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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생활 속 마음경영 1. 원기(元氣)의 필성(弼成) (4) 성공학(成功學) 성공학은 일반적으로 성공확률을 높이는 학문으로 널리 사용되지만 학교의 커리큘럼(Curriculum, 敎科課程)으로 분류되는 영역은 아니다. 성공학의 역사는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개인의 자유 그리고 사유재산에 관한 사회적인 기틀이 세워지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공학은 분야에 따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리고 논자(論者)에 따라 그 핵심을 달리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은 모두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成功)의 사전적 의미로는 목적하는 일이 사사여의하는 것으로, 뜻한대로 또는 어떤 상태로 이루는 것을 뜻하는 성사(成事)가 곧 성공인 경우도 있고, 또 성사의 단계를 거쳐 그로 인해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는 것을 성공이라 한다. 성공은 인생에 대한 성공도 있고, 사업에서의 성공도 있고, 경쟁에서의 성공도 있으며, 학문에서의 성공도 있고, 발명이나 발견 또는 개발 등 기술에서의 성공 등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욕구의 종류와 범위가 워낙 다양하고 또 이룸의 기준이나 형태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성공의 개념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욕심이 앞서 거부(巨富)가 되거나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것만을 성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을 성공이라 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의 성공에 대한 정의 또한 저마다 각기 다르지만 그 중 한 사람인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크리스토퍼 몰리(Christopher Darlington Morley)는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성공밖에 없다. 당신의 인생을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성공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성공의 기준(基準)을 정하는 것이다. 목표나 기준이 있어야 성공여부가 가늠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성공했다고 여길까? 그것은 사회통념이나 다른 사람들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그 당사자의 가치관에 달려있다. 즉 그 당사자가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고 귀하게 여기며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느냐가 성공의 기준이 되므로 결국 본인의 생각에 달린 것이다. 세상이 그를 성공했다고 인정해도, 또는 주변 사람들이 그를 성공했다고 부러워해도 본인이 실패했다고 여긴다면 그는 실패한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또는 세상이 그를 실패했다고 여긴다 해도 본인이 그것을 성공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나름으로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공의 가치는 개인적인 목적달성에 있다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이바지하는 데에 더 비중을 두기 때문에 상당한 지식과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누구도 쉽지 않은 어렵고 힘든 일을 이루었을 때 그것을 성공이라 한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사리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것의 쓸모가 한 개인에 국한되거나 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없는 경우 또는 악행이나 범죄에 해당될 경우에는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성공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성공에도 정석(定石)이 있는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물음에 삶 속에서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들은 “그 일에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시쳇말로 덕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에서도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은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장8절)” 라는 구절이 말하듯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자에게 성공의 길이 열림을 강조한다. 미국의 보험 세일즈맨으로 최연소 기네스북(Guinness Book)에 등재된 폴 마이어(Paul. J. Meyer)는 그의 성공철학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린 것을 생생하게 상상하고 간절히 바라며 깊이 믿고 열의를 다하여 행동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보다 쉽게 성공으로 가는 샛길만을 찾을 뿐, 그 샛길에는 그에 따른 조건이 있는 것이고 또 실패로 유인하는 함정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아예 무감각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성공의 길이 아닌 실패의 길로 잘못 들어서고는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갑자기 고립무원(孤立無援)한 곳에 홀로 떨어진 천애(天涯)의 고아(孤兒)가 된 양 비감(悲感)에 젖어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라고 신세타령하는 것 또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범하는 오류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안 된다고 불평하는 그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가 스스로 파놓은 자기 함정에 빠진 경우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성공할 수 있는 일을 분별하여 미리 준비하고,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제시하는 성공의 원칙, 또는 성공의 조건, 또는 성공의 공식 등에 대하여 어떤 것들이 있는가 알아본다. ○영국의 더 타임스에 게재된, 영국의 저명한 심리치료사이자 베스트셀러 논픽션 작가인 폴 매케나(Paul McKenna)씨가 세계적인 기업가들을 인터뷰해서 찾아냈다는“부(富)의 6단계 원칙”은 천문학적인 부를 성취한 세계적인 부호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부를 거두기 위한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의 성공전략으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富)의 6단계 원칙 1. 