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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세관이 고베조선고급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가한
파렴치한 행위에 분노하며 각계 시민단체에 호소한다 _ 사건의 경위와 입장
지난 6월 28일 자정을 기해 간사이 국제공항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조선고급학교 3학년 학생들의 얼굴은 분노와 서러움에 일그러져 있었다.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예정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걱정하던 보호자들은 아이들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전에 수학여행에서 돌아 온 다른 아이들의 표정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조선고급학교 3학년생의 조국으로의 수학여행은 이미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성적우수생이나 장학생 위주로 다녀 오던 것이 우수 학급과 우수 학교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모든 조선고급생이 3학년이 되면 의례히 조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발을 먼저 내릴까 손을 먼저 내릴까 … 눈물이 먼저 내렸다.”
생애 처음 조국 땅을 밟는 아이들은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조국의 언어를 모어가 아닌 모국어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 3세에게 이역 땅에서 받아야만 했던 수모와 차별은, 동시에 ‘조국’이라는 정체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품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조국은 분단의 상처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남쪽은 철저히 냉전의 도구로, 무시로, 기민으로 일관했으며 북쪽은 ‘해외공민’으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으로 ‘민족교육’을 장려했다. 당연히 조선학교에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조국’은 토끼 허리 윗부분일 수 밖에 없었다.
교과서와 선생님, 선배들의 말로만 듣던 조국을 실제로 방문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조국에 가면 치마저고리를 입고 거리를 활보해도, 큰 소리로 우리말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멀리서 달려와 손을 꼭 잡고
“이역 땅 일본에서 사느라 얼마나 힘드냐, 우리는 너희를 항상 응원한다”
는 일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따뜻함을 경험한다는 것. 자신들에게도 조국이라는 것이 손에 잡힐 듯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리라.
말로만 듣던 친척들을 만날 수 있고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의 ‘조선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자매학교 친구들’ , 2주일이라는 방문 기간 내내 24시간 함께 해 주는 안내원 언니오빠, 간호사 누나, 버스 운전사 아저씨들과의 행복한 추억들,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조국에서의 추억은 귀국 후에도 몸과 마음을 떠나지 않아 한 동안 아이들을 향수에 젖게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후배들은 그런 선배들이 정성스럽게 품고 온 조국으로부터의 선물을 받으며 경험하지 못한 대상을 향한 그리움에 빠져든다. 어쩌면 선배에서 후배로 다시 그 후배의 후배로 전해지는 이 그리움이야말로 조선학교, 특히 고급부를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이 긍지를 가지고 일본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6월 28일 자정 무렵의 간사이 공항 입국심사장은 이 모든 것이 무참히 짓밟히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고베조선고급학교 62명의 3학년들은 베이징에서 두 조로 나뉘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제 1진이 입국했을 때 인솔자인 정OO 선생님에 따르면 늘 그랬듯이 교원의 가방만 열고 학생들의 가방은 열지 않고 지나가게 하거나 열더라도 애써 눈감아주는 식으로 세관을 통과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학생들의 가방을 열고 꼬치꼬치 캐묻고 선물 꾸러미를 일일이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1진 학생 중 6명이 부모님에게 선물할 화장품 등을 몰수 당했다. 학생들이 어떤 말 실수를 했는지, 유독 그 세관원만이 고집스러웠던지 알 수 없지만 이전에 이런 사례가 없었기에 선생님은 당황했고 아이들을 위로하며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정작 더 큰 일은 비행기가 연착하여 늦어진 제2진의 학생들에게 일어났다.
1진과는 사뭇 다르게 2진의 학생들에게는 모든 학생의 가방을 열게 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세관에서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보고가 올라갔고 어떤 지시가 내려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이 조국에서 안내원들이나 자매학교의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들, 후배들에게 주려고 구입한 필통, 방석, 노리개, 복주머니 등 기념품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몰수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항의하고 아이들도 항의했다. 이 물품들은 바로 지난 주에 조국방문을 끝내고 입국한 다른 조선학교 학생들도 비슷하게 들고 오는 것인데 왜 우리만 빼앗느냐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우리말이 쓰여져 있는 체육복과 조국의 국기가 새겨진 모든 것들, 또 심지어 일본에서 입기 위해 챙겨간 옷들까지 압수당하기 시작할 때 쯤에 이미 현장은 눈물 바다로 변해 있었다. 세관은 이런 아이들에게 마지막에는 <임의 포기각서>까지 쓰게 하는 잔인함을 멈추지 않았다. 위에서 지시한대로 할 뿐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조국을 방문했을 때 후배들에게 주려고 구입한 ‘쿠션’ 에는 저마다 애정 어린 글귀가 수 놓아져 있었다. “사랑하는 미영에게. 언제나 웃고 힘있는 미영으로 있어주세요.” , “사랑하는 후배 지양에게. 앞으로도 그 순한 모습 ~ , 우리 Flute 파트 최고” , “ 사랑하는 친구 경희에게. 정말 언제나 나를 좋아하는 경희. 사랑이 무겁다 ~~~~~(웃음) 앞으로도 많이 이야기하자. 사랑해” 등 쿠션 하나 하나에는 저마다 후배들,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조국의 장인들이 정성을 들여 수 놓아준 글 귀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쿠션의 포장 한쪽에는 주문할 때 자신의 손으로 쓴 같은 글귀가 적힌 메모지도 있었다. 세관 당국이 이 쿠션을 압수하려고 하자 아이들은 제발 그 메모지 만이라도 달라고 울면서 호소했다. 그 메모지마저 없으면 후배들에 대한 애정의 만분의 1도 전하지 못할까봐 온 몸을 덜덜 떨며 세관원에게 호소했다. 일본 세관원에게는 그 글들이 행여 ‘조선에서 온 지령문’같아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쿠션을 동생들에게 선물할 생각에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아 써 내려간 소중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설고 무서운 땅 일본 공항의 입국장을 나서면서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관이 아이들에게 빼앗은 것은 단순히 ‘제제 품목’이라는 그럴 듯한 용어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서 아무리 이역 땅 일본이지만 그 땅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양심은 있다는 ‘희망’ 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그 땅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앞으로 살아나갈 땅인 것이다.
