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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큰 땅, 적은 인구의 나라 보츠와나
- 보츠와나의 땅은 남한의 6배, 인구는 180만명이 살고 있다-
2012.4.2.월.
맥주를 너무 마셨는지 밤중에 몇 번을 일어 났다. 2층침대인데 천정과 바싹 붙어 있어 눕기만 할뿐 침대에 앉을 수는 없다. 스와질랜드에서 혼자 방을 사용하던 것과는 완전히 정 반대의 상황이다. 그나마 어젯밤에 어렵게 숙소를 구한탓에 만족해야만 했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다 결국 4시반 경에 일어 나고 말았다. 아침을 빵과 사과,귤,커피로 간단히 먹고 바깥에 앉아 스마트폰 충전도 하고 글을 쓰고 있다. 미국에서 온 은퇴 노인이 커피를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크루그 사파리를 떠난다고 한다(5시에). 이곳 크루그 사파리 비용은 얼마냐고 물으니 3박4일동안 800랜드(12만원 정도)라고 한다. 괜찮은 가격(Resonable price)이라고 얘기해 줬다. 왜냐하면 쎄렝게티 사파리가 400달러(약 2800랜드)정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간은 6시30분, 백인 여자 3명이 주방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들고 건너편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날씨는 무척 쌀쌀하다. 추울 정도이다. 잠바에 스웨터까지 입었는데도 쌀쌀하다. 아프리카가 무조건 덥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보츠와나’로 출발인데 걱정이다. 어제 알아본 바로는 오전 버스는 예약이 끝났고, 오후 1시반 차가 있다고 하는데, 하여튼 10시쯤에 인터케이프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부딪쳐 볼 요량이다. 택시기사와의 요금 흥정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미리 잔돈을 바꿔 가야 할 듯 하다.
8시 반에 숙소를 나왔다. 택시 기사가 70랜드에 가야 한다고 우긴다. 회사규정에 의해 이쪽지역의 요금이 그렇다고 하며 자기손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도 우리나라 처럼 택시 사납금 제도가 있는지?... 실랭이를 벌이다. 그냥 70랜드에 가기로 했다. 어느나라이던 택시기사가 그 나라의 이미지를 좌우하곤 한다. 철저한 미터제를 사용하고 있는 미국등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늘 여행객이 마주하는 택시기사가 문제인듯 하다.인터케이프 버스 정류장에 와서 티켓팅을 했다. 1시18분에 떠나는 버스를 270랜드(약 4만원 에 끊었다. 하루전에 예약을 하면 260랜드라고 한다. 무려 4시간을 하릴 없이 정류장에 기다리다 1시경에 버스에 올라 탔다.
남아공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 전에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는 대부분 맞질않았다. 특히 물가등은 많이 오른 상태였다. 1시간여를 달려 요하네스버그에 버스가 잠시 정차를 하고 손님을 태운다. 짐바브웨에 산다는 37세 흑인 청년이 내 옆자리로 앉았다. 차안에서 본 요하네스 버그는 황량함 그 자체의 도시처럼 느겨졌다.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큰 빌딩은 많은데 도시 자체가 죽음의 도시처럼 느껴 졌다. 버스 정류장도 철문으로 막아 놓고 경비가 지키고 있다.
아침에 숙소에서 만난 호주인은 강도를 두 번이나 맞았다고 하면서 여권을 강탈 당해 호주 대사관이 잇는 프레토리아 까지 오게 되엇다고 투털 거렸던 것이 기억났다. 하여튼 조심하고 볼 일이다. 문자 송 수신이 되질 않는다. 전화 음성통화는 아내와 했는데...
차는 8시간 여를 달려 보츠와나 국경에 도착하여 입출국 신고를 했다. 보츠와나는 남아공이나 스와질랜드처럼 무비자입국이 가능하여 비자비가 소요되지 않는다. 보츠오나에 입국신고를 하고 밖으로 나와, 환전소에 들러 200달러를 환전하니 1달러 대 6.5 쁄라(pula) 밖에 안쳐 준다.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내 옆에 앉은 짐바브웨인은 이곳에 내려 다시 차를 갈아 타고 짐바브웨로 갈 예정인데 내일 아침에 도착한다고 한다.