열정이 있는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라. 2.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방법을 강구하라. 3.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머릿속에서 경영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상하라. 4. 어떤 것이 가치 있는지 잘 평가한 뒤 위험을 감수하라. 5. 행동은 빠르게 하라. 6. 위기를 예상하고 실패 속에서 교훈을 얻은 뒤 계속 전진하라.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 1932~2012)가 쓴 자기 계발서로「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전 세계에서 38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총 1,500만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한국에서는 1994년 4월에 최초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제시한 7가지 습관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습관 1~3은 자신에 관한 기본적인 것이며, 4~6은 인간관계이고, 7은 자기관리에 관한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1. 주도적이 되라. 2.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3. 소중한 것부터 먼저하라. 4. 상호이익을 추구하라. 5.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6. 시너지를 활용하라. 7. 심신을 단련하라.
○독일의 이론물리학자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955)은 성공공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성공공식 “If A equals success, then the formula is A=X+Y+Z. X is work, Y is play, Z is keep your mouth shut” -Albert Einstein- 「성공이 A 라고 한다면 공식은 A=X+Y+Z이다. X는 일이고, Y는 놀이, Z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이 공식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업무 능력과 함께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침묵의 미학을 함께 언급하며 불필요한 논란에 대한 경계도 함께 강조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공식(成功公式)엔 저마다의 철학이 담겨있다. 산술적으로 틀린 셈법도 저 나름의 해석을 보면 기발한 교훈이 담겨있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다기(複雜多岐)하고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고도로 발달한 다양성 사회라 할지라도 성공공식은 두가지로 구분이 된다. 하나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실패 없이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은 항등식(恒等式)에, 다른 하나는 좀더 크고 차원 높은 프로젝트에 있어서는 방정식(方程式)에 비유한다. 성공방정식은 프로젝트의 종류나 내용에 따라서 일원일차방정식(一元一次方程式)이 될 수도 있고 다원고차방정식(多元高次方程式)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프로젝트의 주관자(主管者)에게는 자신이 풀어야 할 미지항(未知項)이 있고 또 참여자들이 분담하여 실행하여야할 성사조건인 여러 종류의 기지항(旣知項)이 있어 이들의 조화(調和)가 참과 거짓, 즉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성공방정식에서 누구나 실행가능한 성사조건인 기지항(旣知項)들의 완벽한 실행과 더불어 미지항(未知項)에 대하여는 주관자로서 자기만의 해(解)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주관자로써 미지항에 대한 자기만의 해(解)가 없다면 그 성공방정식은 불능(不能)이 되므로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이란 선인(先人)들이 조화원(造化元)의 원능(元能)을 밝혀내어 분야별로 이론화한 학리(學理)와 그 학리를 실제에 응용하는 방법인 기술(技術)을 말하는 것으로 교과서. 전문서적. 방법서. 편람(manual) 등 여러 종류의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것들은 각종 매체를 통하여 외부로 전파되고 누구나 그것을 통하여 배워 얻을 수 있는 지식이 형식지(形式知, Explicit knowledge)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 형식지를 배워 익힌 학식을 삶에 활용하여 모든 필요를 충족하면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들은‘무슨 일이든 교과서대로 하면 망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교과서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냉엄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가장 기초적이며 옛 것에 해당하는 원론(原論)에 안주(安住)한다면 퇴출(退出)될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경계의 말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세상일이란 참으로 알다 가도 모를 일이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내가 하면 되지 않고 또 잘 되가는 것 같았는데도 결과는 꺼꾸로 가는 일이 있다. 도대체 무엇이 조화를 부리기에 그런 것인가! 