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론]
양자역학과 수필시학
-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과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에 기대어 -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교수
Ⅰ.
양자 물리학은 파동-입자 이중성 및 양자 얽힘과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개념으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이해에 도전합니다.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은 실험에 의한 결과로서 과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양자 물리학의 매력과 그것이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밝히는 작업을 본격수필을 읽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더욱 흥미진진하겠지요. 저는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파동과 입자 모두로 행동하는 빛의 이중적 특성과 같은 개념을 탐구하고 우리의 지식에 한계를 부과하는 불확정성 원리나 관찰자 효과를 밝히는 것을 수필의 이중구조와 귀납추론의 원리나 주제의 내면화 원리와 연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양자 영역의 비밀을 밝히고 이 매혹적인 과학 분야의 경이로움을 본격수필의 영역으로 치환해 수필의 창작원리를 이해하는 이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뉴턴 역학에 기초한 고전 물리학이 양자 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에 자리를 내준 양자혁명 동안 발생한 패러다임 전환을 ‘사실을 사실대로’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전통수필’에서 수필은 ‘제재를 통해 주제를 겨낭한다’는 본격수필로의 전환에 견주어보면 어떨까요. 이 전환은 오랜 결정론적 세계관에 도전하고 파동 입자 이중성, 불확실성 및 양자 중첩과 같은 개념을 양자역학이 도입했습니다.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 여섯 가지, 양자도약, 양자얽힘, 양자중첩, 관찰자 효과, 불확정성 원리, 상보성 원리 등 양자 혁명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놀라운 과학적 발전과 기술 혁신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본격수필이론도 양자역학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교술이라는 전통수필 이론에 도전하고, 기존 수필에 대한 개념에서 전환하여 수필적 허구와 중층구조와 존재론적 의미화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현대수필의 옷을 입힐 수 있을 것입니다.
Ⅱ.
이 장에서는 빛의 이중성을 강조하는 ‘파동-입자’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최순덕 수필 <얼굴, 기미를 말하다>에 적용해서, 빛이 ‘파동과 입자’의 특성을 모두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여 그 동작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도전하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통해 수필의 구조를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파동-입자 이중성 개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이중 슬릿 실험과 같은 유명한 실험을 했습니다. 이 실험은 빛이 어떻게 동시에 파동과 입자로 행동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촘촘하게 간격을 둔 두 개의 슬릿을 통해 빛을 통과시키면 파동과 같은 행동을 암시하는 간섭 패턴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자가 어떤 경로를 택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검출기를 배치하면 간섭 패턴이 없는 입자와 같은 동작을 관찰합니다.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은 물리학게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미시세계 물질의 작동원리로부터 과학적 진리를 말하려는 게 아니고 이 물질의 이중성이라는 관찰자 효과를 수필시학과 관련해서 창작원리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코펜하겐 해석의 여섯 가지 원리는 거시세계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수필이 인간학이란 측면에서 양자역학의 원리를 불러올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 관찰자 효과가가 수필시학과 어떻게 축이 맞아가는지 살펴보면서 작품분석을 해나가고자 합니다. 따라서 빛이 파동-입자라는 성질은 이제 명백해졌습니다. 수필의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수필의 창작이나 이해에 있어서 ‘이중성’의 이론적 배경은 1. 예술의 복합성 원리, 2. 토도로프의 중층구조이론, 3, 언어학의 이중부호원리 4. 인식과 형상의 복합체란 문학이론에 의해 그 근거를 확보한다고 하겠습니다.
1. 수필의 입자성과 수필의 이야기구조
아인슈타인은 물질에 빛을 때리면 전자가 튀어나온다는 사실, 전자가 알갱이라는 광전효과 설명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상대성이론이 아닙니다. 빛은 파동인 줄 알았는데, 입자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걸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파동은 입자와 다릅니다. 파동은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동이라고 알려졌던 빛에 더 센 에너지를 쏘았는데도 거기에서 나오는 전자의 에너지는 같더라는 겁니다. 여기서 빛은 알갱이라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수필시학에 견주면, 이 당시만 해도 수필은 사실 체험의 글로 이해되었습니다. 따라서 수필의 입자성은 전이, 치환, 변용의 미학이 적용이 안 된 1차원적인 화자의 체험에서 직접적으로 나오는 감정의 표출로서, 플롯화되기 전 상태의 진술입니다. 작가는 어느 날 얼굴에 난 a)기미를 발견합니다. 작가는 입자성 차원에서 기미의 가장 큰 속성이 검은 색이라는 데 착안해서 그 대상을 b)하나의 점->)c흑점-> d)수묵화의 먹물자국 ->e)검은 섬 f)맬라닌 색소 g)얼룩무늬 h)주름물결 등으로 표현하면서 그 원인을 자신의 i)‘무지’ j)‘오만’ 또는 k)‘멋내기’와 l)‘칭찬’ 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 심각성은 m)‘외딴 섬’이 아니고 n)‘얼룩무늬 섬’이라는 데 있다고 합니다. 나아가 뭍 밖으로 고개 내밀지 못한 o)‘눈물의 세월’과도 같은 p)‘숱한 섬’들이 있다고 합니다.
