소서. 죽이지 마소서’라고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분명히 이스라엘을 위한 선지자로 세워진 하나님의 사람인데, ‘왜 원수의 나라 아람 군대를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일까요?
엘리사 선지자가 연이어 말한 것을 보세요.
너무너무 기가 막히는 이야기를 합니다.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22절)
엘리사 선지자는 ‘원수인 저들에게 빵과 물을 주고 먹여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적과 동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건 전쟁에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비록 전쟁이 아니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말한 것은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성도들에게조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요, 행동입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주장은 분명히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도인 우리들조차 이해하기 힘이 든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절대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절대로 옳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충만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속에는 긍휼과 자비도 언제든지 넘쳐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다 할 수 없는 긍휼과 자비의 사랑으로 실천되는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엘리사 선지자가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결연하게 말하는 이스라엘 왕에게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22절) 강력하게 막아서며 권고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권고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권고는 하나님의 끝이 없는 긍휼이요, 자비를 전한 것이었습니다.
이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권고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는 이스라엘 왕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이스라엘 왕은 반드시 죽이려고 했던 아람 군대에게 식물을 많이 베풀어 먹고 마시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람 군대를 놓아 보내 자기들의 나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로부터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엘리사 선지자와 이스라엘 왕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오늘 엘리사 선지자와 이스라엘 왕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리로 인도했습니다.
오늘 엘리사 선지자와 이스라엘 왕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역설적 승리를 했습니다.
오늘 저는 엘리사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늘푸른교회 성도들은 다 이스라엘 왕입니다.
그리고 저나 성도님들 모두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리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으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 최고의 사랑은 하나님의 긍휼로 실천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가 죄 값으로 치르고 죽어야 할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사랑의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반드시 많은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참 진리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공짜 좋아서 따라가다가는 큰일 납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번 주에 어떤 희생을 치렀습니까? 이 질문에 ‘이번 주에 교회에 두 번 왔습니다.’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어떤 희생을 하였습니까?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어떤 희생을 하였습니까?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어떤 희생을 하였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날 동안 어떤 희생을 하였습니까?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공짜로 살아오기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긍휼과 자비로 실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선포하셨습니다. 올 한해 2012년을 돌아보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고 희생한 것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제 2013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을 꼭 믿음으로, 눈으로 보면서 삽시다. 이제 2013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사십시다.
이제 2013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십시다. 그리하여 이제 2013년 새해에는 하나님 앞에서 귀한 성도의 삶을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 이제 2013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더욱 축복하여 주시리라 믿고, 또 믿고, 반드시 믿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