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불승덕(妖不勝德)-요망한 것이 덕을 이길 수 없다 -이상호(전 천안아산경실련 대표,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1) 요망한 것이 판치는 세상을 보며 유튜브가 발전하면서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돈과 관련이 있다. 특정 인물과 특정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뉴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그들은 대중의 그런 심리를 이용하여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고 유언비어를 유포한다. 배우 선우은숙이 재혼 문제로 가짜 뉴스에 시달린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 유포한 사람들은 유튜버들이었다. 그녀는 소속사를 통해 ‘자기와 관련된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된 동영상들이 유튜브를 통해 무차별하게 유포돼 본인을 비롯한 가족, 주변인까지 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소속사는 ‘허위사실들로 가짜 뉴스를 제작, 유포, 확산시키는 이들에 대해 강력하고 엄중한 법적 조치에 나설 예정이며 결과에 따른 합의와 선처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유튜버들은 양심보다는 조회수라는 요망한 인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 요망한 인기의 뒤에는 돈이 도사린다. 세상이 어지럽고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요망한 방법으로 욕구를 충족하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도덕성과 공동체적 삶보다는 생존과 돈의 노예가 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세상에서 양심과 공동체적 윤리는 실종되고 요술(妖術)과 권모술수, 유언비어는 증식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확증편견과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를 공격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마치 자신이 구세주인 것처럼 포장하여 대중을 현혹한다. 그 중심에는 혼돈스러운 정치가 있고 혼돈스러운 정치에는 혼돈스러운 지도자들이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라에 흉한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왕이 덕이 없기 때문이며 덕이 없는 왕의 주변에는 아첨하는 간신이 들끓고 있다고 하였다. 왕이 덕이 없음은 그가 등용한 신하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신하들은 왕의 얼굴이다. 나라가 망할 때는 언제나 최고 통치자인 왕과 신하들의 무능과 이전투구가 극에 달했으며, 요망한 종교나 도술이 극성을 부렸다. 신라 말기도 그랬고, 고려 말기도 그랬으며, 조선 말기도 그랬다. 십상시들이 들끓었던 후한 말기 영제 때(서기 169년) 황제가 온덕전(溫德殿)에서 용상에 오르려 할 때 갑자기 광풍이 불더니 푸른 구렁이가 들보를 타고 내려와 용상에 똬리를 틀었다. 이를 본 황제가 졸도하여 쓰러졌다. 좌우 시중들이 황제를 침소로 이동하였을 때 신하들은 모두 제 살길을 찾아 도망을 갔다. 구렁이가 사라지자 천둥 번개가 치며 우박과 함께 큰 비가 쏟아져 수많은 백성이 물에 잠겨 죽었다. 그 외에도 요사스런 일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다. 십상시들에 둘러 쌓인 황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있었으며, 백성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그때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황건적 역시 [태평요술]이란 요망한 도술을 펼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난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황제가 덕이 없으니 요술이 득세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정의를 위하여 떨쳐 일어난 의인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았다. 후한이 망하고 삼국이 각축하다가 서진으로 통일되었다. 요망한 것을 정의와 덕이 이긴 것이었다. 이렇게 사악한 것이 덕을 이길 수 없다(요불승덕 妖不勝德)고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여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랐다. 구한말 일제가 침탈해 올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중들을 모아 놓고 일제의 침탈을 규탄하며 “진리는 반드시 밝혀지는 날이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고 하면서 자주독립과 외세 배격을 외쳤지만, 일제에서 벗어나는 과정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건설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2. 요불승덕 妖不勝德)의 유래와 의미 ‘요불승덕 妖不勝德) 즉 사악한 것이 덕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중국 고대 은 왕조 때 생겨난 말이었다. 은 왕조는 원래 상나라로부터 출발하였는데 상나라 8대 왕인 옹기제(雍己帝 기원전 1649〜1638)는 재위 12년간 정치를 망쳤다. 그는 정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냥을 즐겼으며 놀기를 좋아하였고 여색만 탐닉하였다. 제후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황제를 무시하여 조회에도 참석하지 않았으나 관심이 없었다. 정치는 어지러워졌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갔으며 아첨하는 신하들이 들끓었다. 요망한 뽕나무와 닥나무가 조정 울안에 자라더니 하룻밤 사이에 양손을 맞잡을 만큼이나 쑥쑥 자라는 것이었다. 민심은 흉흉해가고 요술은 들끓었다. 드디어 웅기제가 죽고 그 동생인 태무(太戊)가 즉위했다. 그가 은나라를 반석에 올린 9대 왕 태무제(太戊帝)다. 그는 명재상이었던 이윤의 아들 이척과 무함 등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겼다. 태무제는 조정안의 요망한 뽕나무와 닥나무들이 뻗어나간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다가 이척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이척이 왕에게 말했다. “이 모든 것들은 군주의 덕이 부족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군주가 덕이 부족하면 요망한 것들이 득세하며, 군주의 덕이 충실하면 요망한 것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악한 것이 덕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왕께서 덕을 닦고 선정을 베푸시면 저 요망한 것들은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옹기제의 덕이 없음을 질타하고 태무제에게 덕치 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태무제는 밤낮으로 글을 읽고 수양을 하였으며 덕치를 펴나갔다. 