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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토는 사화위에서 승천하는 기분일 것이다. 지상에 있어야 하나 구름이 되었다.합거하는 갑이 좋을수 없다.
기토의 특성상 정신적 분기점 관련일 다빌한다.
양하원갑자에
독일이 통일한다.반면 고려는 몽고지배로 들어간다.
음하원갑자엔 토목의 변,베트남 흥함.
하원갑자(신금)
1989년 음력으론 년말에 3당합당.
한국엔 많은 걸그룹 초창기멤버가될 이들이 태어난다.
시크릿 전효성.. 소녀시대의 태연.유리. 효연. 티파니. 제시카.써니, 티아라 효민, 미스 에이 지아. 스피카김보형, 에브터스쿨 레이나 등
6월 4일 - 중국 톈안먼 사건이 일어나다.
1월 7일 - 일본 제124대 천황인 히로히토가 87세로 죽다
7월 1일 -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다. 남한에서는 임수경이 참가하였으며, 동시에 월북하였다.
7월 27일 -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발생.8월 2일 -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 서경원(徐敬元) 의원 밀입북 사건과 관련해 국가안전기획부에 구인.
8월 10일 - 콜린 파월 대장, 미국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에 임명.
8월 25일 - 보이저 2호가 해왕성을 지나가다.
8월11월 9일 -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다.
12월 20일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하다.
12월 25일 -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 엘레나가 재판을 거쳐 총살되다.
60년전 신간회는 1929년 6월 인근 지역대표의 대표를 뽑는 ‘복(複)대표대회’를 열어 새 임원을 뽑고 새 규약을 채택했다. 창립 당시와는 달리 상향식으로 모인 의견의 결과는 반수 가까운 사회주의자가 간부로 뽑히고, 허헌이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는 진상조사위원을 시위 현장에 파견했는데, 이는 조사만이 아닌 선전 활동의 일환으로 시위를 지원했다. 이어 신간회 중앙본부(경성부)에서는 언론사, 종교세력, 근우회, 조선청년 총동맹, 조선노동총동맹 등과 함께 대규모의 민중대회를 준비하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조병옥, 이관용, 허헌 등 간부 44명, 총 90여 명이 체포돼 위기를 맞았다.(1929년 12월 13일) 이를‘민중대회사건’이라고 한다.
신간회는 원산 총파업을 지원하는 등 노동 운동을 지도하였다.
1929년 일본령 조선 원산부에서 노동자들이 총파업(원산총파업)을 시작하였다. 파업은 4월 6일까지 지속되었다
10월 30일 광주학생운동 발발.
: 1차 장풍전쟁 발발.1,2차 장계전쟁 발발.
김단야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로 활동재개.코민테른지원아래 당재건시도.반헌영도 합류하여(코뮤니스트)창간.
50년전 독일 폴란드침공으로 전 세계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또 다른 대규모 전면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결국 발발하였다.
- 김구 계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와 김원봉 계의 조선민족전선연맹이 통합하여 조선연합전선협회 창립
1939년에 가석방으로 출소된 박헌영, 이관술, 김삼룡 등과 함께 기존에 준비해두었던 지하조직인 경성콤그룹을 출범시켰고, '조선공산당 재건'을 목표로 지하 비밀리에 공산주의, 노동운동 활동을 하게 된다.
일본 6년만에 함상용인 영식전투기를 개발.노몬한 사건으로 러.일전쟁후 정전협상
40년전 국공내전이 종결되면서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국민정부는 대만만 겨우 건져 이때부터 양안간의 대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철의 장막이 형성되면서 서구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감이 크게 강화되었다. 지금까지 가시화되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이다.
한국에서는 6월 백범 김구가 장교 안두희가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던 해였으며 주한미군이 일부 병력을 남기고 남한에서 철수하였던 해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라오스 독립.
1629년은 김수항. 남구만.박세당 탄생
모문룡은 당시 압록강변 가도(椵島)에 주둔하며 자신에게 맡겨주면 요동 전 지역을 수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인물 원숭환에 의해 참수됨
60년전 선조2년 허균탄생
1569년(선조 2)에 이이가 왕도정치에 대한 경륜을 주객의 문답체로 서술해 선조에게 올린 글.동호문답
50년전 네덜란드의 북부 7주가 위트레흐트 동맹을 맺었다.