2. 수필의 파동성과 수필의 플롯화구조
양자역학 이론에 따르면 물질은 작아지면 질수록 파동의 성질을 띤다고 합니다. 공기 중의 산소 분자까지는 입자로 보면 되고, 산소 분자보다 더 작아지면 파동 성질이 더 강해집니다. 원자 주변의 전자들은 파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전자 입자설을 깬 드 브로이는 모든 물질은 파동성을 지닌다는 연구로 노벨상을 받습니다. 두 개의 슬릿에 전자를 쏘니 파동의 성질이 나타나는 입자간섭실험으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를 수필시학에 적용하면, 일반화된 이야기나 소재들을 더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하나의 제재로 좁혀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화하지 않고 특수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결국 수필에 파동성을 주려면 작가는 마지막에는 원소와 같은 제재소로 지배적 정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필의 파동성은 전이, 치환, 변용의 미학으로 빛나는 시적 언술의 양상에서 도출되는 성질입니다. ‘이것’을 ‘저것’으로에서 ‘저것’에 해당하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에서 ‘보조관념’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감정’보다 ‘미적 정서’요, ‘이야기’보다 ‘플롯’에 해당하는 화자의 ‘전략적 표현’입니다.
ㄱ)생각하는 추상화 ㄴ)엉큼한 속내의 그림자 ㄷ)삶의 흔적 ㄹ)삶의 무늬 ㅁ)올바른 노년의 길 표지석 ㅂ)시커멓게 탄 속내 ㅅ)생의 무늬 ㅇ)침묵의 애정->a]해저화산 (불확실성, 불시 순간성) b]뜨거운 삶의 흔적(의미화1) c]휴화산(세월과 타협) -> 활화산(존재 드러냄) d]삶의 고뇌(의미화2) ->화산재(지배적 정황)
3.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와 귀납추론을 통한 의미화
양자역학이 문학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양자의 이중성이 수필시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와 불확정성 원리는 원자 주변을 도는 전자의 파동성에서 온 것입니다. 미시세계에서 원자는 파동처럼 행동하는데, 고전물리학의 법칙으로는 위치나 속도를 알면 운동량을 알 수가 있는데,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이 파동이 되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위치나 속도를 파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산소도 알갱이로 돌아다니지만, 절대온도보다 더 세게 온도를 낮추면 운동이 느려지며 파장이 크지면서 파동의 성질을 나타냅니다. 파동은 두 개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측정하면 한 군데만 나타납니다. 수필시학에 견주면, 이야기가 이중으로 나타나도 주제는 하나로 집약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미시세계의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가 하나로 나타나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주제가 하나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점->흑점-> 수묵화의 먹물자국 ->검은 섬 <맬라닌 색소> <얼룩무늬> <주름물결> ‘무지’ ‘오만’ ‘멋내기’와 ‘칭찬’ ‘외딴 섬’ ‘얼룩무늬 섬’ ‘뭍 밖으로 고개 내밀지 못한 눈물의 세월’도 같은 ‘숱한 섬’에서 =>생각하는 추상화 엉큼한 속내의 그림자 삶의 흔적 삶의 무늬 올바른 노년의 길 표지석 시커멓게 탄 속내 생의 무늬 침묵의 애정 =>해저화산 뜨거운 삶의 흔적 휴화산 -> 활화산 삶의 고뇌 ->화산재
4. 결론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파동-입자 이중성이라면, 수필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와 제재의 이중층위입니다. 최순덕 수필은 입자와 파동이란 양자역학의 이중구조를 통하여 문학적 성취를 견인한 전략이 돋보인다고 하겠습니다. 보이는 것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양자역학은 증명합니다. 제재 속에 주제가 있고, 주제 속에 제재가 있다는 것은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 여섯 가지 중 ‘양자 얽힘’에 해당합니다. 수필은 주제와 제재를 나누어 생각하면 잡문이 됩니다. 최순덕의 수필은 주제와 제재가 얽혀 있습니다. 이는 수필이 주제나 제제재의 문학이 아니라 주제와 제재의 문학이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이 양자의 속성이 미시세계 물질의 속성이라는 것은 결국 모든 물질의 속성이 그러하다는 것이고, 우리 인생 또한 그런 원리로 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학인 수필의 원리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역학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양자역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장 형상화가 잘된 부분을 도입부에 놓을 게 아니라 결말부로 돌리는 것이 더욱 지배적 정황을 강화할 뿐 더러 ‘기미’의 국면을 이미지로 재현해서 보다 더 울림이 큰 감동을 전달할 수가 있겠습니다. 만약에 얼굴에 난 ‘기미’를 1차원적인 이야기로 풀어내었거나, ‘기미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식의 직설적인 발화라면 우리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미’의 의미를 철학적인 의미에 얹어 이미지로 묘사했기에 미적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 작품의 우수성은 바로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주제의식을 하나로 형상화한 것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지배적 정황으로 제시된 ‘화산재’는 ‘활화산’과 ‘삶의 고뇌’라는 보조 자료에 힘입어 기존의 언어가 제시하기 힘든 미적 사유와 감정을 전달한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