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의 의미와 예배의 유래
송구영신 예배의 유래
우리 한국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송구영신 예배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신학자마다, 또 교단마다, 교회마다 각각의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성경적인 의미로 송구영신예배의 의미를 해석할 수는 없다, 성경에는 송구영신이라는 단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신학자는 송구영신예배는 필요가 없다고 역설하면서, 복이라는 명명 아래 기복신앙을 유도하고 참 예배의 본질을 훼손하는 명백한 비성경적 이적 행위라고 규정하시는 신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이미 송구영신의 형식을 피하고 주일예배로도 충분히 새해의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신년에 대한 소망을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시작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송구영신예배라는 단어가 없다는 이유로 비성경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송구영신은 마지막 한 해의 시간을 보내고 신년의 가장 첫 시간을 맞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 그 소중한 시간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누가 비판하고 정죄하는가?
이미 한국교회는 송구영신예배가 교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성경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나팔절과 월삭으로 그 의미와 유래를 충분히 의의를 둘 수 있다. 월삭에 대해서는 우리가 널리 잘 알고 있듯이 첫날 첫 시간의 의미가 있음을 알고 있으니 별도의 설명을 드리지 않겠다.
다만, 나팔절에 대한 의의를 살펴보면 구약에서 신년절기는 나팔절이었는데 여호와께 드리는 특별 예배 명령과 관련되어 있다(민 29:1-6). 나팔절은 유대력으로 일곱째 달인 티쉬리월 초하루에 지켰는데 이날은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나팔을 불어 신년축제의 기쁨을 알렸다. 이때 나팔을 불었던 것은 기념과 심판의 날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하면서 성회로 모여 예배를 드렸다. 포로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에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새롭게 말씀으로 결단하여 성회로 모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느 8).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주시는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는 삶의 방향성을 새롭게 하는 날이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날에 신년절기(로시 하샤나)로 지키고 있는데, 기쁨과 함께 진지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다시 세우고, 그들의 사랑을 새롭게 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
초대교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신년절기를 지키며 전야의 예배를 드렸다. 영국의 감리교도들은 이러한 초대 교회의 관습에 따라서 신년 첫날 전야에 모임을 가졌다. 브리스톨 근교의 킹우드(KINGWOOD)라는 지역에서 열성적인 감리교도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이들은 기도와 찬양과 감사의 밤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 때가 대략1742년 초봄이었는데, 이들이 이처럼 비공식적으로 모이는 것을 보고 웨슬리가 이것을 채택하여 공식화했다. 이것은 '언약의 예배'(Covenant Service)라고 한다.
영국의 감리교도들은 이러한 초대 교회의 관습에 따라서 신년 첫날 전야에 모임을 가졌다. 브리스톨 근교의 킹우드(KINGWOOD)라는 지역에서 열성적인 감리교도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이들은 기도와 찬양과 감사의 밤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 때가 대략1742년 초봄이었는데, 이들이 이처럼 비공식적으로 모이는 것을 보고 웨슬리가 이것을 채택하여 공식화했다. 이것은 '언약의 예배'(Covenant Service)라고 한다.
이후 수개월 만에 브리스톨, 런던, 그리고 뉴캐슬 같은 감리교의 주요 도시에서 철야는 정규행사가 되었다. 이때 철야 예배는 보통 저녁8시30분부터 시작해서 밤 12시 30분까지 모였는데, 만월 즈음의 금요일에 모였기 때문에, 집회 참가자들은 밝은 달빛을 의지하여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철야는 공적으로 모였으며, 만월 즈음의 금요일 이외에도 감리교가 지키는 금식일과 특별히 신년 전야에 모였다. 이것은 아마도 신년이 오는 것을 보기 위해 제안된 민속적이 요소가 있는 듯하다. 19세기를 거치며 철야는 신년전야로 제한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성공회와 자유 교회들이 신년 전야 철야 모임을 채택했다.
웨슬리에 의해 소개된 예배순서는 다음과 같다.
(1) 경배
(2) 감사
(3) 고백
(4) 언약
(5) 침묵의 기도
(6) 축복
한국교회의 송구영신 예배는 교회력의 절기는 아니다.
그러나 교회의 정식절기가 아니라고 해서 그 의미가 소중하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은혜로 살아온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새로 허락하시는 새해를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에서 맞이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교회의 중요한 예배의 장으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는 송구영신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력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한국교회 목회 현장에서 중요한 장으로 자리 잡았다. 온 교회가 함께 모여 한해를 돌이켜 보며 감사와 나눔, 기도와 예배 순서 등을 가지면서 감사드림, 결단, 신앙고백의 회복, 공동체성을 다지는 자리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또한 송구영신예배는 온 교회가 함께 모여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말씀 앞에서 잘못을 회개하면서 기도와 찬양 가운데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절기예배이다. 이것은 교회의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 예배와 나눔, 기도와 축복, 친교와 교제의 시간으로 발전시켜간다면 신앙생활의 풍요로움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영국의 감리교회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복원한 것처럼 기복적인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움 받은 것에 감사하면서 우리를 불러 세우신 언약 갱신에 초점을 맞추어 한해를 돌아보며 회개의 시간으로, 주시는 새해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언약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게 하는데 목회적 의미를 두는 것이 좋겠다. 한해에 대한 반성과 회개, 은혜에 대한 감사, 말씀 앞에서의 새로운 결단, 새해를 허락하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내게 주신 사명을 따라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좋은 목회적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의 유래를 살펴보면 1887년 12월 31일 당시 서울에 있던 정동교회(새문안교회)와 베델 교회(정동 감리교회)가 연합하여 드린 것이 최초이다. 앞서 송구영신예배의 유래에서 보았듯, 본래 송구영신예배는 감리교회의 예배로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해 소개되었고, 언약예배, 혹은 언약 갱신예배(Covenant Renewal Worship)라고 불려졌다. 후에 야성회(Watch Night Worship)로 불려지기도 했는데, 지나간 1년을 뒤돌아보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해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세우는 순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장로교회의 전통에 없었던 이 예배가 1887년 처음 언더우드(Underwood) 선교사와 아펜젤러(Appenzeller)선교사에 의해 드려짐으로서 한국 장로교회에도 이 예배가 전파되어 지금은 한국 장로교회의 자연스런 예배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송구영신예배를 통해 소중한 첫 시간을 말 그대로 묶은 해는 회개와 결단으로 잘 마무리 하고 믿음 안에서, 진리 안에서 새롭게 주님의 빛으로 나아가 더 사랑하고, 더 충성하고, 더 희생하리라는 각오로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한다는 것은 더 없이 소중한 시간과 예배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감리교나 성경교단의 목사가 아닌 합동에 소속된 장로교 목사이다. 어느 인터넷에 송구영신의 유래라고 소개한 신학자의 말에 의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에서만 드려지고 있는 예배가 송구영신예배라고 하고, 차라리 가정에서 조용히 드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물음에 조금만 더 눈을 열어 물질을 탐하고, 기복신앙의 위험 때문에 송구영신예배의 가장 귀하고도 소중한 시간의 의미를 다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안타까움으로 이 글을 맺는다.
밝은빛교회 유 지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