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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Ⅰ. 순례의 환상: 가장 달콤한 독약, '쉬운 길'
절망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좁은 문을 향해 홀로 걷던 크리스천에게, 아주 세련되고 점잖은 신사 한 명이 다가옵니다. 그의 이름은 육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마을에서 온 **'세속 현자(Mr. Worldly Wiseman)'**였습니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땀 흘리며 걷는 크리스천을 안쓰럽게 여기며 묻습니다.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이토록 험난하고 위험한 길을 가라고 일러주었소?" 크리스천이 전도자의 가르침이라고 답하자, 세속 현자는 혀를 차며 조롱합니다. "그자의 말은 미친 짓이오! 당신의 그 짐을 벗어버릴 훨씬 더 쉽고 안전한 길이 있소. 저기 보이는 '도덕 마을(Morality)'로 가서 **'율법(Mr. Legality)'**이라는 훌륭한 신사를 만나시오. 혹시 그가 없다면 그의 아들 **'예의(Civility)'**가 당신의 짐을 가볍게 벗겨줄 것이오. 그곳에는 평안과 존경이 있소."
무거운 짐과 절망의 늪에 지쳐있던 크리스천은 결국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전도자가 일러준 '좁은 문'을 향한 직선 길을 이탈하여 도덕 마을을 향해 곁길로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율법의 집에 도착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나타났습니다. 그 산은 당장이라도 크리스천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듯 가파르게 매달려 있었고, 산봉우리에서는 번쩍이는 불길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크리스천은 공포에 질려 얼어붙었고, 자신의 짐이 이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졌음을 느끼며 곁길로 빠진 것을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그때, 전도자가 불꽃 같은 눈빛으로 나타나 그를 엄히 꾸짖고 다시 생명의 길로 돌려세웁니다.
Ⅱ. 진리의 우물: 원어로 캐내는 말씀의 보화
이 땅의 수많은 교인들이 가장 많이 넘어지는 치명적인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은 복음 없이도 인간 스스로 선해질 수 있다고 속입니다.
1. 세속 현자의 속임수: 율법의 행위 (갈라디아서 2:16)
세속 현자가 권한 도덕과 예의는 성경이 경고하는 전형적인 '율법의 행위'입니다. 헬라어로 **에르곤 노무(ἔργον νόμου)**입니다. '노모스(율법)'를 인간의 '에르곤(노력, 행위, 업적)'으로 지켜내어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교만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죄를 짓게도 만들지만, 반대로 우리 스스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착한 사람'이 되게 하여 십자가의 은혜를 짓밟게도 만듭니다. 구원은 윤리적 수양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빠진 도덕은 가장 교묘하게 포장된 지옥행 티켓입니다.
2. 불타는 시내산의 공포: 저주 (갈라디아서 3:10)
크리스천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릴 듯 불타오르던 산은 바로 율법이 수여된 '시내산'을 상징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은 무릇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저주를 뜻하는 헬라어 **카타라(κατάρα)**는 '하나님의 완전하시고 맹렬한 진노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도덕(예의, 윤리, 종교적 열심)으로 죄의 짐을 해결하려 할 때,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의 기준인 율법(시내산)은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짓눌러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3. 전도자의 엄한 꾸짖음: 회개와 돌이킴 (요한계시록 2:5)
길을 잃은 크리스천을 찾아온 전도자는 위로가 아니라 추상같은 책망을 쏟아붓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모략을 버리고 평탄한 길에서 이탈하였느냐!" 참된 목회자는 성도들이 십자가를 떠나 종교적인 '착한 교인'으로 만족하려 할 때,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을 경고하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돌이켜 세워야 합니다.
Ⅲ. 나의 십자가 지기: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공동체
사랑하는 아름다운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도덕 마을'로 가고 싶은 끔찍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좁은 문보다, 교회 안에서 봉사 많이 하고, 헌금 잘 내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다',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인정받으며 내 죄의 짐을 슬쩍 덮어버리려는 세속 현자의 유혹에 얼마나 자주 넘어갑니까?
그러나 선포합니다! 기독교는 훈련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율법의 불타는 산 아래서 영원히 저주받아 마땅한 '완전한 죄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기적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제가 여러분에게 목이 터져라 외쳤던 단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스스로의 의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윤리와 도덕이라는 가짜 평안에 속지 마십시오! 내 행위의 의로움은 이사야의 고백처럼 누더기에 불과하며, 율법의 산은 반드시 여러분을 정죄하고 짓누를 것입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부터 백발의 장로님들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교회 전 세대는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십자가의 좁은 문만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알량한 지혜와 '쉬운 길'을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Ⅳ. 본향을 향한 결단: 합심 기도
이 시간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찢으며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십자가의 참된 복음을 외면하고, 종교적인 열심과 도덕적인 성취로 내 죄의 짐을 가려보려 했던 '세속 현자'의 교만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율법의 산 아래서 박살 나야 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죄인이 바로 나임을 이 시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 아름다운교회가 스스로의 의를 자랑하는 율법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조롱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오직 전도자가 가리킨 피 묻은 십자가, 그 좁은 문만을 향해 똑바로 전진하는 생명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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