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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탈출 24장-31장
* 24,1-11 사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다
19장부터(구체적으로는 19,3) 시작된 시나이 계약 과정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다.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 " (19,5)이라고 하신 야훼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응답(“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24,3.7)이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다.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모세가 중재자로서 남다른 권위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두 가지 전승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전승에서는 계약 체결 의식으로 제의적 공동식사가 차려지고(24,1-2.9-11),다른 전승에서는 율법과 피의 의식을 소개한다(24,3-8). 앞 전승의 지리적 배경은 산 꼭대기이고 뒷전승은 산 밑이다. 또 참석자도 앞 전승에서는 모세를 비롯한 원로 등 지도자들이고,뒷 전승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이다. 어떻든 이 대목에는 하느님의 발이 언급되고 그분의 현시가 매우 자세히 소개되며 거룩한 식사를 함께 나누는 모습 등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부분이 있어,시나이 전승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꼴로 본문이 최종 편집되면서,매끄럽지는 않지만 두 가지 의식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즉 먼저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율법을 낭독하고 백성이 응답한 다음 피의 의식이 치러진다. 이어서 야훼 말씀에 따라 지도자들만 올라가서 일치와 친교를 나누는 제의적 공동식사를 함으로써 권위를 드러낸다. 이는 마치 성경 봉독 및 신앙 고백,성변화(聖變化)와 성찬식으로 이어지는 천주교의 미사 전례와 비슷한 골격이다.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지시를 내린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을 데리고 주님에게 올라와, 멀찍이 서서 경배하여라”(24,1). 곧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칠십 명을 데리고 야훼가 계신 산으로 올라오라는 말씀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사제계 전승에서 아론의 아들로 나온다(6,23: 레위 10,1). 이 74명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뽑힌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모세만 거룩한 경계를 넘어 야훼 가까이 갈 수 있다(24,2). 이후 진행되는 계약 체결 의식에서도 모세의 탁월한 위치와 권위가 부각된다. 그럼으로써 그가 아론으로 대표되는 사제와 원로로 대변되는 일반 지도자보다 훨씬 뛰어난 권위를 가지고 하느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 말씀에 따라 모세와 원로들이 올라가는 것은 9절에 가서 이루어진다. 그 사이에 모세는 일련의 의식을 거행한다. 첫 번째로 그는 백성에게 와서 야훼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자세히 일러 준다. 여기서 야훼의 말씀은 십계명을,법규는 계약법전과 하느님의 약속(23,20-33)을 망라한다.
그러자 두번째 순서로 이스라엘 온 백성은 입을 모아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24,3)고 대답한다. 기꺼이 동의한 것이다(19,8의 응답과 동일하다). 모세는 야훼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24,4). 말씀을 기록하고 낭독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서약을 할 때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 번째 순서로,모세는 흔히 중요한 행동을 할 때 그러하듯이 아침 일찍 일어나 야훼의 나타나심과 현존을 뜻하는 제단을 쌓는다. 그리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기념 기둥 열두 개를 세워 계약의 증인처럼 간주한다(24,4). 고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서는 무덤이나 경계 뿐 아니라 신의 현현을 표시하기 위해서 흔히 돌기둥을 세웠다. 가나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다양한 표지로 돌기둥을 세웠는데,기원전 8세기 이후 이런 기둥들을 우상 숭배의 표지로 보아 없애기 시작하였다(2열왕 18,4; 23,14).
그리고 모세는 몇몇 젊은이를 보내 소를 잡아 야훼께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게 하였다. 이때 젊은이들을 보낸 것은 당시에 사제 제도가 성립되지 않았고 또 임금이나 사제가 직접 일하지 못할 때 부하들을 보내어 일을 처리하던 고대 관습으로 보인다. 번제(播察)는 가죽을 제외한 제물 전체를 송두리째 태워 바치는 제사로서,완전한 봉헌을 뜻하며 나아가 속죄,간구(1사무 3,12), 감사(레위 22,17-19), 찬미 등 넓은 의미를 갖는다. 친교제(親交祭)는 하느님과 우호 관계를 맺는 제사로,기름기만 태워 바치고 나머지 고기는 ‘하느님 앞에서’ 같이 나눠 먹음으로써 공동체의 친교를 도모한다(창세 31,54; 신명 27,7).
네 번째 순서는 피의 의식이다. 모세는 희생된 소의 피 가운데 절반을 제단에 뿌려 하느님께서 계약 체결을 수락하셨다고 알린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재자 노릇을 하는 모세는 나머지 피 절반을 항아리에 담아 놓고 다시 백성에게 다짐을 받는다. 그는 계약의 책을 집어 들고 야훼의 모든 말씀과 법규를 재차 들려 주면서, 이 모든 조항을 지켜 계약을 맺을 뜻과 의지가 있는지 밝히라고 요구한다(3절 내용의 반복이다). 백성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24,7) 하고 기꺼이 동의한다. 이때 “따르다” 는 말은 ‘듣다(shama)’ 와 같은 단어다.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19,5)이라고 하신 야훼의 말씀에 그대로 응답한 것이다. 진정한 응답은 들은 것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듣지 않고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모른다.
십계명에서 뚜렷이 드러나듯 율법에는 외적 행위와 내적 마음이 융합되어 있다. 따라서 들음과 행함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순환하며 성장한다. 말씀과 법규를 행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셨고 또 내가 들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그 들에게 피를 뿌리며 계약이 맺어졌음을 공식 선언한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24,8). 계약을 맺는 주체는 주님,야훼이시다.
흔히 제물을 반으로 갈라 계약을 맺는 고대 관습은 계약을 어길 때 당사자가 그와 같은 벌을 받겠다는 뜻으로,이스라엘 백성은 목숨을 걸고 계약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드러낸다(창세 15,10; 예레 34,18). 또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피로 맺는 계약은 생사를 가름할 만큼 중대한 것이다. 아울러 같은 피를 나누는 것은 같은 생명을 나눈다는 뜻으로 한 가족이 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피를 통해 야훼 하느님과 상징적 혈연 관계를 맺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피는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에(레위 17,11) 이 피의 의식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기꺼이 계약을 받아들이셨음을 나타내는 표지이다(사제 임직식 때도 피의 의식을 행했다. 29,19-21; 레위 8,22-30) .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민족”이 되고(19,6) 계약 공동체로서 공동 책임을 지고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실 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창세 17,7-8)고 약속하셨지만,정식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계약을 맺으신 것은 시나이 계약뿐이다.
