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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기름부음과 신약의 성령세례 그리고 율법
할렐루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시는 하나님! 역사서의 사무엘서의 공부를 통해서 다윗 왕에 대해서 더 잘 이해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기름부음의 의미와 그 능력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를 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서 같은 성령님께서 신약에 오셔서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거듭남과 권능을 받게 하시고 이를 통해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로마서 8장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긴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구약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거룩하게 된 왕이나 제사장이나 혹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잘 감당을 했듯이 우리도 성령을 받고서 권능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모든 신자의 법이 된 율법의 준수에 대해서 기름 부음 받은 믿음의 선진이나 지금 시대를 사는 신약의 성도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 문제를 잘 이해하게 도와주소서!
샬롬!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행동한 위대한 다윗 왕의 삶이 기름부음에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음 앞의 글들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기름부음을 통한 하나님의 신의 감동과 지금 시대를 사는 성령의 세례를 통한 권능의 행함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라는 말과 성령의 감동 혹은 충만 세례는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신이 신약의 성령으로 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윗 왕도 지켜야 할 구약의 율법이 엄연히 존재했는데 늘 하나님께 묻고 또 늘 기도하면서 어떤 결정을 했고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도 죄와 사망의 세상의 법을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의 성령의 법의 인도를 받아야만 한다고 바울 사도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성령의 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는 또 우리가 율법과 그리고 말씀과의 대조를 통해서 비로소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있기에 구약의 기름부음과 신약의 성령의 세례와 그리고 율법과 이들의 관계를 잘 이해를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같은 원리를 이번에 같이 살펴봄으로써 늘 동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이해를 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기름부음의 의미와 다윗의 기름부음을 통한 올바른 선택에 대한 다른 분의 글을 보시겠습니다.
1. 기름부음의 의미와 다윗의 선택
1) 기름 부음 Anointment
고대사회에서 사람이나 물건에 기름을 붓거나 바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기름이 몸속 깊숙이 스며들게 되면 각주 1) 힘과 건강과 아름다움 심지어는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기름은 올리브에서 추출한 것이지만 그 밖에도 비버, 월계수, 아몬드, 삼목, 발삼, 호두나무 등이나 어류에서 기름을 추출하기도 했다.
기름을 붓는 행위는 일찍부터 일상적인 사용 범위를 뛰어넘어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구약 성경에서는 기름 부음이 지닌 제의적인 중요성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기름 부음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사람이나 물건을 거룩하게 만들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데 있었다. 구약 시대에 기름을 붓거나 발라 축성한 것들에는 성막과 그 부속 시설 그리고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에 쓰는 물건들 각주 2) 이 있었고, 예언자 각주 3) 나 사제 각주 4) 또는 임금 각주 5) 도 기름 부어 축성했다.
이때 사용하는 기름은 성별하기 위해 쓰는 기름이기 때문에 함부로 만들거나 거룩한 목적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각주 6) 특히 임금이나 사제들에게는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의식을 행했다. 각주 7) 그것은 그들이 속된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성별 되었고 하느님께 봉사하는 특별한 직무에 공식적으로 임명되었으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능력이 주어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다윗의 혈통을 잇는 임금들은 특히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라 불렸다. 각주 8) ‘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메시아 각주 9) 가 후에 와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실 구세주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신약 성경에서는 사람을 성별하고 특별한 임무에 임명하는 의식으로서의 기름 부음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겨 놓지 않았다. 신약 성경에서 기름 부음은 비유적으로,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믿는 이들은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으로 여겨졌다. 각주 10) 구약 성경에서는 기름 부음이 임금이나 사제, 예언자 같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행해진 것으로 전해 주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기름 부음을 받는다고 전해 준다.
