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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곽노아 목사
세상의 흉흉한 소식이 우리들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근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또 다시 동족 간에 전쟁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그 질문에 예수님은 약10가지 징조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 10가지 징조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육적 재난의 징조와 영적 재난 징조로 볼 수 있습니다.
육적인 징조로 지구 곳곳에 전쟁과 기근과 지진의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끝 부분에서도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64장부터 66장 끝 장까지 “강림” 이라는 말씀이 세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3장에서는 세상 끝 날에 있을 심판 앞에 이사야 선지자의 간절한 기도가 64장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창세 이래로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 고 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이 우리 생애에 올지 안올지 모르지만 믿는 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고 내 가족과 내 형제, 내 이웃을 위해 이사야 선지자처럼 애끓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를 위해서 나를 구원하여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도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심판주 예수님
(사63:1-6)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3)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이 땅에서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악의 세력을 진멸하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이 존재하는 한 천년 왕국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사탄을 무저갱에 천년 동안 감금한다고 하였습니다.(계20:3)
오늘 본문에서 “에돔에서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라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에돔은 원래 에서의 후손들로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족속이었습니다. 보스라는 에돔의 수도를 의미하는데 그 에돔을 심판하시고 피의 옷을 입고 오시는 분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에돔 족속이 마지막 때에 심판받을 악의 족속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 악의 세력을 마지막 때에 심판하실 분의 옷이 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 화려한 의복이 피로 물들어 있고 큰 능력으로 걸어오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가 누구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의로운 자” “구원자” 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로운 자이시며 세상을 구원하시고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사야 선지자는 에돔에서 홍의를 입고 오신 분이 누구이신지 알았지만 여전히 의아스러운 사실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2절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이사야 선지자는 왜 그분의 옷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화려한 의복이 무엇 때문에 포도주 틀을 밟는 자의 옷처럼 온통 붉게 물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의문처럼 우리에게도 의문이 있습니다. 왜 마지막 때에 세상을 조용히 끝내버리지 아니하시고 무섭게 끝을 내시는지 의문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세상을 피 바다로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없으십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분명하게 3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심판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세상을 무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창세 이래로 찾아 볼 수 없는 무서운 환난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무서운 환난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실 것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이 환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택한 자도 불택정된 자도 모두 다 이 무서운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를 얼마나 진실 되게 믿었는지 그 날에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은 자는 7년 대환난이 시작할 즈음에 성령의 인을 받아 환난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어 전 3년 반을 환난 속에서 지내게 한 후에 후 3년 반에 예비처로 인도하여 하나님이 직접 양육하실 것입니다.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러나 예수를 엉터리로 믿는 자들과 불신자들은 후3년 반에 무섭도록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그 심판을 행할 자는 오직 예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형식과 외식으로 교회를 다니고 종교적으로 예수를 믿은 자들은 그 날에 자신의 추한 모습이 환난의 바람 앞에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온전한 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될 때 나의 온전한 신앙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예수를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예수를 깊이 알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제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잘 못 믿으면, 예수를 안 믿으면 마지막 때에 이 무서운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노함과 분함으로 인하여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4-6절까지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노하고 분한지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예수의 마음은 “내 원수 갚은 날” 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고 하였는데 원수를 갚기 위해 분을 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육적 미움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였지 영적인 원수 마귀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영적인 원수를 갚아야 만이 구속의 날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원수 마귀는 반드시 멸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5절에 말씀에도 그 날에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분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2천 년 동안 참으셨던 예수님의 분노가 악한 사탄과 사탄의 미혹에 빠진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사탄에게만 분노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에게 임할 것입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후 3년 반에는 더 이상 세상에서 구원받을 자가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분노 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피가 땅에 쏟아지고 강을 이룰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이 날에 대해 더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14:19-20)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밟혀서 흘러나오는 피의 높이는 말굴레까지 닿을 것이고 피의 길이는 1600 스타디온까지 이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스타디온은 로마 자로 606척이므로 1600 스타디온은 969600 척입니다. 약 200마일(340km)에 해당하는 길이인데 340km 팔레스타인의 전 길이로서 이것은 곧 전 세계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전 세계에 즉 만민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분노가 상상이 가십니까? 그 어떤 동정도 사랑도 없는 예수님의 분노가 세상 끝 날에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진실 되게 믿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되게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그 날에 만 천하에 내 믿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형식과 외식으로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은 자들은 그 날에 땅을 치고 후회한다 할지라도 예수의 분노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두 번째. 자비와 구원자 예수님
(사63:7-14)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과 양 무리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들 중에 성신을 두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12) 그 영광의 팔을 모세의 오른손과 함께 하시며 그 이름을 영영케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로 갈라지게 하시고 (13)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말이 광야에 행함과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14) 여호와의 신이 그들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마지막 날에 진실로 예수님의 자비의 손길에 구원의 손길에 붙잡히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자비와 구원에 대해 역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손길을 수없이 뿌리쳤습니다.
