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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의무: 오페일렌 (ὀφειλήν, 의무/빚)
바울은 부부 사이의 성적 관계를 권리가 아닌 **'의무(Opheilēn: 반드시 갚아야 할 빚)'**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이 상대방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십자가적 자기 부인의 실천입니다.
거룩한 절제: 메 아포스테레이테 (μὴ ἀποστερεῖτε, 분방하지/빼앗지 말라)
성적 관계를 중단하는 것은 오직 '기도에 전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것도 '합의하에', '잠시만' 허용됩니다. 무분별한 금욕주의는 영성이 아니라 사탄에게 틈을 주는 교만일 뿐입니다.
은사로서의 삶: 카리스마 (χάρισμα, 은사)
7절의 핵심입니다! 독신(Celibacy)이든 결혼(Marriage)이든, 그것은 인간의 의지 이전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Charisma)'**입니다. 무엇이 더 거룩하냐는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오직 내게 주신 은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입니다.
II. 이혼 문제와 부르심의 평강 (7:8-16)
(고전 7:10, 15)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주의 명령과 사도의 권면: 바울은 주님의 직접적인 전승(마 5:32)을 인용하며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강조합니다.
화평의 원리: 엔 에이레네 (ἐν εἰρήνῃ, 화평 중에서)
불신 배우자와 사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떠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 성도의 거룩함이 가정 전체를 덮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억지로 붙잡아 지옥 같은 싸움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화평(Eirēnē) 가운데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평화는 율법적 강요보다 우선합니다.
III. 소명의 대원칙: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7:17-24)
(고전 7:17, 20, 24)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변화보다 중요한 충성: 클레세이 (κλήσει, 부르심/소명)
이 장의 뼈대입니다! 할례자냐 무할례자냐, 종이냐 자유인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세 번이나 반복하여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En tē klēsei)" 머물라고 명령합니다.
십자가를 만났을 때의 그 사회적 위치가 바로 하나님이 너를 파송하신 선교지라는 뜻입니다! 노예라도 주 안에서는 자유인이요, 자유인이라도 주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환경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진짜 신앙의 야성입니다.
IV. 맹렬한 종말론: 때가 단축하여졌으니 (7:25-31)
(고전 7:26, 29, 31)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단축된 카이로스: 호 카이로스 쉬네스탈메노스 에스틴 (ὁ καιρός συνεσταλμένος ἐστίν, 때가 단축하여졌으니)
원종민 목사님의 심장을 고동치게 할 대목입니다! 여기서 '때(Kairos)'는 구속사적 결정적 시간입니다. '단축되었다(Synestalmenos)'는 말은 돛을 팽팽하게 감아 올린 배처럼, 혹은 짐을 꾸려 떠날 준비를 마친 나그네처럼 **'긴박하게 압축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덧없음: 파라게이 토 스케마 (παράγει τὸ σχῆμα,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왜 우리가 세상 일(결혼, 슬픔, 기쁨, 매매)에 목숨 걸지 말아야 합니까? 이 세상의 **'외형(Schēma: 겉모양, 무대 장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대 뒤로 '지나가고(Paragei: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는데, 곧 사라질 무대 장치에 마음을 다 뺏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종말론적 나그네'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합니다.
V. 흐트러짐 없는 헌신: 주를 기쁘시게 (7:32-40)
(고전 7:32, 35)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나뉘지 않는 마음: 아메림누스 (ἀμερίμνους, 염려 없기를)
바울이 독신을 권장하는 유일한 이유는 성적인 결벽증 때문이 아닙니다. '염려(Merimna: 마음이 찢어지는 것)' 없이 오직 주께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방해 없는 전심: 아페리스파스토스 (ἀπερισπάστως, 흐트러짐 없이)
7장의 결론입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는 결혼이냐 독신이냐가 아닙니다. 어떤 상태에 있든 '흐트러짐 없이(Aperispastōs: 옆으로 끌려가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주님과 영적으로 밀착(Adhesion)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치에 합당하게(Euschēmon)" 즉,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질서 있는 모습으로 주를 섬기는 것, 그것이 전 세대 성도들이 도달해야 할 제자도의 정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