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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설교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열왕기상 22:19~23
설교를 위한 묵상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을까?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와 기나긴 역사를 하나로 엮을 주제 같은 것이 있을까? 우리는 먼저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기록된 책이라는 의미다.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이라는 큰 이야기가 있다. 이것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은 요한복음 5:39, 딤후 3:15~6 등이다.
나의 책 ‘하나님의 경륜’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랭크 바이올라는 성경을 간추려서 사랑과 처소, 그리고 백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바 있다. 그의 책, ‘영원에서 지상으로’(From Eternity to Here, Frank Viola)는 그것을 다룬다. 물론 나는 나의 책에서 열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성경을 정리했다. 그 소제목은 대리인, 처소, 백성, 궁극적 목적, 부활, 새 창조, 은혜와 율법, 스데반의 설교, 바울의 복음, 요한계시록이다. 여기서 나는 성경 전체를 다섯 개의 키워드로 요약하여 도표로 그렸다. 그것은 창조, 타락, 이스라엘, 예수님, 교회다. 이것은 톰 라이트의 책,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에서 나온 말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제목으로 성경이야기를 요약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로는 성경이 다루는 주제의 본질을 탐구했다. 그 과정에서 톰 라이트의 강연과 글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것이 최근에 나온 ‘성경에서 이미지를 읽어내기’ 시리즈다. 나는 지금 그 시리즈를 따라가면서 되새겨 보고 있는 중이다. 그 주제들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들로서 그 이미지가 성경 전체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다룬다. 그것은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라’는 말로 다시 표현될 수 있다.
나는 그 동안 형상, 성전, 바벨론, 죽음, 보혈 이상 다섯 개의 주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이것을 정리하는 설교를 했다. 앞으로 여섯 개의 주제가 남았다. 그것을 미리 정리하면, 십자가, 씨앗, 빛, 언약, 떡, 불이다. 이 주제들은 성경 전체의 이야기에 두루 나오는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성경의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주제들을 다루면서 그 중간에 새로운 영상을 번역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새 창조’다. 이 영상이 중간에 제공된 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들을 다루면서 더 큰 그림을 제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루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다루는 이미지들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영상에서 톰 라이트는 하나님이 새 창조의 일을 하시며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대리인으로 부르신다. 이때 대리인이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그는 양면의 거울처럼 하나님을 세상에, 세상을 하나님께 반영한다. 그것은 왕, 제사장, 그리고 예언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읽을 때 이 세 직분은 그리스도에 한정되지만, 톰 라이트는 이 세 직분이 바로 인간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고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것은 새 창조의 완성이라고 할 것이고, 그런 세상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위대한 목표를 향하여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곳이며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 앞에 서 있는 제사장이며, 또한 세상을 향하여 봉사하는 왕이다. 그런데 이것은 양면을 가진 거울처럼 이중적인 임무를 의미한다. 이런 임무를 잘 보여주는 직분이 예언자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회의장에 참석하여 그 뜻이 담긴 말씀을 받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기에 왕 같은 제사장의 임무와 동일하다고 하겠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아직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셨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일은 새 창조의 일이며, 왕 같은 제사장의 일이며, 동시에 예언자의 일이다. 그렇게 보면 사도 바울에게 몇 개의 직임이 중복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11).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린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제사장의 모습이다. 사도 베드로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벧전 2:9).
이번 설교에서 나는 성경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인 하나님의 새 창조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우리는 인사를 하는데 그 일이 무엇이고 그 일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우리는 그 일에서 어떤 몫을 담당하고 있는가를 정리할 것이다. 이것은 한 해를 마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설교 개요
1. 성경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는가?
2.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3.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가?
① 에덴동산과 가나안 땅
② 이스라엘과 교회
4.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① 왕
② 제사장
③ 예언자
5.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전망하기
***
1. 성경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는가?