기름 바르는 것의 또 다른 용도는 의학적인 경우와 일상적인 경우가 있었다. 기름은 고통을 완화시키고 가라앉히는 성질 때문에 상처 난 곳에 발랐으며 병자를 치유하기 위해서 발라 주기도 했다. 각주 11) 기름은 장례 때도 사용되었는데 죽은 이에게 기름을 발라 예를 갖추기도 했다. 각주 12) 기름이 기쁨을 상징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각주 13) 특히 향유는 축제 때 사용되었다. 각주 14) 슬픈 일이 있을 때나 절제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향유를 사용하지 않았다. 각주 15) 향유는 몸치장이나 미용을 위해서도 쓰였다. 각주 16)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주인이 발라 주는 향유는 손님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표시였다. 각주 17)
안병철 신부님의 글 신학 용어 사전에서
2)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다윗의 선택
rosesilver ・2020. 4. 12. 21:41
사무엘에 의해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을 때는 다윗은 아직 소년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서슬 퍼렇게 살아있을 때였습니다. 사울을 버린 하나님이 사울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사무엘에게,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고 뿔에 기름을 채워 베들레헴으로 가라 이새의 아들 중에 내가 한 왕을 보았노라고 명령하시자 사무엘은 그렇게 하면 사울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말합니다. 모든 왕정의 역사에서 본 것처럼, 왕이 살아있음에도 다른 왕을 세우는 것은 반역이고 역모입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는 그 자리에는 사무엘이 있었고 그 성읍의 장로들이 있었고(삼상 16:4-5) 다윗의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름부음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 엄중한 자리에, 어쩌면 긴장이 흐르는 그 자리에, 알려져서는 안 될 것 같은 비밀을 공유하는 그 자리에 그들은 함께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인정받거나 관심을 받거나 환영을 받았다고 할 수 없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시는 이유를 그들은 알았을까요.
다윗 자신은 어땠을까요.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 출중한 형들이 아닌 어린 자신에게 기름 부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구약시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는 자는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이었습니다. 자신에게 기름이 부어질 때 다윗이 받았을 충격과 놀라움과 떨림은 상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너무나 소중하게 몸 둘 바를 모르는 심정으로, 그러나 겸비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에 어쩌면 획을 그은 일이었으며 그의 마음에 귀하게 새겨졌을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로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크게 임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삼상 16:13)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 다윗과 그의 가족들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며 가족들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듯도 합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 묘하게도 다윗은, 사울에게 힘 있게 임하는 악한 영을 떠나가게 하기 위해 하프를 켜는 사람으로 그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이따금씩 사울에게 갔다가 베들레헴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는 생활을 반복하던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살피기 위해 진영에 갔다가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의분을 느낀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너무나 용감하게 나아가 물매와 돌멩이 하나로 멋지게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골리앗)의 칼로 목을 베었습니다. 전세는 뒤집혔습니다. 그 후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곁에 두고 여러 가지를 명령했습니다. 사울이 시키는 일마다 지혜롭게 해낸 다윗으로 말미암아 사울과 그 신하들은 물론 모든 백성들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하고 노래하는 여인들의 소리에 사울의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이때부터 시기와 질투가 사울을 사로잡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울은 다윗이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다윗은 승리했습니다.
사울은 더욱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고 다윗은 도망 다닙니다. 환란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됩니다.(삼상 22:2) 도망 다니는 동안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가 확실하게 있었지만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았고 다만 호소만 할 뿐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면서 다윗이 겪은 일들과 그 마음을 여러 시편(시 59편, 34편, 52편, 57편, 54편)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얼마나 억울했는지!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모든 마음을 토로합니다. 찬양과 함께, 믿음과 함께, 경배와 함께 자신이 놓인 처지를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에, 그 의미와 그 뜻과 그 엄중함을 알기에, 기름 부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존귀함,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엄위하심을 알기에, 자신을 죽이려고 좇는 사울을 그는 죽이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사울에게 기름 부으셨던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기름 부으셨음을, 그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임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을 죽이면 그는 더 이상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고 자신은 그다음 왕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가를 지어 부르며 진심으로 애도했고 그들을 죽였노라고 의기양양 찾아온 자(아말렉 사람)를 죽였으며(삼하 1:1-16)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거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축복하고 후대했습니다.(삼하 2:4-7) 그는 사울을 따라 자신을 죽이려 쫓았던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비방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반대편에 있다고 함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했을 때도 다윗은 그들을 속여 이스라엘의 대적을 쳤을 뿐 이스라엘을 향해 칼을 들이대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블레셋이 그일라를 치러 내려왔을 때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삼상 23:2) 하고 묻습니다. 블레셋을 치라는 응답을 들었는데 함께한 사람들이 반대하면 또 묻습니다.(삼상 23:4)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삼상 23:10-12)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또 묻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답을 듣고 행동합니다. 자신들을 구해준 다윗을 사울에게 넘길 거라고 하나님께 들으면서도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을 원망하기 보다 그냥 그곳을 떠납니다. (삼상 23:13)
아말렉 사람들이 자신들이 거주했던 블레셋 땅 시글락을 쳐서 자기 무리들의 가족들을 다 끌고 갔을 때도, 그로 인해 백성들이 자신을 돌로 치려 할 때도 그는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어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삼상 30:7-8) 당연히 추격해서 그들을 구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감정대로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침착하게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그는 아말렉을 추격해서 무찌르고 그 가족들을 다 구했으며 많은 전리품들을 얻어 돌아왔습니다. 끝까지 함께 싸웠던 군사들 중 악한 자와 불량배들의 원망에도 다윗은 그들을 좋게 설득하여, 피곤하여 뒤에 쳐졌던 이백 명의 군사들에게도 동일하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삼상 30:23-25) 그리고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도 나누었습니다.
