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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믿음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2022년 12월 18일 주일 예배
본문 / 전도서 8:9-17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가치 있고 귀하게 여기는 것에는 가짜가 많습니다.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흔하지가 않습니다. 길에 널려 있는 돌처럼 원하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짜가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아주 귀합니다. 밤알만한 다이아몬드가 가격을 책정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다이아몬드를 아주 조그만 것을 금은방에서 한두 번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다이아몬드에는 가짜가 많습니다. 속아서 사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일부러 가짜를 사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짜인지 진짜인지 잘 모릅니다. 남의 다이아몬드를 망치로 때려볼 수도 없고 불에 태워볼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귀한 보석은 반드시 진짜임을 보증하는 감정서가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저는 불교가 이슬람교나 힌두교에 사이비 가짜들이 많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그들이 가짜와 싸우고 있다는 말도 못 들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종파가 나누어진 것이지 사이비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종교는 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가짜를 모방한 다른 가짜를 만들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가짜들이 많습니다. 초대교회가 생겨나자 곧바로 가짜도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교묘하게 바꾸어 다른 하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섬기는 가짜들은 시대마다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가짜 기독교가 생겨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일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구원을 받지 못할 가짜가 더 많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아도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적다 하셨고 천국은 들어가기를 원해도 못 들어갈 자들이 많다고 하신 것입니다.
정말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다면 나는 누구인지? 나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나는 가짜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말씀한 것입니다.
내 믿음은 내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진리 앞에서 말입니다. 나 이렇게 적당히 내 마음대로 믿고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 믿음이 맞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지 않고 덮어놓고 전부터 해오던 대로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간다면 영원히 후회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상한 것이 세상 것들에는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믿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는 얼마나 까다로운지, 옷을 살 때에는 얼마나 깐깐한지 물건을 파는 사람 속에 불을 질러도 자기 믿음은 어떤지 돌아보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 다른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정죄는 잘하는 것입니다.
왜 교회 안에는 가짜들이 많을까요? 교회에 가짜들이 많다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이런 생각을 해야 내 믿음은 가짜가 아닌 가 돌아보게 됩니다. 가짜들은 달리 가짜가 아닙니다. 가짜들은 자신이 진짜라고 착각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를 그 마음과 영으로 만나지 못해 거듭나지 못한 자들입니다.
본문에서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말씀합니다.
만약 사람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즉시 임한다면 회개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았더니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면 누가 용서하지 않겠습니까? 도둑질을 했더니 손이 바싹 말라 고통으로 죽어간다면 누가 도둑질을 하겠습니까? 음란을 것을 보면 눈이 아파 빠질 것 같다면 누가 그것을 보겠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는다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물질로 엄청난 손해를 본다면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프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내 마음대로 살아도 내 멋대로 믿어도 이 세상에서는 별 일이 없는 겁니다. 적당히 대충 믿어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당장은 유익이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이건 정말 고난인 겁니다. 당장 물질로 손해를 보는 겁니다. 물질의 고통이 오는 겁니다. 가족이나 친구나 사람들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겁니다. 외톨이가 되고 따돌림을 당하는 겁니다. 내 삶의 재미와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믿는 것이 쉽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적당히 믿는다고 그 죄에 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고 말씀대로 믿는다고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이 즉시 실행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실까요? 왜 이 세상에 있을 때 죄를 속히 징벌하지 않으실까요? 왜 악인들이 제 멋대로 살며 많은 교인들이 그 말씀대로 믿지 않은 그 가짜 믿음에 대하여 진짜인 거처럼 오해하게 놔두실까요?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에서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을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징벌이 즉시 이루어진다면 가짜들도 그 징벌이 두려워서 죄를 짓고 싶어도 짓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순전히 두려움과 고통 때문인 겁니다. 그들은 고통이 없다면 언제라도 죄로 자신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심판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니 나도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겁니다. 말씀대로 믿어도 그 보상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아도 말씀대로 한 번 믿어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즉 십자가의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 즉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은 자와 믿음으로 받지 못한 자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 세상에서 자기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다 드러나는 겁니다. 심판대 앞에서 확인만 하는 겁니다. 거기서 진짜와 가짜가 바뀌는 게 아닙니다.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했을 벌레만도 못한 죄인을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그 은혜를 마음과 영으로 즉 믿음으로 받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죄에 대한 징벌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것과 상관없이 그 마음에서 죄와 끝까지 싸우며 결국은 삶에서 죄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진짜들은 날마다 죽을 때까지 자신과 죄와 싸웁니다. 그래서 진짜들은 믿음의 길을 가는 길이 힘들고 피곤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늘 성령님을 붙잡고 의지합니다.