지식에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반적인 지식인 형식지 외에 오랜 경험과 노력에 의해 터득(攄得)하였거나 어떤 계기로 감득(感得)하여 득리(得理) 또는 득력(得力)한, 아직 형식을 갖추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는 자기 혼자만의 특별한 능력인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가 있다. 무슨 일을 하든 남과 똑같은 형식지(形式知)만으로는 남에게 뒤질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는 차별화(差別化)된 자기만의 암묵지(暗默知)를 가지고 있어야 경쟁에서 이겨 성공할 수 있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뜻에는 길이 있다고 해도 정심이 아닌 욕심이 가는 곳에 뜻을 두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하다 보면 성사(成事)는 하였지만 성공(成功)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한 예로, 어떤 약빠른 사람이 과수농사가 꽤나 괜찮다는 소문을 듣고는 돈을 좀 벌어볼 양으로 과수원을 조성하고 과실수를 심어 잘 키워놓고는 큰 소득을 기대하며 가슴 부풀었다. 여기까지는 성사했지만 그러나 열매 맺기가 늦어 양에 차지 않으므로 모두 뽑아 버리고 열매를 빨리 맺는다는 조생종(早生種)을 심었더니 열매가 빨리 열리기는 하였으나 소출이 적어 경제성이 없으므로 또 뽑아 버리고 이번에는 개척자 정신으로 아주 색다른 신품종의 나무를 심었더니 기후와 토질이 맞지 않아서인지 아예 열매가 맺지 않았다. 수종(樹種) 선택에 실패하고 나서 이번에는 주식투자에서 위험을 분산하고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포트폴리오(Portfolio)기법을 응용하여 단일 품종이 아닌 이것 저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골고루 심었더니 종류가 많아서 보기는 좋으나 나무의 성질이 제 각각이어서 관리하기도 어렵고 수확도 소량 다품종이어서 경제성이 없었다. 어찌 할거나! 이것을 절반의 성공이라 자위할 것인가. 나무란 햇볕 잘 들고 기름진 땅을 찾아 부지런히 이곳 저곳으로 옮겨 심는다고해서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빠른 성장을 위해 매일 고농축 비료를 흠뻑 준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엔 약빠른 요령이 필요한 일도 있지만 끈기가 필요한 일이 대부분이다. 보이지 않는 땅속의 물길을 찾아 우물파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역경을 딛고 물길을 찾아 한 우물을 깊게 그리고 넓게 팔수록 물은 많이 고이게 된다. 그러나 외길인생을 간다고 해서 누구나 다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역량과 정력을 분산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확고한 뜻을 가지고 선택한 길을 따라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지경성(有志竟成). 즉, 뜻을 올바르게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브흘러박사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 200명을 조사하여 공통점을 분석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들의 성공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인생의 목표가 분명했고 그 목표를 향해 매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목표가 분명할 때 불굴의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밝은 지혜가 생기게 된다.
성공(成功)이 노력(努力)과 재능(才能)과 운(運)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는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한다. 어떤 사람은 성공은 80%가 운이고 재능이 10%, 노력이 10%로 보지만, 다른 사람은 성공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성공과 노력은 정비례하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말한다. 어쨌든 성공에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개중(個中)에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성공이라는 최고봉에 오르는 기교(技巧)에만 신경쓸 뿐 기본이 되는 바탕을 튼튼히 하는 데에 소홀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성공(成功)이란 계획한 일을 이루는 성사(成事)를 통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사하지 못한다면 성공은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성공하기 위하여는 성사의 기반을 굳건하게 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성공을 마라톤(Marathon)경기에 비유한다면, 마라톤 경기의 목적은 42.195km의 풀 코스(full course)를 완주(完走)하는 성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목표로 한 순위를 달성하거나 또는 목표로 설정한 기록을 수립하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마라톤에 필요한 전문체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훈련이 부족하여 완주의 성사조차 염려되는 상황이라면 마라톤경기의 성공은 보나마나 물 건너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업경영뿐만 아니라 인생경영에 있어서도 경영의 성공여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기술적. 사회적 측면에서 표면상의 약점이나 강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성사의 기본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계획된 일의 기초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탁월한 경영원리와 성공전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무용지물(無用之物)에 불과하게 된다. 성사의 기본은 보통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법칙도 아니고 또한 식자(識者)들끼리나 통하는 전문지식도 아닌, 보통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이미 실행하여 왔던 상식적인 평범한 것들이다.