블레셋에 피신해 있다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다윗은 유다로 가리이까 하고 하나님께 묻습니다.(삼하 2:1) 위험이 사라졌지만 다윗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유다로 돌아가자 유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습니다.(삼하 2:4) 이때 다윗의 나이 불과 23세였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사울에게 쫓겼고 비로소 왕이 되었지만 아직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사울이 죽은 후 사울의 군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하고 실권은 그가 잡습니다.(삼하 2:8-9) 아버지의 첩을 취한 것으로 이스보셋과 갈등이 생긴 넬은 다윗을 찾아가 이스라엘을 넘기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 후 2년이 넘는 동안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에 전쟁이 있었지만 아브넬이 평화를 제안하며 나아왔을 때 다윗은 그를 맞아 잔치를 베풀고 언약을 맺고 그를 평안히 보냅니다. 그러나 아브넬은, 동생(아사헬)에 대한 복수로 칼을 휘두른 요압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다윗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을 애도합니다. 이를 본 백성들은 다윗이 아브넬을 죽인 것이 아님을 알고 기뻐합니다.(삼하 3:6-37) 또한 다윗은 이스보셋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득이 양양 자신을 찾아온 브에롯 사람 레갑과 바아나를, 악인이 의인을 죽였다며 오히려 처단합니다. (삼하 4:5-12)
이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했습니다.(삼하 5:1-3) 이때 다윗의 나이 30세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도 십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윗은 비로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도 다윗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왕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온 백성에 의해 왕이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인정하실 뿐 아니라 이제 온 이스라엘도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정은 험난했고 녹록지 않았습니다.
왕위를 쟁탈하기 위해 그는 애써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부추기고 인정하며 치켜세울지라도 그 부분에서 그는 분명한 중심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동안 그는 싸워야 할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싸웠으며 하나님께 끊임없이 호소하고 부르짖었으며 행동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존중했으며 자신을 죽이려 쫓는 사울을 선대했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선을 악으로 갚음과 자신을 비난하는 모욕에도 아비가일의 지혜로 말미암아 대갚음을 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삼상 25:32-35)
그는 자신의 모든 원수갚음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분열보다는 하나 됨을, 대갚음보다는 존중을, 자신의 안위나 성취나 성공보다는 공동체와 나라를, 자신의 바램과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왕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평화를,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며 절망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선택했습니다.
다윗은 선택했습니다. 힘써 선택했습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와 수많은 대적 앞에 놓일지라도, 험하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더딜지라도, 언제 끝날지 모를지라도 그는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자신의 감정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갔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출애굽 이후 약 400년 동안 정복하지 못한 시온성과 예루살렘 주변을 정복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충실하게 지켜 그 위에 나라를 견고하게 세웠고 성전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런 다윗에게서 예수님을 봅니다. 화목의 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신 분. 내어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류를 구원하신 분.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중보하신 분.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갇힌 자들에게 참 주인이 되시고 참 자유를 주시는 분. 자기 백성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시는 분. 빼앗긴 것들을 되찾고 회복시키시는 분. 사단을 멸하시고 온전히 승리하신 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실 만왕의 왕이신 분. 우리는 그분을 예수(구원자)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부릅니다.