- 악바르 대제가 지즈야를 폐지하였다
40년전 기축옥사
30년전 햄릿출판
20년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최초로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였다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동그란 원이 아니라 타원이며(케플러 제1법칙), 행성의 공전 속도가 늘 일정한 것이 아니라 태양에 가까워지면 빨리 움직이고 태양에서 멀어지면 천천히 움직인다(케플러 제2법칙)발표
20년후 효종이 조선의 17대 국왕이 되었다.
- 영국의 왕 찰스 1세가 처형당했다
30년후 - 리처드 크롬웰이 영국 호국경을 사임하였다
현종 즉위
40년후 에트나 화산이 폭발하여 근처 도시 시민 2만명이 사망하였다.벵골기근
50년후 인신보호법공포
60년후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대거 실각하였다
유럽에서 9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영국이 권리장전을 발표하였다.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 사이에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되었다
1269년 10년차 고려 제24대 임금 원종이 폐위되고 영종이 왕위에 오르다.고려 제0대 임금 영종이 폐위되고 원종이 복위하다.
임유무가 김준제거후 실세.
보헤미아 국왕 오토카르 2세가 오스트리아의 케른텐 공국과 슬로베니아의 카르니올라를 상속 받아 대공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70년전 리처드왕이 죽자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브르타뉴 공작 아서를 잉글랜드 왕으로 지지하며 존 왕에 대해 선전포고하였다
60년전 몽골 제국군이 서하의 수도인 흥경성을 포위하였다.천산 위구르 왕국이 몽골 제국에 스스로 복속하였다
시몽 드 몽포르가 지휘하는 알비 십자군이 베지에를 약탈하고 많은 카타리파 교인들과 그 외의 이단들을 학살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50년전 다미에타가 5차십자군에게 함락당했다.
강동성 전투에서 고려, 몽골, 동진의 연합군이 거란족을 항복시켰다. (대요수국의 멸망)
몽골 제국의 호라즘 왕조 침공이 시작되었다.
40년전1229년 오고타이, 몽골 제국의 2대 대칸으로 선출
30년전 루이 9세의 7차 십자군이 이집트의 다미에타에 입성하였다.
- 알렉산더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오굴 카이미쉬 섭정 원년
10년전 1259년 무신정권을 끝낸 고려와 몽고간 전쟁이 화의로 끝난다.
10년후 1279년 송멸망
20년후 1289년캄팔디노 전투에서 구엘프 파 도시인 피렌체 - 나폴리 왕국 (카를로 2세)의 군대가 기벨린 파 도시인 아레초 군을 격파하였다. 이로써 피렌체 내부에서 구엘프 파의 위치가 확고해졌다.
오고타이 칸국의 카이두가 항가이 산지 전투에서 캄말라의 원나라군을 격파하고 카라코룸에 입성했다.
쿠빌라이 칸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카라코룸을 회복한 후 바얀을 두어 카이두를 견제하게 하였다.
30년후 1299년 오스만투르크 건국
40년후 아비뇽 유수 : 교황권의 추락과 중세의 쇠퇴
50년후 스웨덴이 마그누스 에릭손을 왕으로 모시며 양국간의 동군연합이 이루어졌다. 그의 모친 잉게보르그가 양국의 섭정이 되었다
60년후 차가타이 칸국에서 돌아온 코실라가 카라코룸에서 쿠릴타이를 열고 황제로 즉위하였다.원명종이 암살되었다. (천력의 변)원문종이 복위하였다.
펠레카논 전투 (말테페 전투)에서 오스만 군대가 비잔틴 제국군을 격파하였다
민(閩, 909년~945년)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 10국중 하나로써 현재 복건성을 중심으로 왕심지(王審知)가 세운 나라이다
남한(南漢, 909년 ~ 971년)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 10국 중 하나로,
당나라 멸망 후 지금의 광둥 성과 광시 지역을 지배한 나라이다.
건국자 유은(劉隱)의 선조는 후난성에 있다가 조부의 대에 복건으로 이주하여 남해교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려, 지역의 유력자가 되었다.
60년전 오스티아 해전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연합 함대가 사라센족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전 859년당의종이 당나라 17대 황제가 되었다.
바이킹이 이베리아 북부 해안을 약탈하고 나바라 왕국의 국왕을 사로잡은 후 몸값을 요구하였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오르도뇨 1세가 피레네 산맥 중서부에서 무사 이븐 무사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군대를 무찔렀다. (알벨다 전투)
40년전로타르 2세 : 로타링기아의 국왕사망.궁예탄생
30년전 루이 2세 : 서 프랑크 왕국의 왕
사망하고 3세즉위하나 두임금재위 5년.
