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일에 한글 대가 최현배(崔鉉培) 씨로부터 서울신문을 통하여 연 삼일 현상윤(玄相允) 선생에게 대하여 도전적 문자를 게재하였는데 현 선생은 한자를 숭배하는 동시 한글을 반대한다는 이유이다. 현 선생은 차에 대하여 자기는 한글반대자가 아니요 한자창한론(漢字創限論)을 주장한다고 반박하였다. 오는 말 가는 말 쓸데없이 자미롭지 못한 것만 보여 공부하는 후생들로 하여금 도리어 선배들은 의심하게 될 뿐이다.
전일에 우리 민족이 자유가 없을 때 문자를 사용하는 것도 자유가 없고 어느 지도자를 따라 원숭이 흉내 내는 셈으로 무조건 타국문(他國文)을 자국문(自國文)으로 알고 쓰고 이로 말미암아 사대사상을 배양시켜 한자 외에는 글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가 이제 천우신조로 조선이 독립이 되고 모든 것이 다 자유로 쓰게 된 이때 우리나라 글을 왜 쓰지 않으리요. 비록 우부우부(愚夫愚婦)라도 한글전용이 옳다고 생각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리요. 하물며 고명하신 교육가 현상윤 선생이시리요. 우리 한글학자들도 다시 생각할 것은 우리 한글도 세종대왕 반포하신 것 그대로 쓸 수 없고 시대조류를 따라 또는 타국문 아름다운 문법을 따라 고쳐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반포하신 때 문법대로 그냥 쓰는 것 별로 없다.
한글 전용이 옳기는 옳고 좋기는 좋지만 아직 우리나라 말로 술어(述語)부족으로 인하여 글월의 문맥와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몇 십년 후 혹 6-70년 후면 문학자의 붓으로 생기고 논보(論報) 혹 보도에서 만들어진 후 이것이 자연의 미가 되고 일반국민의 기호(嗜好)가 되어 한자를 쓰지 않아도 넉넉히 우리 글로 발표할 수 있도록 된 후에 저절로 한글을 전용하지 말라 하여도 금할 수 없이 쓰여질 것이라. 이것을 억지로 쓰자고 정치 법률을 버러 행코자 하여도 자연미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한자로 문장을 만들었고 한한(韓漢) 겸용한 후로도 한자 겸용으로 문장을 만들어진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 가지고 주시경(周時經) 씨와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주 선생이 자기 성명을 가르쳐 두루 때 오리라 불러 달라 하기에 나는 반대하였다. 두루 때 오리만 조선말이라 할 수 없고 주시경도 조선말이라 이로 좇아 한자가 조선말로 귀화된 것은 다 조선말로 편입 하자고 나는 주장하였다.
예하면 아비 자식만 조선말이라 할 수 없고 부자도 조선말인고로 이따위 귀화된 말은 그냥 쓰는 것이 문화진보 상 첩도(捷捈)일 것 같다고 주장하였다. 우리가 날마다 쓰는 말 중에 한자가 조선말로 귀화 된 것이 거의 삼분지 이를 점령한 것 같이 한자가 없으면 말이 없을 만큼 한자를 많이 썼다. 이것을 시급히 고쳐야겠는데 아직 한자대신 쓸 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고로 아직은 곤란하다. 원컨대 학회 제공(諸公)은 새 술어를 많이 발명하여 용어에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하시기 바라며 따라서 새 술어는 가장 문학적이요 가장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근 80년 두고 번역서로는 기독교 신구약성서가 가장 최대 서물(書物)인데 우리말이 부족하여 오묘한 뜻을 번역지 못하고 본어(本語) 그대로 쓴 것이 많으니 진실로 유감이다. 지금 최대 급선무가 번역과 저술이다. 각국에 무슨 신기한 서적이 있다면 시각을 머물지 말고 곧 번역하여 국민의 이목을 새롭게 하고 과학이나 종교에 무슨 신서(新書)가 있으면 곧 번역하고 무슨 창의가 있어도 곧 저술하여 국민이 애독하게 되면 국민의 지식이 날로 진보될 것이오. 따라서 우리 한글도 장족진보가 있을 것이다.
있대어 한글 전용도서가 많아지고 다 진서(珍書)가 되어 국민의 이목이 되고 보면 한글전용론이 도리어 쓸데없는 말이 되고 말 것이다. 또 한자혼용원서(漢字混用願書)와 한글전용도서와 비교하여 보고 경중과 선악을 가리게 될 것이다.
지금 전용론을 반대하는 자가 있어도 그것을 항변할 필요가 없고 우리가 가장 힘내야 할 것은 저술과 번역인데 이것을 힘쓰지 않고 도리어 무익한 지엽론(枝葉論)을 가지고 옳으니 그르니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두 분 선생님의 말이 다 옳다고 보며 따라서 권면할 것은 어서 바삐 신서적을 간행하여야 한글 서적만을 국민이 애독하게 되어야 합니다.
또 생각할 것은 한자로 쓰면 짧은 말로 긴 말을 쓰게 되고 우리말로 쓰면 짧은 말이 도리어 긴 말이 되는 고로 편리와 민속(敏速)을 위하여 항상 습관적으로 한자를 쓰게 된다. 선현들이 경전을 해석할 때 이에 고심하여 아무쪼록 짧은 말로 쓰기를 노력 하였다. 그 짧은 말을 지금 와서 볼 때 퍽 거북하고 통독이 어렵다. 아무쪼록 한자 대신 새 술어를 많이 창작할 터인데 그것이 습관 되기까지 또 기호성(嗜好性)을 일으키기까지 되자면 자연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글에 다 소리 홀소리가 난제가 퍽 오래 되었지만 지금까지 그 뜻을 알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하여 습관이 되지 못하고 기호성이 없는 까닭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귀화어(歸化語)는 그냥 두어 우리말을 삼는 것이 교육상 습관상 편리할 것 같습니다. 저 일인(日人)들이 만든 자전(自轉)을 보면 전부 한자를 저의 말이라 하여 훈독(訓讀)하였습니다. 우리말은 한자 훈독이 아니고 음독(音讀)인 고로 습독(習讀)이 더 편리합니다. 새 술어를 창안하는 데는 어학을 잘 아시는 분이 각국의 글과 말을 참고하여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면 라틴말 히브리말 혹 영어 같은 것 가지고 재료를 취하기보다 오래 습관에 젖어 온 한어에서 취해 옴이 가장 근편(近便)할 것입니다. 이것은 한문에 예속하려는 것 아니오. 우리말을 좀 더 확장하여 미화하려는 까닭이지요.
몇 십 년 전에는 한글 반대자가 혹 있어 어학 발전상에 지장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구유(舊儒)들은 다 없어지고 다 한글을 주장하여 쓰게 됨은 한글 법이 근대 와서 단상(但詳)적으로 개량되고 과학에 비쳐 보아도 틀림이 없고 반대자의 논지는 다 과학적 근거가 없이 논의하다가 이제는 무력하여졌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와 근원 없는 물은 말라 버립니다. 많은 노력을 가지시고 우리말을 발전에 희생하시는 여러분 한글 선생님들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누구의 단평(短評)이나 누구의 찬성이나 다 불원(不遠)하시고 아무쪼록 최선의 노력을 더 하시와 너무 괴해(怪懈)에 기울어지지 마시고 너무 어렵게도 마시고 조선어를 조선인이 알도록 하시여 가장 신기하고 규각(圭角)하게 만들어 글월의 문장과 문맥을 이룰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