[출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다윗의 선택| 작성자 rosesilver
2. 구약의 기름부음과 신약의 성령의 세례
1) 구약의 기름부음과 신약의 성령의 세례의 조건
구약의 기름부음에 대해서는 위의 기름부음에 대해서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기름을 붓는가 하는 문제는 역시 왕과 제사장과 그리고 선지자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을 하십니다. 누구누구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삼아라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는가는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혹은 기름부음을 받기 위해서 정결한 삶이 평소에 이루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죄를 행하고 정의를 행치 않는 행악자에게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고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는 분들이기에 죄가 있는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일반 백성이 성전이나 성막에 들어갈 땐 늘 자신의 몸도 깨끗하게 씻고 또 죄가 있으면 제사로 해결을 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기름을 부음을 당하는 사람이 제한이 있었다면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대속의 공로로 모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의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이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보시겠습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본문을 보면 먼저 회개를 촉구합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그 죄에서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례자 요한도 회개를 가장 먼저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전도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마 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그다음에 순서를 반드시 잘 지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먼저 교육을 받고 받는 세례를 말합니다. 그리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죄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칭함을 받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데 당시에 베드로와 같은 사도와 성도도 받고 먼데 사람 즉 우리와 같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는 사람이 다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죄 사함이 참으로 중요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와 회개에서 옴을 보았습니다.
2) 기름부음과 성령세례의 능력
삼상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구약의 기름부음과 신약의 성령의 세례는 같은 능력이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왕의 사명 혹은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사명을 기름을 부음을 받은 사람이 감당을 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산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어부가 능력자가 되고 바울과 같이 율법만 알던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어 일생을 복음을 전하며 살게 되니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윗 왕도 그렇게 위대한 삶을 살게 된 배경에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기름부음에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신으로 기록이 되었고 신약에 와서는 성령님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며, 영원토록 계시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면에서 유한한 생명의 아무 능력도 줄 수가 없는 개인이 스스로를 보혜사라 칭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불경이며 또 절대로 누구도 그렇게 될 수가 없는 일이니 현혹되는 일이 절대로 없기 바랍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지혜, 지식, 믿음, 치유, 예언, 기적을 일으킴, 영을 식별함, 신령한 언어, 신령한 언어를 해석함, 봉사, 권면, 가르침, 지도력, 자비 등을 대표적인 성령의 은사들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어떤 개인이 개인에게 줄 수가 있는 능력이 아니고 반드시 성령님의 선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입니다.
다윗 왕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서 늘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늘 기도했습니다. 늘 찬양했습니다. 늘 정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통해서 온 하나님의 신의 능력이 떠나는 것을 가장 무섭게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신약시대의 신약성경의 성령의 소멸에 대해서 가장 무섭게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처음에 기름부음을 받고서 능력을 행했지만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떠났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대한 일을 했고 모세도 그러했고 선지자들도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늘 자신에게 머물도록 정의로운 삶을 살았고 늘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지켰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기뻐했고 세상의 물질에 여자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의 우리 모두도 성령의 선물을 기대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능력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성령의 소멸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고 또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능력 있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기름부음과 성령세례와 율법의 행함의 관계
이 부분은 참으로 깊은 성경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성령을 받고서 율법은 제처두고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된다는 주장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신약의 시대이니 복음이 율법을 대체를 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시대에 왔으니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한 규정이고 신약에서는 복음만 잘 믿으면 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니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쫓아가야 합니까?
구약의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감동이 된 사람을 우리가 보면 요셉의 경우는 큰 흠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당시에는 율법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노아도 그렇고 에녹도 그렇습니다. 다윗 왕도 율법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직 모세만 모세 5경을 통해서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잘 지킬 것을 명합니다. 모세 이전의 분들은 율법이 없어도 하나님을 잘 섬긴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 이후의 분들 중에서 율법으로 흠이 없는 사람은 신약에 와서 바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으로 흠이 없던 바울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서 로마서를 썼습니다.
