亢龍有悔(항룡유회)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후회하게 된다’라는 뜻으로
원래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나 순자(荀子)의 유좌(宥坐, 자리
옆에 두고 교훈을 삼는다는 뜻)편에 인용되었다.
이 말은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은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서 성(盛)하면 쇠(衰)한다는 뜻의 물극필반(物極必反)과 상통하는 말이다.
공자가 어느날 노나라 환공(桓公)의 사당(祠堂)에 갔다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그릇을 보고 사당지기에게 무엇에 사용하는 그릇인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 그릇은 옆에 두고 교훈으로 삼는 유좌지기(宥坐之器)라는 그릇으로
텅 비어있을 때는 기울고, 반쯤 차면 반듯해 지고, 가득차면 뒤집어 집니다’라고 했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이 이야기들 듣고
‘가득 차고서 뒤집히지 않는 법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총명하고 훌륭한 지혜가 있을 때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지키고,
공로가 천하에 미쳤을 때는 겸양하는 모습으로 지키고,
용맹스러운 힘으로 세상을 주무를 때는 겁쟁이 같은 모습으로 지키고,
천하를 소유하는 부유함을 가지고 있을 때는 겸손한 태도로 지켜나가도록 해야 하느니,
이것이 바로 오만한 마음을 억눌러 겸양하는 방법이다’라고 가르쳤다.
유좌지기(宥坐之器):
(1)비어 있을 때, (2)반쯤 찼을 때, (3)가득 찼을 때
술을 잔에 70%이상 넘게 부으면 술이 새어나가 없어진다는 조선시대
계영배(戒盈盃) 역시 과욕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는 태백(泰伯) 제8편에서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사람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묻고,
있으면서도 없는 듯하고, 가득 차 있으면서도 텅 빈 듯하고, 남이 침범해도
맞받아 다투지 않는다고 겸손에 관하여 말했다.
(以能問於不能/이능문어불능, 以多問於寡/이다문어과, 有若無/유약무,
實若虛/실약허, 犯而不校/범이불교,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석자오우상종사어사의)’
공자는 세상 일이란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길을 찾아 처신해야 하며, 자신이 매우 성공
하여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겸손해야 그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공자는 흘러가는 물을 군자의 덕에 비유하며
‘물은 생명을 키우는 존재이면서도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어느 곳에도 미치지 않음이 없으며,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이 있다’고 하였다.
고은(高銀) 시인이 쓴 ‘그 꽃’이라는 시가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승승장구하며 성공가도를 달릴 때는 오직 높은 곳에 있는 것만 보이고,
그 성공이 영원히 갈 것 같지만, 결국 그 꼭대기에 오르면 내리막 길만이 있으며
그 길을 내려갈 때 올라갈 때에는 보지 못했던 작은 풀꽃과 같았던 것들
-가족, 친구, 이웃, 나눔, 관대함, 겸손함 등이 그제야 보이게 됨을 깨닫게 해준다.
옛날은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손에 쥔 권력과 부(富)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안하무인으로 호통치며 오만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영원히 갈 것 같던 권세가 마침내 유효기간을 마치고 소멸될 때 주위로 부터
경멸받는 초라한 존재가 될 자신의 모습을 그러한 사람들이 미리 볼 수 있다면,
한줌도 안되는 권세의 덧없음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예(禮)로써 대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옛 성인과 현인들이 겸손함의 소중함을 후인들에게 그토록 입이 닳도록
가르쳤건만 이를 깨우치지 못하는 것은 배움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