- 류리크 : 러시아 최초의 군주사망
20년전 도널드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사벌주(지금의 상주시)에서 정부의 과도한 세금 독촉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일어난 반란인 원종과 애노의 난이 발발하였다.
야소바르만 1세가 크메르 제국의 왕이 되었다
10년전 - 대 에드워드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알프레드 대왕 : 웨식스의 왕사망
- 아르눌프 폰 케른텐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동 프랑크 왕국의 왕사망
10년후 하인리히 1세가 독일왕이 되었다.
고려가 철원에서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다.
20년후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에 합병되며 그의 속국이던 포르투, 코임브라 영토도 딸려옴. 레온 - 갈리시아 왕국 해체 4년만에 레온 왕국이 레콘키스타 세력 통일 (나바라, 바르셀로나 제외)
30년후 응오꾸옌이 왕위에 오르면서 최초의 베트남 왕조인 응오 왕조가 성립되었다
독일왕 오토 1세가 자신의 지배 체제에 들고일어난 반란군들을 진압하였다.
- 에드먼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40년후 정종 : 고려 제 3대 국왕사망.
광종이 즉위하여 공신제거의 기치세움
- 요제이 천황 : 일본 제 57대 천황 사망
50년후 광종 과거제 시행2년차
에드거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로마노스1세 동로마 제국의 황제. 제국의 해군 사령관이었다가 919년 3월 콘스탄티노플로 진군해 제국의 실권자로 부상하고 4월에 딸 헬레네를 콘스탄티노스 7세와 결혼시켜 바실레오파토르가 되었다. 그해 12월에 다시 부황제로 승격했고 정적들을 제거한 뒤 920년 공동 황제로 등극했다.
60년후 니키포로스, 크레타 탈환의 영웅과 외교적 실책으로 무능했던 이중적인 면의 황제 사망.
목종죽고 요성종즉위
549년 반란군을 이끌던 후경이 건강의 대성에 입성하였다.
- 후경이 양나라의 비정통 황제인 소정덕을 살해한 이후 소강을 양나라 제 2대 황제로 옹립시켰다.
- 동위의 실권자 고징이 자신의 시종인 난경에게 살해당하였다.
토틸라가 이끄는 동고트족 군대가 로마를 세 번째 점령하다.
60년전 아퀼레이아 근처에서 테오도리크 대왕이 이끄는 동고트군이 오도아케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전 효문제죽고 선무제가 북위 8대 황제가 되었다.
고구려제외 498~501년사이 황제가 다바뀜.
40년전 신라에서 서라벌의 상설 시장 동시를 관리하기 위한 관청인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30년전 문자명왕 : 고구려 제21대 왕사망하고 안장왕등극
20년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로마법 대전의 첫 번째 초안을 편찬하였다
10년전 벨리사리우스의 비잔틴 군이 수륙 양면으로 동고트 왕국의 수도인 라벤나를 포위 공격하였다. (~540년 5월)
- 백제성왕설이 있는 긴메이 천황이 일본 제 29대 왕이 되었다
10년후 고은(북제)이 북제 2대 황제가 되었다.
진천이 진(육조)의 2대 황제가 되었다.
평원왕이 고구려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 랑고바르드족이 밀란과 파비아를 정복하였다
30년후 진지왕죽고. 호르즈미드 4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40년후 수나라가 진(육조)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면서 남북조시대가 끝났다.
50년후 혜왕 : 백제 제 28대 국왕죽고 법왕 즉위하나 곧 무왕즉위.
아바르족 비미나시움전투.
60년후 양쯔강과 황하를 잇는 수양제의 대운하가 완성되었다.
판테온이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 의해 기독교 교회가 되었다
189년 5월 3일(음력 4월 1일) - 백제에서 일식 발생.
후한의 홍농회왕 이 즉위하나 동탁에게 폐위당하고, 헌제 협(協)이 즉위해 연호를 영한으로 고치다.
60년전 말갈이 신라를 공격하였다.
산탄젤로 성이 완공되었다.
50년전
40년전 .
30년전 전한 양기사망
20년전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의 변경을 공격하였다.
당고의 옥 : 후한에서 환관들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관료 100여 명을 죽이고 600여명을 금고 등의 처벌로 다스렸다.
루키우스 베루스 사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의 단독 황제가 되었다.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공격하였다.