우선 성령께서는 절대로 율법을 어기는 명령을 성도에게 하시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과 성부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다르나 그렇지만 서로 하나로 되어 계십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경우가 없으시고 구약의 율법도 잘 지키라고 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역시 아버지와 아들과 일치되어 있으시고 율법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는 절대로 율법의 내용을 어기는 일로 인도하실 일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긴다는 표현은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의 규정을 무시하거나 없는 것 같이 행동해도 된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고 성령의 인도를 우리의 육체적인 욕구를 극복하고 따르다 보면 도리어 죄를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랑의 실천을 하게 되고 사랑은 곧 율법의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속에 모든 율법이 다 들어 있다는 표현도 이렇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죄형법정주의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올바로 가는지는 반드시 율법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좋은 예를 들겠습니다. 토지공개념은 문제인 정부의 어떤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또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도 어떤 사람이 토지공개념이 되면 공산주의가 된다고 하니 그대로 믿고 문제인 정부를 비판합니다.
그러면 믿는 우리가 볼 때 어떤 것이 정의입니까?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까? 아니면 완전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국가의 토지에 대한 제한을 전적으로 금하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까? 이는 율법이 없다면 참으로 알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성령께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율법과 성령님의 가르침을 잠시 내려놓고 나에게 어떤 것이 유익한지 따져봅시다. 지금 자본주의 하의 헌법체계에서 모든 개인의 소유를 그대로 인정하고 땅이 없는 약 3천6백만의 사람은 지금과 같이 그대로 남의 땅을 사용하며 사용료 즉 임대료를 내면서 사는 것이 좋습니까? 모든 집이 없는 사람의 임대료나 전세금에는 이 땅에 대한 사용료가 들어가 있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된 것을 개선을 해서 더 이상 땅을 가진 1650만 명이 땅을 더 많이 함부로 가지게 하지 말고 더 많은 사람이 땅을 가지게 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가?
또 국가가 공공의 일을 위해서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절대로 국가나 공공기관이 개인의 땅에 대해서 어떤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모든 개인의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개인의 처분에 맡겨만 두는 것이 나은가? 참으로 토지공개념의 이해도 쉽지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정의를 행할 기준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자신 정의롭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상 잠시도 율법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역시 성령님을 떠나서 어떤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모든 분이 그래야 된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생각해 봅시다. 율법을 보면 토지는 모든 토지가 국가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늘과 지구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소유가 틀림없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체의 국경을 정해주십니다. 민족의 경계도 정해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2지파로 골고루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혹 집이나 땅을 어려워서 팔면 나중에 땅 주인이 돈이 생기면 다시 살수 있도록 했고 친척이 되물을 수가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희년을 정해서 50년이 되면 모든 땅을 전 주인에게 되돌려 주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집과 땅을 이웃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가지려는 자와 가진 자들을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사는 곳이 폐허가 되고 농사를 지어도 소출이 많이 나지 않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 만연된 부동산 투기나 집이나 땅을 많이 가지고서 땅도 집도 없이 어렵게 사는 사람을 많이 만든 자들은 틀림없이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자! 한국에 사는 성도여 어찌하시렵니까?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드리겠습니다.
1) 성경에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 1장 1절에 창 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니 이 세상의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 분명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 이는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즉 국가가 법으로 개인의 소유를 인정해서 국가의 법에 따라서 내가 토지를 적법하게 소유를 했다고 해도 이 토지는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토지에 대한 성경의 말씀과 토지에 대한 정의는 이 말씀에서 비롯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적극적으로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레위기를 통해서입니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3. 땅은 아주 팔아 넘기는 것이 아니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
23. "`The land must not be sold permanently, because the land is mine and you are but aliens and my tenants.
신 10: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19. And you are to love those who are aliens, for you yourselves were aliens in Egypt.
