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안수를 받던 그 해 2월에 나는 충서지방회장에 피선되어 취임한 뒤, 3월 초순에 홍동면 화신리 저수지 부근에서 지방회 연합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홍성, 홍원, 장곡, 죽림, 광천, 화계, 담산, 월림교회 등이 참여했다. 그곳에서 합동침례식을 거행하기로 했는데, 침례주례자로 내가 선정되었다. 수침자(受浸者)들은 각 교회에서 침례문답을 끝내고 침례식에 참여하기만 하면 되었다.
때는 아직 차가운 날씨가 누그러지지 않아 겨울 같았다. 침례장소가 저수지인 까닭에 모두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찬 물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기에는 너무 무리인 듯 싶었다. 시간이 되었다. 나는 침례복을 입고 먼저 물 속으로 내려갔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물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많은 물을 누가 데웠단 말인가. 나는 너무 기뻤다.
수침자들이 열을 지어 하나씩 들어왔다. 첫 번째 수침자에게 침례를 베풀려고 하는데,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모든 것을 망각한 듯했다. 너무 긴장해서였을까? 나는 잠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쏜살 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노라”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 나의 기억이 순식간에 열렸다. 나는 주님께 감사하고 수침자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OOO 씨는 당신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장사되신지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하는 질문을 차례로 물었고, 그는 모두 “예”로 대답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OOO 씨에게 침례를 주노라” 하고 그를 물속으로 넣었다가 일으켜 올렸다. 침례식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장곡교회에 모여 주의만찬식을 거행했다. 참석했던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럽게 드렸던 은혜로운 집회였다.
그 후로도 나는 똑같은 방식으로 침례식을 거행한다. 여기서 나는 깨달은 것이 있다. 주님께서 침례식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며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이다. 나는 침례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곤 했는데, 그 말을 들은 타 교단 사람들 가운데 자진해서 침례를 받겠다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교회들 중에는 침례 외에 세례, 영세, 입교식 등 다양한 의식들을 거행한다. 교회사를 참고해 보면, 주후 250년경부터 유대교에서 개종한 교인들이 의식을 지나치게 신성시하여 침례를 성례전으로 바꾸었다. 침례를 받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이 사상을 발전시켜 유아세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의식으로 만들었고, 국가와 야합하여 세상권력을 나눠 가졌다. 그리고 그 권력으로 순수한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4).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입각하여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침례는 믿는 자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받는 귀중한 의식임을 믿는다. 침례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그 방법은 전신이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해야 한다. 이 의식은 절대로 변경할 수 없으며, 또한 철저히 고수되어야 한다. 우리는 선열들이 이 침례를 지키기 위해 불법과 타협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많이 희생을 당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침례는 겸손한 마음과 순종함으로 받아야 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인 교회에서 질서를 지켜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