캄캄한 밤에 이곳 보츠와나에 내려 어디로 갈것인지 많은 고민이 된다. 낮이라면 모르겠는데 밤에는 움직이는 것이 위험하다. 옆에 앉은 짐바브웨 젊은이가 이곳에 사는 자기 친구에게 전화해 줄테니 그를 따라 가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한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때 젊은 백인 커플이 얘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들이 모코로딜(Mokolodil) 백패크스에 간다는 것이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양해를 구하며, 그들을 따라 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택시비는 내가 반을 내겠다고 하니 숙소에서 픽업을 오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정류장 건너편에 모코로딜 백패커스 숙소의 주인이 딸과 함게 차를 몰고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약 20분 정도를 차로 달려 이곳 숙소에 도착했다. 도미토리 1박 사용료가 165쁄라(약2.5만원)로 다소 비싼 편이다(보츠와나는 물가가 비싼곳.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도 좀 산다는 지역이라고 들었다). 방은 침대가 네 개있는 각각의 통나무 집이 여러채 있고, 싱글, 더블룸 등 으로 되어 있다. 하여튼 손님이 없어 나 혼자 쓰게 되었으니 독방이나 마찬 가지이다.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이 시간에 달리 할 일도 없다.맥주 5병을 사서 바깥 정원에 앉았다. 같이온 젊은 커플은 내 옆 통나무 집에 숙소를 정했는데 그들 역시 맥주를 사들고 나와 같이 합석을 하게 되었다.
노르웨이인들 이라고 한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바이킹 이야기에서 남북 문제(북한에 관해 다들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여행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맥주 두병은 남겨두고 11시가 넘어서 잠자리로 들었다.
이곳에 오니 문자 수신이 된다. 그동안 몰려 있던 문자가 쏟아 진다. 안심이 된다. 이 먼곳에서 어딘가 소통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의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남아공이나 스와질랜드에서 비싼 방값과 택시비등 여러 가지 지출이 많았지만, 그 외의 경비는 아껴 사용했는지, 최초 계획한 예산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이곳 보츠와나에도 특히 조심해야할 우범지역이 있다면서 주인이 조심하라고 한다. 특히 이곳은 총기 사용규제가 없어서 묻지마식의 살인 행각이 있다고 겁을 준다.
2012.4.3.화.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일지를 쓰고 주방에 가니 아무 것도 없다. 그릇과 커피포트, 가스레인지 등이 있지만, 흔한 커피마저 제공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백패커스가 안전한 백인들이 사는곳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게까지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배낭여행하는 사람들은 숙소에 들어 가기전에 미리 먹을 거리를 사 들고 가야 한다.
다행히 이곳에 오기전에 스와질랜드에서 사온 과일(사과,귤,토마토)이 있고 빵도 있고 해서 가볍게 아침을 떼웠다. Wifi 사용은 무료라고 해서 비밀번호를 받아 접속을 해 보았는데, 역시 접속이 어렵다. 날씨가 쌀쌀하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그리고 넓고 호젓한 정원에 앉아 있다. 신혼 부부들이나 이런 한적한 곳에 오면 안성맞춤일 것 같다. 시내로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지금 8시50분이니 10시쯤 나갔다 와야 겠다. 시내까지는 한참 걸리는데 어떻게 되겠지. 이곳 주인이 말한 사이코 들이 사는 지역은 피해 가야 할텐데 걱정이다. 최대한 짐은 숙소에 놓고 가볍게 다녀 와야겠다. 지금 까지 강행군으로 다니고 있다. 워낙 지역이 넓다 보니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10시 쯤에 숙소를 나왔다. 한참을 걸어 도로로 나오니 봉고 버스가 지나간다. 5뿔라를 주고 버스 정류장과 큰 쇼핑몰이 있는 곳으로 왔다. 먼저 버스 정류장에 들러 마운(Maun)가는 차량편을 알아 보았다. 내일 아침 5시,6시,7시차 3편이 있고 예약 필요없이 오면 된다고 한다. 