본문에는 이 의식을 파스카처럼 정해진 시기에 계속 재현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그 뒤 이스라엘은 피 뿌리는 계약 체결 의식을 기억하고 재현하면서 시나이 계약의 중요성과 율법 준수를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24,8). 이 본문도 그러한 계약 갱신식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계약을 충실히 지키지 않았다.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유배 갔을 때,그들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예레 31,32). 그래서 성경 본문에는 계약 파기를 알리는 공식 선언이 나오지 않지만,그들은 마음에 하느님의 법이 새겨지는 “새 계약”이 체결되기를 간절히 바랐다(예레 31,31.33; 에제 36,26-27).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결코 깨뜨리시지 않기 때문이다(레위 26,44; 예레 31,3),이 기대는 메시아 희망과 연결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계약의 피” 마르 14,24)로 새 계약(신약)을 맺었다고 믿고(루카 22,20; 히브 9,15 참조),미사 예식을 통해 계속 계약을 재현하며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새 계약으로 완성시킨 이스라엘의 계약들을 “옛 계약” (구약. 2코린 3,14) 또는 “첫째 계약”(히브 9.15)라 부르며,각 계약의 내용과 증언을 담은 책을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으로 구하되 둘을 합쳐 한권의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모세는 야훼의 지시대로 백성의 지도자들을 데리고 시나이 산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거기에서 그들을 만나러 내려온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뵈었다(24,10) 여기서 두 번 나오는 ‘보다(raah)’라는 말은 예언자들의 환시에서 사용되는 ‘보다(hazah)’와 달리 주로 정상 상태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모습은 소개되지 않고 단지 천상 거처에 계신 하느님 발밑의 광경(“바닥 같은 것")만 묘사되어 있어 직접 그들이 하느님을 뵙지는 않은 것처럼 암시되었지만,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뵈었다고 묘사한 구절은 구약성경에서 매우 드문 예이다. 그래서 고대 전승의 흔적으로 추정한다. 하느님을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은 없다(33,20)고 믿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그들이 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야훼께서 계약의 백성이 된 그들을 손 대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24,11).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령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서 먹고 마셨다”(24,11). 나아가 그들은 두려움 없이, 아무런 제약 없이 하느님을 뵙고 먹고 마셨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베푸신 아주 큰 은총인 동시에,계약 체결을 전후하여 하느님께 대한 태도가 두려움(19,16)에서 친밀감으로 바뀐 실례이다. 이 친밀감은 성막 건설을 통해 더욱 강화될 것이다(40,34-38). 그들이 무엇을 먹고 마셨는가에 관계없이,그 식사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를 드높이는 한편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힘을 주는 천상 잔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한낱 빵과 술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몸과 피를 함께 받아 모시는 성찬식을 통해 새 계약의 공동식사에 참여한다(1코린 11.25).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1코린 10,17) 복음에 따라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 24,12-18 모세,산에 높이 오르다
계약 체결 의식이 끝난 후 모세는 다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백성에게 줄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 판”을 받으러 하느님의 산에 높이 올라간다(24,12-1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있는 이 산으로 올라와 거기 머물러라. 내가 백성을 가르치려고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 판을 너에게 주겠다”(24,12). 하느님께서는 백성을 ‘가르치려고’ 손수 율법을 기록하였다고 하여,이 돌 판(율법)은 곧이어 나올 ‘성막 모형’(25,9)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권위를 갖게 된다. 동시에 이렇게 중요하고 거룩한 돌 판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따라 성막 기사에서는 먼저 ‘계약 궤’가 언급된다.
이때 여호수아가 모세의 시종으로 처음 등장하여 원로들보다는 높이,모세 보다는 아래에 머문다(32,17 참조). 아직 여호수아의 역할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장차 모세의 후계자가 되리라고 어렴풋하게 알 수 있다. 모세는 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원로들에게 자기가 없는 동안 아론과 후르가 그들의 문제를 처리해 줄 것이라고 알린다(24,14).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를 도왔던 아론과 후르가 다시 등장하여 모세 대신 지도자 노릇을 한다. 그러나 정작 모세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이 대목(24.,2-14)은 모세가 산 위에 머무는 동안 벌어졌던 금송아지 사건과 계약 파기,재계약으로 이어지는 32-34장의 도입 부분이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시나이 산을 뒤덮었다(24,15-16). 여기서 구름은 야훼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 주는 동시에 감추고 있다(40,34 참조). 그것은 또 야훼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앞서 있었던 하느님의 현현(19장) 때와 마찬가지로,야훼의 영광이 불처럼 보였다(24,17). 모세는 엿새 동안 기다렸고 이레째 되던 날(거룩한 수 7) 야훼께서 그를 부르셨다(24,16; 25,1). 모세는 사십 일 동안 시나이 산에 머물렀다(24.18). “주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모습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기에 산봉우리에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에 올라갔다. 모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그 산에서 지냈다”(24,16-18).
* 25,1-9 성소 건립을 위한 예물
계약을 맺은 후 모세는 시나이 산에 올라가 엿새 동안 기다렸고,이레 째 되던 날 하느님께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다(24,16: 25,1). 그 말씀은 40일 동안 계속 되었다.
맨 처음에 주님께서는 예물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25,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나를 위한 예물을 받아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나에게 바치는 것이면 누구에게서든 예물을 받아라”(25,2).
초점은 두 가지이다. 이스라엘 자손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것과,세금처럼 강제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봉헌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에게서 자유와 생명을 선물 받았기에 감사의 뜻에서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값진 예물을 바쳐야 한다. 예물은 모두 15가지인데,일곱 범주로 나뉜다. 즉 귀금속(금 ·은 ·동), 옷감(실과 털), 가죽(숫양과 돌고래), 나무(아카시아), 기름,향료,보석이다(25,3-7). 거룩한 수 일곱으로 표시된 이 예물들은 전체가 망라되었음을 상징하며,하나같이 최고로 값진 것이다. 그분이 백성 ‘가운데’ 머물게끔 이것들로 성소(聖所,거룩한 처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25,8: 15,13).
성막과 거기에서 쓸 온갖 기구는 모두 하느님께서 보여 주는 모형에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25,9).
* 25,10-22 계약 궤
“그들이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게 하여라. 그 길이는 두 암마 반, 너비는 한 암마 반, 높이도 한 암마 반으로 하여라”(25,10).
하느님께서는 성막 자체보다 그 안에 마련될 기물,그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마련될 성물을 만들라고 이르신다. 첫 대상이 “계약 궤"(민수 10,33)이다. 이 궤는 “하느님의 궤"(1사무4,11), “거룩한 궤"(2역대 35,3),“주님의 계약 궤"(예레 3,16). “권능의 궤"(시편 132,8)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 속에 하느님께서 쓰신 ‘계약의 돌판’ (신명 10,5; 1열왕 8,9) 또는 ‘증언판’(25,16.21)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계약 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되 그 안팎에 순금을 입히고 둘레에는 금테를 둘러 존귀함을 표현했다. 궤의 네 귀퉁이 밑에는 금 고리 네 개를 달아 아카시아 나무에 금을 입힌 채를 끼어 나를 수 있게 하였다. 순금은 가장 귀한 금속으로 순수성과 최고의 품질을 나타내므로,그것을 입힌 계약 궤가 가장 귀한 성물임을 드러낸다. 계약 궤의 크기는 길이 2.5x너비 1.5x높이 1.5 암마의 직사각형이다. 암마(큐빗의 히브리어)는 고대 근동의 길이 단위로 보통 사람의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객관적인
측정 기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값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 1암마는 대략 44-51cm로 추정한다.
계약 궤의 덮개는 같은 크기의 순금 속죄판이다. 속죄판이란 이 말이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어떤 물건이나 죄를) 덮다’, 또는 ‘지우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나온다. 이것은 계약의 궤의 덮개이다. 이 궤가 지상에 놓은 하느님의 발판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속죄판은 후에 전례 중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된다. 속죄일에 희생 제물들의 피가 뿌려지는 이곳은 또한 죄를 용서받는 장소로도 여겨졌다(레위 16,12-15 참조).
이 덮개 위에는 커룹이라는 특이한 형상 둘이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커룹 사이의 옥좌에 앉아 계시고 계약 궤는 발판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커룹들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현존을 지키는 문지기 구실을 한다. 날개 달린 반인반수(伴人半獸) 모양의 커룹(케루빔은 복수형)은 솔로몬 성전에도 있었고(1열왕 6,23-35),에제키엘의 환시에도 등장한다(에제 41,18-20,25). 어떤 형상화도 극력 거부한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볼 때 매우 이채로운 커룹은,하느님의 옥좌를 나르는 존재로 이해된다. 커룹의 날개는 하느님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상징한다. 하느님께서는 “커룹 위에 올라 날아가시고 바람 날개 타고 떠가셨네”(시편 18,11). 그럼으로써 그분은 성막안에 좌정하시지만 여전히 움직이선다. 궤와 커룹 상으로 당신의 현존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시지만,동시에 텅 빈공간과 움직임으로 어디서나 계신다고 일러 주신다.