안녕하세요? 오늘은 2024년도 마지막 날 밤입니다. 송구영신의 밤입니다. 금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간,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시간과 인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최근에 저는 성경 이야기의 구슬을 꿰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종합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방식으로 설명되었고 때로는 악한 일을 지지하는 근거로 잘못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를 합리화할 때 성경을 인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거나 여성이 목회자로 공적인 사역에 나설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성경을 인용하여 그런 주장을 펼칩니다.
성경을 오독하는 이런 경우를 살펴보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살핌으로 그 결과를 삶 속에 적용하지 않고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의 이야기를 인용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의 이야기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사이에서 우리는 비교하기도 하고 빗대기도 하면서 바른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노력이 멈추게 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삶의 문제를 성경으로 더욱 악화시키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하여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가 라는 질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배우고 들은 바를 되돌아보면 이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계획이나 소원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인류의 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는데요, 이 구절은 많은 성경의 구절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며 그 결과로 영생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교회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과 직결됩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는 당연히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주제가 다시금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와 교회의 사명과 직결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주제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며 이 세상을 관리하시고 주관하시며 새롭게 만드시고 결국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심판주라고 믿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다면 그것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새롭게 된 세상에 대하여 성경은 소개합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에서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65:17, 참고 66:22, 벧후 3:13, 계 21:1
이 구절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고 고치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하여 자기 형상으로 빚으신 사람들을 부르셔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위의 두 이야기를 비교하면, 하나는 이 세상에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여 저 세상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중요하며,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을 위하여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에서는 사람이 중심이며, 뒤에서는 이 세상 그 자체가 중심입니다. 앞에서는 구원의 완성이 사후에 천국에 들어가서 누리는 것이라면, 뒤에서는 구원의 완성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은 성경의 이해와 교회의 사역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저는 절감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배타적이 되는 이유는 그 근본적인 구원의 의미를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길은 하나뿐이며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두기에 우리는 다른 종교나 세상에 있는 선하지만 비신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포용적이고 가장 큰 사랑을 전하는 종교가 가장 편협하고 가장 배타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지금 성경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가진 생각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우리의 제일과제를 무엇으로 설정해야 할 것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성경의 이야기를 오해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교회가 성경의 이야기에는 분명한 주제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과 같고 사사시대의 암흑기와 같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불이며 우리의 길에 빛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명확해야 하며 우리의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오늘 송구영신 예배에서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는 제목으로 설교하겠습니다.
2.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공적인 예배에서 우리의 신앙고백처럼 인사를 나눕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입니다. 예수께서는 연못가에서 병 낫기를 바라는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환자는 38년 동안 걷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와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느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한복음 5:17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늘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실까요?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충만의 복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땅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 땅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아의 시대에 홍수 심판으로 나타났고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시도를 무력화시키신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며, 다윗의 나라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며,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많은 성경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내용이 무엇이고 그 일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이해해야 할까요? 많은 신자들이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갈 곳이고 진짜 세상이 저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보기에 심히 아름답게 지으셨고 이 세상을 사랑하시며 돌보시고 새롭게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성도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잠자는 성도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세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통째로 내려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곳이 거룩한 성전처럼 된다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자는 말합니다. 이 구절을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1~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이 세상을 관리하시고 치료하시고 바로잡으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병자를 치료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바로 그 일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어그러진 부분을 고치고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을 하실까요?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말씀으로 “이렇게 돼라!” 또는 “저렇게 돼라!” 하고 명하시는 분일까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설명하는지 보겠습니다.
3.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가?