마운 까지는 대충 10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봉고차 속에서 랩 음악이 흘러 나오는데 온통 원색적인 욕설과 폭력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니미 X 팔(M - Fxxx)’, ‘X팔(Fxxx)’ 같은 욕이 예사로 자주 반복되어 나오고, 심지어 ‘남아공 깜둥이 너희들은 우리를 부끄럽게해(Soth Africa black people, You make us shame)’라면서 무엇인가 투쟁할 것을 부추기고 있으며, 스스로를 깜둥이(Neger)라면서 세상을 엎어야 하는 뉘앙스의 노래가 버젓히 방송을 타고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런 노래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나중에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아공과 이곳 보츠와나는 모순과 불합리가 난무 하는 것 같다. 8~9%도 안되는 백인들이 모든 부를 가지고 있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반면 (남아공 8%정도, 보츠와나 1%가 유럽인)대다수의 원주인 격인 흑인 들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헤메이고 있으니 이들의 불만은 팽배되어 있는 상황인것 같다. 지금도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곳 숙소에서 주인 아내와 할머니는 그늘에 우아하게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고 새벽부터 일하고 있는 흑인 남자와 여자는 정원을 돌보고 걸레를 들고 돌아 다니고 있다(둘다 짐바브웨에서 왔다고 함). 지금까지 다닌 숙소의 대부분이 백인이 주인이고 모든 종업원이 흑인인 그런 식이었다. 몇몇 현지인들과 악수를 할때도 흔히 미국 흑인들이 하는 식의 악수법으로 인사를 했다. 손을 맞잡고 다시 손을 돌려 엄지를 마주치고 마지막으로 주먹을 서로 부딪치는 악수를 했다. 세상의 모든 흑인은 악수 하나로 통일된 듯한 느낌이었다.
시내로 나와 쇼핑몰에 들어가니 현대식 빌딩으로 잘 지어져 있다. 환전소(Foreign Exchange)에 가서 150달러를 바꾸었다. 1달러 대 6.68쁄라 한다. 음식가게에 들러 돼지고기,햄,양파,고추,빵 ,국수(스파게티),스파게티 소스, 그리고 포도주 두병을 사고 돌아왔다. 올때는 택시를 탔는데 120쁄라를 달라고 하는것을 몇몇 기사를 건너 뛰어 80쁄라에 숙소로 돌아왔다. 기사는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어린데 폭삭 늙어 보인다. 내일 아침 5시에 숙소로 픽업 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젯밤에 만약 숙소를 못찾고 비싼 호텔에 잤으면 엄청 비용이 많이 소요되었을 걸 생각하고 돌아 올때는 편하게 택시를 이용했다. 한국에는 강풍과 강원도 지역에 계절에 맞지 않는 눈이 왔다고 하는데 이곳은 한낮이 덥다.
돼지고기를 삶고 양파쓸어놓은 것과 고추를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집에서 아내와 딸 사위에게서 걱정하는 문자가 왔다. 잘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곳 정원 마당에는 엄청나게 큰 돼지가 어설렁 거리고 다니고 있고, 어제 저녁에 만난 노르웨이 처녀는 1시가 넘어 일어난다. 또 한명의 서구인 여자가 아침에 투숙을 한 모양이다. 대체로 평온하다. 바깥에 다니며 늘 긴장하던 일이 지금은 편안하다. 포도주를 곁들여 음악을 들어며 넷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보츠와나의 넓이는 60만 평방 킬로미터이니 남한의 6배정도 되는 것 같다. 인구는 184만명이니 시골지역은 그야 말로 한적하다. 얼마되지 않지만 차로 달려본 아프리카는 광활하지만, 시골로 갈 수록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다. 다들 도시로 몰려 둘어 도시 빈민층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도시 폭력과 사회 갈등의 중요한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그동안 내가 만나본 이곳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 순박하고 착했다. 그러나 그들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웃음 뒤켠에 숨겨진 씁쓸한 모습이 이들의 고단한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것 같고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진 소수의 탐욕적인 백인들이 이제 조금은 양보를 통해 이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주 한병을 다 마셨다. 낮에는 가급적 눈을 부치지 않고 몸을 최대한 혹사하고 있다. 그리고 밤에는 숙면을 취하고, 다음날 아침에 누구 보다도 먼저 일어나 모든 것을 준비한다. 나이 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 때문에, 수염을 며칠째 깍지 않고 있다. 조금전 남아공에서 왔다는 나이든 사람이 자기는 60세라고 한다. 나는 그 보다는 조금 어리다고 했더니 믿기지 않는 다고 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젊게 보인다고 말해 줬다. 이곳에서는 일부러라도 나이를 조금 들어 보이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해가 구름 속으로 숨고 그늘이 지면서 날씨가 조금 시원해 졌다. 몇 시간째 정원에 앉아 노래를 듣고 글도 쓰고 앉아 있다. 내일은 10시간의 긴 차량 이동이 예정되어 있다.