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시답잖게 여긴 과오로 중도에 좌절(挫折)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슨 일이든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지 않고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성공을 거두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마음경영의 견지에서 볼 때 우선 성사의 기본으로 기반을 다진 후에 일의 경과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한 성공방정식의 해(解)인 자기 나름의 성공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성공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ㅇ자화론(自化論)의 성공조건 인반적인 프로젝트(Project)는 정해진 계획이나 설계도에 따라 열심히 성심을 다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일이지만 보다 업그레이드(Upgrade)된 원리나 새로운 차원의 지식을 요하는 특수프로젝트는 조화원의 능력인 원능(元能)의 필성(弼成)없이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성공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원능의 필성을 얻는데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1)정심(正心)을 가져야 한다. 정심은 조화원과 감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새로운 차원의 프로젝트를 성공하려면 원능(元能)의 필성없이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조화원과의 감통을 방해하는 마음쓰레기를 청소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사물을 성사하는 데는 주체(主體)와 상대(象對)와 원기(元氣)의 필성(弼成) 등 세가지 요소가 필요하고, 이 세가지 요소가 원만하게 상합(相合)해야만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의 주체인 주인(主人)이 마음을 깨끗하게 세심(洗心)하여 정심(正心)을 가지고 있어야만 원기에 감통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가 성패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물을 성사하는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인 상대는 사물과 사람이 있는데 그 중 사람이 아주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일이 크든 작든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하고 또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므로 대인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새해가 되면 세시풍습(歲時風習)으로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기도 한다. 그 비결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저 에멜무지로 그 해의 신수(身數)를 보는 것인데, 운세(運勢) 중에는 “동쪽에서 귀인을 만나므로 고전하던 일을 쉽게 성사하게 되리라”라는 식의 듣기 좋은 말이 많이 나온다. 그 귀인(貴人)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을 대면하였을 때 받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주는 거 없이 밉고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초면인데도 여러 번 만난 사람같이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고, 왠지 그 사람과 같이 하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사람도 있고,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사람도 있다. 아마도 진정으로 호감이 가는 그런 사람이 토정비결에서 말하는 귀인일 것이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호감과 비호감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취향이나 감정의 문제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영기(靈氣)를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풍의 여신 이름을 빌어 “오라(Aura)”라고 한다. 그러면 그 오라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마음속에 쌓여 있는 욕심과 나쁜 감정의 기억인 예억을 깨끗하게 세심하여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홀가분하고, 너그럽고 긍정적이며,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평온하고 정돈된 인간의 본마음, 즉 조화원이 생화(生化)한 인간의 마음에서 풍기는 인간의 향기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친밀감 이외에 상호간에 호감을 갖는 원인에 대하여 유사성(類似性)이론과 상보성(相補性)이론이 있다. 유사성이론이란 처지나 의견. 주장. 감정 등이 서로 비슷한 사람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호감을 갖는다는 것이고, 상보성이론이란 나에게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유사성이나 상보성도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에 따라 무엇이든 비슷한 점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므로 정심(正心)을 가진 올바른 사람은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며 동행(同行)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반면, 예심(穢心)을 가진 바르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바른 사람과는 기운이 서로 맞지 않아 친할 수가 없고 사기꾼과 같이 해코지할 사람에게 이끌려 결국 실패의 길을 가게 된다.