10년전 사마의탄생. 신대왕죽고 고국천왕이 고구려 9대 국왕이 되었다
10년후 거등왕이 가락국 제2대 국왕이 되었다.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였다.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로 승리하고 역경루를 함락시켰다. 원소에게 패한 공손찬은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함께 자살하였다.
유비가 서주 자사 차주를 죽이고 하비성을 점령하였다. 이후 관우로 하여금 하비태수의 일을 대행하게 했다.
20년후 유비가 형주 남부에 위치한 영릉, 계양, 무릉, 장사를 점령하였다.
주유, 유비의 연합군이 남군을 지키던 조인군과 1년간 대치한 결과 조인이 남군을 버리고 달아나면서 주유가 남군을 점령하게 되었다
30년후 한중 공방전에서 유비군이 조조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한중을 차지하였다. 여세를 몰아 유비는 한중왕을 자칭하였다.
한중왕 유비의 명령에 따라 관우가 조조의 영토인 번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유비군과 동맹 관계였던 손권의 군대가 관우를 배신하였고, 조조의 휘하 장수였던 서황과 조인의 협공으로 관우는 맥성으로 퇴각하였다. 이후 관우는 맥성에서 손권군을 상대로 응전하다가 붙잡혀 아들 관평과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듬해 조조도 죽고 한나라도 멸망
40년후 손권이 스스로를 오나라의 황제로 칭하고 건업에 도읍을 정하였다.
말갈인들이 백제의 우곡 지역에 침입하여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고, 이에 백제 구수왕이 300명의 군대를 보내었으나 패하였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위나라에 대한 3차 북벌을 전개하였다
50년후 조방이 위나라 제3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고평릉 사변 : 사마의가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있던 자신의 정적인 조상과 그 일당을 처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위나라 집권 세력은 조씨 정권에서 사마씨 정권이 된다.
로마 제국의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데키우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후 데키우스가 직접 로마 황제에 올랐다
클레오파트라 2세기원전 173년 필로메토르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70년에 남편의 남동생 퓌스콘과 공동으로 통치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4세와의 전쟁에 임함
60년전 진시황이 매우 존경했던 인물 한비자 :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이사에 의해 사망.순자의 제자
50년전 진시황이 왕전에게 60만의 군사를 주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초나라의 항연은 결사적으로 이를 막아내려 하였으나 약 1년간의 전쟁 끝에 항연이 이끄는 초군은 전멸당하고 초나라의 왕 부추가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연은 계속 저항했고 항연은 창평군을 새로운 초나라의 왕으로 옹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창평군은 왕전, 몽무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40년전 분서갱유 : 진시황이 승상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학, 점술, 농업 이외의 모든 서적을 불태우게 하였다. 또한 협서율과 같은 법령을 발표하여 민간에서 서적을 소장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30년전 로마 장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기습공격하여 성공적으로 카르타고군을 격퇴하였다. 그리고 카르타고군 뿐만 아니라 카르타고의 동맹인 누미디아인들 또한 쓸어버리고 로마군을 대평원에 집결시켜 카르타고인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진평의 이간 계략에 걸려든 항우는 범증을 내치지는 않았으되 그를 믿지않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분을 참지 못한 범증은 항우의 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 그래도 노년의 나이로 홧병에 등창까지 도져 사망한다.
한신은 연나라정벌
20년전 위만의 귀화.
20년후 그리스의 고대 도시 시키온의 상당 부분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30년후 주발(周勃)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더 공이 큰지 아들이 더 공이 큰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미묘. 한문제 때 흉노의 공격을 막고 총애를 받아 한경제 시절에도 오초칠국의 난을 제압하는 등 공을 세웠던 주아부 : 전한의 무장사망
40년후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누만티아를 함락시켰다.
페르가몬 왕국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의 유언에 의해서 왕국이 로마에 귀속되었다. 이는 로마가 소아시아에 확보한 첫 영역이다
50년후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로마의 호민관에 선출되었다
60년후 기원전 113년 전한의 황제 무제가 수형도위(水衡都尉)라는 관서를 설치해 각 군국에서 화폐를 주조, 유통하는 것을 금지하고 중앙정부가 독점적으로 화폐를 주조하도록 했다.
킴브리, 테우토네스, 암브로네스 등 유틀란트 반도에 살던 게르만족이 대규모 이주를 시작하여 갈리아, 이베리아를 침략하였다.
하원갑자 (인목)
1809년 링컨, 다윈 탄생, 그외글래디스턴 기사년생 지도자가 많다
-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공이 아스펜-에슬링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격파하다.
