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7장 교육과 학술이 올바른 인간을 만든다
7. 인간의 지성과 지혜를 하나로 모은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인류와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는 교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오랜 시간 학문에 종사한 교수들은 각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도 갖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대학들이 각 나라에서 설립되고 수많은 교수들이 학문을 연구했으나 그들이 한 가지 이념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한 적은 드물었다.
문선명은 이 점을 늘 안타까워하던 중에 세계의 교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1954년 대학생들을 위한 성화기독교학생회를 만들고 1964년에 대학원리연구회(Collegiate Association for the Research of Principles:CARP)를 발족시켰다. 카프는 대학생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 일을 했으며 각 학교별로 다양한 행사와 함께 세미나를 자주 열었다. 학생들의 공감과 호응이 높아지면서 많은 대학에서 교수들이 카프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통일교 원리교육을 들었는데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자 문선명은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교수모임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흩어져 있는 교수들을 하나로 모아야 좋은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어 1973년 5월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Professor's World Peace Academy:PWPA)가 시작되었다. 이 아카데미는 통일교에서 시작했으나 종교적 교리를 강요하지 않으며 오직 평화에 대한 연구, 학문 진흥, 학자들 간의 유대강화에 힘을 기울였다. 이는 창립취지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오늘의 세계는 고도의 과학문명을 자랑하고 있으면서도 숭고한 정신의 빛을 부합시키지 못한 채 어둠과 혼미 속에 방황하고 있다. 이에 하나의 진리와 절대선을 행동으로 구현하여 전 인류의 평화와 복지 및 새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자 우리 교수 일동은 국내외 학자들과 협동하고 아울러 성실하게 연구한 업적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공동의 장으로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를 창립한다.
1. 평화와 절대 가치에 관한 연구:평화의 보편적 개념 정립과 함께 평화학의 학문적 가능성을 탐구하며 현대문명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연구한다.
2. 학술진흥을 위한 연구와 지원:학문 분야 상호간의 학제연구를 강조하고 서울과 지방, 국가와 국가 간의 활발한 공동연구와 학술회의, 세미나, 심포지엄을 개최해 균형있는 학술연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
3. 학자들의 국제적 유대강화:세계 지식인들의 지혜를 광범위하고 효과적으로 결속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위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외에도 '이상적인 교육모델 개발',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했다. 첫 번째 대회는 1974년 5월 6일 서울에서 열렸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168명의 교수들이 참석해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인 적대감과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토론했다. 처음에 출발할 때는 168명에 불과했으나 20년 후에는 수천 명에 달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이항녕 홍익대 총장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나날이 발전해 전 세계의 저명 교수들이 분야를 뛰어넘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적인 단체로 발돋움했다.
1975년에 열린 총회에서는 학술진흥의 일환으로 아카데미상을 제정해 1976년부터 학자들의 학술활동을 지원하고 연구 의욕을 높이는 일에 착수했다. 우리나라 학자 가운데 매년 학문 업적이 독창적이고 탁월하여 민족문화 발전과 인류평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이 주어졌다. 인문, 철학, 공학, 자연과학, 사회학 등의 교수들에게 주어져 학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교수들의 학문연구만 지원하지 않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학문 전파에 전념한 것도 PWPA의 업적 중 하나다. 1981년 3월에 개설된 시민아카데미강좌는 평범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좌가 드문 시기에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참여를 가져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1986년부터는 향토학교를 세워 전국 곳곳에서 교양강좌를 열었다. 이외에도 평화학 학술세미나, 월례교양강좌, 종합학술대회, 비교사상 연구세미나, 국가발전 및 정책개발을 위한 정학세미나, 한일해저터널 연구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교수와 학생이 하나되어 전국대학교수학생남북통일운동연합을 만들었으며 1987년에는 크리스찬교수협의회(ICPA)와 함께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결성에 참여했고 1989년에는 옳은 사상, 바른 교육을 지향하는 「전교학신문」을 창간했다.
1983년 12월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제1차 세계대회가 열렸다. 문선명은 그 자리에서 학자들이 주어진 사명을 잊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오늘날 인류는 많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사상적인 대결과 혼돈 속에서 세계대전의 가능성과 핵공포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협은 인간의 심정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종교가 제구실을 못하는 사이에 여러 정치적・경제적 욕구를 중심한 체제들이나 그룹들이 과학적 지식을 잘못 이용하는 데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본인은 세계평화교수협의회가 인간 지혜의 계발을 위해 일생을 바쳐 진력해왔던 여러분 지성들에 의해 이 위기의 시대를 전환시키고 세계평화의 근원을 모색하는 견인차와 같은 기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협의회의 궁극 목표는 용기있는 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정의와 조화, 질서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와 교수님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을 전달하고 또 연구결과를 교육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생을 책임있게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1985년에 열린 세미나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훗날 문선명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해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1984년 문선명이 댄버리에 수감되어 있을 때 시카고대학 정치학 교수 몰턴 캐플런(Malton Kaplan)이 찾아왔다. 그는 다음 해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PWPA 총회의 주제에 대해 상의하러 왔다. 그가 가져온 자료에는 '소련의 변화에 대한 전망'이라 써있었다. 문선명은 즉시 대회 제목을 '소련의 멸망:공산주의의 종언'으로 고치라고 말했다. 캐플런 교수는 몹시 당황했다. 학문의 세계에서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캐플런 박사는 '사회학자나 과학자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토론 주제로 삼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문선명의 요구가 무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선명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 뜻이 관철되었다. 당시 저명한 학자들을 포함해 문선명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소련은 해체되었다. 캐플런은 이러한 문선명의 선지자적 예측과 PWPA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에 감동받아 훗날 이렇게 말했다.
"문선명 목사가 평화를 위해 했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그가 행한 어느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심정이다. 그는 너무나 크고 놀라운 심정의 소유자다. 그 심정으로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 그 심정은 너무나 커서 그에게 상처를 준 이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 그 심정으로 문선명 목사는 매일 하루에 21시간 동안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 심정으로 그는 모든 학문과 예술분야의 지식인들을 거대한 대학 연구소로 불러 모아 연구하게 했다.
1996년 7월에는 PWPA 교수 21명이 남미의 판타날을 방문했다. 그때 문선명은 우루과이, 브라질 등지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 깊은 오지마을로 세계 여러 나라의 교수들이 찾아왔으나 먹을 것도 부족하고 잠잘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밤늦도록 토론을 했다. 문선명은 동행한 선문대 윤세원 총장에게 300만 달러를 주어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 각국의 명사들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머물 수 있는 영빈관을 지으라고 했다. 교수에 대한 예우를 언제나 최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멋진 영빈관을 마련하라고 한 것이었다.
PWPA는 이후에도 세계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일을 쉬지 않고 했다. 1985년 '소련제국의 몰락'에 이어 1987년 '새로운 시대의 종국', 1989년 '자유민주주의 사회', 1992년 '21세기의 사회', 1995년 '세계속의 가정의 위치', 1997년 '인류의 특성과 본질' 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고 그때마다 세계 각지에서 저명한 교수들과 학자, 기자들이 대거 몰려왔다. 문선명은 종교 지도자와 교수들이 마음을 열고 더 헌신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30여 년 동안 PWPA를 후원했으며 그만큼 학문의 세계가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