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기-2009.5.19
1)프롤로그
여행은 설렘에서 시작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 따뜻한 그리움..
그리움이 없는 여행은 밋밋하고 맹맹하다.
평소 교분이 있었던 동삭초등학교 박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행여행 사전답사에 동행하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매년 경주로 가는데 선생님들 사전교육도 필요하고 답사코스도 조율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아내는 나의 머뭇거림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그 정도도 못 해주냐는 거였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승낙하였다.
출발 이틀 전 자료집을 준비하고,
하루 전까지는 답사코스도 꼼꼼하게 챙겼다.
아내는 선생님들 도시락을 싸야겠다며 시장을 봐왔다.
2)회포
전날 저녁부터 비가 내렸다.
봄비는 답사에 좋은 거라면 애써 위안을 했지만 그리 녹록한 기분은 아니었다.
가방을 챙기고,
콘도 예약번호를 챙기고,
창밖을 내다봤다.
12시 경이 되자 빗줄기가 거세졌다.
아, 윈드자켓과 우산도 챙겨야겠군.
서둘러 오전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내가 김밥과 과일들을 한보따리 마련해 놓았다.
은채와 함께 낑낑대며 음식보따리를 들고 현대아파트 주차장으로 나갔다.
출발인원은 6학년 담임선생님 6명과 기사 겸 업저버로 참가한 안선생님과 나까지 8명.
우리는 교통 혼잡을 피해 평택-음성 간 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대전-상주 간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를 뱅뱅 돌아 경주에 도착하였다.
불과 9개 월 만에 찾은 경주는 변함이 없었지만 계절이 변한 탓인지 길가의 가로수마저도 낮설게 느껴졌다.
3)풀리다
경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 경.
첫날 저녁은 아이들 숙소 예약 때문에 분주하게 보냈다.
복심으로는 박물관을 답사하고 밤에는 달빛답사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문화유산 답사를 통하여 교사들이 감동해야만 나중에 아이들에게도 신나게 설명할 텐데,
사전 예약하였던 유스호스텔이 부도나면서 모든 일정이 뒤죽박죽되었다.
몇 개의 콘도와 유스호스텔을 돌아본 뒤에야 우리는 숙소에 들어갔다.
한화콘도는 보문단지 여러 콘도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고 시설도 훌륭하였다.
우리 방은 본관 7층,
어렵사리 접수를 마치고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베란다 문을 열었다.
탁트인 전망과 푸른 숲, 맑은 빗소리가 확 가슴에 안겼다.
서둘러 저녁밥부터 하였다.
동행한 전선생님은 천상 1급 주부감이었다.
주방일을 하는 솜씨가 어찌나 싹싹한지 ‘엄마 밥줘!’라는 말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저녁만찬은 삼겹살,
나는 삼겹살을 듬뿍 넣은 김치찌게로 여러 선생님들께 보시하였다.
나중에는 삼겹살을 구워먹은 프라이팬에 김치도 볶아 주었다.
소주잔을 나누며 수다를 떨고,
게임도 하고,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새벽 두시가 가까웠다.
다음 날 아침,
전날 밤 내 곁에서 잤던 노선생님은 코고는 소리에 한숨도 못 잤다고 투덜댔다.
주범은 안선생과 나.
몇 년 전부터 심해진 코골이가 민폐를 끼친 것이었다.
아침을 미루고 짐을 챙긴 뒤,
근처 식당에서 순두부로 아침을 먹었다.
식당 주변의 경관도 좋고,
음식은 빛깔도 고왔지만 감칠맛은 영 떨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가 경상도였군!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가슴 속에서 용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래서 용서했다.
용서!
4)답사
몽롱한 정신으로 토함산에 올랐다.
물론 승용차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불호령을 들으며 눈 비비고 오르던 새벽 토함산이 기억난다.
숨 가쁘게 올랐지만 해는 구름 뒤에 숨어 나올 줄 몰랐었다.
그 토함산 자락 아래에 불국사가 있다.
‘불국사’
부처님의 나라,
통일 후 최전성기였던 경덕왕 때 김대성이 창건했다는 사찰.
삼국 민중들의 고혈을 짜서 호의호식하였던 왕과 귀족들이 ‘통일된 신라가, 자신들의 세상이 곧 부처님의 나라라고 인식하여’ 건립하였다는 절.
나는 불국사 세 개의 공간을 돌아보며 원론에 충실한 설명을 하였다.