① 에덴동산과 가나안 땅
② 이스라엘과 교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특별한 존재를 만드셨습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자기 형상과 모양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곳을 잘 경작하면 에덴은 온 세상을 비옥하게 적실 생명의 근원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자기 대리인을 통하여 이 세상을 관리하십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 동산에서 쫓겨나고 온 세상에 흩어졌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부르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아담 부부가 에덴동산으로 인도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이 에덴동산처럼 온 세상을 비출 등불이며 온 땅을 비옥하게 할 생명의 원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거니셨고 그곳에서 인간을 만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들이시고 그 가운데 처소를 지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만나시는 곳인 그 처소를 성막이라고 하고 회막이라고 부르게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선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고 인류를 통치할 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그 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빛나는 성막과 성전을 가진 민족이 되었지만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것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 앞에서 경배하고 온 세상에 축복이 되는 삶은 멋진 일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가 새 에덴과 같고 새 가나안과 같으며, 새로운 성전과 같고 새 이스라엘과 같다면 우리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소명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일찍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로마서 11:19~22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시며 심판주이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세상의 어그러짐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와 심판주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경영하시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십니까? 그것은 대리인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일하십니다. 그래서 아담에게는 에덴동산이 일터로 주어졌고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 땅이 줄로 재어준 구역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성전을 주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인 우리들 교회에게는 무엇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교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게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교회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옛 이스라엘을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의 부르심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이런 부르심과 지위와 직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28~30
이 말씀은 시편 8편에 있는 말씀과 유사합니다. 거기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께서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주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시편 8:4~6
이 두 고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을 맡아 관리하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지위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분과 임무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4.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 왕, 제사장, 예언자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맡은 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부르셨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지키고 경작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임무를 맡았습니다(출 19:6).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제사장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축복하고 지도하는 사람입니다. 민수기에는 제사장이 백성들에게 무슨 말로 축복을 하면 좋은 지 하나님이 알려주신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수기 6:24~2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같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힘입고 그 은총으로 세상을 축복할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제사장들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축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맡은 제사장적 임무는 우리가 제사장의 옷을 입고 세상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좋은 일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제사장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한편으로는 세상을 축복합니다.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일합니다. 그것은 사실 왕이 하는 일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경작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왕은 자기에게 주어진 영역을 관리하고 돌보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임무를 이중으로 설명했습니다. 그것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열리는 하늘의 회의를 엿본 사람입니다. 그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맡은 임무는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고, 그리고 예언자적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직무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맡은 직무를 이렇게 여러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디모데후서 1:11
그런데 구약성경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미가야라는 예언자가 나옵니다. 그는 악한 왕 아합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을 찾아와서 둘이 힘을 모아 잃어버린 고토를 되찾는 전쟁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때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에게 전쟁에 나간다면 하나님의 예언자들에게 승패를 물어보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예언자 400명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자들은 하나같이 왕에게 승리를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 왕이 보기에 그 예언자들이 미덥지 않았는지 다른 예언자가 없는가 물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왕은 미가야라는 예언자를 소개하면서 그 예언자는 늘 흉한 예언만을 늘어놓는다고 나쁘게 말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그 말에 도리어 신뢰가 가는지 그를 불러 전쟁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미가야는 다른 예언자들과 비슷하게 좋은 말을 했습니다. 그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리 언질을 주었던 것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이 길한 예언을 했으니 좋게 말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그 말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진짜를 말해 달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때 예언자 미가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흉한 예언이었습니다.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열왕기상 22:19~23
그러자 왕의 곁에서 예언하던 무리의 대표 예언자가 나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거짓 예언을 한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런 수모를 겪었지만 예언자 미가야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왕은 이런 예언을 듣고도 전쟁에 나갔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왕은 일반 사병의 옷을 입고 변장했지만 적군의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이 왕의 갑옷의 가슴막이 이음새 사이를 뚫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보고 들은 말씀을 그대로 이 세상에서 실천할 때 그는 하나님의 원수들에게서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매우 많습니다.
5.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전망하기
우리는 지금 송구영신의 시간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주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고 고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부르셨고 우리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셔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일은 인류가 본래 맡은 일이며 왕으로 세상을 돌보는 것이며,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 뜻을 듣고 전하는 예언자의 삶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일년을 보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면의 거울로서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바라보았습니까?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세상에 반영했습니까?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서 경배를 드렸습니까?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축복하듯이 선한 뜻을 펼쳤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그 앞에 엎드려 하늘의 회의에 참석하려고 노력했습니까? 그리고 그 뜻을 용감하게 나타냈습니까? 이런 질문은 우리의 일년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전망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는 왕이며, 제사장이며, 예언자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향하여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이 소임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우리 마음 속에 간직하고 다시 한번 빛나는 새해를 맞이해 봅시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