- 에콰도르, 에스파냐로부터 독립.
60년전 영국인들이 핼리팩스로 이주하기 시작
전해 소론을 대거 정리하고1749년에 사도세자가 영조의 건강 때문에 대리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세자는 소론을 가까이하고...
50년전 효명세자탄생으로 국구 안동김씨 김조순파워는 더욱 강해진다
40년전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다.
- 미국의 개척자 대니얼 분이 켄터키를 답사하였다.
- 프랑스 왕국이 코르시카를 점령하다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에 상륙하였다.
7년 전쟁의 후폭풍으로 프랑스가 인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였고, 동인도 회사가 파산하였다.
벵갈에서 대가뭄이 들어 1770년의 대기근으로 이어진다.
30년전 제임스 쿡 선장이 샌드위치 제도에서 원주민에게 살해당함.
- 바이에른 왕위 계승 전쟁: 프랑스와 러시아의 중재로, 바이에른 왕국 /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의 강화조약이 체결되다.
미국 독립 전쟁: 전해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이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다.
이듬해 총검으로 무장한 독립군은 요크타운에서 영국에게 결정적 승리함.
유럽의 서자출신,중간층출신이 자립함으로서 백인들은 전체적으로 부유해졌다.
20년전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다.
: 프랑스 재정난등의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75년만에 삼부회가 소집된다.프랑스대혁명으로 이어짐
10년전 뉴욕 주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기로 결정.
- 러시아 제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령 아메리카 식민지로 선언,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에 경영 위임.
- 이집트 원정 도중 프랑스군이 로제타 석을 발견.
10년후 - 경제 공황 발발.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공황이었다.
- 시몬 볼리바르가 그란 콜롬비아 공화국을 선언.
영국에 의하여 말레이 남쪽 끝에 싱가포르가 세워졌다
20년후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취임하다.민주당 최초의 대통령으로 출신으로나 걸어간 행보나 미국사에서 꽤 특이하고, 또 큰 영향을 끼친 대통령이다.
- 그리스 독립전쟁: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다
30년후 런던 조약을 통하여 벨기에의 독립과 중립이 유럽 강대국에게 보장받다.
- 임칙서가 영국 상인이 밀반입한 아편을 전량 폐기처분하다. 이는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 아미스타드 호 사건: 흑인 노예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켜서 아미스타드 호를 장악하다.
- 오스만 제국이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탄지마트를 선포하다. (귈하네 칙령)
40년후 곡물법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폐지되다.
- 1848년 혁명으로 독일에서 수립된 프랑크푸르트 의회가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독일의 황제로 추대하다.
- 미네소타가 미국에 가입
50년후 수에즈 운하가 착공되다.
-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발발.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받은 사르데냐 왕국이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물리치고, 이탈리아 내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을 일소시키다
60년후 조슈, 사쓰마 지역의 다이묘들이 주도하여 다이묘들이 자신의 영지를 덴노에게 반납하는 판적봉환이 이루어지다. 비로소 일본 제국에서 봉건 정치 체제가 폐지되고 근대적 중앙집권체제가 도입되다
수에즈운하 개통
조선은 기근으로 연해주 4천명 이민.
1449년 토목의 변발생.명나라와 몽골 부족을 통일한 되르벤 오이라트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영종은 친정을 하다가 오이라트의 포로로 잡혀 중국 역사상 야전에서 포로로 잡힌다.
60년전 - 오스만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 간에 벌어진 전투인 코소보 전투가 일어났다.
이성계에 의해서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왕위에 올랐다.
50년전 1399년 - 조선 정종이 개성으로 천도하였다.
리처드 2세가 아일랜드 원정을 간 사이, 헨리가 잉글랜드로 돌아와 귀족들을 규합하였다.
- 폴란드 여왕 야드비가가 사망하여 남편 블라디슬라브 2세 요가일라가 폴란드의 단독 군주가 되었다.
- 건문제가 즉위한 그해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켜, 정난의 변이 일어났다.
40년전 공의회에서 알렉산데르 4세가 단일 교황으로 선출되나 기존 교황들이 퇴위를 거부하여 세 교황의 시대가 열린다.
- 아라곤 왕국의 마르틴 1세가 시칠리아의 왕 마르티노 2세로 즉위하며 한세기 만에 두 왕국이 합침
30년전 조선의 대마도 원정군, 거제도로 철수- 후스 전쟁 발발.세종즉위
20년전 -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을 포위하던 잉글랜드군을 물리쳤다.