커룹의 형상은 성경에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성막과 성전의 커룹은 얼굴 하나에 날개 둘(25,20),에제키엘의 환시에 나타난 커룹은 얼굴 넷(둘) 날개 넷(에제1,6.8.10.23; 10,21)이다. 결국 커룹은 인지되지 않는 천상적 존재로서,하느님의 옥좌를 나르고 그분의 현존을 표현하며 계약의 돌판을 지킨다.
계약궤는 하느님의 함께 계심,보호,사죄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표시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동할 때에는 항상 계약 궤를 동반하였는데,옮길 때에는 계약 궤의 채를 들어 옮기지 않고 채를 고리에 꿰어 놓은 그대로(25,15) 옮겼다. 거룩한 것을 만지면 죽기 때문이었다(민수 4,15; 2사무 6,7). 나아가 다윗 임금은 이 궤를 새로 정복한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써,하느님께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공인하셨다는 정치적 상징으로 썼다.
계약 궤는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된 뒤 모습을 영영 드러내지 않은 채 신비 속에 빠졌다. 계약 궤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바빌로니아가 유다를 멸망하고 약탈한 보물 목록에는 이 궤가 빠져 있다(2열왕 25,13-17). 그래서 이집트 임금 시삭이 예루살렘을 약탈할 때 이 궤를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하거나(1열왕 14,25-26),므나셰 임금이 성전에 아세라 목상을 세우면서 계약 궤를 없앴다(2열왕 21,7)고 추측한다. 후대의 유다 전승은 유다가 멸망할 때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지시를 받아 느보 산 동굴 속에 안치한 후 그 입구를 막았다고 전한다(2마카 2,4-6). 탈무드는 요시야 임금이 바빌로니아 침공을 예상하고 계약 궤와 성전 기물을 숨겼다고 전한다. 아무튼 유배 후에 재건된 두 번째 성전에는 계약 궤가 없었다. 그래서 성궤의 전설’ 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성당에서 계약 궤에 해당하는 것이 감실(라틴어 tabernaculum은 천막, 성막,감심 을 모두 가리킨다)이다. 감실은 그리스도의 성체를 모신 성합을 넣은 일종의 함이다. 초대 교회는 성체를 집 안에 모셨으나 8세기부터 성당 제단에 모셨는데,성체가 그리스도의 현존을 의미하므로,감실은 이스라엘의 계약 궤와 마찬가지로 성당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그래서 감실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거나 도금하며,적어도 안은 은으로 둘러 성체의 거룩함과 위엄을 드러냈다.
* 25,23-30 제사상
“너는 아카시아 나무로 상을 만들어라. 그 길이는 두 암마, 너비는 한 암마, 높이는 한 암마 반으로 하여라”(25,23). 신의 거처에는 신이 먹고 마실 음식과 음료가 준비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성소에는 제사상을 마련한다. 성막에도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제사상이 놓
여지는데,계약 궤처럼 직사각형 모양이다. 거룩한 곳에 두는 상에 순금판을 대고,대접 등도 모두 금으로 제작된다. 그리하여 일상용품과 구분된 성물임을 상징하였다. 또 이동할 수 있게 계약 궤처럼 네 다리에 금 고리를 달아 아카시아 나무 채를 끼우게 하였다. 제사상의 독특한 점은 손바닥 너비의 턱을 만들고 그 턱 둘레에 금테를 두른 것이다.
사제들은 안식일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신선한 제사 빵 12개를 북쪽을 향해 두 줄로,한 줄에 여섯 개씩 제사상에 쌓아 놓았다(레위 24,5-9). 놉으로 도망간 다윗의 일행이 먹은 거룩한 빵이 바로 이 제사 빵이었다(1사무 21,1-7). 본래 이 빵은 봉헌된 후 사제들만 성소에서 먹어야 했다(마태 12,1-8). 그럼으로써 사제들과 하느님의 친교와 일치를 나타냈다. 빵을 굽고 차리는 일은 레위 지파가 맡았다(1역대 9,31-32). 제사상에 놓인 대접은 빵을 봉헌하는 데 쓰이고 접시에는 귀한 향료(순수한 유향, 레위 24,7)를 놓았던 것 같다. 제주를 담는 종지와 그것을 따라 바치는 술잔도 함께 놓였다(민수 4,7). 제사상에는 가장 기본 양식인 빵과 술만 놓고,고기는 뜰의 제단에서 봉헌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 먹고 마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사 빵을 그분 앞에 놓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켜야 할 영원한 계약”(레위 24,8)을 상기시키며,하느님의 돌보심과 먹이심을 상징할 따름이다. 즉 빵으로 표상되는 농경 사회의 가장 기본 음식을 봉헌함으로써 모든 양식을 하느님께 의존함을 나타냈다. 빵을 주시어 생명을 잇게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 제사 빵이다.
그리스도교의 제사상은 성당의 제대이다. 6세기부터 제대를 돌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겨났다. 이 돌 제대는 골고타를 의미하고,나아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갈증을 풀어 준 ‘호렙의 바위’ 이자 그리스도교의 ‘머릿돌’ 이신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과 땅,하느님과 인간이 만나 인간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돌 제대뿐 아니라 나무 제대도 널리 쓰인다.
제대에는 흰 천 석 장을 까는데,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덮었던 염포를 상징하는 동시에 제대의 깨끗함을 드러낸다. 제대 윗판에는 다섯 십자가를 새겨 그리스도의 오상(두 손,두 발,옆구리 상처)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를 놓는다. 늘 제물이 차려 있던 이스라엘의 제사상과 달리,제대 위에는 미사 전례를 거행할 때만 성체와 성혈,촛대가 놓인다.
* 25,31-40 등잔대
“너는 또 순금 등잔대를 만들어라. 등잔대의 밑받침과 가지는 마치로 두드려 만들고, 잔과 꽃받침과 꽃잎은 등잔대와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25,31).
제사상 맞은편에는 등잔대가 놓였다. 한 탈렌트나 되는 순금덩이를 두드려 일곱 가지로 된 등잔대를 만들었다(다른 성물들은 금을 입혔는데 이것은 금으로만 만들었다). 장식은 편도(아몬드)나무(예레 1,11-12 참조)의 꽃받침과 꽃잎 모양으로 꾸며졌다(37,19). 편도나무는 초봄에 꽃을 피워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린다. 등잔대는 맞은쪽 제사상을 비추도록 놓이며(민수 8,1-3),대사제가 저녁에 켜서 아침까지 밝히게 하였다(27,21). 그러나 늘 등불이 타오르게 하라는 규정이나,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창문이나 문이 없었던 점을 고려해 볼 때,항상 켜 놓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등잔대의 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신 유일하게 재료의 무게가 나오는데 무척 많은 양이다. 그리고 등잔이 일곱 개로 나오지만,솔로몬 성전의 등잔대는 열 개였고(1열왕 7,49),다른 성막 기사에는 등잔대 수가 명시되지 않는다(27,20-21; 레위 24,2 참조).
고대 근동에서는 등잔대를 나뭇가지 형태로 만들어 생명 나무를 표상하며 식물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신의 권능을 나타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등잔대는 똑같은 나뭇가지 형태로 빛이라는 상징성까지 겸하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거룩한 나무와 거룩한 불이라는 신화적 표상을 통해,이곳이 풍요로움과 빛으로 드러나는 우주적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영원히 현존하시는 우주의 중심임을 상징했다. 순금으로 야훼 하느님의 무한한 영광을 표현했고,거룩하고 완전한 수 일곱으로 완전한 빛을 나타냈다. 후대의 즈카르야 예언자는 등잔대를 야훼 하느님으로,일곱 등잔을 그분의 눈으로 풀이했다(즈카 4,10).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된 뒤 등잔대 역시 전리품으로 사라졌으나,상징성은 계속 살아남았다. 그러면서 생명 나무의 표상은 사라지고 빛을 창조하시고 충만한 빛으로 계시하시는 하느님과 역시 빛으로 표상되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게 되었다(시편 56,14 참조). 특히 그리스도교에서 십자가를 주된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유다인들은 등잔대를 대표 상징으로 내세웠는데, 오늘날까지 그러하다.