극락전까지 답사하고 돌아 나오는 데 머리 속에서 기차가 지나간다.
‘드르럭, 드르럭~~ 거럭거럭’
어, 머리속까지 어지럽네.
근처 화장실에서 대변에 섞인 알콜을 빼내고 났더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석굴암에서는 설명을 줄였다.
석굴암의 억울한 역사,
아픈 과거사와 맛물려 수 천 년 문화유산이 훼손되었던 이야기,
본존불의 대칭구조와 비례가 완벽할 수밖에 없는 이유,
문화유산이 갖는 엄청난 가치와 잠재력.
점심을 거르고 아이들 숙소 예약부터 하였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예약과 함께 문화유산답사 안내까지 계약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을 교육시켜 반별 답사를 기획하였던 내 부담은 거의 줄어든 셈이다.
계약하는 동안 하릴없어진 나는 차 안에서 쿨쿨 잠만 잤다.
계약을 끝내고 났더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계획하였던 박물관과 대릉원 답사를 미루고 ‘달빛답사’ 코스인 반월성과 계림, 첨성대, 안압지 코스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달빛답사’
작년에 내가 지은 이름인데,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 보니 경주 문화유산안내자들이 3년 전부터 사용하던 용어라고 한다.
문화를 느끼는 감성이 같다고 할 수 밖에.
한낮에 답사하는 반월성과 첨성대는 참 밋밋하였다.
조명의 효과,
달빛의 효과가 가져다주는 고즈넉함과 화려함의 조화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여름밤에 보았던 수 백, 수천 연꽃들의 화려한 꽃무,
숲과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의 교교함 같은 것은,
불타는 태양빛에 가려버리고 없었다.
그래도 귀했던 것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던 선생님들,
그들의 열정을 생각하면 헤롱대며 주절거렸던 내 자신이 쑥스러웠다.
계림에서는 상주하시는 ‘숲 해설사’ 선생님께 안내를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항상 보아왔던,
시멘트를 덕지덕지 붙였다고 투덜대었던 회나무 앞에서 안내를 시작하였다.
해설사는 이 나무가 이래뵈도 1천 500년을 버텨낸 것이라며,
나무거죽 한쪽만 붙어 있지만 봄이면 생기를 불어 올려 잎사귀를 틔우고 꽃을 피운다며 빙그레 웃었다.
우리가 시멘트라고 생각했던 것도 실은 톱밥과 황토를 이겨 바른 것이라고 하였다.
천 오백년을 버텨온 생명이라!
김알지의 설화와 계림 숲을 신성하게 여겼던 신라 왕조의 역사보다 위대하게 느껴지는 자연의 힘.
5.에필로그
점심으로 밀면을 먹었다.
밀면,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한 사람들이 함경도 냉면을 잊지 못해 구호품으로 나온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만들어 먹었다는 부산식 냉면.
경주 황룡동에는 유명한 밀면식당이 여럿이다.
우리는 안압지 문화유산 해설사들의 추천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경주밀면집으로 갔다.
경주밀면집,
실은 ‘밀면식당’인데 경주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대표주자의 프리미엄이랄까?
크지 않은 식당 앞에는 길게 줄이 서 있었다.
이름난 식당의 특징은 줄을 섰어도, 지루해도, 결코 투덜대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투덜댐 없이 줄을 섰다.
하지만 줄은 줄어들지 않았고 우리는 돌아갈 시간이 부족했다.
그 때 우리 앞줄에 섰던 아주머니가 조금 더 돌아가면 ‘부산 가야밀면집’이 있는데 이곳 맛과 별 차이가 없다고 일러주었다.
가야밀면집은 주차장도 넓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밀면맛도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국수를 삶아 얼음물에 급속냉각을 시키지 않았는지 면발이 불어 있는 점이 아쉬웠지만 육수가 특별하여 감칠맛도 느껴졌다.
선생님들 가운데도 차가운 음식을 못 먹는 박선생님은 무척 힘들게 넘겼지만, 옆자리에 앉은 최선생님은 맛있다며 극찬을 아까지 않았다.
나는 먹는 내내 옛날에 먹었던 온돌방 밀면을 생각했다.
부산 구포에서 올라온 부부가 시원한 김치국물에 말아내던 밀면.
그 부부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도 밀면을 만들고 계신지,
그립다.
올라오는 길
무려 4시간 가까운 시간을 내내 헤롱댔다.
평택에 도착하니 저녁 8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 (2009.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