그러자 요망한 것들은 사라지고 현명한 신하들이 주변에 모였으며 백성의 삶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이척은 어진 신하인 무함으로 하여금 ‘태무제가 밤낮으로 덕을 쌓고 백성의 삶을 걱정하였기에 요망한 것들이 사라지고 태평의 시대가 온다.’고 대대적으로 칭송하도록 하였다. 이는 태무제가 덕치를 게을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태무제는 그런 이척을 왕과 같은 반열에 올려 대접하고자 했으나 이척은 극구 사양하였다. 이척은 겸양의 사람이었다. 이후 은나라는 다시 중흥하여 제후들이 은나라에 복종하게 되었다. 그래서 태무제를 중종(中宗)이라 칭했다. ‘요불승덕 妖不勝德)’에서 요(妖)는 요망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포괄적으로 사악한 것, 거짓된 것, 겉은 화려하나 속은 사악한 것, 비도덕적인 것, 정의롭지 못한 것 등을 포괄한다. 덕(德)은 순후한 것, 어진 것, 인간의 도리를 행하려는 의로운 마음과 행동 등 이를테면 정의롭고 어진 것을 말한다. 이는 공작 말한 충서(忠恕)와 같은 것이다. 가짜뉴스는 사악한 것이며 사실에 입각한 진실은 덕스러운 것이다. 대립과 투쟁은 사악한 것이며 화해와 용서는 덕스러운 것이다. 위에서 조정에 뽕나무와 닥나무가 어지럽게 자라나고 요술이 들끓었다는 것은 아마 사악한 것들이 득세하였다는 비유가 아닐까? 3. 요불승덕(妖不勝德)의 세상을 위하여 그런데 말이다. 지금도 가짜뉴스, 정치적 사기, 사이비 종교, 편향된 믿음에 의한 상대방의 처참한 공격 등 요망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보이스피싱, 파밍, 스미싱 등 사이버 사기에 시달리고 가짜뉴스와 의혹이 난무한다. 사이비 종교가 득세를 하고 점쟁이가 생활 속에 파고든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그런 국민 속으로 파고들며,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파적인 이익을 위해 국민을 확증편견으로 몰아간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천재기업가로 알려진 두 인물 즉 ‘여자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았던 엘리자베스 홈스(39, 바이오 벤쳐 테라노스 창업자)와 ‘코인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 먼프리드(30, 샘 뱅크)는 스스로 사기극이었음을 실토하여 실리콘밸리와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그야말로 요망한 것들이 득세하는 시대다. 그런데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를 제자리에 세우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인력이 낭비된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의 삶은 혼돈과 고통의 늪에 빠진다. 이 요망한 것들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부터 덕을 쌓고 덕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파적 이익을 희생할 줄 아는 것이며, 정치적으로 수많은 의혹 사건에 대하여 스스로 양심을 회복하여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일이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 스스로 덕을 쌓는 일에 충실하며 청렴을 최선의 도구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솔선수범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길이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의혹에 대해 모두 오리발이다. 여기다 요망한 것들을 물리치고자 하는 국민의 자발적인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국민까지 그들의 편에 서서 지지와 적대감을 드러내니 갈길이 묘연하다. 어쩌면 나라가 어지럽고 국민의 삶이 어려운 모든 것은 지도자들의 문제이다. 조선 중후기는 당쟁으로 얼룩진 처참한 사회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양란으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음에도 조선의 정치 지도자들은 당리당략과 이전투구에만 빠져 있었다. 그러자 뜻있는 선비들은 낙향하여 죽림현(竹林賢)이 되었다. 영조 때부터 조선은 잠시나마 중흥의 길을 맞이했다. 영조는 대대적으로 탕평책을 쓰는 과정에서 아들인 사도세자까지 뒤주에 가둬 죽게 했다. 뒤를 이은 정조대왕은 죽는 순간까지 글을 읽고 자신을 수양하였으며 덕을 쌓았다. 그가 쓴 일성록은 그가 얼마나 덕을 쌓고 덕치를 하기 위해 노력하였는가를 말해준다. 정조대왕 때 조선은 중흥했고 문화는 다시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그러나 정조의 뒤를 이은 왕들은 유약하였으며 그 틈을 타서 세도가들이 득세하여 세도정치와 당쟁으로 나라는 더욱 피폐하게 되었다. 임오군란이란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탐관오리들의 수탈과 폭정에 시달리다 못해 일어난 동학혁명 때 우리가 유럽에서 사들인 첨단 무기로 일본군인들이 조선 백성을 죽이게 했다. 구한 말까지 이어진 권력다툼 속에서 자주국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쳤으나 조선은 망하게 되었다. 이 모든 중심에 국왕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이 당리당략과 이전투구에 목숨을 걸면 나라는 분열되고 망한다. 그리고 국민의 삶은 도탄에 빠진다. 군주정치와 민주정치가 다른 것은 군주정치에는 최고 통치자인 왕을 국민이 선택할 수 없으나 민주정치에서는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을 국민이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최고 통치자인 국왕과 대통령이 나머지 관료들을 뽑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정치적 협력으로 가느냐 대립으로 가느냐에 따라 나라의 중흥이 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극한의 대립 선상에 서 있다. 모두 요망한 것들에 취해 있는 모양이다. 요불승덕 妖不勝德)으로 평화와 복지의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양심과 진실, 정의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기 싫은 것은 배척하는 확증편견에서 벗어나고 가짜를 배척하는 등 각자의 도덕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여기에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정말 요불승덕 妖不勝德)의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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