천주교에서 등잔대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제대 위에 놓인 촛대이다. 촛대는 캄캄한 지하 묘지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 어둠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데서 기원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실용성보다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빛(요한 9,5)의 현존을 나타내며,그 환함과 뜨거움은 신자들의 기쁨과 그리스도께 향한 열렬한 사랑을 상징하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 26,1-30 성막
성막 내부에 설치될 기물에 이어 성막의 구조물과 거기에 필요한 물품인 덮개,구조물,휘장이 소개된다. 성막의 덮개는 모두 네 개로,안쪽 두 개는 천,바깥쪽 두 개는 가죽으로 만든다. 가장 안쪽을 덮는 성막은 아마실(주로 이집트에서 수입)과 세 가지 색(자주, 청색, 홍색)의 양털실 등 비싸고 귀한 옷감으로 한 천에 커룹 무늬를 수놓은 것이다. 양털 염색은 고대 근동에 서 기원전 삼천년대 말부터 시작되었지만 염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수공도 힘들어 매우 비쌌다. 특히 바닷조개에서 채취한 염료로 염색한 자주색 옷감은 가장 비쌌다. 성막은 각각 너비 4암마,길이 28암마인 피륙 열 폭을 다섯 개씩 옆으로 이어 큰 두 뭉치 피륙을 만든 뒤,그 두쪽을 금 갈고리로 엮어 하나의 천막으로 만들었다.
바깥 천막은 안 천막 재료보다 값싼 염소털(염색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 피륙으로 짜였다. 규격은 너비 4암마에 길이 30암마로 열한 폭을 만들어 안 천막을 덮게 하였다. 다섯 폭과 여섯 폭짜리 두 쪽은 청동 갈고리로 연결하였다.
이 위에 붉게 물들인(혹은 무두질한) 숫양가죽과 돌고래 가죽으로 덮개를 만들어 차례로 씌웠다. 덮개의 크기는 밝혀져 있지 않다.
천막을 받치는 널빤지의 크기는 길이 10암마,너비 1.5암마이며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다. 널빤지 밑에는 촉꽂이 두 개를 만들어 은 밑받침 위에 세우도록 했다. 성막은 동향이므로 북쪽과 남쪽으로 널빤지 스무 장씩 세워 각각 전체 길이가 30(1.5암마x20장) 암마가 되게 하였다. 뒤편인 서쪽에는 널빤지 6장을 세웠는데 귀퉁이에는 두 장을 겹 세워 든든하게 했다(26,5-25). 널빤지 두께를 알 수 없고 서로 연결되는 방식이 모호하여,전체 규모는 추정치로 길이 30암마 이상,너비 10암마 이상의 직사각형이다.
성막 내부에는 다른 기둥이 없어 천막은 사방의 널빤지로 지탱되었다. 바깥 천막 너비가 30암마이고 양 옆 널빤지의 높이가 10암마이므로 완전히 덮으려면 널빤지 내부의 너비 역시 10암마여야 한다. 그래서 서쪽 귀퉁이에 덧댄 널빤지는 0.5암마씩 엇나와 있어 서쪽 전체 길이는 총 10암마(6x1.5+0.5x2)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바깥 천막 뒤쪽으로 남은 길이 10암마도 뒤로 완전히 내려 널빤지를 덮게 하였다. 각 널빤지는 다섯 개의 가로다지로 연결되었다. 널뺀지와 가로다지,가로다지를 꿰는 고리에도 금을 입혀 성소의 거룩함을 드러냈다(26,26-30).
* 26,31-37 휘장과 성소 기물의 위치
성막 내부를 세 공간(지성소,성소,바깥)으로 구획하는 장치가 휘장과 막이다. 이것들은 모두 자주와 자홍과 다홍실,모시실로 만들었는데,지성소 휘장에 커룹 무늬를 정교하게 놓은 점이 특이하다. 헤로데 성전의 휘장은 길이 18m 폭 9m로 손바닥 두께였다고 전한다. 성소 막에는 무늬만 놓는다. 휘장을 걸 네 기둥과 막을 걸 다섯 기둥은 모두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혔으며,휘장을 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었다. 다만 지성소 기둥 밑받침은 은,성소 기둥 밑받침은 청동으로 만들어 차별하였다.
이렇게 거룩한 공간을 나눈 다음 지성소에 있는 계약 궤는 속죄판으로 덮고- 성소의 북쪽에는 제사상을,남쪽에는 등잔대를 놓았다. 여기에 휘장과 막의 전체 규모가 나타나 있지 않고 지성소와 성소의 면적 비례 역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대략 1:2 비율로 여긴다.
* 27,1-8 제단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고 필요한 기물을 소개하였기에,다음 단계는 성막 뜰에 필요한 기물이다. 고대 근동 지역의 대부분은 연중 내내 덥고 건조하여 실내보다 실외의 그늘이 더 시원하였다. 그래서 뜰을 만들 수 없었던 성읍에서는 옥상이 그 기능을 맡았지만,그 밖의 가옥들은 모두 좁은 뜰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성막도 마치 왕궁이 그러하듯 삼면에 걸쳐 뜰을 마련한다. 뜰에 놓이는 유일한 기물은 제단이다. 제단은 사방 5암마에 높이 3암마인 사각형 모양으로 안은 비어 있다. 재
료는 아카시아 나무인데 불에 견딜 수 있도록 그 위에 청동을 입혔다. 실제로 제물을 얹어 놓는 그물 모양의 청동 철망에는 청동 고리 네 개를 달아 제단과 함께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본문에는 제단의 기능이 나오지 않지만,뒤 에서는 야훼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을 태우는 번제 제단으로 소개된다.
제단에서 가장 이채로운 모습은 네 귀퉁이에 달린 뿔이다. 뿔의 위치와 규모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브에르 세바와 아닷에서 출토된 돌 제단에는 귀퉁이 끝이 솟아 있다. “그 네 귀퉁이에는 뿔을 만드는데, 뿔과 제단을 한 덩어리가 되게 하여 청동을 입혀라”(27,2). 여기서 뿔이란 돌기 부분으로 제단의 가장 거룩한 곳이다. 희생 제물들의 피를 여기에 발랐고(레위 4), 어떤 이류로든 도망치게 된 사람은 이를 붙자고 보호받을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1열왕 1,50). 힘의 상징인 뿔은 고대 근동에서 자주 신상들에게 만들어 붙여졌다.
* 27,9-19 성막 뜰
고대 근동에서도 집집마다 울타리로 경계를 표시하고 침입자를 막았다. 특히 성소의 울타리는 세상과 성역을 구분하여 부적절한 이의 접근을 막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막에도 전체를 둘러 울타리를 치는데,재료는 가늘게 짠 아마포로 만든 휘장이다. 전체 규모는 길이 100암마,너비 50암마,높이 5암마이다. 이 높이는 성막 높이의 절반으로 울타리 밖에서 성막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남쪽과 북쪽에는 길이 100암마 되는 휘장을 지탱하기 위해 각각 기둥 스무 개와 밑받침 스무 개를 청동으로 만들고 기둥에 달 갈고리와 고라는 은으로 만들었다. 뜰의 말뚝은 모두 청동으로 만들었다(27,19). 기둥의 재료는 나오지 않지만,다른 기둥처럼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을 것이다.
성막의 뒤편인 서쪽 울타리는 남쪽과 북쪽의 절반인 50암마이다. 성막의 입구인 동쪽은 조금 다른 구조이다. 좌우로 각각 기둥 세 개를 세워 15암마 넓이의 휘장을 치고,그 사이에 기둥 네 개를 세워 자주와 자홍과 다홍 털실과 가늘게 몬 모시실로 화려하게 무늬를 놓아 짤 천으로 만든 20암마짜리 막을 걸어 놓았다.