2012.4.4.수.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밤에 몇 번을 깨다 말다 하다가 결국 새벽 3시에 포기하고 일어나고 말았다. 짐을 꾸리고, 빵 한조각과 귤로 아침을 떼웠다. 5시에 숙소를 나왔다. 문앞에는 경비가 밤새 지키고 있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이 곳은 백인들이 사는 지역인데 집집마다 큰 개들을 몇 마리씩 키우고, 큰 철문과 높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흑인 경비가 문앞에서 밤새 경비를 서고 있다.
캄캄한 새벽.밖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오질 않는다. 15분 까지 기다리다가 배낭 두 개를 메고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안전지대라고는 하지만 두려웠다. 후래쉬를 꺼내들고 10분 정도를 걸어 가는데 택시가 보였다. 늦게 왔지만, 반가운 마음이 앞서서 살갑게 대해 줬다.
10여분을 택시로 달려 정류장에 도착하니 ‘마운’으로 가는 버스가 막 정류장을 벗어 나고 있었다. 5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이제 떠나는 모양이다. 6시 출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올라 탔다. 제일 뒤쪽 창문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빈자리가 몇 개 보인다. 약간 졸려 눈을 붙이고 있으니 차장이 와서 차비를 걷는다. 175쁄라를 주었다.
아침이라 쌀쌀하다. 잠바를 걸쳐 입고, 있어도 창가로 쓰며 드는 바람이 차게 느껴 진다. 중간 중간 승객을 태우기 시작한 버스는 어느새 가득차고 서서 가는 승객이 10여명이 훌쩍 넘는다. 좌측에 2명씩 앉는 의자가 있고 우측에 3명씩 앉는 의자 가 있는 의자를 눈 짐작으로 헤아려 보니 70여석이 넘는 것 같다. 서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90명이 넘는 승객이다.
오전에는 그냥 잠만 잤다. 11시 쯤에 차가 서길래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나갈려고 하니 비좁은 승객으로 인해 빠져 나가는 일이 너무 어렵다. 바닥에도 짐들로 가득해서 걸어 나가는 일이 무척 어렵다. 어렵게 밖에 나와 화장실에 다녀오니, 차는 새로운 승객을 태우고는 바로 떠난다. 부랴부랴 올라 타려는데 역시 서 있는 승객들과 짐들로 인해 들어오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그 이후로 10시간의 장거리 버스 여행동안 내릴 생각을 포기하고 버스에 갇히고 말았다.
오후가 되면서 찜통 더위가 시작되는데 에어콘은 물론 없고, 이사람들은 차 창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창문을 열었더니, 오히려 닫아 달라고 요청을 하는 지경이다. 정말 힘든 버스 여정이었다. 4시경에 마운에 무사히(?)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Old Bridge Backpackers 로 가자고 하니 30쁄라를 달라고 한다. 정말 착한 가격이다. 20분은 족히 될 듯한 거리인데.... 도착을 하고 방(도미토리)를 배정 받았다. 많은 서구인 들로 북적인다. 1박에 145쁄라(2만원), 3박 요금으로 435쁄라를 지급했다. 가방을 침대위에 던져 놓자 말자 호수가 보이는 바(Bar)에 와서 맥주 두병을 시켜 놓고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시간은 5시 10분이다. 정말 길고 긴 하루 였다. 지금 생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며칠 푹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이동해 온 것 같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새벽에 빵 한조각과 귤 하나, 차안에서 빵한조각과 약간의 콜라를 마신 것이 전부(화장실에 일부러 가지 않으려고)인데 그냥 여기에 앉아 맥주부터 마시고 있다. 10시간 동안 차안에서 갇혀 있으니, 화장실 가는 것도 번거럽고 해서 그냥 참았었다. 이상하게 배는 고프지 않다. 이곳은 여늬 관광지 마냥 바에서는 서구 음악이 흘러 나오고 온통 백인들이 점령한 듯 하다. 외로이 동양인은 나혼자 인 것 같다. 맥주 두 캔을 했는데 벌써 취한다. 한국은 지금 새벽 1시를 향해 달려 가고 있을 것 이다. 조금 더 있다가 샤워를 하고 무언가를 좀 먹어야 겠다.