우리 모두가 진정한 땅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요, 거류민이요, 그래서 토지에 세를 든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토지를 절대로 자신의 사유로 생각해서 자의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가령 예수님께서 오셔서 어떤 사람에게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어라고 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주인께 왜 내 소유를 팔아서 남에게 주라고 합니까? 하고 덤벼야 합니까 아니면 자신의 소유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걱정하기는 하나 여전히 팔지 않고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이 말씀은 국가의 강제집행권 보다 혹은 토지의 수용보다 더 강력한 말씀입니다. 주인이 잠시 맡긴 자신의 소유를 세를 들어 사는 사람에게 팔아서 나누어 주어라 하면 반드시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종의 자세요, 피조물의 자세요, 그리고 믿는 자의 주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모든 부자에게 지금의 세상에 사는 모든 부자에게 이 말씀을 지금 하시고 있는데 역시 믿는 자 아니 믿는 자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믿지 않는 자는 이 말씀을 자신에게 하는 말로 여기지 않고 믿는 자도 역시 국법을 하나님의 법에 더 우선해서 믿기에 역시 믿지 않는 자와 같이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2). 율법에 대한 믿는 자의 올바르지 못한 이해
로마서를 공부하다 보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 있고 또 율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이제는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란 말씀도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율법을 여전히 지키려는 것을 보고서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 란 말씀도 있습니다. 말씀을 직접 보시겠습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우선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은 구약의 시대엔 율법의 완전한 준수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사람은 참으로 드물었습니다. 즉 율법의 준수를 통한 의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율법학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서 그렇게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진작 조문의 연구와 준행에 열심히 지나쳐서 해야 할 사랑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바울도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롭게 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음을 예수님을 만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즉 죄의 문제의 해결을 통한 의인이 되는 방법이었으니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리고 역시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를 하는 것을 통한 죄의 용서를 받음을 통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한 의로움을 추구하라는 말씀을 로마서와 모든 서신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반드시 교회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가 필수적입니다. 위의 요소에다 반드시 이렇게 세례를 받아야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는 길을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을 통해서 죄의 문제의 해결의 길을 활짝 온 인류에게 열어놓았으니 율법을 조문 조문 지켜서 의롭게 되려 말고 이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으라고 촉구하는 말씀이 이 말씀이며 모든 바울 서신의 내용입니다. 이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됩니다. 그리고 적어도 613개나 되는 율법을 전부 무시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절대로 말씀을 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토지에 대한 구약의 모든 말씀은 분명하고 시퍼렇게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구약의 제사들은 이제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나 그 외 모든 율법은 함부로 버릴 내용이 절대로 없고 반드시 잘 배워서 상황에 따라서 지켜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3). 이제 레위기의 율법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우리가 지금도 잘 지켜야 함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토지에 대한 부분을 조금 더 보시겠습니다.
레 25: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29. ○성벽 있는 성 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 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토지와 가옥을 팔았다 해도 나중에 돈이 있으면 되찾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희년 제도가 있어서 50년이 되면 모든 토지를 그 본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땅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땅은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고 땅에 집을 짓고 살고 땅에 씨앗을 심어서 먹고 살 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을 가지고 어떤 이 세상의 사람도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세를 주고 하지 말고 모든 인류가 나그네와 같이 이 세상에 살다가 하나님께로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하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땅은 인간의 이 세상의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기본권이 보장이 되지 못하면 지금 한국의 헌법에서 추구하는 모든 기본권과 행복의 추구는 물거품이 되는 것을 반드시 신자가 믿고 정치인이 믿고 불신자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지금 한국에서 약 3천6백만 명의 땅이 한평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5천만 명의 약 1천6백5십만 명이 하나님의 소유의 땅을 자신의 소유로 착각을 하고서 이들에게 세를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성경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여기에서 모든 세상의 문제와 비극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위와 같이 땅에 대해서 정해두신 것이라 믿습니다. 교육문제도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 즉 더 큰 집과 더 큰 땅을 가지기 위해서 생기는 문제이고 젊은이들의 직장과 결혼 문제도 집이 없고 땅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살과 정이 없는 것도 다 이에서 비롯이 됩니다. 그러나 국가나 어떤 사상이나 제도도 이에 대한 분명한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에서 정확하게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서 이스라엘은 동서남북의 경계를 분명하게 정해두셨습니다. 이는 국력이 강해져도 국경을 확장하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이 경계를 침범하는 나라를 격퇴하라는 말씀도 되십니다. 그리고 12부족의 땅도 이스라엘 땅을 나누어서 꼭 그렇게 사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과거에 크게 거주 이전이 일어나지 않던 시기에 즉 정착해서 주로 농사를 짓던 시기에 8도로 나눈 것과 같은 제도를 주셨는데 이는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행복하게 사는 제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가 강해져서 주변의 약한 나라를 약탈한 것이 인류의 역사이고 지금도 그런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방법도 법도 아닌데 인간은 이런 인간을 즉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신장한 지도자를 영웅으로 칭송하고 그렇게 되고자 하고 또 부추 끼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심판의 대상이 되는 큰 죄인에 불과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와 국가는 반드시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받아서 멸망했습니다. 반드시 멸망했습니다. 이런 원리를 모르는 인간이 지금도 여전히 자국의 패권의 확장에 열을 올리나 반드시 패망할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굳게 믿습니다.