* 27,20-21 등불
마치 창조의 첫날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것처럼 성막에서도 빛은 무척 소중했다. 그런데 본문에 등불을 켜 둔 곳이 만남의 천막으로 나오는데,이 구절은 성막 전승과 구분된 고대의 ‘만남의 천막’ 전승에 속했던 것 같다. 천막은 어둠 그 자체이다. 빛이 들어올 구멍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하여, 등잔에 쓸 기름, 곧 올리브를 찧어서 짠 순수한 기름을 가져다가, 등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여라.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등불을 만남의 천막 안 증언 궤 앞 휘장 밖에 켜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님 앞에서 그것을 보살펴야 한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칙이다”(28,20-21).
‘만남의 천막’은 성경의 여러 전승에서 인용된다. 이 천막은 먼저 하느님께 신탁을 얻으려고 가는 장소로, 그리고 하느님의 분부를 받으려고 모세가 그분을 “만나던” 장소로 여겨진다. 이 천막은 하느님 현존의 장소인 성전이 생기기 전에 이미 성전의 한 형태인 것이다.
성소 안을 밝힐 등잔의 기름은 최상품의 올리브 기름이다. 올리브 나무는 기원전 사천년대부터 시리아 팔레스티나 일대에서 최초로 재배된 것 같다. 그 열매와 기름은 이 지역 식단에 지방을 공급하는 필수 양식이었다. 또 화장품과 약품으로도 두루 쓰였다. 그래서 올리브 나무는 풍요를 상징했다. 증언 궤 앞 휘장 밖, 등잔대의 등불은 성소의 거룩한 영역을 밝힌다. 그래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야훼 앞에서 꺼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뤄졌다. 등불의 관리 책임자는 아론과 그아들들이다(27,21). 반면에 성막의 등잔대는 아론만 접근할 수 있었다(30,7-8: 레위 24,2-4).
* 28,1-43 대사제의 옷
신의 거처인 신전에는 신의 요구를 듣고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사제이다. 신의 요구가 다양하기에 신전 직무도 잡다했다. 그래서 사제들도 여러 계급으로 나뉘어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신이 특별히 화려한 옷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냈듯이,사제들도 신의 종 답게 특별히 구분된 화려한 사제복을 걸쳐 자기 신분과 직책을 드러냈다. 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임금과 대사제였기에,신의 신탁과 복을 전하는 그들의 복장은 신의 의상에 가깝게 특별히 만들어졌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이 정치와 법의 중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대사제의 직무가 매우 중요하였다.
“너는 이스라엘인들 가운데 너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너에게 가까이 오게 하여, 사제로서 나를 섬기게 하여라. 곧 아론과 그의 아들인 나답, 아비후, 엘아자르, 이타마르이다. 그리고 너의 형 아론이 입을 거룩한 옷을 영광스럽고 장엄하게 만들어라”(28,1-2). 이스라엘에서도 “사제직을 수행할 때 입는 옷"(35,19)은 일상복과 달리 “거룩한 옷,성별할 옷”으로 영광스럽고 장엄하게 만들도록 규정하였다(28,2-3). 특히 아론이 입을 대사제복은 모두 여섯 가지로,에풋,가슴받이,겉옷,수놓은 저고리,쓰개(두건),허리띠이다. 이것들은 모두 지성소의 기물을 만들 때처럼 금,자주와 자홍과 다홍 실,아마실로 만들어 고귀함을 드러냈다. 고대 근동에서는 금으로 장식된 신상에 입히는 옷을 만들 때 금을 사용하였다. 대사제의 옷은 몸을 가리는 의복을 넘어 거룩한 직무를 수행한다는 상징과 가치를 드러낸다.
이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에풋과 가슴받이이다. 이것들은 가장 값비싼 재료로 만들고,순금 사슬을 달며,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달아 늘 ‘기념’ 하였다(28,12.29). 즉 이를 통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대사제와 함께 성막에 들어와 하느님과 통교한다는 상징성을 나타냈고,이를 중재하는 대사제의 탁월한 권위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제복이 에폿이다. 에풋은 본래 기원전 이천년대 우가릿에서 ‘여신 아낫의 옷’을, 고대 아시리아에서는 ‘화려한 옷’ 을 뜻할 만큼 일찍부터 전승되었으나,그 모양새와 기능이 시대와 자료에 따라 다르게 나와 정확하게 규명하기는 어렵다. 에풋은 야훼께 경신례를 드릴 때와 신탁을 받을 때 사제가 입는 특별한 옷으로 묘사된다(28,6-14). 특히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마노 보석 두 개를 에폿 양쪽 멜빵에 달음으로써,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경신례를 행하는 사제의 대표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기억시키는 기능을 했다.
에폿 위에는 가슴받이를 걸쳤다. 가슴받이에도 에폿처럼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새긴 갖가지 보석 열두 개가 네 줄로 박혀 있어,대사제가 그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표시했다. 특히 가슴받이 속에는 우림과 툼밈을 넣었는데,전통적으로 우림과 툼밈은 ‘빛과 완성’ 이라 해석되었지만,그 어원과 모양,성격은 알 수 없다. 다만 일종의 제비뽑기에 쓰이는 작은 막대기처럼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법적 문제에 대해 하느님의 판결을 구하는 거룩한 신탁도구로 쓰였던 것 같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판결 가슴받이에 새긴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가슴에 달아, 주님 앞에서 늘 기념이 되게 하여라. 판결 가슴받이 안에는 우림과 툼밈을 넣어, 아론이 주님 앞으로 들어갈 때, 그것을 가슴에 달게 하여라. 이렇게 아론은 늘 주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판결 도구를 가슴에 지녀야 한다””(28,29-30).
에폿 아래에는 순자색실로 된 겉옷을 입었다. 에풋에 딸린 겉옷(28,31)은 특별한 기능을 하지 않고,다만 임금이나 고위 관리 같은 특별한 신분을 표시하는 표식이 옷단에 달려 있었다. 즉 그 겉옷자리 둘레에 자색과 자홍과 다홍 털실로 만든 석류 모양의 술과 금방울을 번갈아 달았다. 고대에 석류는 신성한 식물로 알려졌다. 이런 장식은 철기 시대(기원전 12-7세기)에 북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일대에서 선상이나 임금 옷에 달던 것이다. 그래서 대사제가 움직 일 때는 방울소리가 났는데,고대의 종교 문화에서 방울은 소리를 내어 악령을 쫓는 구마 도구로 쓰였다. 따라서 대사제가 거룩한 성소로 들어갈 때 그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대사제의 머리에 쓴 아마포 쓰개의 이마쪽에는 “주님께 성별된 이”라 새긴 순금패를 붙였다. 그 뜻은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을(19,6) 대표하는 대사제의 거룩함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래서 대사제가 이 쓰개를 쓰고 있어야,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예물을 봉헌할 때 지을 수 있는 잘못을 용서받고 하느님께서 그 예물을 받아들이신다고 보았다(28,38). 대사제는 쓰개 위에 거룩한 관을 썼다(29,6). 후기 유다교에서는 쓰개가 거만을 속죄하고,순금패는 제물을 바칠 때 제물의 피와 사람의 부정을 제거하는 힘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초대 그리스도교에서는 3세기까지 특별한 사제복 없이,가장 좋은 일상복을 입고 전례를 주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박해 시대를 거치면서 일상과 구별된 미사 전례의 거룩함을 표현하고 그에 대한 존경의 뜻에서 점차 특별한 옷을 입게 되었다. 5세기부터 사제들이 특별한 옷을 입기 시작했으며,6세기부터는 초대 교회를 회상하며 교회의 연속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제를 일반인 과 구별하기 위해,로마 복장을 본뜬 사제복이 널리 사용되었다. 사제복이 보편화되고 규정화된 시기는 대략 9~12세기경으로 여겨진다.