2012.4.5.목.
새벽 3시반에 일어났다. 날씨가 추워 플리스쉐타에 잠바까지 껴입고 잠을 잤다. 이곳 숙소(Old bridge backpackers) 는 무척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어 그 자체로 오카방고 델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듯 하다. 수 많은 백인 여행객들이 붐비고 있다. 야외 바에는 남녀 백인 여행객들이 휴양을 즐기고 있고, 그 자체의 모습을 보면 이곳이 어느 서구의 유명한 휴양지 인양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일하는 흑인을 빼고는 백인이 아닌 사람은 유일하게 동양인인 나혼자로 무척 외롭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캐나다인 젊은이 두명과 같이 주방에서 식사를 해서 먹었다. 나는 스파게티를 해서 먹었다. 양파 설어 놓은 것을 샀는데 양이 너무 많아 나눠 주니 좋아들 한다. 맥주 두병에다가 잭앤 콕 더블을 마셨더니 정신이 몽롱하고 잠이 와서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었다.
새벽에 일어나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있다가 빵과 토마토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호수가 보이는 탁자에 앉아 있다. 아침 해가 뜨는 호수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지금 시간은 7시 반. 캐나다 젊은이 둘이 짐을 싸서 떠난다. 어제 저녁에 만났지만 약간의 대화로 친구가 되었는데 떠난다니 섭섭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 떠날 때 많은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일정을 조금 조정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한곳에 3일씩 있는 것이 조금 취향에 맞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 처럼 하루 종일 낮잠을 자고 밤에 술을 마시는 등의 일정을 떼우는 것이 내 취향에 맞질 않는다. 전반적인 일정을 재 조정해야 겠다. 필요하다면 이디오피아 까지만 가는 것도 한방법일 듯하다.
이제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 나기 시작한다. 이곳의 경관이 좋다 보니 수 많은 관광객이 비행기를 타고와서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 같다. 물론 텐트를 갖고 다니며 이곳에서 50쁄라를 내고 텐트생활을 하는 젊은이도 있지만, 중년의 사람들은 대체로 비행기로 이동해서 이곳 싱글룸에 생활하다가 비행기로 다시 돌아 가는 모양이다.이곳 마운 ‘오카방고 델타’라는 유명한 습지대 때문에 아프리카 여행사들은 이 지역을 투어 상품에 포함 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 말고 이들 여행객들이 보고 가는 것이 무엇일런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들이 올려 놓은 물가 때문에 괜히 나같은 배낭여행객만 손해 보는 것 같다.
인터넷 사용이 무척 어렵다. 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는 20랜드(3천원)를 주고 접속했으나 불가능했었다. 보츠와나 가보로네에서는 무료였는데도 되지 않았었고 여기는 30뷸라(약 4천여원)를 달라고 해서 접속해 보니 역시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아예 돈을 돌려 받았다.
10시쯤에 시내로 나갔다가 왔다. 가는길은 걸어서 도로까지 한참을 걸어 나갔는데 버스가 오질않았다. 마침 이곳 흑인 처녀를 만나 길거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중년의 백인 여자가 친절하게 차를 태워 줘서 시내에 나가 잃어 버린 전기 연결 잭도 사고 음식물도 조금 사서 택시를 30뷸라를 주고 돌아 왔다. 여기 투숙객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는지 낮잠을 자고 그늘에서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게 전부이다. 독일에서 온 62세의 노인을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도 혼자 여행을 온 것 같다. 캐나다 청년 두명이 나가고 다시 두명의 젊은이가 내 방에 들어 왔다. 방에서 낮잠들을 자는 모양이다.
