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던지다
예수님, 저는 이것을 계속 요청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 대담한 소원의 무게에 짓눌릴까 봐 겁이 났으니까요..... 이런 청을 대담하게 드린 데 대한 핑계는 제가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말이 가진 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부모들이 옥좌에 앉아 한없는 보물을 차지하게 된다면, 자신만큼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의 청을 서슴지 않고 들어줍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주책없는 일도 저지르고,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가톨릭교회의 어린아이’이고, 가톨릭교회는 임금님 중의 임금님이신 당신의 정배이자 여왕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간구하는 것은 재물이나 ‘영광’(천국의‘ 영광’이라 할지라도)이 아닙니다. 영광은 당연히 제 형제들인 천사와 성인들의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아이의 영광은 그의 ‘어머니’의 이마에서 비치는 빛일 것입니다.
이 아이가 청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오, 예수님, 어린아이가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당신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빛나는 하늘의 사업은 그 아이가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 피를 흘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아이의 형제들이 대신 일을 하고, 그 아이는 임금님과 여왕님의 옥좌 곁에 붙어 서서 싸우는 형제들을 대신하여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행동으로 증거할 수 있는 것인데, 그는 자신의 사랑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요? 방법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꽃을 던질 것’입니다. 꽃향기로 옥좌를 향기롭게 하고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님, 제 목숨은 이렇게 타 버릴 것입니다..... 제가 당신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저는 꽃을 던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조그만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마디 놓치지 않는 것 등 아주 작은 것들을 사랑을 증거하는 데 이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으로 괴로움을 받고, 사랑으로 즐거움을 맛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옥좌 앞에 꽃을 뿌리겠습니다. 한 송이 꽃이라도 만나면, ‘꺾어서’ 당신을 위해 던지겠습니다. 그리고 꽃을 던지면서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이처럼 즐거운 일을 하면서 울 수가 있겠습니까?). 가시덤불 속에서 꽃을 따야 하더라도 노래할 것이며, 가시가 길고 따가우면 따가울수록 제 노래는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예수님, 제 꽃과 노래가 당신께 어떤 역할을 할까요.....? 아~! 향기로운 비며 여리고 이름 없는 꽃잎이며, 가장 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 사랑의 노래가 당신을 기쁘게 하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습니다. 이 하찮은 것들이 당신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것들은 ‘개선 교회’의 미소를 자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사랑으로’잎이 뜯어진 저의 꽃을 주워 당신의 거룩한 손을 거치게 하고, 이 천상 교회도 자신의 어린아이와 같이 놀려고 당신의 거룩한 손이 닿아 무한한 값을 지니게 될 이 ‘꽃’을 던질 것입니다. 천상 교회는 이 꽃들을 단련 교회(연옥의 교회를 의미한다)에 던져 그 불길을 끄려 할 것이고, 신전 교회(지상의 교회를 의미한다)에 던져 그에게 승리를 거두게 할 것입니다.
오, 저의 예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어머니이신 교회를 사랑합니다. “깨끗한 사랑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행동이 다른 사업을 모두 모은 것보다도 교회에 유익하다.(십자가의 요한 성인<영적 찬가>주해 29절)”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깨끗한 사랑이 제 마음속에 있을까요.....? 이러한 끝없는 제 소원이 꿈이나 망상은 아닐까요.....? 아! 아니라면 예수님, 저를 비추어주십시오.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진리’를 찾습니다.
만약 제 소원이 허무맹랑한 것이라면, 이 소원들이 제게는 가장 괴로운 것이니 없애 주십시오..... 오 예수님. ‘사랑’의 가장 높은 곳을 동경하다가 다음날 그곳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제가 세상에서 가졌던 희망의 기억을 당신이 없애버리지만 않으신다면 저는 ‘기쁨과 즐거움의 나라’에서 맛볼 기쁨보다 더 많은 기쁨을 제 사랑에 대한 ‘괴로움과 맹랑한 생각’에서 맛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귀양살이하는 중에 사랑을 동경하는 기쁨을 즐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괴로움의 즐거운 쓴맛을 맛보게 해 주십시오.
첫댓글 조그만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마디 놓치지 않는 것 등...이러한 것들도 실천하기 무척 힘든 것 같아요. 성녀님처럼 우러 나와 실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한 송이 작은 꽃이 되어 기꺼이 던져진 성녀님... 사랑을 동경하는 기쁨을 즐길 수 있게, 괴로움의 즐거운 쓴맛을 맛보게 해 달라는 당신 딸의 소망을 주님은 얼마나 기쁘게 들으셨을까요. 그 거룩한 사랑을 배우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