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하나님은 사랑이라(神卽愛也)
로마서 5:1-11, 제(題)는 8절, 요한복음 3:16
3월 21일 (저녁)
物皆證神之愛也, 余三年前, 見兒捕蟹, 請一首入魚甁, 見其自由也, 見卵愛以筆接之, 則蟹輒藏其卵, 余乃覺蟹亦愛其子也. 余於冷川養鷄所抱卵, 正月尙寒, 故鷄久抱後, 一夜鷄驚, 余往見則鷄已死. 檢其鷄則抱子久, 而肉脫而死. 其愛子何如也? 鷹摯鳥也. 出於山雀, 山雀産卵有定數, 有加數,必有爲鷹者. 其中大卵必爲鷹, 母知其爲鷹而必害母, 然母鳥捕蟲而食之, 其母鳥亦愛其子鳥, 其愛卽本能之愛也. 神之愛也. 神如此愛世云, 世不可好世. 洗禮요한曰 毒蛇種類乎! 有一母携一女往江邊, 此時江色如銀, 母欲投女殺, 朴英璨牧師巡至一處, 江邊數三戶, 其中有竊盜, 盜於夜中, 携全家逃走, 妻負幼兒, 盜負一物, 其時在中幼兒請父曰 何故行盜而走也? 其聲不止, 盜一擲蹴其兒而殺之, 豈非毒蛇乎? 罪何也? 當愛不愛, 當惡不惡, 其罪甚大. 此世之人, 皆有其愛也. 神謂不順則罪也. 當爲而不爲則果何如也? 車一失其軌道則逸, 此等皆罪也. 余養子女, 女兒幼時, 聖誕愛禮物甚喜, 持而歸, 隣兒盜其物而歸, 母責兒也. 他兒以物與人, 他反盜人物而傷人心, 故謂之罪也. 主降世甚難, 以獨生子降世甚難, 主降世爲罪人, 指生亦何等難也? 美國一地方, 監理牧師等會集, 有一牧師, 敎師訪牧師家問曰 子缺病乎? 三日間不出席, 由此牧師心甚傷, 其子요한始入, 父問曰 爾從何來也? 爾三日缺席, 牧師伏地祈禱流淚, 牧師曰 爾作罪我傷心, 有罪則哀痛隨之, 余亦喪一子喪二女, 二日前子逃走何處, 余心甚傷, 其母恒常流淚, 子犯罪而親有淚, 犯罪者哀痛則可悔改, 子位高而榮其父. 牧師謂兒曰 爾三日犯罪, 爾當往囚于三層中, 其兒常順其親, 箴言不順其親及師者, 鴆啄其瞳云. 使兒置于三層, 其父母對食不能食, 接新聞不能讀, 其夫人亦流淚, 其父母至夜深不能寢, 其父乃持寢具, 往三層接頰流淚, 同寢于三層之中, 愛有能力, 使人悔改, 其父責其子, 父其同受苦痛, 主亦如是降世, 世人犯罪而主受其苦楚, 主在吾人間甚苦痛也. 曰雖敎師當一兒師, 亦苦一時, 神亦有人性神性, 昔羅馬强盛時, 國民有罪, 死刑宣告狀降下, 則其人設大宴, 請友人又醫師, 絶動脈血出如水, 而其人氣盡而死, 他屬邦之人, 釘于十字架, 罪人臨死發惡, 未見和平者. 主臨死時, 强盜大發惡又辱主, 此時主於架上, 左右視之, 人若接主顔則受感化矣. 彼得之不知主, 主眼觸彼得, 彼得始服罪也. 學生中有疾我者, 而若接我顔則服, 人之視力其有力, 一盜不視主, 一盜請曰 臨爾囚時思我焉, 同座一座而心不同, 如主左右之强盜. 世人有罪而死則發惡, 況無罪而死尤發惡焉也. 主架時不發惡, 架下之人果何人也? 從主者盡逃去, 而惟主母則在傍, 心如刺, 余子死時, 其母死而復甦, 其母心如刺, 況神在上, 下視之神亦傷心, 天地盡暗黑, 此神心悲痛. 經曰 罪人一人悔改, 天軍亦喜悅云. 況主釘之時, 釘主是感天心也. 聖殿揮帳盡裂, 釘主上感天心, 下感罪人之心, 此時羅兵甚惡, 而聞架上七言, 由是下感罪人之心也. 今日亦思主之十架, 則可悔改也. 人有同情之心, 喜則同喜, 悲則同悲, 余女兒往校時, 聞盲人之言發悲, 故不能往云. 人皆有此心, 此得救之心也. 主釘十架, 眞理亦不變之理也. 吾等若不悔改, 入地獄亦眞理也. 神告不以眞理宣世乎?
물질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로 보여 줍니다. 3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가 게를 잡아 왔기에 한 마리를 얻어 어항에 넣고 그 놈이 자유롭게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게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보고 붓을 넣어 건드려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게는 문득 그 알을 감추었습니다. 그 때 나는 게도 역시 제 새끼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냉천동에 살 때 양계장에서 닭이 알을 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음력 정월은 아직 날씨가 추웠으므로 닭이 알을 오래 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닭이 놀라는 소리가 나서 가 보았더니 닭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 죽은 닭을 검사해 보니 닭이 알을 오래 품고 있어서 살이 다 빠져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닭이 새끼를 사랑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매는 다른 새를 잡아먹는 사나운 새[지조摯鳥]입니다. 매는 산새한테서 나옵니다. 산새 둥지에 산새가 낳은 알 외에 매가 알을 보태 낳는데 그 알은 훨씬 큽니다. 산새 어미는 그것이 매의 알로 알고 또 그놈이 자라면 어미를 해친다는 것도 알면서도 그 알을 까도록 품고 있다가 새끼 때는 벌레를 잡아 먹입니다. 그 어미 새가 새끼를 사랑하는 것은 타고 난 본능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세상 사람은 세상을 좋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하였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딸을 이끌고 강가로 갔습니다. 이 때 달빛이 은 같이 하얗게 부서졌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딸을 죽이려고 갔던 것입니다.