이 부분도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신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3.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4.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5.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6.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
7. ○북쪽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 산까지 그어라
8. 호르 산에서 그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이르고
9.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이르나니 이는 너희의 북쪽 경계니라
10. ○너희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11.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14.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
15.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
4) 마지막으로 한국의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누구도 피해 갈 수가 없는 모든 땅의 진정한 주인이신 분의 말씀입니다.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개역개정)
8.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9. 만군의 야훼께서 내 귀에 대고 맹세하신다. "많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제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기척이 없게 되리라.
10. 포도밭 열흘갈이에서 술 한 항아리밖에 나지 아니하고 종자 한 섬에서 곡식 한 독이 가까스로 나리라."
(공동 번역)
이렇게 또 율법이 너무나 중요하고 알아야 하고 필요함을 우리는 반드시 알고 믿어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짓고 지옥에 갈 행동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모르고 배우지 않으면 나의 죄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믿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었다고 하고 또 해결이 된 것같이 가르쳐서 이런 율법에 대해서 아예 관심도 갖지 못하게 가르치는 이들도 이 땅에 너무나 많으니 정말로 예수님과 천국에서 살고 싶은 성도는 각성을 하시고 정신을 차려서 성경을 꼼꼼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믿으며, 오천만의 로마서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시편 제1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율법의 중요성은 아무니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 율법에 있다고 했는데 율법을 모르면 죄에 대해서도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법이시고 율법이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법이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가장 중요한 이 세상에 살면서 지켜야할 법입니다. 이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말씀은 잘 지킨다는 말씀이기도 하고 좋아하고 배우고 가르치며 전파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 땅도 하나님의 소유이고 집도 하나님의 소유이고 우리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정신을 차려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의 신하이고 백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통치자이시요, 우리의 왕이십니다. 정말입니다. 왕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입니다.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도 모두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뜻을 왜곡해서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율법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시고 잘 전하셔야 합니다.
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부탁을 드립니다. 저도 쉬지 않고 모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힘을 내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성령세례 찬양
목동 다윗은 기름부음을 통해서 능력을 받았네
하나님의 능력으로 골리앗도 물리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많은 승리를 쟁취했네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시편도 많이 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울도 용서했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전 건축비 400조원을 준비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 백성을 사랑했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 공경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어
왕중의 왕 예수님의 왕되심을 증거했네
요셉도 그러했고
모세도 그러했고
다니엘도 그러했고
모두가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위대한 일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웅들이 되었네
오직 왕, 선지자,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기름부음
기름부음이 능력이어라
기름부음이 위대함이어라
기름부음이 하나님의 신의 인함이라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든 기름부음!!!
우리 주 예수의 보혈
우리 주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
믿고 회개하고 깨끗게 된 우리 모두에게
오시는 신약의 기름부음.. 성령세례
똑 같은 하나님, 똑 같은 능력
성령받은 신약의 모든 성도가
권능받고 또 위대해졌지
어부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모두가
초대교회를 세우신 믿음의 거장들
예수님 원수 바울도 예수님 만나고 회개하고
아나니아로부터 성령받고 신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네
믿고 회개하고 죄 사함 받은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성령세례, 성령님의 권능
믿고 회개하고 죄 사함 받은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위대한 신앙의 여정
성도여!
모든 것 다 바쳐 성령을 사모하라!
성령세례 사모하라!
예수를 믿는다면 가장 먼저 성령세례 사모하라!
찬양! 찬양!
성령의 기름부음이여!
성령의 권능이여!
불같은 성령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바람같이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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