경영(經營)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영인의 조건으로 건강을 빠뜨리지 않는다. 경영은 체력으로 행하는 육체노동이 아닌데 왜 그토록 건강을 중시할까? 경영인의 조건으로서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한 상태가 아닌, 체력이 강건(强健)한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평안하고 원기(元氣)가 충만한 정심(正心)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계획을 성사하기 위한 작업은 대상사물의 물성이 그 성질에 따라 작용하도록 조건을 충족시켜 주고 그 변화 또는 작용의 결과로 목적을 달성하는 자연물의 응용(應用)이다. 그런데 작업중에 자꾸만 일이 틀어지거나 잦은 사고 또는 고장이 발생하여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연때가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실례로 아무리 명의(名醫)라 해도 환자와 연때가 맞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고, 무당도 손님과 연때가 맞아야 좋은 점괘가 나오는 것이지 연때가 맞지 않으면 점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직장도, 직업도, 투자도, 결혼도, 운동경기도 연때가 맞아야 잘 된다고 말한다. 연때(緣-)라는 말의 의미는 인연이 맺어지는 시기나 기회로 설명한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무엇을 성사(成事)하려는 사람과 그 대상이 되는 사물과의 관계에서 의지(意志)와 물성(物性)이 서로 맞아 결합하는 상합(相合)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이 행하는 작업은 체능(體能)에 의한 육체노동이든 지능(知能)에 의한 두뇌노동이든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이 원기가 충만한 정심에서 성사에 대한 굳은 의지와 함께 정성을 다하여야만 원기의 필성(弼成)에 의해 실행자의 노력(勞力)과 작업대상에 내재한 물성과 상합이 원만하게 이루어져 성사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속에 심예(心穢)가 가득한예심(穢心)이 되면 사기의 헤살에 의해 그 사물과 연때가 맞지 않으므로 일이 틀어지거나 사고 등 장애가 빈발하여 결국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몇 번이고 실패와 재기를 되풀이하면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의욕에 찬 새 출발을 하였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자기자신은 심기일전하였다 하겠지만 그것은 생각일뿐, 마음속에 숨어있는 예억(穢憶)을 소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원기의 필성을 얻지 못하여 생긴 일이다. 인간의 삶이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사람은 누구나 일상생활에 관련된 아주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물며 어떤 중요한 일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선택이라면 훨씬 더 치열한 고심이 따르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바로 그 선택을 바르게 이끌어 주는 것이 원기이기 때문에 원기가 충만한 정심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속 쓰레기인 예억은 계기만 되면 헤살을 부려 중요한 일에 잘못된 선택으로 유인할 뿐만 아니라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에 따라 고만이를 불러들여 실패의 길로 유인한다. 계획한 일을 성사하기 위하여는 먼저 마음속 예억을 세심수련(洗心修練)을 통하여 소거(掃去)하고 인간의 향기를 발산하는 정심을 회복하여야 한다. 마음이 바르지 않고는 세상에 되는 일이 없다.
(2) 마음이 가는 일이어야 한다. 마음속에 간절히 원하는, 염원하는 것이 있어야만 유유상종의 법칙이 작동하여 조화원의 원능 중 해당 원계와 상합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입지(立志), 즉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뜻을 세움에 있어 유명한 격문(檄文)이 있다. 그것은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이다. 많은 젊은이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준 이 말은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 농학교(農學校) 초대교장으로 초빙된 미국의 식물학자 위리엄 클라크(William Smith Clack)가 1877년 제자들에게 고별사로 남긴 말이라고 한다. 야망! 야망은 분에 넘치는 바람이 아니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장래에 꼭 이루고 싶은 큰 꿈이다. 호기심 많은 소년에게는 하늘을 날아 동화의 나라에 가보고 싶은 꿈도 있고, 청춘이기에 가져보는 가슴 부푼 청운(靑雲)의 꿈도 있으며, 일생일대의 명운(命運)을 건 사나이의 비장한 결심도 있고, 온 인류의 행복과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抱負)도 있다. 또 머지않은 날에 대재벌이 되겠다는 당찬 욕심도 있고, 권력을 잡아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야심도 있다. 그런가 하면 뜬구름을 잡으려 마음이 허공에 달린 허랑한 한량(閑良)의 몽상(夢想)도 있다. 꿈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것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생활설계로, 직업으로, 취미로, 필요에 의해서, 또는 싫어도 어쩔 수가 없어 하는 일 등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세상일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기에 앞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 현존하는 인위사물(人爲事物)이 지금의 형태로 존재하기 그 이전의 본원(本源)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그것이 어떤 경로를 거처 현상계에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위사물은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그 시점에 그렇게 만들어서 깜짝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과정을 거쳐 존재하게 된다. 사물은 마음세계에서 하나의 관념(觀念)으로 시작된다. 그 추상적이고 막연했던 염원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의지에 따라서 성숙하고 발전하여 확실해지면 자신의 뜻으로 확정되고 크고 작은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으로 구체화된다. 