박영찬(朴英璨) 목사님이 순방하기 위하여 어느 곳에 이르렀는데 강가에 서너 채의 집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집중에 도둑이 살고 있다가 밤에 전 가족을 데리고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린 아이를 업고, 도둑은 어떤 물건을 등에 졌는데 그 때 어린 아이가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도둑질을 하고 도망 다녀요’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 도둑은 아이의 소리가 그치지 않자, 그 아이를 발로 차서 죽였습니다. 이게 어찌 독사가 아닙니까?
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 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할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그 죄는 매우 큰 죄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가 궤도를 벗어나면 탈선이 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죄가 됩니다. 나도 자녀를 기르는데 딸아이가 어릴 때 성탄절이 되면 예물을 사랑하여,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웃 아이가 그 물건을 훔치자 어머니는 그 아이를 나무랐습니다. 다른 아이가 준 물건인데 그것을 또 다른 아이가 훔쳐 가면 그것을 받았던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니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주님이 세상에 독생자로 오신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 오셔서 죄인과 함께 하신 것은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미국 어느 지방에 감리교 목사들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 어떤 목사님이 있었는데, 학교의 교사가 그 목사님의 집에 찾아와서 ‘아들이 병으로 결석하였습니까? 사흘 동안 출석하지 않았습니다’하자, 목사님은 이로 인하여 마음이 몹시 상하였습니다. 그 때 아들 요한이 들어오자 아버지가 묻기를 ‘네가 사흘이나 결석을 하였다면서, 어디서 오는 것이냐?’하고 목사님은 엎드려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죄를 지으면 내 마음은 아프다.’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있으면 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나도 한 아들과 두 딸을 여의었고, 이틀 전에는 아들이 어디론가 도망을 갔습니다. 내 마음은 매우 아프고 어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이 죄를 지으면 그 어버이는 눈물을 흘립니다. 죄를 범한 자는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되면 회개를 합니다. 아들의 지위가 높아지면 그 아비는 영광스럽습니다.
목사님이 그 아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사흘 동안 죄를 지었으니 너를 삼층 방에 가두어 두는 것이 마땅하겠다.’고 하자, 그 아이는 어버이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잠언箴言>에 이르기를 ‘그 어버이나 스승에게 불순 하는 자는 까마귀가 그 눈동자를 쪼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를 삼층에 가두어 놓고 그 부모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신문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인도 역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부모는 밤이 깊도록 잠을 자지 못 하고 누웠다 앉았다 하다가 그 아버지가 마침내 이불을 안고 삼층으로 올라가서 그 아들의 볼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함께 잤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회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나무라고 그도 함께 고통을 받았습니다. 주님도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사람들이 범죄를 한 것을 주님이 그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인간 세상에서 모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한 사람의 교사는 한 아이의 스승이지만 한 때의 괴로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옛날 로마가 강성하였을 때 국민이 죄를 범하여 사형 선고장이 내려오면 선고를 받은 사람은 큰 잔치를 베풀고 친구와 의사를 초청한 뒤에 동맥을 끊어 피를 물과 같이 흘려내려 기운이 다 빠져 죽었습니다. 다른 소속 국가에서는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데 죄인들은 죽을 무렵에 발악을 했고 화평하게 죽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께서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곁에 있던 강도들이 발악을 하며 또 주님을 욕하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좌우를 둘러보시고, 사람들의 얼굴과 마주 대하면 그들이 감화를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하였다가 주님의 눈이 베드로에게 미치자 베드로는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학생 중에 나를 미워하던 자도 나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복종하였습니다. 사람의 시력은 힘이 있습니다. 도둑 하나가 주님을 보지 않았고, 다른 도둑 하나는 ‘당신이 갇혀 있을 때, 나를 생각하였소?’ 하였는데 한 좌석에 같이 있어도 그 마음이 다른 것은 주님의 좌우에 있는 강도와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가 있어도 죽게 되면 발악을 하는데 하물며 죄 없이 죽게 되면 더욱 발악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발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십자가 밑에 있던 사람은 과연 누구였습니까? 주님을 따르던 자는 모두 도망갔고, 예수님의 모친이 그 곁에 있었습니다. 그 마음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 자식이 죽자, 그 어머니도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을 것일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마음이 상하시어 천지를 모두 깜깜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비통하여 그러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의 천군 천사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주님이 못 박힐 때이겠습니까? 주님을 못 박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여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주님을 못 박은 것은 위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아래로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 시켰습니다.
이때 로마 병사들은 매우 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가지 말씀을 듣고, 그 말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회개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동정하는 마음이 있어서 남이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합니다.
나의 딸아이가 학교에 갈 때 앞을 못 보는 사람의 말을 듣고 슬퍼서 학교를 갈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이는 구원을 얻는 마음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진리는 역시 변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우리가 만일 회개하지 못하면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도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가 아닌 것으로 세상에 펴서 알렸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