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국정원이 위장 탈북의 원흉
유명 탈북자는 국정원이 키우는 트로이 목마
권영해 전 안기부장, 제1차장, 대북 공작관이 2024년 6월 및 7월에 2회에 걸쳐 증언했다. “5.18은 북이 전면 남침의 마중물로 수행한 군사작전이었고, 군사작전에 투입된 490명이 광주에서 전사했다. 490명의 명단이 시중에 공개돼 있는데 그 계급은 모두 소위, 중위, 상위, 대위급이었다.” 한마디로 모두가 살인 기계로 훈련된 김신조급 특공대원이었다는 것이다. 특수군을 몇 명을 보냈는데 그중에서 490명이 죽었는가? 남한 당국의 검찰 기록과 안기부 상황일지에는 600명으로 기록돼있고 북한문헌 여러 개에도 600명이 기록돼 있다. 이 600명중에서 490명이 전사했다는 것이다. 물살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머지 110명은 남파부대 총책 김중린과 리을설 상장 등 지휘부를 호위하기 위한 병력이었다.
2. 북한은 전쟁터에 반드시 민간 집단을 공격부대와 함께 보낸다. 낙동강 전투에서도 남녀노소 민간인들을 총알받이, 지뢰받이, 후방교란 목적으로 투입시켰다. 이로 인해 미군이 골탕을 먹었다. 광주에는 사진에 나타난 규모로 보아 민간인으로 구성된 또 다른 600여 명이 질서정연하게 통제된 모습으로 시체장사를 벌였다. 남한 및 국제 사회에 한국은 양민을 학살하는 반인륜적 존재이기 때문에 북한이 남침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심리전 엑스트라로 데려온 것이다. 영화배우, 문필가, 시인, 조각가, 행정 엘리트, 각종 단체장, 로열패밀리, 어린이, 노인 등 남녀노소 집단이 왔다. 사진으로 추정하면 또 다른 600여 명 규모였다.
3. 수많은 시체장사 현장 사진들 중에는 도청 앞에 질서정연하게 집합해 있는 사진이 있다. 두 사람의 장정이 사망자 명단을 들고 있는데, 100여 명의 남녀노소 어린이들이 명단을 쳐다보게 통제해서 찍은 사진이다. 이 100여 명 중 50여 명의 탈북자들이 들어 있다. 본인들은 ‘사진은 애매하다’ 는 일반인식을 약점으로 하여 아니라고 소송을 했지만, 이 얼굴은 내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안면인식이라는 첨단 과학을 이용해 제작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노담이 찾아낸 것이다. 트럼프 얼굴을 사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드물 듯이 노담이 대조시킨 얼굴은 소름돋을 만큼 닮은 동일인이다. 너무나 닮아서 나는 2015년 10월 29일, 국정원에 위장 탈북 여부를 조사해 달라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도둑에게 도둑을 잡아달라 신고한 것이다. 1개월 이내에 회신을 주도록 규정돼 있지만, 국정원은 지금까지 씹고 있다.
4. 골수 주사파였던 하태경이 50명중 12명을 섭외하여 변호사까지 선임해 나를 집단으로 고소케했고, 본인이 직접 검찰청에 나와 사진을 찍으면서 고소장을 제출했다. 장진성은 독자적으로 나를 고소했다.
5. 나는 탈북자 13명이 그동안 남한 사회에서 남긴 말과 글들을 집대성하여 분석했다. 모든 탈북스토리가 다 가짜로 지어낸 엉성한 소설이었고, 더구나 자기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무협지 급이었다.
6. 광주에 왔던 탈북자들은 이만갑(채널A) 잘 살아보세 등 TV프로를 독점하여 전국적으로 유명인이 됐고, 국정원이 마련해준 국제무대에서 유명한 인권운동가로 등극했다. 특히 장진성은 세계 최상위의 문호이자 가장 훌륭한 애국시인으로 자리잡았다. 모두가 국정원 작품이었다.
7. 이들에게는 팬 집단이 형성돼 있고 성금이 쏠렸다. 그리고 상당한 액수의 성금이 그동안 북으로 송금됐다. 탈북자 치고 북에 송금하지 않는 사람 거의 없을 것이다. 절대적인 외화벌이 수단이 특히 유명 탈북자들일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이들이 지어낸 가짜 영웅적 탈출 이야기에 감동했다. 이순실식 눈물 짜내기쇼에 놀아나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갑부가 되게 했다. 이 모두가 국정원의 비호와 적극적 지원의 결과였다.
8. 이들이 바로 국정원이 기르고 있는 트로이 목마 부대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분석한 논리적 추론이었다. 그런데! 이 추론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내 22년간의 학문적 연구에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공증도장을 찍어 주었듯이, 위장 탈북자에 대한 나의 연구에 공증도장을 찍어준 사람이 있다. 바로 나를 고소한 탈북자 정광일이다.
국정원 정체 밝힌 정광일 법정 증먼
정광일은 1963년생, 2004년 4월에 한국에 왔다. 정광일의 얼굴은 전남도청에서 시체장사를 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관에 끈을 매서 도청 지하에서 분수대로 옮기는데 좌우 6명 중 1명인 것으로 촬영돼 있다, 20년 후의 얼굴과 1980년 얼굴을 대조한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두 얼굴이 완전 일치하는 것이다. 그가 2024.7.18. 서울 중앙지법 서관 526호에 나와 증언한 부분을 아래에 소개한다. 법원 녹취록 그대로다.
<이하 법정 녹취록>
피고인(문) : 증인은 심하윤 TV에서 이만갑에 나오는 박세현 식구를 안다고 했지요?
정광일(답): 제가 한국에 보내줬습니다.
문 : 언제 보내주었나요?
답 : 1998년도요.