그 계획을 실행함으로써 비로소 염원의 실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년의 야망 역시 관심에 의해 발생(發生)의 싹이 트고 오랫동안 여러 과정을 거쳐야만 현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이 적고 뜻이 확고하지 않은 야망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지만 내가 하고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꿈을 이루는 삶이라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공자가 말하기를 知者不如好者(지자불여호자)요, 好者不如樂者(호자불여락자)라고 했다. 즉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는 뜻이다. 세상의 많은 일중에 그저 되가는 대로가 아니라 나도 한번 폼 나게 성공하여 꿈을 이루고 싶은 일이나 또는 내가 끝까지 가야 할 인생길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체면을 차리기 위해, 좋아 보여서, 쉽게 할 수 있어서 등등 감정에 이끌리거나 또는 일시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진정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마음이 가는 일을 선택하여야 그 분야에서 마에스트로(maestro)가 될 수 있고 또 하고자 하는 일에 성공할 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소질이 다르기에 때문에 좋아하는 일이 다르고 잘하는 일이 다르다. 따라서 자기에게 맞는 일을 만나야만 소질을 십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만을 골라서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없이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돈이나 권력 또는 인기나 명예에 대한 욕심에서 업종이나 직업 또는 인생길을 선택한다면 그런대로 목마름은 해소할지 몰라도 억지춘향이 되어 그 방면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타고난 능력을 발휘하여 그 방면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는데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또 소질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못되어 우선 호구지책으로 손쉬운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개미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해놓은 일없이 어언 정년이 가까워오고, 그때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날을 돌리켜 생각해보면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좋은 시절은 지나간 뒤인 것이다. 뒤늦게 하고싶었던 못다한 일을 취미삼아 또는 사회봉사로 시작해 보지만 때늦은 아쉬움만 남게 된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잠시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렇듯 오랫동안 마음속에 심어진 좋아하는 일이어야 그것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원기와 상합(相合)하여 그에 관한 원능(元能)이 감응(感應)하므로 좋아하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기억 중추인 해마(海馬)가 정보를 선택하는 원칙 중 하나가 좋아하는 것을 우선 저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아하는 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축적하게 되고, 좋아하는 일로 긍정의 마음을 가질 때 뇌파는 알파(α)파가 되어 베타엔돌핀(Beta-endorphin)을 분비시키는데, 알파파 상태는 일에 대한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주고 베타엔돌핀은 일에 대한 쾌감을 느끼게 하여 새로운 것을 창안(創案)하는 창의력을 북돋아 주고 일의 능률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잘하고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여하에 달렸지만 성격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사람의 성격은 선천적 요인과 더불어 후천적으로 환경의 영향에 의해 형성되어온 것으로 쉽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격의 유형에 대하여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유형론(心理類型論)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이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이 뒤죽박죽인 것 같아 보여도 실은 질서정연하고 일관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기능과 판단기능에 있어 각개인의 선호경향이 다르고 이러한 기능을 사용할 때 취하는 태도에 따라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구분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의 적성에 맞아 좋아하고 하고싶은 일을 선택하여야만 갈등이나 싫증을 느끼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순화롭게 지속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뜻대로 잘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로 ‘긍정의 힘’을 말한다. 긍정(肯定)이란 제시된 어떤 사실이나 의견에 대하여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긍정의 힘’에서의 긍정이란 그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생각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되는 쪽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과거의 좋지 않았던 일에 대한 나쁜 감정을 지워버리고, 현재의 일들은 욕심을 버리고 만족으로 기쁨을 찾으며, 미래에 관한 일은 낙관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키우는, 그런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이다.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구분되는 한 예를 들어 본다면, 사람을 평(評)할 때 이 사람은 이래서 나쁘고 저 사람은 저래서 나쁘다고 나쁜 면을 먼저 보는 사람이 흔히 있다. 그 사람은 나쁘게 본 사람의 수만큼 부정적인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일이 그 만큼 꼬여 간다. 