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사랑과 씨름함 / 창세기 32:24-36, 에베소서 6:12
성경에서 믿음을 씨름에 비유한 부분이 있습니다. 씨름은 힘의 비교이며, 강한 자가 이기고 약한 자가 진다. 즉 씨름은 곧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도 씨름을 언급하고 있고, 창세기 32장에서는 야곱이 직접 씨름을 하였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야곱은 힘으로 형을 이기려 하지 않고, 사랑으로 이기고자 했습니다. 먼저 예물을 보내고 가족들을 얍복강 건너편으로 보낸 후,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않고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밤이 깊어질 무렵,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씨름하자 합니다. 야곱은 응해 씨름했는데, 그 사람은 야곱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밤이 이미 깊어졌으니 놓아달라"고 하자, 야곱은 "당신께서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고통스러워하게 했지만, 야곱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그 사람이 "네 이름을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이라 하라.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이로써 위대한 힘을 얻어, 강을 건너가 형 에서를 바라보며 엎드려 절했습니다. 에서도 달려와 동생을 껴안고 울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야곱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될 만합니다.
에서가 "내가 사람을 보내 함께 가겠다"고 하자, 야곱은 "아니요. 저는 어린 자식들과 아내를 데리고 천천히 가겠습니다. 형님께서 먼저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형의 간섭을 피하려는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악한 이의 도움이나 돈은 반드시 후환이 따르지만, 그것을 이용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깨끗해집니다.
옆에는 공산 소련이 있어 선전 공세를 하고 있지만, 우리 백성들은 듣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활이 소련보다 높기 때문에, 굳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련도 선전을 중단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을 간구합니다. 그렇게 귀한 것을 공짜로 줄 수는 없기에, 하나님과 씨름하게 됩니다. 이 씨름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대가 없이 주실 수 있지만, 대가 없이 받는 이는 없습니다.
다니엘은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을 했고, 요셉은 불의한 요구를 거부하고 감옥에 갔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은 그 대가를 받으셨고, 하나님께서 이긴 것입니다. 요구 외에 충만한 사랑을 주셨죠. 솔로몬에게는 요구한 것을 주시고 더불어 부귀영화를 넘치게 주셨습니다.
야곱은 이번 씨름에서 이겼기에 큰 힘을 얻어,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을 통해 영생의 천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랑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주님, 오셔서 우리가 씨름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