8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거짓을 행치 아니하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 되기를 거부했고 거짓을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 없이 용서하시고 자비의 손길로 안아주셨습니다.
(마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오늘날 이 시대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데 거짓과 타협하며 세상 것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에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은혜의 시대에 자비의 손길로 구원하려 주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음도 한계가 있습니다.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은혜의 시대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은혜의 시대가 끝나기 전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세 같은 목자와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시고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11-14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그 날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말씀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할 때 성령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였다고 11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7년 대환난이 시작될 때 하나님은 신실한 종들의 이마에 성령의 인을 치실 것입니다. 계시록 7장에서 그 종들이 14만 4천 명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14만 4천 이라는 숫자를 문자적으로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14만 4천 명이 곧 두 증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두 증인의 종들을 통해 하나님은 택한 자들을 예비처까지 인도하게 하시고 두 증인들은 순교할 것입니다.
(계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두 증인들이 예비처까지 인도할 때 큰 독수리의 도움으로 성도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출애굽 할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출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 독수리는 성령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성령의 능력으로 홍해 바다를 가르고 40년 동안 척박한 광야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듯이 마지막 때에도 두 증인들은 성령의 강력한 도우심으로 능력을 행하며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순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신실한 주의 종을 만나는 것은 복 중에 가장 큰 복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비밀이라는 단어가 4번 기록되어 있는데 이 비밀을 알면 계시록을 보는 눈이 열릴게 될 것입니다.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계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17:7)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이 말씀을 정리하면 별의 비밀과 촛대의 비밀과 바벨론의 비밀과 짐승의 비밀입니다. 별이 주의 종이라면 짐승은 거짓 종입니다. 촛대가 참 교회라면 바벨론은 타락한 음녀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참 교회와 주의 신실한 종을 만나지 못하면 거짓 교회와 거짓 종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듯이 영적 세계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영혼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참 교회와 신실한 종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 중에 그 답이 있습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은 주의 종이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은 종은 절대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은 종은 이 땅에 것에 미련을 두고 땅에 것을 쫓지 않습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은 종은 오직 예수를 위해 살려고 몸부림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반드시 성령의 다스림을 받은 신실한 주의 종들에게 구원받을 자들을 맡기실 것입니다. 신실한 종도 오직 예수께 붙잡힘 받지 아니하면 안되듯이 구원받은 자들도 마지막 때에 오직 예수께 붙잡힘 받아야 구원받은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어떤 환난이 우리 앞에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자비와 구원의 손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번째. 기도하는 자가 되라.
(사63:15-19)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시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의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긍휼이 내게 그쳤나이다 (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컨대 주의 종들 곧 주의 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대적이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19)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가 64장까지 이어지는데 기도 내용을 볼 때 이사야 선지자가 마치 환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기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는 바벨론에게 위협 받지 않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약 100년 후에 B.C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 받은 것을 볼 때 이사야 선지자는 영적으로 먼 훗날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있을 환난의 날을 보고 기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3장의 시작도 예수님의 심판의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도 마지막 날에 대한 기도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세상 끝 날이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사야 같은 마음으로 마지막 날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5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세상이 비참하게 악의 세력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 끝 날에 악의 세상이 되어질 세상은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이 그쳐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소서”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시옵소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능력이 아니면 이 무서운 환난에서 건져줄 자가 없나이다” 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을 그치지 말고 끝까지 붙잡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교회와 주의 종들을 버리지 마시고, 내 자녀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이 얼마나 무서운 날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그 날이 얼마나 무서운 날인지를 깨닫는다면 기도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미리 기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때를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고 기도의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히 기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둘째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6절)
이사야 선지자는 마지막 날 환난 날에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야곱도 환난 속에서 건질 수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설사 그들과의 관계가 끓어질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믿겠다는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육신의 조상, 육신의 아버지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때에 오직 예수 신앙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을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 되심을 믿고 기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다시 한 번 긍휼하심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17절)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강퍅한 자들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기도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기도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도 심판받을 자들의 죄를 자신의 죄인 것처럼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이사야 뿐만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자신의 죄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호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는 이 민족의 죄가, 내 가정의 죄가, 나의 자녀와 내 형제 이웃의 죄가 나의 죄인처럼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에도 “우리” 라는 말이 6번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신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나만 거룩하면 그만이다” 라는 생각으로 기도하지 마시고 저들의 죄가 곧 나의 죄임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하심이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성소가 유린당하는 것을 기도하였습니다.(18절)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소가 이미 유린당하였다는 과거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반드시 하나님의 성소가 유린당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로 과거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성소는 사탄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전들이 유린 당하고 있지만 마지막 때는 더욱 더 비참하게 유린 당 할 것입니다.