그와 반대로 저 사람은 이래서 좋고 이 사람은 저래서 좋다고 좋은 면을 먼저 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좋게 본 사람의 수만큼 긍정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그만큼 그의 일이 잘 풀려간다고 한다. 긍정의 힘은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지만 이것이 긍정의 힘이다라고 직접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운동경기에서는 바로 그 결과를 알 수가 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슬럼프(Slump)에 빠진 선수나 골프 또는 야구 등과 같은 멘탈스포츠(Mental sports)에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때 그 진가(眞價)가 성적으로 증명되기 때문에 긍정의 힘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긍정적인 사람의 일이 잘 풀려가는 것은 무엇에 힘입은 것이며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긍정적인 생각이 원기(元氣)에 감통하여 유유상종의 법칙에 의해 원능과 상합(相合)하여 원능이 감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긍정적인 생각’은 어디에 있을까? 긍정적인 생각은, 내키지 않는 일에 있을리 없고, 억지로 하는 일에 있을리 없으며, 시켜서 하는 일에 있을리 만무하니, 마음이 가는 일에서만 긍정의 생각이 생기게 된다. 억지춘향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3) 알고 행(行)해야 한다. 아무리 좋아하고 마음이 가는 분야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원능감응(元能感應)에 의한 업그레이드(Upgrade)된, 즉 신개념의 원리 또는 새로운 차원의 득리(得理)와 득력(得力)을 할 수 없어 발명이나 발견 또는 신개발 등을 할 수가 없다. 원능감응이 있어도 이를 동화(同化)할 능력이 없어 감득(感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아는 만큼 들을 수 있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육안(肉眼)에 의한 사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혜안(慧眼)에 의한 사물의 본질을 직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창조능력은 없고 원능(元能)을 응용하는 능력만 주어졌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성사하기 위해서는 관련 지식과 기술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謀事在人 成事在天(모사재인 성사재천)” 즉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성사는 하늘에 달렸다고 했다. 아마도 그 뜻은, 모든 사물은 조화계(造化界)에서 원계(元計)가 원력(元力)에 의해 자화(自化)한 화체(化體)이고 원도(元道)를 벗어나면 불성(不成)하거나 소멸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화계의 원도는 현상계(現象界)에서는 순리(順理)로 존재한다. 자연에는 자연의 순리가 있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순리가 있다. 자연계(自然界)의 순리는 사물의 이치(理致)로써 법칙(法則)으로 존재하고, 인간계(人間界)의 순리는 자연계와 같이 한 치의 예외도 없는 법칙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 일정한 질서(秩序)와 도리(道理)로써 존재한다. 세상만물은 아무리 사소한 존재라 할지라도 원기에 의해 존속하는 것이고, 인위사물은 인간의 능력에 의해 성사되지만 그 인위사물을 성사하는 인간의 능력은 원기의 필성(弼成)이 없으면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사물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순리는 반드시 지키도록 인간에게 강제된 것이 아니라 각자 자유에 속하므로 자연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순리를 거역할 줄 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연사물을 활용하는 경제활동에 있어서는 기술과 수완만 좋으면 성사되는 것으로 알고 순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의 희비가 교차(交叉)하게 된다. 서민사회에서 앎, 즉 능력의 중요성에 관하여 흔히 하는 말로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다. 말속의 면장은 면장(面長)을 지칭하여 아무리 말단 행정구역의 장(長)일지라도 알아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인지, 또는 식자(識者)들이 말하는 꽉 막힌 담벼락 같은 미련퉁이를 면한다는 뜻의 면면장(免面墻)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인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으나 아무튼 어떤 위치나 직책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 대하여 동정조로, 또는 비아냥조로, 또는 한탄조로 하는 혼잣말이다. 인간으로서 좋은 것을 좋은 줄 모르고 나쁜 것을 나쁜 줄 모르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이며, 또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스스로 분간하지 못한다면 그 자신은 정녕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물은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고, 가치 있고, 귀한 것이라 해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앎(知)에 대하여 혹자(或者)는 두뇌(頭腦)는 빌리거나 사서 쓰면 되기 때문에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고 주장한다. 물론 특수분야에서는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두뇌는 빌려서 쓸 경우가 있고 또 돈으로 사서 쓸 경우가 따로 있다. 일국(一國)의 통수권자가 국란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중대결단이 필요할 때 누구의 두뇌를 빌리고 또 어디서 사다가 쓸 것이며, 계열기업군의 총수가 그룹의 흥망이 걸린 중요한 정책결정에 누구의 두뇌를 돈으로 사서 자기를 대신하겠는가? 앎이 있어야, 앎을 알아볼 수 있고, 그 앎의 수준을 가늠할 수가 있고, 또 앎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뜻대로 부릴 수가 있다. 