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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우드 님이 2001년 2월 7일에 쓰셨습니다]
호비트님이 쓰셨다는 판타지의 한 갈래를 읽고 올려 봅니다.
걸리버 여행기. 그이름은 흔히 애들 동화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나도 그런줄았았다.(제가 타자가 느려서 반말쓰겠씀다.그리고 그게 감상쓸때는 자연스럽다는...)하지만 완역본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달고나온 그 것은 정말 하나의 충격이었다. 한 2년 전에 읽어서 그때는 판타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단지 동화가 아니라 냉소적인 풍자소설이라는것만 알수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많은 동화적인 번역보다는 만화로 나온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여행기를 전부다 나타냈고 대사도 그대로다.
소인국(릴리푸트), 거인국(브롱딩냄)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단순한 재미.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도 어렴풋이 권력투쟁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울나라 국회위원님들이 하느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싸우는 소인들.(계란을 깰때는 어느쪽으로 깨야하나. 길다란 쪽인가 넓적한 쪽인가.)
인간의 잔인성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도.
드디어 라퓨타여행기!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에서 느껴지는 것은 정말 경악이었다. 머리를 두드려야만 말을 들을수있는자들, 아카데미에서의 쓸데없는 연구들(햇빛을 식물에 저장한다거나, 똥을 음식으로 되돌린다거나...).
정말 직접 봐야한다. 아카데미에서의 표현은 정말 극단적인 것들이라서 지금에 와서 그런글을 발표한다해도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것들이다.(정치가의 머리를 톱으로 자른다느니......그외에도 엄청난 것들이...)
영혼을 부리는 총독의 얘기까지지 넘어가면 접입가경이라는 말을 이해할수 있다. 그때로서는 불가침의 영역이었을 공간들을 온갖말로 모독하고 있었다.(명예있고 부유한사람들은 근친상간정도는 쉽게 저지르고 딸과 처에게 매음을 시켜서 그자리에 올랐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넘어갈수있다. 하지만 휴이넘여행기는 정말 말로 표현할수가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라퓨타에서는 그래도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비평하고 모독했지만 그곳에서는 자신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세상에 인간을 말만도 못한 존재로 그리며 말이 되고싶어하는 노예적인 행동을 정말 사실감있게 그리고 있었다. 점층적인 수법이었다. 소인국, 대인국에서는 인간의 탐욕같은것과 잔인성을 비난하더니 라퓨타에서는 대놓고 인신공격을 퍼부었고 휴이넘에서는 급기야 인간이라는 존재를 야후라는 저급한 동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결국엔 인간의 사회로 추방되는 걸리버. 그리고 적응하는 걸리버. 이게 무엇이란말인가. 휴이넘의 세계는 완전히 천국이나 유토피아인데 그곳에서 결국 내쫓기는 존재. 이럴수가. 인간에게는 구원이라는 자그마한 희망마저도 남겨놓지 않았다.
결국 쓰레기처럼 살다가 죽는다는 소름끼치는 이야기인것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지금읽어도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그 소설이 18세기에 쓰였다니......
호비트님께서는 걸리버 여행기를 판타지라 말했는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은 정말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자신마저도 혐오하는 충격적인 것입니다. 풍자 소설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걸리버여행기는 풍자소설이라는 장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안의 내용은 상당히 정치적이며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내용입니다. 제가 생각 하는 판타지는 걸리버여행기처럼 끔찍한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꿈이라는 것을 줄수있는 존재. 그런것입니다. 그런데 걸리버여행기는......
읽어보십시오. 문학수첩에서 나온 무삭제 완역판을...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이건 애들이 읽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완전히 격리시켜야 하는 소설인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들의 걸음마다 진실함이 깃들기를.......
(멋진말을 뒤에 붙이는게 왠지 폼나보여서......)
덧붙임:원래 어제 1시에 올리려고 그랬는데 갑자기 페이지를 표시할수없다며 아예 접속이 않되는 바람에 현재시각7시5분에 올립니다. 그노무 팩스때문에 잠다깨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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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그라토)가 썼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동화화한 사람들이 그 강렬한 비판 정신 때문에 동화화했었죠. 비판 정신을 죽이고자... 동화의 대부분이, 어른이 아이에게 말 잘 들으라고 설교하는 내용이고 현실을 밝게 치장하는 내용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
판타지의 주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라고 전 여기고 있슴다.
이문열의 말을 인용해 볼까요?
"기대라든가 희망이란 말들과의 까닭 모를 혼동 때문에 환상을 품는다는 것은 종종 낙관적인 사람의 태도로 오인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환상은 철저하게 비판적인 태도이다. 무엇이든 아름답고 완전한 것,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은 현실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환상에 메달리는 까닭이기에."
출처 - 이문열 산문집 '사색'.
이문열의 이 말에 따라, 걸리버 여행기를 이야기한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걸작일 수 있죠. 저도 그렇게 여기고요.
아, 저도 걸리버 여행기 완역판을 3~4년 전에 읽어 봤었는데, 휴이넘들이 걸리버를 쫓아내는 부분에서 다르게 해석하고 싶네요. 걸리버는 휴이넘들의 오해를 사서 쫓겨나죠. 그건 휴이넘들이 걸리버를 야후로서만 봤지 특별한 야후로서 보지 않았다는 뜻이죠. 그렇지만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걸리버를 시종일관 특별한 야후 - 고결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걸리버는 자신이 릴리푸트, 브롱딩냄, 라퓨타, 휴이넘 나라의 정확한 위치를 안 이야기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휴이넘 나라를 몹시 걱정하죠. 결국 이는 휴이넘들에게도 걸리버는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판타지는 거대합니다.
-님에게 크툴루의 가호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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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우드 님이 쓰셨습니다]
찬성합니다.
그리고 걸리버 여행기가 판타지라는 범주에 집어넣을수있는 작품이라는 것에도 찬성입니다.
하지만 반대합니다.
제 생각에는 걸리버의 내용은 이문열씨가 말한 비판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걸리버의 비판은 현실의 부조리에서 벗어나서 몽환적인 분위기에 기대는 식의 비판이 아니라 그시대의 온갖 부조리에 정면으로 도전한 거죠.
전 그 점을 높이 사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국회위원 욕하는 것처럼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에 그런 내용을 써넣었다는 거죠.
정말 지금 어떤사람이 국회위원 욕하는 걸 자신의 소설에 집어넣을수 있겠습니까? 지금보다 훨씬 폐쇄적이던 18세기에는 그 행동이 정말 목숨을 거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런 스위프트의 정신을 높이사고 존경했기에 판타지적인 내용보다는 풍자적인 내용을 더 중시하고 싶었던겁니다.
그래서 판타지가 아니라고 했던 겁니다.
그대들의 걸음마다 진실함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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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그라토)가 썼습니다]
풍자, 추리, 유머 등은 표현 방식에 따른 범주 구분. 판타지, SF, 무협 등은 소재에 따른 범주 구분. 그렇지 않나요? 즉 둘은 서로 얼마든지 겹칠 수 있는 것. 풍자 판타지...
고전 가운데선 '닐스의 지하 세계 여행'이나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등이 있죠.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무지 무지 재밌다옹~~^o^ 쿄쿄쿄 굉장히 웃기는 소설이죠.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이면서도... 나름대로 품위도 있고요.
몽환적인 분위기는 판타지 분위기의 전부가 아니에요. 카프카의 '변신'이나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나 보르헤스의 매직 리얼리즘들이 몽환적이던가요?
물론 스위프트는 위대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