문 : 몇 식구를 보냈나요?
답 : 아버지, 엄마, 박세현을 보냈습니다.
문 : 언제요?
답 : 1998년 11월에요.
문 : 1998년 11월에 증인은 어디 있었나요?
답 : 청진에 있었지요. 1999년 7월에 잡혔으니까요.
문: 청진 지사장이었을 때였나요?
답 : 예, 맞습니다.
문 : 그때 어떻게 그 사람을 업어다 보냈나요?
답 : 구체적으로 다 이야기하기는 힘들고, 제가 중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세현의 형 박수현이 어떻게 저를 알게 되어서 전화가 와서 자기네 식구를 좀 한국으로 구출해 줄 수 있느냐고 해서, 그러면 비용이 드는데 어떡할 거냐고 하니까, 길주군 대동리까지 가서 온 가족을 데리고 오면 얼마까지 돈이 드느냐고 해서, 길주군 대동리까지 가자면 2만불 정도는 들어야 되고 온 가족을 데라고 오자면 차를 하나 대여해야 된다고 제가 제안을 하니까, 그러면 데려다 달라고 해서 그해 11월에 제가 직접 차를....
문 : 그러면 박수현과 직접...
답 : 중국에서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문 : 박세현과는 옛날부터 아나요?
답 :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 한국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대동리에 가서 쟤내 아버지, 엄마를 업어다가 청진까지 차로 모시고 와서, 1998년 11월에 두만강이 얼어서 제가 박세현 아버지를 업고, 제대로 걷지 못해서, 업고 강을 건너서 심양까지 데리고 와서, 심양에 와서 국정원 직원들이 나와서 넘겨주었고......
문 : 국정원 직원에게 넘겨주었나요?
답 : 예, 옛날 안기부 직원들이 나와서 넘겨주고 나니까, 그때 당시 저보고 가겠느냐고, 자기가 보내주겠다고 하는 것을 저는 안 간다고 넘겨주고 갔습니다.
문 : 안기부 직원이 박세현과 박세현 부모를 데려다 달라고 얘기했다는 것인가요?
답 : 부탁은 박세현이 했고, 제가 심양까지 데리고 가니까 국정원 직원이 나와 있더라구요.
문 : 심양이 중국땅이 아닌가요?
답 : 예
문 :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안기부가 데려갔다는 얘기 아닌가요?
답 : 안기부 직원이 심양까지 와서 저를 만나서.....
박세현과 박수현의 이만갑 방송 내용
박세현 가족은 모두 6명, 부모와 4형제였다. 이들 중 가장 먼저 탈북한 사람은 2남인 박수현, 성남에서 묘향산 한의원을 형제들이 공동운영하고 있다. 박수현은 입에 발전기가 달린 달변가이고 재간꾼인데 거의 모두가 사실이 아닌 구라다. 그 구라 속에는 안기부 홍선생이 자기를 탈북시켰다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2013, 9.17. 월간 중앙과 2015. 2. 13 동두천 신문기사에는 위 정광일 진술과 맞아떨어지는 내용이 들어있다.
“아버지는 궁둥이에 살이 없어 푹신한 깔개를 깔아야 앉을 수 있었다. 1998년 11월 7일, 브로커가 와서 부모님을 업고 얼음 위를 건넜다. 강을 건너니 또다른 브로커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 식구는 곧장 한국에 왔다.”
결 론
탈북자 박세현이 언론에 말했다, “브로커가 함경북도 동쪽 해안인 길주에 사는 노인 부부와 자기를 함경북도 서쪽 끝단인 두만강까지 데려다 강을 건네 주었고, 강을 건너니 또 다른 브로커가 인수하여 남한에 데려다 주었다.
2. 또 다른 탈북자 정광일이 법정에서 말했다. ”박세현이 언급한 북한 측 브로커가 바로 나였고, 3인의 가족을 인수한 중국 측 브로커는 '안기부 직원들'이었다.
3. 정광일이 중국에 무역회사 지점장 자격으로 갔을 때 생면부지의 박수현(박세현의 둘째형)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이 연결해준 전화였다. 박수현이 온 가족을 한국에 보내달라 한 것은 안기부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형식 요건이었다. 정광일에 건네진 2만여 달러가 박수현의 돈임을 가장한 안기부 공작금이었다. 박수현은 그만한 돈을 보낼 처지가 아니었다, 정광일은 중국에서 안기부 직원으로부터 2만여 달러를 받아가지고 북한으로 건너갔다. 무역회사 직원이니까 국경을 떳떳하게 넘나들 수 있었다.
4. 정광일이 길주군에 있는 3가족을 차에 태워 두만강에 이르기까지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군(郡) 경계선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안기부와 북 기관이 야합해 있었기에 무사통과식으로 가능했다. 북에서는 군(郡)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여행증을 발부받아야만 한다.
5. 강을 한 사람도 아닌 세 사람을, 떳떳하게 업어서까지 건넬 수 있었던 것도 북 당국이 협조자 입장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남북 당국 간의 내통이 있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6. 탈북은 목숨을 건 도주행위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노인을 업어서 강을 건너고, 심양에까지 가서 안면 있는 안기부 직원에게 이양했다는 것은 안기부와 북 보위부 간의 야합이 있기 전에는 있을 수 없다.
7. 이만갑 등 수많은 언론을 통해 유명인이 된 탈북자들은 모두가 다 1980년, 광주에 얼굴이 뜬 사람들이다. 이들이 안기부와 북 보위부가 공모공동한 기획 탈북 서열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 중 청산유수의 달변이 아닌 사람 없다. 국정원 내부에 있는 탈북자 관리팀이 간첩이라는 확산이 들 수밖에 없다. 안기부의 이들이 이제까지 트로이 목마 사단을 양성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