물론 회사의 최고책임자인 사장이라는 사람이 생산라인에서 볼트나 너트를 죄는 일에까지 숙달하여야 하고 일선 여직원이 분개(分介)하여 전표 작성하는 일에까지 모두 능통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일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고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무지(無知)해서야 최고 책임자로서 무슨 일인들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 누구든 자신의 신분과 위치에 걸맞은 지식과 지혜를 갖추어야 만 원기의 필성(弼成)을 감득(感得)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차질 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인, 경영인, 군인, 리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이며 인생의 지침서로 널리 활용되는 손자병법은 모공편(謀攻篇)에서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해의(解義)하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상대를 모르고 나만 알면 승패는 반반이며, 상대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움마다 반드시 패배 한다라는 뜻이다. 자기가 세운 계획을 성공하기 위해 손자병법을 적용해본다면, 성공에만 집착하여 주먹을 불끈 치켜세우고 앞만 보고 돌진하는 의욕만이 능사(能事)가 아니라 전후 좌우 사정(事情)을 파악하여 갈피를 잡고 또 성공을 향한 발걸음에 딴죽을 거는 장애가 어떤 것이 있고,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살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는 금언(金言)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알아야 행(行)할 수가 있고, 알고 행하여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행함에 있어 선지후행(先知後行)이 옳으냐 아니면 선행후지(先行後知)가 옳으냐를 따진다면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를 경우도 있겠으나 아는 것(知)과 행하는 것(行)은 먼저와 나중, 또는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는 성공한 사람이 먼 곳에 있다면 그저 찬사나 보내고 말 일이지만 그런 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있다면 “왜 나는 그 사람처럼 되지 못하고,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곧잘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자의로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일의 성공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어렵사리 청심자신(淸心自新)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자신의 인생사를 자신이 원하는 성공의 길로 이끌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이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결국 같은 곳에 이른다는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격언이 있다. 성공 역시 성공에 이르는 길은 서로 다른 많은 다양한 길이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길과 방법이 모두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은 공익(公益)을 위한 것이든 사익(私益)을 위한 것이든 신(神)이나 영(靈)에게 기도(祈禱)한 대가로 얻는 선물이 아니고, 조상의 체백(體魄)을 명당(明堂)에 모셔서 얻는 음덕(蔭德)도 아니고, 도인(道人)의 도력(道力)에 의한 변술(變術)의 결과가 아니며, 또한 시래운도(時來運到), 즉 때가 되어 운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각고면려(刻苦勉勵)의 대가이다. 인간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를 부려서 라도 이루려 애쓰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어느 길이 됐든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로지 하나, 절대능력인 조화원(造化元)의 필성(弼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원계(元計)에 설정(設定)된 대로 성사(成事)되는 것이고 원도(元道)에 어긋나 안 되는 일은 아무리 인간들이 원하고 애를 써도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였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성공이 아니라 정리(正理)를 벗어난 비리(非理)에 해당하는 것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조화원은 천지만물을 생성케 하는 전능이지만 신앙의 대상인 신(神)이 아니므로 선과 악을 구별하여 그에 합당하게 보응하거나 인간을 죄악에서 건져 주는 구원 또는 소망을 이루어주는 은총을 베푸는 존재가 아니다. 한 여름의 태양은 금방이라도 세상의 모든 것을 바싹 말려 태워버릴 것 같은 맹렬한 기세로 이글대지만 아주 보잘것없는, 다 낡아빠진 한 장의 가림 막에 막혀 그늘이 지고, 그 그늘에는 햇볕이 들지못해 음습(陰濕)하므로 식물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고 대신 해충이나 곰팡이 또는 세균이 번식하는 것처럼 절대능력인 조화원의 원능(元能)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심예(心穢)에 가로막히면 그 사람에게는 전혀 작용하지 못하므로 그 사람은 심예로 인한 심화(心禍)를 면할 길이 없게 된다. 원능이 심예를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능의 힘이 심예보다 미약해서가 아니라 성질이 다른 이류이기 때문에 극이 같은 자석이 서로 반발하는 것과 같이 화합하지 못하고 반발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기후 조건이 아무리 악천후라 해도 그것을 무난하게 헤처나가 성공의 고지에 안착할 수 있는 비결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재간(才幹)이나 요령이 아니라 정심(正心)에서 발현된 바른 생각으로 현실성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 계획이 틀림없이 이루어짐을 확신하면서 꼭 이루겠다는 자기다짐과 함께 그 일에 매진하여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에 의한 원능감응으로 득리와 득력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여야 할 성공의 비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