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마가복음 강해 (51) 먼저 온 엘리야는 누군가. 막9:9-13
서 론 : 변화산에서 일어난 황홀한 사건은 이들 세 제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요 또한 여러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왜 엘리야가 나타났을까? 그리고 그 엘리야는 말라기에 있는 엘리야의 예언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점 등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 중에 엘리야의 사역을 이루는 한 명에 대하여 그가 엘리야이며 인류의 종말에 모세와 엘리야가 직접 하늘에서 내려와 예언을 하다가 순교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경계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1)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자신이 영광의 모습으로 변모되셨던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으시려는 의도에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고난의 메시야에 대한 계시는 이해하지 못하고 영광의 메시야의 출현만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같은 처지에서 산에서 본 예수님의 영광의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에 관한 사건을 소문낸다면 그야말로 이제 당장에 메시야 왕국이 임할 줄로 알고 소동이 날 것이기 때문에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을 들려주시게 된 것입니다.
(2) 제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의논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의 의논은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는 “인자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의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메시야에게는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또 하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메시야가 죽다는 말씀도 이상하거니와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말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인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니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의논하게 된 것입니다.
2. 엘리야는 누군가?
제자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분명 메시야이 신데 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말씀을 하시는가? 이에 대하여 엘리야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1) 제자들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고 물었습니다. 이 같은 질문이 제자들에게서 나오게 된 것은 예수님의 메시야 이심이 분명한데 그러면 엘리야는 누구며, 만약 엘리야가 와서 이스라엘로 회개시켜 메시야를 영접하게 한다면 메시야가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엘리야에 대한 말라기의 예언에는 종말론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말3:5-6). 말라기에 나타난 문장을 보면 마치 엘리야의 등장이 재림의 예수의 시기로 보는 듯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으로 보아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등장의 시기를 인류의 종말로 알고 있었으며 이 종말에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메시야의 등장에 앞서 엘리야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회개시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① 이 예언은 주의 초림에 관한 예언이며 세례 요한의 등장과 주의 초림으로 이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의 이르기 전에”라고 한 말은 마지막 인류의 심판이 있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메시야로 그의 아들을 보내실 것과 엘리야를 보내실 일에 대하여 예언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엘리야를 세례요한과 결부시켰습니다. (마17:13). 엘리야로 먼저 온 세례요한도 기록된 대로 사람들에게 임의로 대우받았으며 예수님 자신도 기록된 대로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셔야 했습니다.
② 우리는 이 엘리야의 등장해서 초림의 메시야의 경우가 아닌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란 말을 주 재림의 시기가 되는 인류의 종말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이 말라기의 예언을 이중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초림의 메시야의 경우에는 엘리야를 세례요한으로 지적했다면 재림에 메시야의 경우에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재림의 경우는 세례요한과 같은 회개의 사명을 가지고 등장하는 또 다른 엘리야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두 증인”들입니다. 두 증인은 종말에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습니다. 이 권세에 대하여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06일을 예언하리라”고 하셨습니다(계11:3).
결 론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 적인 깊은 지식을 전달해 주셨지만 그들에게는 깨달음이 부족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은 모세의 얼굴에 씌운 수건을 벗지 못하고 성경을 상고하기 때문에 고난의 메시야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