사제의 옷은 크게 두 종류,전례복과 일상복으로 나누고,전례복은 아마포로 만든 안 제의와 비단으로 만든 바깥 제의로 나뀐다. 안 제의는 개두포와 장백의,띠를 말한다. 가장 먼저 입는 개두포(蓋頭布)는 네모난 흰 천으로 어깨 양쪽에 끈으로 걸친다. 개두포 위에 입는 장백의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희고 긴옷으로,사제가 전례 때 가져야 할 몸과 마음의 결백과 은총을 뜻한다. 오늘날은 성체 분배권자도 이 옷을 입을 수 있다.
바깥 제의 중 영대는 목에 걸쳐 무릎까지 늘어지게 매는 띠로,성직자의 직책과 의무,성덕을 상징하며,고해성사 때에는 보라색의 영대를 맨다. 마지막으로 입는 긴 옷이 제의이다.4세기 로마 원로원의 제복에서 연유된 제의는,소매가 없이 앞뒤로 늘어지게 양 옆이 터져 있다. 제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상징하며 ‘작은 집’ 이란 뜻으로 애덕을 표시한다. 제의에는 십자가 등 여러 상징을 표시하며,전례력에 따라 여섯 색깔(흰색,붉은색,녹색,보라색,검은색,장미색)로 구분된다.
사제들의 일상복으로 알려진 수단(soutane)은 본래 중세 의사나 법관들이 입던 길고 헐렁한 외투에서 유래했기에,검은색이다. 그래서 하느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세속에서 죽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밖에 검정 양복을 입고 목에 아마포로 된 희고 뺏뺏한 칼러(로만 칼러 roman collar)를 두르는데,이는 사제임을 알리는 약식 표지이다.
제복은 신분과 정체성의 표지인 동시에 권력일 수 있다. 종교 분야에서도 특정한 복장으로 직무를 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이 갖는 뜻과 형태,색깔 등에 관한 새로운 이해와 쇄신,종교 복장과 의복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
* 29,1-37 사제 임직식 준비
“이것은 사제로서 나를 섬기도록 그들을 성별하기 위하여 네가 그들에게 해야 할 바다. 황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골라 놓아라”(29,1). 대사제와 사제들의 임직식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정화를 위한 목욕(4절), 착복(5-6절,8-9절), 그리고 40,15에 따르면 모든 사제들에게도 확대되는, 대사제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하는 것이다(7절). 여기에 새로운 직무를 시작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물과 예물을 바치는 제사가 뒤따른다(10-35절).
사제의 옷은 그 직무에 권위를 부여하고 사제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부여하는 임직식(任職式) 준비의 일환이다. 지금부터 아론을 사제로 세우는 절차가 7일간 거행된다.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제의 장면이다. 사제 제도가 생기면서 공적인 경신례도 시작된다. 사제들은 야훼께서 일러 주신 경신례에 따라서 백성이 하느님께 다가가도록 지도하며,모든 경신례가 규정에 따라 충실하게 준수되는지 살핀다.
사람은 살면서 어느 단계에 이르러 신분이 바뀔 때 일정한 예식을 거행하여 그 전환이 잘 이루어지도록 간구한다. 흔히 출생과 성년, 혼인과 죽음 등을 맞을 때 치르는 ‘통과의레’가 그러하다. 이러한 관습적 예식 외에 새로운 신분을 부여할 때도 일정한 예식을 행할 때가 많다. 특히 사제직은 세속에서 거룩함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라,한층 특별한 예식이 요구된다.
사제를 임명할 때 치르는 임직식은 둘로 나뀐다. 하나는 그를 거룩한 존재로 구분하는 ‘성별 예식’ 이다(28,41). 이 예식을 통해 그는 거룩함의 영역에 속하는데,29장에서 ‘성별하다’는 일곱 번 쓰인다(29,7.27.33.37.44). 이 예식은 ‘물로 씻기는 정결례’,사제제복을 입히는 착복례’, 성별 기름을 붓는 도유’로 구성된다(29,4-7). 성경에서 이렇게 ‘기름부음받은 이(mashiah 그리스어christos)’는 예언자와 임금(1사무 15,1: 1열왕 19,16), 대사제(레위 4,3; 1역대 29,22) 드물게는 외국 임금(이사 45,1) 등 하느님께서 특별한 직무를 맡기기 위해 뽑으신 인물을 가리키다가,후대에는 마지막 때 오실 구원자를 뜻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그에게 사제 직무를 맡기는 직무 수여식이다. 여기에는 기름부음에 이어 거행되는 각종 제사가 포함된다. 이를 통해 그는 사제 직무를 수행할 합법적 권리와 권한을 갖는다. 이 예식 절차는 아론과 그 아들만이 아니라 영원히 지켜야 할 내용으로 강조된다(29,9). 임직식 절차는 어느 종교에나 있다.
임직식에는 세 마리 동물을 제물로 봉헌한다. 첫 임직식에서 모세는 모든 제사를 주관한다. 그는 여기서 사제 역할을 수행하며 사제의 몫도 차지한다(29,26). 먼저 황소 한 마리에 안수하여 사제의 죄를 옮긴 다음 죽여 속죄 제물로 드린다(29,10-14). 제물의 각 부분은 중요도에 따라 달리 봉헌되는데,피와 굳기름은 제단에 봉헌되지만 고기 등은 진영 밖에서 불에 태운다. 그 다음에 숫양 한 마리를 몽땅 태워 번제물로 봉헌한다(29,15-18; 참조 레위 1,3-9). 번제의 목적은 제물을 태우고 그 향기를 하늘로 올려 하느님의 관심을 끄는 데 있다. “이렇게 그 숫양을 송두리째 제단 위에서 살라 연기로 바쳐라. 이것은 주님을 위한 번제물이고 향기며 주님을 위한 화제물이다”(29,18).
세 번째 제사는 숫양 한 마리를 희생시켜 드리는 임직식 제사이다. 이 제사의 가장 큰 특징은 제물의 피를 사제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그리고 그들의 옷에 뿌려 성별하는 것이다. “너는 다른 숫양을 끌어다 놓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 머리에 손을 얹게 하여라. 그런 다음, 그 숫양을 잡아 그 피를 얼마쯤 받아서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 그들의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라. 그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을 돌면서 거기에 뿌려라”(29,19-20).
그럼으로써 그들은 몸 전체(머리에서 발끝까지)와 옷이 거룩하게 된다고 여겼다. 이때 곡물을 대표한 빵과 빵과자,부꾸미도 하나씩 함께 봉헌하여 친교 제물이 되게 하였다(29,23-25). 제물의 고기와 남은 빵은 모두 사제의 몫으로 돌아간다(29,31-34). 그리하여 별도의 토지와 가축을 가지지 못한 사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모든 제물은 다 수컷이다. 암컷은 젖과 출산의 유용성 때문에 제외된 것 같다.
사제직은 세습된다. 그래서 아론에 이어 사제직에 오르는 자손들은 이레 동안 거룩한 아론의 옷을 입고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29,29-30). 사제들은 날마다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로 황소를 한 마리씩 바치고,제단에 대한 속죄 제물도 바쳐 제단을 성별해야 한다(29,36-37). 사제와 제단을 끊임없이 정화하고 성별하는 것은 모든 죄와 부정을 씻어야 거룩하신 하느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이 산에서 계시된 사제 임직식 절차가 실제로 집행되는 과정은 레위 8-9장에 나온다. 즉 먼저 성막 시설이 다 마련된 다음에(탈출 35-40장),여섯 가지 제사 규정(번제, 곡식제,친교제,속죄제,보상제,임직제)이 소개되고(레위 1-7장) 마지막에 성소에서 제사를 드릴 사제들이 임명되는 순서이다. 레위기의 내용이 이 대목과 대부분 흡사하나 일부가 다른 점으로 보아,이 대목에도 여러 전승이 섞였을 것이다.
