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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스왑예금은 2002년 하반기부터 2005년 초까지 3년 정도 크게 유행한 금융상품이었습니다. 한 때 은행권 전체 예금 잔고가 원화로 환산하여 20조 원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이야 미국 달러, 유로화, 엔화 등 주요국 통화들의 금리(단기)가 거의 제로 수준에 머물러 있고, 우리 원화 금리도 이제는 1%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주요 외국 통화의 금리에 비해 크게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10여년 전만 해도 우리 원화와 외화간 금리 차이가 꽤 났고, 이를 활용한 금융거래가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엔화스왑예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금은 금융자산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인기가 높았습니다.
금리차이에 따른 이익을 얻기 위해 외화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 저금리통화를 매각하여 고금리통화로 운용하는 경우가 통상적입니다. 일본 ‘와타나베 부인’의 엔 캐리 트레이드나 우리 ‘김 여사’의 브라질 국채 투자처럼 말입니다.(상세한 내용은 2014년 11월에 게재한 “해외투자와 환 헤지; 김여사의 원 캐리 트레이딩”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엔화스왑예금은 거꾸로입니다. 바로 저금리 통화인 엔화로 자산을 운용하였습니다.
엔화스왑예금의 구조는 아래 그림처럼 아주 단순합니다. 고객이 은행으로부터 ①원화를 대가로 엔화를 매입하여 ②예금을 들고, ③원/엔 환율 변화에 대비하여 엔화 예금 만기일에 그 원리금을 은행에 팔고 원화를 받는 선물환 계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은 ④어떠한 환리스크도 부담하지 않으면서 만기일에 년 4% 넘는 이자 수익을 확실히 챙길 수 있었습니다.
<엔화스왑예금 거래 예시>
* 상기 그림 중 ( )내는 엔화스왑예금이 성행하였던 2002~2004년 환율 수준이 100엔당 1,000원, 원화예금
금리 4.5%, 엔화예금 금리 0.5% 내외 였고, 예금이자에 대한 세금이 16.5%(소득세 15%, 주민세 1.5%)였
던 점을 감안한 엔화스왑예금 거래을 예시한 것입니다.
** 선물환 매도 ¥100,417,500은 원금 1억엔에 1년 이자 50만엔에서 세금 16.5%를 제한 417,500엔을 더한
금액이며, 예금주는 원금 1억엔에 대해 선물환율과 현물환율의 차이(선물환 마진) 36원/100엔에 따른
환차익 36백만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상기 ①②③거래는 대부분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외화로 투자를 하거나 예금을 함과 동시에 선물환거래를 하게 되면 양국 통화의 금리차에 따른 수익은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거래비용만 들 뿐이라는 얘기를 몇 번 드린 적이 있습니다. 즉, 양국 통화간의 금리 차이가 바로 선물환 마진(또는 스왑 마진)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금리 차이에 따른 이익은 사라지고 거래비용만 부담하게 됩니다. 다만, 외환거래나 금리 등에 대한 규제, 일시적인 시장불균형 등으로 인하여 시장이 왜곡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익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때 발생하는 이익를 얻기 위해 실행하는 거래를 차익(재정)거래(Arbitrage Transaction)라 하고, 왜곡 요인이 사라지면 이들 차익거래도 없어지게 됩니다. 10여년 전 엔화스왑예금이 성행하였던 것도 결국 어떤 규제나 시장불균형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금 문제였습니다. 예금이자에 대해서는 세금(소득세+주민세)를 내야 하는 반면에 외환 매매나 선물환과 같은 파생금융상품 매매로 올린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의 불균형을 불러왔습니다.
10여년 전 국내은행들은 수억원 정도의 거액 예금에 대해서는 년 4,5% 수준의 이자를 쳐주었습니다. 이 예금이자에 대한 세금 16.5%를 내야 하기 때문에 세후 이자율은 3.75%를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은행들은 거액 예금주들에게 이 세후 이자율을 4% 이상으로 올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위의 그림에서 예를 든 엔화스왑예금이었습니다. 거액 예금주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10억원 상당의 엔화스왑예금을 했다면 1년 후에 예금이자 50만 엔에 대한 세금 82,500엔을 제하고 총 4032만원의 수익이 발생하는데 반해, 년 4.5% 짜리 원화정기예금에 가입하면 세금 743만원을 제하고 3757만원의 이자 수익이 발생합니다. 즉, 예금주는 약 2백75만 원 정도 더 많은 이자를 받는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금주에게는 또 다른 커다란 이익이 있었습니다. 원화예금을 하였다면 예금 이자가 4천만 원을 초과하여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엔화예금을 했기 때문에 이자는 5백만 원 정도에 불과하여 종합과세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크게 절세할 수 있었습니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에 따른 세수는 차치하고, 743만원의 세금이 들어와야 하는데 달랑 82,500엔, 그것도 선물환율이 아닌 세금 징수 시점인 예금만기일의 현물환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현물환율 수준에 따라 825,000원 보다 적어질 수도 있는 세금이 들어왔습니다. 10억원 당 연간 660만 원의 세금이 적게 들어왔으니 말입니다.(이렇게 줄어든 세금의 규모가 누적해서 약 800억 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위의 계산에서 눈 여겨 볼 게 하나 있습니다. 국세청으로 들어가는 세금은 660만원 줄어들었는데 10억 예금주는 단지 275만원의 세후 수익이 늘어났을 뿐입니다. 차액 385만원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위 그림에서 선물환율을 1,036원/100엔으로 하였습니다. 정상적인 외환시장에서의 선물환 마진은 양국 통화의 금리 차이를 반영한다고 했는데 원화금리 4.5%와 엔화금리 0.5%의 차이를 반영하면 실제 선물환율은 1,040원/100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금주에게 적용한 선물환율과 정상적인 시장에서의 선물환율 차이인 4원을 1억엔에 대해 적용하면 400만원(=4원x1억엔/100엔)으로 사라진 차액 385만원과 비슷한 금액이 됩니다.