보츠와나는 우리보다 넓은 땅과 훨씬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잘 못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체로 기후도 괜찮은 것 같다. 그 답을 길에서 만난 흑인 처녀는 일거리가 없다고 말했었다. 공장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역시 삼성이나 현대등 대기업들에서 나오는 일거리가 없다면 그 많은 인구가 어떻게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런지 생각해 보았다. 농촌만 가지고는 현대를 살아 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이곳 아프리카에 와서 많이 느낀다. ‘스와질랜드’는 정말 비옥한 땅에서 먹을 거리가 풍족하게 나오는 데도 다들 어렵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호수 가까운 곳에 백인 총각 처녀 8명이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상을 잘 둔 탓에 저들은 저렇듯 풍요를 누리나 보다. 인생살이에도 일정부분 운명, 타고난 운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늘은 서늘하고 편히 쉬기에 좋은 날씨이다. 봄이온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는 지금 가을이라고 한다. 우기는 얼마전에 끝이 났다고 한다.
오후 3시경에 낮잠을 자려 해도 잠이 오질 않길래 낚시라도 하려고 사무실에서 낚싯대를 빌렸다. 그런데 낚시 바늘이 없다. 숙소바깥 건너 편, 다리에서 낚시하는 아프리카인 두명이 있어, 밖으로 나가 그곳으로 갔다.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며, 낚시 바늘을 팔 의향이 있는지 물었더니 하나 밖에 없다면서 그냥 가져 가라고 한다. 내친 김에 미끼도 얻었다. 특이하게 미끼가 소고기를 썰어 놓은 것이다. 입질은 자주 오는데 고기는 낚이질 않는다. 수 많은 작은 물고기가 뜯어 먹은 모양이다. 바늘이 커서 작은 물고기는 잡을 수 없고 공연히 작은 물고기에게 음식만 제공한 셈이었다. 간신히 작은 고기 한 마리를 건져 올렸으나 놓쳐 버렸다.
내일은 아침 일찍 낚시를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비싼 ‘오코방고 델타(미화 115달러)’투어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하루 종일 보는 것이 습지고 호수인데 돈을 따로 주고 하루를 허비하고 싶지 않다. 내일은 습지를 따라 걸어 가볼 생각이다. 낚시도 하면서 습지를 제대로 즐길 생각이다. 시내에서 사온 음식으로 맥주와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감자와 고기인데 보니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어서 좋았다. 이곳에서 사먹으면 50쁄라가 넘는데 밖에서 사온 음식은 17쁄라 정도였다. 식당의 음식은 양이 많아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괜히 아까운 음식만 버릴 뿐이다. 그대신 맥주랑, 포도주는 매일 같이 많이 마시는 것이 문제이다.
2012.4.6.금.
어제 저녁에 미국인 단체 손님이 들이 닥쳤다. 내 방에도 여자 둘이 들어 왔다. 저녁에는 역시 맥주와 잭앤콕을 마셨다. 여행 다니면서 저녁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이곳에 온 여행객들은 하나 같이 술을 많이 마신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체스를 두고 있던 남아공 사람은 오전부터 바에 앉아 맥주를 마셔 대었다. 사람은 괜찮아 보였다. 내게 친근하게 대하며 자기 친구와 함께 앉으라고 하곤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이 먹은 유럽인들은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은퇴하고 온 것 같다. 62세의 독일인은 한국에도 와 봤다고 하며 자기 부인은 아직 일을 하기 때문에 같이 못 왔다고 한다.
8시경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1시경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 났는데 그 시간에도 젊은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잠을 설쳤다.
아침 5시에 일어 나니 어제 온 미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사파리를 떠나는지 분주하다. 차량 두 대를 가득태운 차가 떠난다. 아내와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긴 5시지만 한국은 벌써 정오시간일 것이다. 물과 빵 그리고 요거트를 챙겨 가방에 넣고 후래쉬를 들고 6시경(아직은 어슴프레 해가 뜰려고 함)에 숙소를 나와 습지를 걸었다.
아침 해 뜨는 광경이 아름답다. 각종 이름모를 새들이 습지 주변에 몰려 있다. 이곳은 도시보다 사람들이 순박하고 안전하다. 이렇게 겁 없이 호젓한 숲길을 혼자 걸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만약에 대비해 결국은 소용없을 주머니칼을 만지작 거리며 위안을 삼았다. 습지일대는 걷기가 무척 불편하다. 소로길이 형성된 곳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경고판이 있어 보았더니 ‘Danger ! This water is infested!'라고 써 있다. 내용은 해충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인듯 하다. 어제 이곳에서 누군가 악어가 나타났다고 해서 달려 갔더니 사라 지고 없었다.