본래 사제는 ‘제단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신학과 교육 기능은 부수적인 일이고,사제의 근본 역할은 제사를 주관하고 신탁을 전하는 일이다. 물론 성전은 제사말고도 많은 기능을 관장하였지만 성전의 운명은 사제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 사제들이 사라진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때부터 유다교는 토라의 종교가 되었고,사제를 대신하여 라삐들이 유다교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천주교에서는 특별한 예식을 통해 성품을 수여한다. 이 예식을 ‘서품식’ 이라 부르며 주교품,사제품,부제품의 세 품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중에서 표준이 되는 것은 주교 서품이다.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로 서품되어 지방 교회의 구심점이 되고 일치의 원천이 된다. 주교는 다른 주교한테서만 서품되며,자기 관할 구역 내에서 성품성사의 집전자가 된다. 사제 서품은 주교 서품의 성사성에 참여하는 것으로,사제는 서품을 통해 주교에게 유보된 권한의 일부를 위임 받아 합당하게 성사를 집행할 수 있다. 부제는 주교와 사제를 도와 전례를 진행하고 교회에 봉사하는 직책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초대 교회의 전통에 따라 평신도의 종신 부제직을 부활시켰으나,아직 우리나라는 사제품을 받기 전에 받는 일시적 부제품만 인정하고 있다.
성공회와 정교회는 천주교와 비슷하게 서품식을 행하며,개신교는 각 교파 나름대로 고유한 임직식을 행하고 있다. 이 모든 예식에 공통된 외적 표지는 기도와 안수이다.
*29,38-46 날마다 드리는 제사
사제 임직식 규정에 뒤이어 사제의 기본 직무가 소개된다. 사제는 매일 숫양 두 마리와 곡식 예물(곡식가루 2/10에파+기름 2/4 힌)과 제주(포도주 2/4 힌)를 아침 저녁으로 나누어 바쳐야 한다(29,8-42).
<성경에서 액체의 부피>
시대 | 명칭 | 비교치 | 부피 | 비고 |
구약 | 록(log) | 1/12 힌 | 0.3 리터 |
|
신약 | 크세스테스(xestes) |
| 0.552리터 | ‘주발’ |
<고체의 부피>
시대 | 명칭 | 비교치 | 부피 |
구약 | 록(log) |
| 0.3리터 |
신약 | 코이닉스(choiniks) |
| 1.2리터 |
이 일은 사제가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직무인데, 그 자리가 ‘만남의 천막’ 어귀로 나온다. “네가 제단 위에서 바칠 것은 이러하다. 일 년 된 숫양 두 마리를 거르지 말고 날마다 바쳐야 한다. 어린 숫양 한 마리는 아침에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저녁 어스름에 바쳐라”(29,38-39). 날마다 드리는 두 번의 번제는 본디 유배 이후에 성전에서 바쳐졌다(2열왕 16,15). 이 제사는 로마 제국의 티토가 예루살렘을 포위하던 기원후 70년 8월 초에 중단된다.
특히 야훼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날 만남의 천막과 제단,아론과 그의 아들들까지 직접 성별하겠다고 밝히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머물면서” (25,8 참조)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6,7 참조)고 이르신다(29,45). 그러면 그들은 당신이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주 그들의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29,46). 이렇게 하여 만남의 천막과 성막,계약과 이집트 탈출 사건이 하나로 연결된다. 결국 이 모든 일은 그들의 하느님 야훼께서 하신 것이요,그 분이 보증하시는 것이다(29,46).
* 30,1-10 분향 제단
성막 안 성소에 두는 세 가지 기물 중 하나인 분향 제단은 사방 1암마에 높이 2암마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사면에 뿔을 세웠다.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이 제단에도 다른 성소 기물처럼 순금으로 입히고 금테를 둘렀으며,양쪽옆에 금고리를 만들어 아카시아 나무에 금을 입힌 채를 끼워 들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청동으로 만든 번제단과 구분하여 금 제단 으로도 불렸다(39,38: 40,5). 분향 제단은 성소 기물 중 “가장 거룩한 것 으로 불렸다(30,10). 그것은 지성소와 가장 가까운 성소의 중앙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성소 기물과 달리,일 년에 한 번씩 속죄 제물의 피를 제단의 뿔에 발라 정화시켰다. 분향 제단에서는 아침과 저녁으로 향기로운 향을 피워 성소를 채웠는데, 향을 피우는 때는 등잔대의 불을 밝힐 때와 등을 손질할 때이다.
분향 제단은 고대 근동의 성소마다 두었던 기본 성물이었다. 많은 분향 제단이 출토되었는데,대부분 네 귀퉁이에 뿔이 달린 돌제단이었고 규모는 성막의 분향 제단과 비슷했다. 분향은 달콤한 향내를 피워 신의 코를 즐겁게 하고 신의 진노를 풀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너는 향을 피우는 제단을 만드는데, 그것을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라. 길이는 한 암마, 너비도 한 암마로 하여 네모나게 하고, 높이는 두 암마로 하며, 제단과 그 뿔들이 한 덩어리가 되게 하여라”(30,1-2).
유다교에서는 향이 널리 쓰였으나(루카 1,8-12),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것 같다(묵시 5,8; 8,3-4에서 향은 기도의 상징으로 쓰였다). 4세기부터 그리스도교의 장례 예식에서 향이 사용되었고,8세기 이후에는 제대,성직자,교회를 축성하고 신자들에게 축복할 때 공경과 기도의 표지로 쓰였다.
* 30,11-16 인구 조사와 속전(贖錢)
분향 제단을 위해 속죄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는 구절과 연관하여 속전이 나오는 인구 조사 대목이 소개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를 세어 인구 조사를 실시할 때, 사람마다 자기 목숨 값으로 주님에게 속전을 바쳐야 한다. 그래야 인구 조사 때문에 그들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다”(30,1-2).
구약 시대 근동 지역에서는 징병과 징세,토지의 분양과 재분배 등과 관련하여 ‘인구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다툼이 잦다 보니 잘못 시행된 인구 조사가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전에 특별한 정화 예식을 행했다. 신만이 알아야 할 비밀을 캐내기 때문에 신이 노여워서 재앙을 보냈다고 믿었으므로 신을 달래는 예식을 행하곤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가령 징집 대상자인 스무 살 이상의 남자 수를 조사하는 것은 곧 임금이 쓸 수 있는 병력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자기 힘을 살피는 것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일로 재앙을 당한다고 여겼다(2사무 24장). 이 재앙을 피하려면 사람마다 속전을 내야 한다는 규정이 선포된다(30,12). 속전은 무엇인가 잘못해서 위기에 처한 사람이 죽음을 피하거나 해를 입지 않기 위해 내는 돈, 곧 목숨 값 또는 몸값이었다(21,30).
여기에 규정된 속전은 “주님께 올리는 예물" (30,13)로서,자기 목숨에 대한 “속죄의 기념”(30,16)으로 간주된다. 인구 조사를 받는 남자 한 명의 속전은 균일하게 성소 세켈(11-13g)로 반 세켈인데 은으로 지불하였다(38,25-26).
이스라엘 은화 1세켈은 일꾼의 4일치 품삯이었다. 따라서 금화 1세켈은 60일치 품삯에 해당된다. 이 돈을 로마 화폐로 환산하면 60데나리온이다. 예수님시대에는 노동자 하루 임금이 1데나리온(은화)이었기 때문이다(마태 20,2).