이 세상에서 말씀대로 산다고 그 보상이 임하지 않아도 그것과 상관없이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하신 그 좋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뜻대로 살아야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게 잘 안 되지만 넘어지면 하나님께 너무 미안하고 고개를 못 들고 속상해서 십자가에 앞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고 그 보혈로 씻음을 받고 다시 힘을 내어 순종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진짜들은 자신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을 박으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그 좁은 길만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진짜가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좁은 길 말고는 말입니다. 내가 죽는 길 말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만이 사는 그 십자가의 길만이 구원을 받는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교회에 나와 주여 주여 하며 예배하고 헌금도 내고 기도하고 돌아가니 다 구원받은 믿음 같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속사람이 변화되면 겉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몸이 목숨을 다하는 데까지 따라가는 겁니다. 그것을 뜻으로 정해놓으면 어떤 시험과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천국으로 인도할 사명이 있는 목회자입니다. 저에게는 천국에 가는 그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선포할 책임이 있는 겁니다. 제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두렵다고 천국복음 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대에 어떻게 서겠습니까?
하나님이 두렵지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듣든 안 듣는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 사명이고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믿음을 보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임을 믿으십니까? 불꽃과 같은 눈으로 내 모든 삶을 지켜보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내 마음과 영은 물론이고 스쳐가는 생각까지 다 감찰하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저는 목사이면서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셔서 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지식으로는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과 영으로는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하게 믿어집니다. 이것이 안 믿어지면 하나님 앞에서 버젓이 죄를 짓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능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영혼을 천국과 지옥으로 심판하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짜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겁니다. 한 번은 미국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한 성도가 묻더랍니다. 저는 하나님을 제 마음과 인생에서 첫 번째로 사랑하고 싶은데 이게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안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식들이니 실제로는 자식들이 첫째가 된다는 겁니다.
이런 성도는 자기 마음을 볼 줄 아는 정직한 사람이죠. 대부분은 자식과 돈과 일이 첫째여도 그 진실을 외면하고 그러니라 하고 꾸역꾸역 신앙생활을 하는데 말입니다.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자식이 첫째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라 속한 성도라면 하나님이 먼저야지 않느냐 말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첫째가 아니라면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다. 자식이 첫째라면 자식이 다 해줄 것이다. 만약 돈이 내 인생에서 첫째라면 돈이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을까요? 자식이 내 죄도 용서해 줍니까? 자식과 돈이 내 영혼을 구원해 줍니까?
전도서를 쓴 솔로몬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다 헛되고 나를 위해 사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처절하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너무 모르는 겁니다. 불신자들은 당연한 것이지만 교회를 그렇게 오래 다니며 십자가의 복음을 수도 없이 들어도 깨닫지도 믿지도 순종하지도 못하는 겁니다.
저는 저녁을 먹으면 밖에 나가 잠시 산책을 하는 그 시간이 행복한데 사람들을 보면 고통스럽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갈까? 퇴근하는 저 아주머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핸드폰을 보며 걷는 저 아이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의 결국은 죽음이고 그 죽음은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인데 심판대로 가는 그 길은 좁은 길과 넓은 길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죄와 싸워가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짜 믿음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가는 좁은 길, 생명의 길이 있고 하나님과 세상을, 하나님과 재물을,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두 주인으로 섬기며 자기 마음대로 적당히 믿는 가짜 믿음을 갖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 멸망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죽느냐 사느냐 이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가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농담이나 허언이나 과장으로 적어놓은 것이 한 말씀도 없습니다.
네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성경이 그렇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외면하고 어떻게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침묵을 오판하면 됩니다. 가짜 믿음으로 멸망의 길을 가는 악인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믿어도 되는 줄 아는 겁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자 그 믿음을 인정한 줄 압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내려 고난을 받아도 깨닫지 못하는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는 모순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것은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짜들은 세상을 사랑하기에 세상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보려고 하지만 그러나 진짜들은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곳임을 알기에 세상에 나타나는 그 외형이 아니라 영원한 승부가 결정되는 심판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세상에서 믿음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말입니다. 진짜가 될지 가짜가 될지는 이건 자신의 선택과 결정입니다. 하나님은 진짜가 되라고 진짜가 되는 믿음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말씀해주신 겁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적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잘 믿고 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다 있는 겁니다.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마음만 있다고 됩니까? 서울대가 생각과 마음만으로 가집니까? 정말 내 생각과 마음이 내 몸을 지배하고 다스릴 만큼 강한 생각과 간절한 마음이 아니면 몸을 움직이고 다스릴 수 없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믿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 회개하지 못하고 어느 날 심판대 앞에 가는 겁니다. 토끼가 늑대를 당할 수 있습니까? 어느 날 늑대가 토끼 하나를 발견하고 사냥하기 위해 무섭게 달려갔습니다. 늑대를 발견한 토끼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는 겁니다. 잡히면 죽는데 죽을힘이 안 나오겠습니까?