2002년 납치 문제 발생 이후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제제가 시행되고 인도적인 차원의 교류를 보장 받았던 ‘만경봉호’ 마저 입항 금지하면서는 중국의 베이징까지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다시 평양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 수고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특정 물품만이 수입, 수출 금지 되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모든 물품의 수입과 수출이 금지되었다. 일체의 경제적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배가 오고 갈 때만 해도 조선학생의 조국방문 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친척에게 전해 주라며 꼼꼼히 싸 준 공산품들이 즐비했다. 처음에는 인도적인 차원의 교환은 허용하는 듯하더니 그마저도 이제는 금지시켜 버렸다. 그러나 적어도 생애 처음 조국을 방문한 우리학교 아이들이 용돈을 아끼고 아껴 산 선물들, 조국의 따뜻한 언니, 오빠들이 건낸 물건들에는 손대지 않았다. 때로는 세관의 원칙이 있어 모든 학생들의 가방을 일일이 열기는 하지만 보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하고 간단히 질문하여 선물이라고 하면 통과시켜주던 것이 이전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입국장을 나와 생애 처음 조국을 방문한 아들 딸들의 한껏 성장한 눈을 보며 대견해 마지 않았던 아버지,어머니와 아이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는 귀가길이었다. 이제 이 귀환길은 걱정과 두려움의 길이 될 것이 자명하다.
아베 신조가 두 번에 걸쳐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일조선인들의 환한 표정, 짧은 행복감 마저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좋은 추억이어야 할 아이들의 여행가방을 악몽으로 가득차게 하고 그 맑은 눈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유독 재일조선인에게만 증오로 가득한 사회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는 같은 또래의 모두가 받는 ‘고등학교 수업료 지원’(고교 무상화)도 없고, 같은 입장의 외국인 학교가 지자체로부터 받는 깨알 같은 ‘보조금’ 마저 끊어지고 있다.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문부과학성은 ‘조선학생’에게 주는 ‘보조금’을 동결하여 아이들을 차별하라고 지자체에게 종용하고 이에 지자체는 열심히 응하고 있다. 매스컴은 조선학교를 우호적으로 표현할 듯한 태도로 학교에 들어가 몇 개월을 취재하고는 실제 방송에서는 ‘객관’을 가장하여 뒤통수를 때리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로 ‘북’을 ‘악마화’ 한다. 하교 길에 마주하는 ‘헤이트 스피치 (증오 발언)’ 우익 집단들은 ‘착한 조선사람도 나쁜 조선사람도 다 죽여라’ 며 순진한 일본인들을 선동한다. 이제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지자체가 차별없이 지원해야 할 보조금 마저 ‘조선의 아이들’에게만 지급하지 않는 뻔뻔하고 파렴치한 짓을 당당히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동북 아시아가 냉전으로 몸살을 앓을 때에나 평화와 화해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모두가 평화를 약속하고 있는 이 때에 유독 심해지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납치문제 해결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있는 아베 신조가 평화의 바람에 올라타기 위해 택한 수단이 이것이라면 대단한 착각에 빠졌다고 말하고 싶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도 없이 가장 먼저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아베 신조 스스로가 직접 진두 지휘하고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전면적으로 해제하는 것이다. 화해를 원하는 자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이것은 초등학생도 금방 알 수 있는 화해의 방법이 아닌가. 더 슬픈 것은 아이들을 외교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인질’로 삼고 있는 아베 정권에 부화뇌동하는 일본의 정치인들이다.
일본의 관문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한 이 비인간적인 행태를 접하고 일본의 양심이 움직일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여전히 거대 매스컴은 입을 닫고 인터넷 우익, 거리의 우익들은 이번 일을 오히려 조롱거리로 삼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우리는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가해지는 이러한 폭압에 대해 심히 걱정스럽다. 바로 몇 달 전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고통 받고 있을 때 SNS로 광범위하게 퍼지던 ‘조선 사람들이 약탈을 일삼고 있다’ 는 괴소문이 무엇으로부터 연유하는 지, 95년 전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 이 사태가 말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우연이 아니며 위로부터의 지시에 의해 조직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같은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 심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9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재일조선인들의 주위에는 증오로 가득찬 시선이 존재하고 있음이 놀랍고 그 시선들과 싸우면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조선사람으로 당당히 살아 온 동포 형제들에게 무지몽매로 일관한 우리는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이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2018년 6월 28일을 고베조선고급학교 3학년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날은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일본의 비양심과 몰염치에 한국의 시민사회가 분노하여 일어난 날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의 졸업을 앞둔 조선고급생들이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가 함께 싸워 아이들이 혼자가 아님을 입증하고 싶다.
2018년 7월 2일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 김명준
그림1) 일본세관이 압수한 것과 같은 종류의 북에서 가져온 기념품. 파우치.
그림2) 학생들의 후배들에게 주려고 산 '쿠션'의 주문용지.
첫댓글 꼼꼼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