마치 B.C 168년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돼지를 죽여 피를 흘리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경건한 유대인 650명을 전차로 갈아서 죽이기는 악한 짓을 한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성전들이 사탄과 거짓 선지자들의 손에 유린당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마지막 날이 믿어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온 세상에 선포할 것입니다.
(살후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이런 날이 우리 시대에 안 온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맘대로 읽지 못하고, 기도와 찬양을 맘대로 하지 못하고, 예배를 맘대로 드리지 못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이사야처럼 기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섯째로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19절)
여기에서도 이사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자처럼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그 날에 반드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는 성령의 다스리심을 반드시 받아야 이 무서운 환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환난이 시작될 즈음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인을 치고 다스릴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7장에서 성령으로 인을 칠 때 14만 4천명과 7장 9절에 나오는 흰 옷 입은 무리를 같은 주의 종들도 해석하는데 전혀 다른 것입니다. 즉 14만 4천명이 주의 종들이라면 “셀 수 없는 흰 옷 입은 무리”는 성도들도 볼 수 있습니다.
계시록 9장 4절을 보면 인을 맞은 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14만 4천명들이 아닌 성도들임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을 14만 4천명 즉 두 증인으로 볼 수 없는가 하면 9장에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은 후3년 반에 속해 있습니다.
두 증인들은 전 3년 반에 다시 오실 예수를 외치다가 후 3년 반이 시작될 즈음에 순교하므로 9장 4절에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을 두 증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14만 4천 명은 순교하는데 “흰 옷 입은 무리” 는 “셀 수 없는 큰 무리” 라고 하였습니다. 2천 년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순교자는 항상 소수였습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또한 7장 14절에 보면 흰 옷 입은 자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인이 떼어지고 7년 대환난이 시작될 때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한 종들과 성도들에게 인을 치시므로 보호하실 것입니다.
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령의 다스리심이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어떻게 임하겠습니까?
초대 교회 때 마가 다락방에 성령을 받은 자들이 어떻게 받았습니까?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행1: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또한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500명이 보았습니다. (고후15:6) 그런데 마가 다락방에 모인 자들은 120명이었습니다. 380명은 약속하신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20명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약10일 동안 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120명은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에 성령의 다스리심과 성령의 인을 받고 싶으십니까? 받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이 땅에 오십니다. 그 날이 언제 일지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마태복음 24장에서 가르쳐주신 징조를 볼 때 너무나도 가까이 예수님이 오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어느 날 갑자가 기름 준비하려고 했던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미련한 다섯 처녀의 모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오늘부터라도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으면 살아간다면 마지막 날에 반드시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며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초림 예수는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 땅에 오셨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심판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계19:11-16)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어느 세력이, 어느 누가 감히 예수님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모든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이 왕이요, 만주의 심판주가 되심을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놀라운 사실이 믿어진다면 세상 속에서 어떤 어려움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참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날에 우리의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예수께서 닦아 주실 것입니다. 아시안 게임이 얼마 전에 끝났지만 선수들이 단 몇 초, 몇 분의 싸움 때문에 4년을 훈련하고 고생합니다. 그것은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몇 년을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우리의 승리의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잠간 있는 고난의 시간을 참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찾아오는 고난을 이기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름 준비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신앙을 간직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역사의 끝 날은 반드시 이 땅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가 이 땅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들도 이사야 선지자처럼 그 날을 위해 기도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오직 예수 === 2010년 12월 5일 주일 설교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