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hoek, la 11an de jan. 2017
케이프타운(CPT, 14:50) – 나미비아 빈트훜(Windhoek WDH, 16:55)
이 비행장에는 비행기에서 직접 건물로 이어지는 다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비행기에서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른 비행기 한 대도 도착하고 100명쯤 되는 사람들이 입국심사를 받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나미비아 비자 받는데 너무 힘들고 돈도 많이 들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뜻밖에 부드럽다.
짐을 찾아가지고 나와 우리는 우선 렌트카 창구에 가서 차 빌리는 일을 하였다.
렌트카 빌리기 (1대당 3963.01 NAD, 약 325,000원)
7,926 NAD+ 1,840 NAD
- 업체명, 차량, 수량 : AVIS – 폭스바겐 T6 Kombi(수동) - 2대
- 빌리는 사람 서류: 국제운전면허 및 국내면허(없어도 빌릴 수 있었음),대한항공 Skypass 회원카드 지참 필수
- 가입된 보험 : CDW(자차 및 차량도난 보험), ALI(대인/대물 보험), 차유리파손 및 차체흠집
한 편은 가까이 있는 통신사에 가서 손전화 두 대에 이곳 현지 심카드를 사서 설치하였다. 값은 하나에 단돈 7나드, 2개 사도 14나드이니 1,300원쯤 밖에 되지 않는다. 바꾸어 끼워달라고 하기도 미안했다. 그래서 바로 전화 한 대에 800메가 바이트씩 테이터를 사서 넣는다고 하며 부탁하였다. 800메가에 세금까지 해서 150나드 쯤 되니 14,000원쯤 된다. 심카드 바꾸고 개통해서 데이터까지 다 충전하여 완벽하게 서비스해 주었다. 두 대의 전화기는 바로 통화가 되었다.
꽤 시간이 걸렸지만 차 빌리는 것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6시 15분 도착해서 1시간 반 만에 모든 것을 마치고 공항을 떠나 7시 25분쯤 숙소에 다다랐다. 40km도 안 되고 아스팔트 길이지만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고, 처음으로 오른쪽 운전대를 써보기 때문에 조심조심 천천히 오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다.
숙소는 롯지답게 널찍하고 분위기도 좋았다. 이곳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오늘 일정을 마친다.
나미비아 Namibia
수도 빈트후크 (한국과 –7시간차)
언어영어 Afrikaans, 독일어, Oshiwambo어, Nama/Damara어
면적 약 82만㎢ 한반도의 3.732배
인구 약 221만 명 세계 141위
GDP 약 112억1,000만 달러 세계 130위
전력전압 220 / 230V 콘센트 3구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대통령 중심제, 양원제
종교 기독교, 토착종교
아프리카 서남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정식 명칭은 나미비아공화국(Republic of Namibia)으로, 대서양 연안의 해안선이 1489㎞에 이른다.
면적은 82만 4292㎦, 인구는 221만 2307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빈트훅(Windhoek)이다. 주민은 오밤바족 50%, 카방고족 9%, 헤레로족 8%, 기타 다마라족 등 11개 종족과 소수의 백인들(7%)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어는 영어, 공용어는 토착어인 아프리칸스(Africans)이며, 독일어, Oshiwambo어, Nama/Damara어도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90%가 기독교이고, 토착종교도 믿는다.
주요 산업은 광업·수산업 등이며, 제조업의 발달은 미약하다. 특히, 다이아몬드·금·은·구리·우라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수출의 주종품을 이루고 있으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의 경제의존 탈피가 최대의 목표이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GDP)은 13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5,408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다.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26석)은 임기가 6년이고, 하원(72명)은 5년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서남아인민기구(SWAPO), 민주턴헬동맹(DTA), 연합민주전선(UDF) 등이 있다.
1920년 국제연맹에 의하여 독일 식민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가, 1966년 UN의 위임 통치 철폐 결의 후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통치가 계속되자 누조마(Nujoma, Sam)를 중심으로 서남아인민기구(SWAPO)를 결성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88년 12월 미국과 소련의 중재 하에 남아프리카공화국·쿠바·앙골라간 3국협약에서 나미비아의 독립일정이 확정되어 1990년 2월 신헌법을 채택하고, 그 해 3월 21일 독립을 선포하였다(윌비스베이 제외).
1990년 2월 서남아인민기구(SWAPO) 의장이었던 누조마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통치하다가 2005년 3월 포함바(Pohamba)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대외정책은 좌경중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1990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90년 3월 21일 나미비아의 독립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그 해 6월 빈트훅에 상주 공관을 개설하였다가 1994년 12월 31일 폐쇄하고 현재는 남아공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나미비아 수출액은 678만 달러로 황산·어류·표면활성제 등이 주종이고, 수입액은 7302만 달러로 아연광·수산가공품 등이 주종을 이룬다.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우리나라는 UN나미비아기금에 23만 달러를 기여한 바 있고, 수교 후 15만 달러 상당의 현대자동차 10대를 기증하였다. 현재 SK가 현지에 진출해 있으며, 10명의 한국 사람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90년 3월 22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는데,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 의장인 누조마는 과거 몇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북한도 1994년 1월 8일 공관을 폐쇄하고, 탄자니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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