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스쿨링 체험학습 - 홍고추를 말려 고춧가루 만들기
홍고추를 앞집 하우스에 너는 중. 앞집 아줌마께서 장소, 비품 내주시고 같이 깔고, 널어주심^^
얼마 전에 집에 고춧가루가 떨어졌습니다. 이건 큰일입니다. 요새는 쌀 떨어진 건 사소한 일입니다. 사면 됩니다. 쌀과 달리 고춧가루는 돈 있다고 쉽게 살 수 있는 품목이 아닙니다. 시중에서 흔히 판다고요? 저도 압니다. 하지만 고춧가루만큼은 정말 (이미지 말고 경험을 통해) 믿을만한 지인 아니면 안사는 게 좋습니다. 임시변통으로 이웃 천사아줌마가 드시는 고춧가루 꿔다 먹고 있습니다.
* 홍고추 100kg을 말리면 고춧가루 25근
주변에서 홍고추를 1차 열 박스(100kg), 2차 다섯 박스(50kg)을 샀습니다. 위 사진은 1차분 고추입니다. 홍고추 100kg을 말리면 고춧가루 25근이 나온다고 합니다. 25근은 15kg이니까 고춧가루는 홍고추 무게의 15%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거네요. 총 33근 정도면 청소년 대식구가 먹는데 내년 고추 나올 때까지 넉넉할까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살림도 통계, 분석, 해석 과정을 생략하면 몇 십년을 반복해서 살아도 정보축적이 없습니다. 쌀 20kg 한 포대로 딱 열흘 먹더라는 것도 최근 기록을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주역은 500년간 중국 농촌생활의 기록을 토대로 통계적으로 길흉을 판단한 책이라고 합니다. 일상생활도 기록하고, 해석하고, 활용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네요.
고추를 며칠 엎었다 뒤집었다 하다가 건조기에 넣었습니다. 태양초가 좋다지만 전 싫습니다. 저에게 태양초는 셈할 수 없는 품과 정성, 손실(곰팡이고추)을 감수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온도로 앞집 건조기에서 말리고 다시 하우스로 내와 며칠 더 말렸습니다. 이름하여 반태양초!^^
행주로 마른고추 닦는 중
* 경쟁 - 나 먼저, 협력 - 함께
홍고추를 말리기 전에 물에 씻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무농약 고추가 아니니 당연히 농약 묻어 있습니다. 우리집 농약 안한 고추밭엔, 여린 풋고추마저 없습니다. 그래서 마른고추는 일일이 행주로 닦아내야 합니다. 너무 빡빡 닦아대니 고추는 찢어지고 진척은 더딥니다. 수시로 행주 빨아옵니다.
"우리가 일년 내내 먹을 김치, 반찬에 들어갈 것이야" 라고 한 효과가 크게 나타난 듯 싶습니다 ^^
"얘들아, 그렇게 심하게 안닦아도 돼, 이러다가 해 넘어가겠다" 라고 독려해야 했습니다. 내가 먹을 거라 정성을 들이는 아이들이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땅의 전부는 아닐테지만 수 많은 어른들이 '함께' 보다는 '나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최선의 교육은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는 거라더군요. 티비 드라마를 보면서 "문 닫고 공부해!" 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더군요.
고추꼭지 따는 중
이어서 마른고추 꼭지따기 과정입니다. 꼭지 딸 때 고추 살이 딸려오지 않도록 잘 따야 합니다. 예년에 잘 못 딴 아이 앞의 꼭지는 갈색이 아니라 빨강 모자이크 갈색이었습니다. 덜 마른 고추는 옆으로 빼놔야 합니다.
"꼭지 다 딴 후 자기 앞에 쌓인 꼭지의 양과 색깔로 잘했는지 볼꺼야" 했습니다.
한 아이가 묻습니다. "잘 한 사람한텐 뭐 줘요?"
"경쟁하란 얘기도 아닌데 상은 무슨. 잘 한 사람은 아! 내가 잘 하는구나! 함께 일하면서 내가 도움이 됐구나! 하는거고 못한 사람은 아! 내가 부족하구나! 내가 덜해서 누군가 더 수고했겠구나! 할 기회를 갖는거지"
* 인상은 모든 지식의 근원이다
꼭지를 다 따고나서 하루 더 말렸습니다. 다음 날 저 혼자 비닐봉지에 담고 깨끗하게 뒷정리를 했습니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 덜 마른 고추도 꽤 많았는데 하루 더 말리니 얼추 다 익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덜 마른 고추도 있습니다.
고추도 마르는 속도가 백양백색입니다. 거둘 시기는 나중에 마르는 고추에 맞춰야 합니다. 그래도 안마르는 고추는 따로 모아 더 말려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왜 빨리 마른 고추, 아니 아이들에게 기준을 맞추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업성취가 더딘 아이들에게 기준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안타깝습니다. 옆길로 샛습니다.
아이들은 먹고사니즘에 대해 몸으로 배웁니다. 먹고살기 위해 윤리도덕에 눈돌려야 하는 먹고사니즘 얘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먹을 것을 만드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뒤따라야 하는지 체험하는 거지요. 체험하지 않은 세계는 없는 겁니다. 참고서를 통해서만 배우거나 고구마캐기 등 이벤트로 헛체험한 아이들의 의식세계엔 노동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신체노동은 하찮은 일로 보기 쉽습니다.
엄마의 노고에 대한 감사도 보지못한 노동에 대해 상상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자녀에게 부모의 노고를 알 수 있게 하려면 함께 노동하는 것이 최고의 선입니다. "너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해" 하는 것은 위험한 말입니다. 흄은 "인상은 모든 지식의 근원이다. 인상은 경험을 통해 얻는다. 인상은 관념을 만들고, 명료한 관념을 통해 명확한 추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고추닦기와 고추꼭지 따기 체험을 통해 여러가지 인상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추 씨는 따로 모아뒀다가 내년에 열무 씨처럼 흩뿌리기를 해서 고추잎과 여린 순을 나물로 먹는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별로 좋은 생각같지는 않은데 한 번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옛날, 메밀 순을 낫으로 베어 데친 다음 된장에 버무려 먹던 기억이 겹칩니다. 어쩌면 된장에 버무린 고추나물을 밥상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 홍고추 100kg 끝냈습니다. 나머지 50kg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까지 끝내면 사실상 끝있니다. 방앗간 가서 고춧가루로 빻아오는 건 피크닉과 진배없습니다. 1년 먹을 고춧가루를 미리 작업하다보니 가을 김장철 큰 일 한가지가 끝나갑니다. 아~싸라비아~^^
첫댓글 내일쯤 아님 다음날 도착하는 택배 안에 들어 있는 참기름은 국산 참기름입니다. 혹시 수입품이 아니야? 하고
개 밥 퍼주듯이 휙휙 날아갈까 봐 미리 알려드립니다. ^&^
경험을 전제하지 않은 관념은 왜곡될 가능성이 크겠군요..풀꽃의 졸업하고도 노동과 경험을 통해 배울꺼리를 찾아보겠습ㄴ디ㅏ
몸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직접 경험해보니 듣고 읽어 배운 것보다 와닿는 것이 배네요. 다음 2차 때는 또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요.
모든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군요. 몸소 실천하며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진짜 몸으로 통해서 경험한 것과 머리로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풀꽃에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열심히 몸을 움직여서 몸으로 배우겠습니다!
먹는다는 건 인간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거지만 식재료 준비부터~음식까지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