늪지(Swamp)을 빠져 나와 다시 숲길로 접어 드니 이곳 사람들이 사는 집이 드문 드문 나타난다. 아침 일하러 가는지 인사를 하니 다들 반갑고 친절하게 대해 준다. 백인들은 모두 차를 타고 다니는데 흑인들은 대부분 걸어 다닌다. 나도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니 자연히 현지인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 좋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유적지나, 관광지에서 인공으로 꾸며놓은 모습을 보는 것 보다 실제의 삶을 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큰 나무 아래에서 빵과 요거트를 먹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다시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 오니 8시가 넘었다. 아침 운동을 한 두시간 잘 한셈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이곳 종업원들에게 겨울 플리스 스웨터(골프칠때 입던옷)와, 자리(깔개),그리고 괜찮은 노트 한권을 나눠 줬더니 한 여자는 연신 ‘God Bless You'라고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안 입는 옷 가지를 좀 많이 가져 올 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짐 때문에 어려웠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일정을 조금 앞 당기기 위해 늘 내가 여행을 다닐때 비행기를 예약해 주는 한국 여행사 차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집트에서 5.19 ~5.21사이에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있겠는지(원래는 6.6계획)물었다. 검토해 보고 답을 주겠다고 한다. 한 곳에 며칠씩 머무는 것이 내게는 조금 고욕이다. 나 라는 사람 자체가 즐길 거리에 푹 빠지거나, 편안히 낮잠을 자며 푹 쉬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간에 힘은 들지만 차를 타고 이동 하는 것을 더 좋아 한다.
이 시간쯤(9시)이면 조금 더워 지기 시작할 시간인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인지 춥다. 잠바를 벗지 않고 그냥 입고 있다. 이곳은 가을 이라더니 오늘은 정말 우리나라 가을 기분이 난다. 아프리카는 마냥 덥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눈만 오지 않을 뿐이지 이곳에도 계절이 있는 것 같다. 건너편 습지에서 한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다. 나도 오늘 월척을 낚아 볼까?
낚시 미끼로 소세지를 작게 설어서 사용했다. 낚시 미끼로 쇠고기(어제)와 소세지로 해 보긴 난생 처음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작은 고기들이 역시 몰려 들어 금방 물어 뜯는다. 아예 오늘은 작은 고기만 잡으려고 미끼를 잘게 설어 시도를 해 보았다. 입질이 와서 건져 올리니 제법 큰 놈이 물려 올라 온다. 잡아 당기니 바로 앞 1m 지점에서 놓쳐 버렸다. 낚시 바늘이 문제이다. 어제 빌린 바늘이 휘어져 있어 어느 물고기이던 쉽게 빠져 나갈 수 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손 맛에 재미를 느낀 나는 1시간여를 낚시를 했으나 소득없이 끝났다.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5.19~5.21 사이에 어느 날짜이던 비행기가 가능하단다. 나는 5.19일로 해 줄것을 부탁하고 일정을 전면 재 조정하기 시작했다. 원래 6월5일 카이로에서 비행기를 타려던 일정이 5월 19일로 변경 되면서 차후 잠비아로부터 일정을 전면 재 조정 하기로 했다.
이곳 숙소(Old Brigde Backers)에서 운영하고 있는 액티비티는 배를 타고 오코방코 델타를 다녀오는 Mokoro Trip 이 1박에 665쁄라(11만원),Boat Trip 이 2틀밤에 3,850쁄라(59만원), 자동차로 하는 사파리(Mobile Safari)가 하루 3,025쁄라(46만원)이며 공원 입장료등은 별도 계산하는 것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일부러 이곳을 비행기로 찾아 놀러 오는 관광객들은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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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잘 구경합니다.
멋지군! 근데 위헙한 것 같네. 조심하시게나.
가보기 쉽지 않은 곳들...
많은 사진과 장문의 글에 감사드리고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장시간의 여행에
도전하는 정신이 아름답군요. 기회되면 좋은 글과 사진
자주 올려주세요. 땡큐!!!
덕분에 갔다오지 않아도 많은 지식 얻을수 있어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