류큐 왕국이 건국되었다.
농사직설간행
정사 박서생의 사절단이 일본 교토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다.
20년후 예종 즉위한해 마지막날 사망.성종대기
30년후 동로마 제국의 후계 국가들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에페이로스 전제군주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느무르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 :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탄생
- 후아나 : 카스티야 연합 왕국과 아라곤 연합왕국의 여왕 탄생
후안2세사망
40년후
50년후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아메리카 항해가 시작되었다
60년후 헨리 8세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포르투갈 함대가 믈라카에 도달하였다
1089년 베트남 리왕조 전성기
고려선종 동생인 의천은 불경과 경서 1,000권을 바쳤고,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며, 송, 요, 일본 등지에서 서적을 사들여 거의 4,000여 권에 달하였는데 모두 간행하게 하였다. 1089년 회경전에 13층 금탑을 세우고, 인예왕후의 청에 따라 천태종(天台宗)의 중심사찰인 국청사를 짓게 하였다
60년전 - 발해의 황족인 대연림이 발해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흥요국을 건국하였다
50년전 독일왕 하인리히 3세가 이탈리아와 부르군디의 왕이 되었다.
보헤미아 왕국의 브레티슬라브 1세가 폴란드를 공격하여 슐레지엔을 점령하고 그니에즈노에 있던 성 보이테흐의 유골을 프라하로 옮겼다
40년전 비잔틴 제국과 셀주크 제국이 휴전에 합의하였다.
파티마 왕조가 힐랄 부족을 마그레브로 파견, 이집트에 대한 종주권을 저버린 지리 왕조를 응징케 하였다
30년전 로베르 기스카르와 교황 니콜라오 2세간의 멜피 조약이 맺어져, 노르만의 남부 이탈리아 정복이 인정되고 시칠리아의 정복을 권장되었다.
- 이사키오스 1세가 퇴위. - 콘스탄티누스 10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0년전 송 신종이 왕안석을 부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송나라에서 개혁 추진 기구인 제치삼사조례사가 설치되고 균수법, 청묘법, 농전수리법이 실시되었다.
셀주크 제국이 이코니움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였다. 시리아의 비잔틴 군이 반격하였다.
세비야 토후국이 안달루시아 일대를 통일하였다.
무라비트 왕조가 마그라와 세력을 멸망시키고 모로코를 통일하였다.
정복왕 윌리엄이 반란을 일으킨 노섬브리아의 앵글로색슨 귀족들에 대한 보복으로 요크부터 더럼까지의 도시/농작물/가축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감행, 10만여명이 살해되거나 아사하였다. (북부의 약탈)
일본 고산조 덴노가 장원정리령을 내렸다.
10년전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 2세가 크라코프의 주교를 죽인 후 동생 블라디스와프 1세에게 양위한 후 헝가리로 피신하였다.
할스텐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10년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졌다.(~1291년.)
- 아스칼론 전투에서 십자군에 파티마 왕조군대에 승리하였다.
레온 왕국의 장군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점령하였다
20년후 십자군이 트리폴리를 함락하여 트리폴리 백국이 성립되었다.
- 볼레스와프 3세가 이끄는 폴란드 왕국군이 포메라니아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포메라니아 지역을 점령하였다.
고려가 여진족에게 동북 9성을 반환하였다
30년후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2세의 십자군 부대가 안티오크로 쳐들어온 알레포의 일가지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 노르망디의 베르뮬레 전투에서 헨리 1세의 잉글랜드군이 루이 6세의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잉글랜드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
40년후 안티오크의 게오르그가 60척의 함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의 노르만 군주 로제르 2세의 계승에 반대하는 아풀리아의 바리를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내었다.
금릉 함락 이후 북송의 신하 장방창이 금나라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어 괴뢰 국가인 초나라가 세워졌으나 그가 곧 남송으로 도망쳐 폐지되었다. 여담으로 그는 강제로나마 칭제한 죄로 처형되었다..
일본에서 도바 상황의 인세이가 시작되었다
50년후 인노첸시오 2세가 미그나노 조약으로 루지에로 2세의 시칠리아 왕위를 인정하였다. 한편, 오우리케 전투에서 포르투갈 군대가 무라비트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크타피가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에 대한 보호를 보장해 주었다.