10여 년이 더 지난 과거의 일이어서 당시 외환시장에서 원화와 엔화간 선물환 마진이 양국 통화간 금리 차이를 반영하여 정상적으로 형성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정상적으로 형성되었다면 예금주에게 불리하게 적용된 4원은 국내은행들이 챙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달러 선물환율의 경우에도 볼 수 있듯이, 각종 외환거래 규제 등으로 인하여 선물환율이 왜곡되어 양국 금리차가 다 반영되지 못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국내은행들이 다 챙기지는 못하였겠지만, 상당 부분은 국내은행들의 엔화 차입 비용 절감이나 외환매매익 증대에 기여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엔화스왑예금은 2005년 4월 국세청이 외화예금과 결합한 선물환거래에 따른 환차익을 실질적으로는 이자라고 판단하여 16.5%의 세금을 징구하기로 하여 종말을 고하였습니다. 또한, 만기가 지난 옌화스왑예금 관련 환차익에 대해서도 소급하여 세금을 납부하라고 예금주들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예금주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실제 이익을 본 것은 10억원 당 년간 275만원에 불과한데 그 2배가 넘는 594만원(=환차익 36백만원 X 16.5%)의 세금을 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은행에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그 뒤의 경과를 요약하면, 예금이자에 대한 세금의 원천징수 의무가 있는 은행들은 예금주들의 세금을 대납하였으며, 이들을 대리하여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2011년 5월 대법원이 환차익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판정함에 따라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국세청은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하여 2012년 1월부터 엔화스왑예금처럼 파생상품(자본시장법에서 정한 파생상품)이 결합된 경우 이들 거래로부터 얻는 이익도 이자소득에 포함하여(소득세법 16조 1항) 소득세를 납부하도록 명확하게 하였습니다.
조세법률주의의 정신에 따라 엄격하게 이루어진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법을 전공하지 않은 제가 뭐라 할 자격은 없습니다만, 금융업무와 파생상품을 오랫동안 다루었던 제가 봤을 때, 국세청의 주장은 상당히 합당했다고 봅니다. 선물환 마진은 금리의 또 다른 표현 방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득세법에서도 ‘채권이나 증권의 환매조건부 매매차익’을 이자소득이라고 규정하였고 ‘이와 유사한 소득으로서 금전의 사용에 따른 대가로서의 성격이 있는 것’, 즉, 대출이나 예금처럼 자금을 사용하고 그에 대한 대가(이자나 매매 차익)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납부하도록 하였습니다. 세법에 ‘외환’의 매매차익이라고 외환거래를 명시해놓지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상품의 유통에 대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사들이 선물환 마진이 이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몰라서 은행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다 보니 보다 엄격하게 해석했겠지요.
대법원이 예금주들의 손을 들어주었기에 망정이지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었으면 은행들은 어쩔 뻔 했습니까? 예금주들이 은행이 대납한 세금을 순순히 내놓았겠습니까? 결국 은행은 강제징수 절차에 들어가거나, 예금주들을 상대로 또 다른 소송을 제기했겠죠. 이 과정에서 은행의 신뢰는 완전히 망가졌을 겁니다. 세법이 좀 어수룩하다고 해서 좋게 말하면 절세, 나쁘게 보면 탈세가 되는 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PB(Private Banking)의 대표 상품으로 포장하여 판매하는 이런 영업방식을 이제 은행들은 지양해야겠지요.
환율을 포함하여 각종 금융상품의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거나 없애는 행위인 헤지(Hedge)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공장 설립이나 신규 사업 진출 등 해외투자를 할 때 환위험을 없애고 투자한 사업 그 자체의 성공을 통해 투자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그런 헤지는 우리가 갖고 있는 헤지에 대한 인식에 부합합니다. 이런 헤지거래 시 발생하는 수수료는 향후 투자의 기대 수익과 비교하면 별로 크지 않고 지급할 만 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엔화스왑예금과 같은 헤지상품은, 절세 요인을 제외하면, 투자 종료 후 원래 자산(원화)으로의 환원 시 거래수수료 만큼 투자수익이 줄어들게 되어 있어 결코 성립될 수 없는 상품입니다. 과거 외국계은행들은 비단 세금과 관련된 헤지상품 뿐 아니라 외국환관리법 등 법규를 교묘히 빠져나가는 상품을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국내은행들은 이런 것을 ‘신종금융상품’이라는 이름으로 모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이런 상품에도 국내은행들은 현혹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2012년부터 세법이 개정되어 엔화스왑예금 같은 상품의 이자나 매매차익에 대해 소득세를 내게 했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원화 금리가 외국통화의 금리 보다 아주 높은 상황이 다시 오면, 소득세를 줄이고자 하는 시도는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환전과 예금은 A은행에서 하고 선물환거래는 B은행에서 하는 방법, 예금은행과는 상관없이 증권회사나 선물회사를 통해 선물시장(Futures Market)에서 통화선물(Currency Futures)을 활용하는 방법 등 다양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개별 파생상품의 매매차익에 대한 소득세나 거래 건별 거래세를 징수하면 해결되겠으나, 그럴 경우 파생상품시장 자체를 위축시키거나 소멸시킬 수도 있어 함부로 시행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2014년 12월 파생상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최고 20%를 징구할 수 있도록 법이 마련되어있고 이를 내년(2016년)부터 적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작용 없이 파생상품에 대한 세제가 제대로 정착될 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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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배우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