하지만 은화 1데나리온의 가치는 조금씩 하락한다. 로마 시대 초기에는 4.55g이었던 무게가 네로황제 때 3.41g으로 줄었고 이후 한 번 더 바뀌어 2.3g으로 고착되었다. 동전의 지름도 22mm에서 18mm로 줄었다. 아무튼 이 돈이 로마 시대에 가장 많이 사용된 데나리온 은전이다. 그러면서 로마인들은 데나리온의 무게와 가치를 희랍인들이 사용하는 ‘드라크마’와 동일시했다. 즉 1드라크마는 1데나리온이 된 것이다. 그리고 1탈렌트를 6,000데나리온으로 묶었다.
따라서 로마 화폐로 환산하면 1탈렌트는 노동자 6,000일의 품삯이 된다. 대략 17년의 임금이다.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금값에 대비한 이스라엘 탈렌트보다 훨씬 적다. 예나 지금이나 금값이 노동력을 능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탈렌트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온다. 이를 근거로 마태오 교회가 부유한 유다 공동체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 루카복음에 나오는데 그곳은 ‘미나’다. 당시 한 탈렌트는 60미나였고 1미나는 100드라크마, 또는 100데나리온이었다.
* 30,17-20 물두멍
금으로 만든 분향제단과 은으로 내는 속전에 이어 청동으로 만드는 물두멍이 소개된다. 거룩함의 영역이 달라질수록 재료도 바뀐다. 만남의 천막과 제단(번제단) 사이,곧 뜰에 설치되는 물두멍은 사제가 만남의 천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으로 나아갈 때 손과 발을 씻기 위해 마련된다. 씻는 예식은 제사 예식 자체에 속하지 않고 준비 절차의 하나일 뿐이다. 물두멍과 그 받침의 규격을 밝히지 않는 점도 그것이 덜 중요한 기물임을 나타낸다. 그래선가 봉헌 예물이나 속전으로 이 물두멍을 제작하지 않았다(38,8). 소박한 성막의 물두멍과 달리,솔로몬 성전에 마련된 지름 10암마,둘레 30암마 규모의 ‘바다’ 에는 물 2000 밧(1밧은 22리터)이 들어갔고,지름 4암마 정도의 물두멍 열 개에는 각각 물 40밧을 넣었다(1 열왕 7,23-26.38-39).
천주교에서 사제는 미사 중 성찬 예물을 봉헌한 후 손을 씻는다. 이 행위는 중대한 순간인 성찬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봉헌하는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사제가 손을 씻으면서 꿇는 정결의 기도문은 이러하다. ‘제 잘못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허물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30,22-28 성유와 향료
사제 임직식 때 몸을 씻는 예식 후 도유를 행하듯이,물두멍 기사에 이어 도유에 쓰는 성별 기름에 관해 언급한다. 성유(聖油)는 액체 몰약과 육계향,향초,계피 같이 드물고 값비싼 네 가지 향료를 올리브 기름과 섞어 만든다. 제조 과정은 향료를 7일간 물에 담가 놓았다가 끓인 다음 올리브 기름과 섞는다. 만남의 천막 안 증언 궤 앞에 놓는 향료는 “가장 거룩한 것”(30,36:“너는 그 가운데 일부를 가루로 빻아서, 내가 너를 만나 줄 만남의 천막 안 증언 궤 앞에 놓아라. 이는 너희에게 가장 거룩한 것이다”)으로 세 가지 향료(소합향,나감향,풍자향)를 순수한 유향에 섞고 소금을 쳐서 만든다.
성유는 만남의 천막과 이에 딸린 각종 기물,그리고 사제에게 부어 성별하는 데 쓰인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은 세속과 구분되어 가장 거룩한 것이 되고, “거기에 닿는 것도 모두 거룩하게 된다”(30,29). 22-38절 사이에 ‘거룩하다’ 와 관련 단어가 14번(7x2) 나오는 것도 이를 강조한다. 성경에 “가장 거룩한”으로 옮겨진 말은 원어에서 ‘거룩하고 거룩하다’ 이며, ‘성소’ 와 성별하다’ 도 ‘거룩하다’ 이다. 따라서 이에 함부로 접근하는 자는 죽게 된다(2사무 6,6-7 참조). 성유와 향료는 모두 거룩한 것이므로 거룩하게 다뤄야지,사사로이 몸치장에 쓰거나 똑같은 배합법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성유와 향료를 모독하는 자는 공동체에서 잘려 나가는 벌을 받는다(30,32-33.37-38). 고대 농경 사회에서 이 형벌은 사형을 의미한다.
천주교에서 성유는 ‘성령의 은총’ 을 상징하는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성유에는 크리스마(축성) 성유,병자 성유,예비자 성유 세 가지가 있다. 크리스마 성유는 올리브 기름에 향료를 섞은 것으로 세례성사,견진성사,성품 성사,성당 축성 때 사용된다. 병자 성유와 예비자 성유는 순수한 올리브 기름으로 병자성사와 세례식 때 쓰인다. 원칙상 성유는 성 목요일 주교좌 성당에서 집전되는 성유 축성 미사에서 주교가 축성하여 각 본당에 분배한다.
* 31,1-11 성막 제조 기술자
야훼 하느님께서는 각종 물건을 만들 기술자로 유다 지파 출신 브찰엘(뜻: 하느님의 보호하심 아래)을 지명하시고,그 보조자로 단 지파에 속한 오흘리압〔뜻: (하느님) 아버지는 (나의) 천막이시다, 또는 아버지의 천막〕을 임명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브찰엘에게 “하느님의 영"을 가득 채우시어, 성막과 기물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능과 총명과 온갖 일솜씨를 갖추게 해 주셨다. 브찰엘은 금은 세공의 전문가이며, 오홀리압은 목공의 전문가로 뽑아 세웠다. “그러면 그는 여러 가지를 고안하여 금, 은, 청동으로 만들고, 테에 박을 보석을 다듬고 나무를 다듬는 온갖 일을 할 것이다”(31,4).
* 31,12-17 안식일
25-31장을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시작 어구로 나눠 보면 총 일곱 단락이다. 성막과 부속 기물에 관한 첫째 단락(25,1-30,10),인구 조사와 속전을 다룬 둘째 단락(30,11-16),물두멍을 다룬 셋째 단락(30,17-21),성유를 다룬 넷째 단락(30,22-33),향료를 다룬 다섯째 단락(30,34-38),성막 기술자를 다룬 여섯째 단락(31,1-11)에 이어 마지막 일곱째 단락은 안식일에 관하여 지시한다. 이 일곱 단계 구성은 우주 창조의 일곱 날과 동일하다. 즉 성막과 경신례의 시작은 창세기 창조 기사의 메아리 격이다.
특히 셋째(물두멍/바다와 물),여섯째(기술자/인간창조),일곱째(안식일/하느님의 쉼) 부분이 밀접하게 대응한다. 창조 때처럼 성막 건설도 안식일에서 절정에 이른다.
특히 이 대목에서 안식일은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나 주님이 너희를 성별하는 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운 표징이다"(31,13)라는 특별한 선물이다. 그래서 할례처럼(창세 17,11)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이요 표징(창세 17,13 참조)으로 거듭 강조된다(31,13.16-17). 성막은 파괴될 수 있어도 안식일은 파괴될 수 없다. “대대로, 대대로, 영원한 계약, 영원한 표징” 등 네 번에 걸쳐 영원성을 강조하는 까닭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만약 안식일 준수 의무를 위반하였을 경우, 성유와 향료의 처벌처럼 공동체에서 잘려 추방되는 사형이 언도된다(31,14-15). 성막이라는 거룩한 공간과 안식일이라는 거룩한 시간은 깊이 연관된다. 이 두 제도가 거룩한 백성을 지키고,거룩함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 나아가도록 이끈다.
“엿새 동안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렛날은 안식일, 주님을 위한 거룩한 안식의 날이니, 이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대로 안식일을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 이 안식일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다.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31,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