아폰수 1세가 즉위하며 포르투갈 왕국이 건국되었다
60년후 2차십자군 이나브 전투 : 시리아에서 누르 앗 딘 휘하의 장기 왕조군이 안티오키아의 레몽 휘하의 십자군과 그들과 동맹을 맺은 아사신의 알리 이븐 와파의 군대를 격파하고 레몽과 알리를 전사시켰다.
요 해릉왕 쿠데타
729년 발해무왕 흑수말갈을 공격 당나라와 전투시작하다.7년후 화친한다
오비토 천황 덴표(天平) 원년(729년)에 나가야 왕의 변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가야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반대 세력이 없어지면서 고묘시는 황후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황족이 아닌 자로서 황후로 책봉된 최초의 사례였다
이듬해 300척을 이끌고 신라공격.
60년전 순다 왕국이 건국되었다.콘스탄티노스4세
비잔틴황제등극.
후지와라가문 덴노에게 성을 하사받고 초대 후지와라 사망.
50년전 679년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인 무아위야 1세가 비잔티움 제국에 항복하고 매년 3천 파운드에 달하는 금과 여러마리의 말, 여러명의 노예를 비잔티움 제국에 공물로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평화 조약을 조인하였다.
테우데리히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프리시아의 왕 라드보드의 프리시아군이 프랑크 왕국군에게 패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지방이 다시 프랑스의 땅이 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불가르족을 격퇴하고 테살로니카를 되찾았다.
측천무후가 측천문자를 창제, 반포하였다
30년전 가르친링 : 토번의 장수사망
20년전
10년전 무왕(발해)이 발해의 2대 국왕이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 군대, 피레네 산맥 넘어 남프랑스 진출
10년후 베르베르인들이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 체제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아스투리아스 왕국, 이베리아 북서부 갈리시아 점령
알폰소 1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고켄 천황이 일본 46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미황사가 창건되었다.
30년후사사명의 반란군이 이광필, 왕사례, 허숙기, 노경이 지휘하는 당나라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사사명이 안경서를 죽이고 연나라의 황제가 된 뒤 자신을 대연황제라 일컫고 순천 연호를 세웠다.
피핀 3세의 프랑크 왕국이약 7년 간의 공격 끝에 무슬림들에게서 나르본을 탈환하였다.
40년후 교황 스테파노 3세가 교황 선거를 위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오로지 성직자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주교 추기경과 사제 추기경만이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다고 하였다.
화암사가 창건되었다
50년후 경주에서 규모 7.0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났다.
당대종죽고- 당덕종이 당나라 제 9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베르무도 1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369년 백제의 근초고왕과 야마토(倭)와 동맹하여 한반도 남부의 소국들과 싸워 이김. 반론은 큐슈를 도리어 점령
사백·개로가 백제 측 대표가 되어 탁순국에 이르고, 여기에 장군 목라근자·사사노궤가 군사를 이끌고 따라갔다. 일본서기의 과장된 표현에 따르면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신라와 더불어 가야 지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곱 나라를 모아 실질적으로 백제 중심의 패권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만들어진 중국의 양직공도에도 가야의 소국들이 백제의 부용국이라는 기록이 있다
서쪽(전라도)으로 군대를 돌려 고해진에 이르러서 남만 침미다례를 격파하고, 지금의 전북 평야 지대에 해당하는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혹은 비리, 벽중, 포미지, 반고 4읍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의 항복을 받았다.
근초고왕이 남방 경략의 위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있을 즈음인 369년 9월,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갑작스레 2만 군대를 이끌고 남으로 진군해 치양에 주둔하며 민가를 약탈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기록상 마지막 고대올림픽인 287회 고대올림픽이 개최되었다.
369년에 동진의 환온(桓溫)이 북벌군을 일으켜 전연을 공격하여 수도 근방까지 진격하였다. 이에 모용평은 전진(前秦)에 구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모용수(慕容垂)를 보내 북벌군을 공격하여 격퇴하였다. 북벌군을 격파한 모용수의 권위가 높아지자 이를 두려워한 모용평은 태후 가족혼씨(可足渾氏)와 함께 모용수를 암살하려 모의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용수는 전진으로 망명하였다. 한편 전진의 부견(苻堅)은 구원군을 파견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을 명분으로 전연을 공격하였다. 370년에 왕맹(王猛)이 이끄는 전진군은 업(鄴)을 함락하여 전연을 멸망시켰으며, 모용위는 장안으로 끌려와 신흥후(新興侯)에 임명되었다.
60년전 로마 기독교탄압 철회
309년 로마 제국에 전염병이 퍼져 많은 제국의 시민들이 사망하였다.
