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던 대표적 간선(幹線) 도로 = 근대 이전의 교역로 |
① 초원길 | 중국 한나라 이전의 문명 교류의 주통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며, 유라시아 북방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다. 서쪽의 끝인 카스피해 연안 혹은 발트해 남단으로 부터 흑해의 동북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과 알타이 산맥 이남의 준가리아 분지를 지나 몽골 고비 사막의 북단 오르혼 강 연안으로 이어진다. 이후 동남향으로 바꾸어 중국의 화북지방에 이르러 그 동쪽 끝에 이른다. 그러나 이 길을 연장하여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찍이 문명 교류의 처음을 연 비너스상이 1만 년 전에 이 초원로를 따라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동서로 널리 전파된 것으로 짐작된다. 기원전 4천~3 천 년 경에는 채도 문화가 이 길을 거쳐 서아시아에서 중국 및 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이 길을 '채도의 길'이라고도 부른다. 서아시아에 기원을 둔 청동기나 로마의 유리도 이 길을 따라 전파되었다. 일본 사학계의 기마민족설에서 말하는 고분문화기(3세기~5세기)의 기마문화도 초원로를 통하여 전달되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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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비단길 | 오아시스길 오아시스길이란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사막)과 반사막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동서로 뻗은 길을 일컫는다. 사막을 비롯한 건조 지대의 군데군데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수목이 자라고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는 사막인들의 생활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교역의 중심지로서 거기에서 문물이 집산되고 교통이 발달되어 왔다. 실크로드 중에서 가장 심장부에 위치한 오아시스길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역사시대 전에는 초원로가 많이 이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오아시스길이 동서교류의 주요 통로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아시아 지대에는 이미 상당히 발단된 교통로가 만들어졌으나, 파미르 고원이 장애가 되어 완성되고 있지 못하다가 기원전 138~126년 후한의 장건(張騫,~BC 114)이 파미르 고원의 지나 대월지에 이르는 길을 개척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길이 만들어졌다. 한서 서역전에는 남,북 두 길의 노정을 밝히고 그 길위에 있는 주요 국가들의 중심지와 장안이나 서역도호부, 그리고 인근 국가들 간의 방위와 거리를 기록하고 있다. |
③ 바닷길 | 기원후 후한은 서아시아와의 교류에 관심을 나타냈고, 전성기에 접어든 로마제국이 남해로를 통한 도서 교역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의 시장에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각지의 명산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1세기 중엽에 로마의 항해사였던 히파루스(Hipalus)가 아라비아인들로부터 인도양 계절풍의 비밀을 알아낸 후, 아테네로부터 홍해를 지나 인도양으로 향하는 직항로를 개척함으로써 로마의 동방 원거리 무역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비로소 중국에서 인도로 반출된 비단이 인도 서해안으로부터 해로로 로마에 운송되기 시작하였다. 3세기 중엽에는 로마의 배가 인도차이나나 광동성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카티가라(Kattigara)까지 항해하는 성선도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