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황후 전설이 깃든 오름
“제주에 국보가 있다?”라는 질문에 다들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곧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없다.”
순간 살짝 놀랐지만, 이어진 말은 “보물은 아홉 개나 있다.”는 것이었다. 없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보물이 훨씬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날 우리가 향한 곳은 그 아홉 보물 중 하나, 불탑사 5층 석탑이었다. 자리한 곳은 원당봉. ‘원(元)나라 + 당(堂)’의 이름처럼, 기황후의 사연이 서려 있는 오름이다.
원나라로 끌려간 어린 기씨 집안의 소녀가 황후가 되었고, 아들을 얻기 위해 삼첩칠봉에 절과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였다. ‘이곳이 고려 시대 최고의 ‘아들 낳기 프로젝트 현장’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부모의 절실함과 여인의 기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2. 버선코처럼 위로 든 석탑
탑 앞에 서자,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5층 석탑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자태를 하고 있었다. 각 층의 끝은 마치 한국 전통 버선코처럼 살짝 들려 위로 올라가 있었다.투박한 듯하면서도 절묘한 곡선미가 느껴졌다.
비가 흩뿌리자 돌은 짙은 회색, 차콜 그레이로 변한다고 한다. “돌이 이렇게 멋을 부려도 되는가?”라는 농담이 절로 떠올랐지만, 그 순간 탑은 천 년 세월을 품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다가왔다.
탑돌이를 하며 느껴지는 묵직한 기운, 탑 자체가 곧 부처라는 설명, 그리고 감실에 담긴 상징성. 그 모든 것이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의 현장이었다.
돌의 운명도 우리와 닮아 있었다. 한때는 구멍 숭숭 뚫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현무암. 지금은 귀해져 베트남, 동남아에서까지 수입해온다니!
’역시 인생은 모른다. 돌도 이렇게 보물이 되는데, 우리도 언젠가…’
3. 종파 삼국지와 진짜 보물
원당봉의 또 다른 흥미는 석탑만이 아니었다. 이 작은 오름 안에 무려 세 종파의 절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둘러본 불탑사는 조계종,
바로 옆에 들어선 새 원당사는 태고종,
그리고 중턱에 들어선 절은 천태종.
한 오름에 종파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으니, 마치 절판·리뉴얼·한정판이 동시에 출시된 듯한 기묘한 풍경이었다.
탑을 한 바퀴 돌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누군가는 건강을, 누군가는 평안을, 또 누군가는 로또를 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마지막은 아마 내 마음속 소원이었으리라.)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 나누며 웃던 그 순간, 깨달았다. 오늘 우리가 찾은 보물은 탑과 전설뿐만이 아니었다.
천 년 세월을 버티고 선 석탑이 보물이라면, 지금 곁에 앉아 함께 웃던 사람들은 살아 있는 또 다른 보물이었다.
석탑은 5층이었지만, 우리의 웃음은 무한층이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원당봉은 한국 불교의 종파 삼국지!!
상미님의 날카로운 풍자가 마음에 꽂힙니다.
그만큼 명당 자리...
기 황후가 절과 불탑을 세우고 후사를 얻었을 만큼.
저도 가끔 원당봉에 올라 기를 받으렵니다.
늘 신선함을 안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 황후 처럼 후사를 얻고 싶으신건 아니시죠?ㅎㅎ
후사 말고 기 받으시는걸로요~
덕분에 오늘 일본 여행에 관하여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정갈한 후기 잘 읽고 갑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보물이라는 상미쌤 의견에 동감합니다!! 그러고보면, 날마다 보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셈이네요:)
수요일마다 곁에 계시는 보물 허윤선샘 감사합니다😍
상미님의 후기엔 늘
상큼 발랄 유쾌함이 있어 좋습니다.
우리 모두는 별 처럼 반짝이는
보석 ㅎㅎㅎㅎ
맞습니다~^^
글처럼 상큼 발랄 유쾌하게
하루 보내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