샤푸르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50년전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노예를 불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사마보가 동진의 황제인 사마예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왕이라 칭하였다.
40년전 후조의 공격으로 전조가 멸망하고, 황제 유희와 고관들이 모두 처형당하였다.
30년전 전연이 중원까지 세력을 드리우는 강국이 되면서 고구려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339년, 고국원왕은 전연과 직접 붙기보다는 일단은 동맹을 맺다.
20년전석호가 후조 제 3대 황제가 되었다.
- 석호가 병으로 사망하고 석세가 후조 제 4대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곧 석준이 일으킨 군대가 업을 접수하였고, 석준이 석세를 폐위시킨 뒤 5대 황제가 되었다.
- 후조의 무장 석민이 반란을 일으켜 석준을 살해하고 석감을 제 6대 황제로 옹립하였다
10년전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2세가 남부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첫 특별시장이 임명되었다
페르시아군이 로마 제국의 아미다를 함락시키고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10년후 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테오도시우스를 제국 동부의 황제로 임명하였다.
아르다시르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 삼국사기 백제 본기 근구수왕기에는 379년 3월에 동진에 조공하려고 했지만 해상에서 폭풍을 만나 되돌어 왔다고 하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20년후 백제의 진사왕이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게 하였다.
30년후 남량의 군주 독발오고가 남량의 수도를 낙도로 옮겼다.
독발오고 : 남량 초대 군주사망
여광 : 오호십육국시대 후량의 초대 군주 사망
야즈데게르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인 바흐람 4세를 암살하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새 샤가 되었다.
일본서기에 닌토큐천황 사망해로 되어있으나 최소23년후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이전부분은 90년~120년정도 틀린것으로 보인다.
40년후 북위의 초대 황제 탁발규가 그의 아들 탁발소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후 장남 탁발사가 북위 제 2대 황제가 되었다.북연초대황제 고운 사망
50년후 사마덕문이 동진 15대 황제가 되었다.다음해 동진의 황제 사마덕문이 유유에게 선양하고 영릉왕으로 봉해졌다. 이렇게 동진이 멸망하고 유유가 유송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공격하였다.
서기9년
- 마한의 원산, 금현 2성, 백제에 항복
- 백제, 대두산성(大豆山城) 축성음력
부여 대소왕, 고구려에 사대를 권고
겨울 -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바루스의 로마군이 아르미니우스에게 대패하고 두번다시 엘베강근처를 가지못했다.
60년전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이 베르킨게토릭스를 중심으로 하는 갈리아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체를 로마의 영토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었으며, 로마가 멸망하기까지 갈리아족의 대규모 항전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50년전기원전 43년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사이에 평화 조약이 맺어지고,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제 2차 삼두정치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즉시 원로원파 척결 명령을 내렸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살해당하였다.
디라키움에서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군대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동생인 가이우스 안토니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전기원전 33년성제(전한)가 전한 13대 황제가 되었다.
「흉노전」에 따르면 이 해에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전한에 입조하여 전한의 사위가 되어 친분을 쌓는 것을 원해 황제 원제가 왕소군을 호한야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30년전기원전 23년
20년전기원전 13년트라키아인 들이 반란을 일으켜 마케도니아를 침공하고 다키아인들이 도나우 강을 건너 대대적인 약탈을 저지르다.
10년후 북명(北溟)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인장을 얻어 신라에 바쳤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20년후로마 제국이 세르디카(현재의 소피아)를 함락시켰다.
아그리피나가 벤토테네 섬으로 추방당하고 그녀의 아들인 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도 세야누스에 의해 투옥당하였다
30년후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스스로가 신임을 자처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조각상을 놓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조각상을 놓는 임무를 맡은 시리아 총독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는 유대인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40년후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하였다
50년후 네로가 자신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를 살해하도록 하였다. 그는 우선 아그리피나를 선상 잔치에 초대하였고, 이 때 배가 침몰하도록 하여 아그리피나를 물에 빠져 죽게 하려 했다. 그러나 아그리피나는 살아남았으며, 이에 네로는 직접 자신의 군인을 시켜 아그리피나를 살해한 뒤, 그녀 혼자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였다.
60년후 마인츠에 주둔하고 있던 라인강 군단이 현 로마 황제 갈바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인 비텔리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라고 주장하였다
비텔리우스가 로마를 점령한 도나우 군단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이후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새 황제가 되면서 로마의 내전이 마무리되고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가 개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