늑대가 이 토끼를 잡지를 못한 겁니다. 토끼가 하도 빨리 달리니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켜본 동물들이 늑대가 체면을 구겼다고 하는 겁니다. 그때 늑대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달렸고 토끼는 생명을 걸고 달린 거야! 라고 말입니다.
내가 생명을 걸고 달리는 토끼를 어떻게 당하냐는 겁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이, 성도의 구원을 향한 믿음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하나뿐인 생명을 걸고 달려야 합니다. 잡히면 죽는 겁니다. 생명을 걸고 십자가의 좁은 길을 가지 않으면 마귀에 붙잡혀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는 그 불지옥이 현실이 되는 겁니다.
이게 정말 마음과 영으로 믿어지면 목숨을 거는 믿음이 나오지만 이게 믿어지지 않으면 이렇게 믿으면 안 될 같은데 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겁니다. 이번에 수능 만점 받은 학생의 인터뷰를 보니 3년 내내 학교에 가서 저녁 11시 30분까지 공부만 했다는 겁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말입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들 놀 때 얼마나 놀고 싶고, 잠이 많을 나이에 얼마나 자고 싶겠습니까? 수능 때문에 다 포기하고 절제하고 참은 것 아닙니까? 누가 대신 공부해줍니까? 누가 대신 믿어줄 수 있습니까? 내가 스스로 나를 깨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잠은 깊어집니다. 나 이러다 지옥에 가는 것 아닌가? 의심하지 마십시오. 일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지옥입니다.
가슴을 치며 십자가 앞으로 나와 하나님 나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달라고, 내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회개하게 해달라고, 말과 생각이 아니라 마음을 쥐어짜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한 번 살게 해달라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주님 품에 안기게 해달라고 몸부림을 치며 생명을 걸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도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너무 안일함에 빠져 있습니다.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적당히 대충 믿어서 되는 구원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 예수님이 들어가기를 원해도 못 들어갈 자들이 많다고 하셨겠습니까?
왜 눈이 범죄하면 눈을 뽑으라고 하셨겠습니까? 왜 손과 다리가 범죄하면 잘라내라고 하셨겠습니까? 천국은, 구원은, 믿음은 자신의 생명과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내 육신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시간이 나면 교회에 나와 앉아 있다 간다고 되는 구원은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놓고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돈 보다 못하고 세상 일보다 못한 구원은 없습니다.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천국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사는 하루 하루가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천국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지옥에 비하면 천국입니다. 지옥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 한 방울, 밥 한 수저, 잠시 누워서 쉴 곳도, 수다를 떨 사람도, 가족도, 여행할 곳도 없고 오직 어두운 곳에서 영원토록 고통만 당할 뿐입니다.
그 지옥에서 가족을 만나면 그때는 가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인 그 십자가의 은혜를 믿지 않고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무 분명하게 믿었기에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마음과 목숨을 드리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십자가의 복음을,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심판을 들어도 마음과 영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심판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러려니 하며 하던 대로 할레요 하는 겁니다. 나도 믿음이 있어요. 나도 알아요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제 멋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결단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은 말씀을 통해 결단을 해야 합니다. 나 이렇게 믿어도 되나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있나? 천국에 목숨을 걸고 있나 말입니다. 기쁜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정신을 차리고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면 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자들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가슴을 치는 죄인들을 기뻐하며 끌어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은 인생 천국 가는 그 십자가에 길에 목숨을 걸겠다고 말입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겁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빨리 나와 기도로 준비하는 겁니다. 예배에 생명을 다하는 겁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에 20분이라도 무릎을 꿇고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말씀을 읽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길을 가야 될 것인가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한 문장이라고 내 마음을 고백해 보는 겁니다. 이것도 못하면 정말 천국에 갈 마음이 있는 것입니까? 서울대 간다는 놈이 하루에 20분도 공부하지 않으면 완전히 주제파악도 못하는 바보가 아닙니까?
저희 동네 몸부림이라는 학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썩어질 영광도 얻으려면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영광이 가만히 앉아서 그러려니 하는 안일한 마음과 나태함으로 되겠습니까?
제발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심판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때가 지나기 전에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붙들고 몸부림을 치며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진짜 믿음으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