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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닷컴(http://www.kungree.com/) 운영자이기도 한 출판평론가 표정훈 선생의 글입니다. KBS “TV 책을 말하다”의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었죠? 표 선생은 1969년생입니다. 일정한 직업도 없는 자유기고가입니다. 그런데도 한 달 도서구입비가 60만원에서 80만원이라고 하는군요. 표 선생의 말에서 충격을 느끼시나요? 아니면 부끄러움을 느끼시나요?
매우 월요일 오전에 여의도에 들릴 일이 있다. 볼 일을 보고 나면 대략 12:30-1:00 사이다. 지하철 5호선으로 광화문 역으로 이동, 교보문고 매장을 한 바퀴 돈다. 순서는 대략 잡지-예술-종교-문학-인문-과학기술이다. 주말에 적어 놓은 구입할 책 목록에 따라 책을 구입하지만, '현장에서 픽업하는' 책도 여러 권 있기 마련이다.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무거워진다.
교보빌딩 1층의 비즈니스홀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구입한 책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이곳에서 끝까지 읽기도 한다.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책이 많으면 어렵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인사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통문관을 비롯한 중고 도서 전문 서점 몇 곳을 돌아본다. 대부분의 경우 두세 권 정도는 구입하는데, 비싼 가격의 일본 학술 도서를 앞에 놓고 군침만 삼키는 일도 드물지 않다.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목동에 들릴 일이 있다. 볼일을 보고 나면 대략 12시다. 오목교역 구내에 위치한 오목교 문고 매장을 한 바퀴 돈다. 이곳에서는 내용이 비교적 가벼운 책들을 주로 구입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는데, 특히 이곳은 대형 서점 매장에 비해 책 회전율이랄까 그런 것이 늦는 편이어서, 출간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좋은 책을 발견하는 망외의 소득도 올릴 때가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지하철 2호선 강변역을 거쳐갈 일이 있다. 강변역 근처에 위치한 테크노마트 구내 서점을 들린다. 주로 신간을 한두 권 구입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냥 이 책 저 책 읽어보기만 하는 때가 많다.
매주 수요일 저녁은 아마존과 반스앤노블, 그리고 일본의 기노쿠니야 차례다. 실제의 동선(動線)이 아닌 망로(網路) 동선인 셈.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일단 북마크해 두고, 저자와 책 관련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뒤(이 역시 북마크), 구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한 달이 지나 뒤, 그러니까 4주 째 목요일에 구입 신청을 한다. 이상의 서점 동선을 한 달에 한 바퀴 돌고 나면, 카드 사용 금액 명세서에 60-80만원이 적혀 있다.
중고 도서 전문 서점 몇 곳으로 서점 동선을 확장하고 싶지만, 시간적으로 힘들다. 매월 서점 동선 순례에 드는 돈을 100만원 이상으로 높이고 싶지만, '사람은 책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에' 현재의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금연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 때문이 아니라, 담배 구입에 드는 돈이면 매월 7-8권 정도의 책을 더 구입할 수 있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의 인터넷 서점을 순례할 수 있기는 하지만, 가끔은 다른 나라에서 다리품을 팔아가며 서점 동선을 누비는 꿈도 꾸어본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지금 사는 곳이 워낙 외진 동네인지라, 도서관 동선을 구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라기로는 모교의 도서관을 이용하기에 편리한 동네로 이사가고 싶지만, 거액의 복권에라도 당첨되기 전에는 어려울 듯 하다.
가산을 탕진해가며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데 열심이었던 혜강 최한기가, 책 구하기 가장 좋다는 이유에서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그도 그 나름의 서적 구입 경로로서의 동선을 구축하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 나름의 서점 동선과 도서관 동선을 구축하여 부지런히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나라, 그런 사람들이 가능한 한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동선을 구축할 수 있는 나라, 책 읽는 나라......
첫댓글 부러움을 느낍니다.
표정훈씨가 요즘은 내공 충전을 위해 잠수타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한번 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