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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훈박사 육사총동창회 초청강연 녹취자료'
아래 내용은 육사 총동창회가 2010년 1월 28일 전쟁기념관 뮤지엄 웨딩홀에서 가졌던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 초청 강연(주제 : 21세기 한민족시대, 지도자의 비전과 사명) 내용을 녹취한 것입니다. 이날 250여명의 동문회원들이 참석하셨는데 모두들 감명 깊은 내용이었다는 반응들이셨습니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한번쯤은 고민해 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들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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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의 생애를 통해서 정말 뜻있는 날로 기억되겠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대 선배님들 앞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저는 어제 밤에 잠을 설치면서 여러 가지 지난 과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테마를 가지고 이 귀중한 시간을 진행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조국이 지금 어떤 역사적 고민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중심으로 다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2010년은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잃어버린 역사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지난 20세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을 맺고 일본에게 모든 외교문서를 넘겨주었습니다. 1909년에는 옥쇄까지 일본에 넘겨주지요. 1910년 10월 17일, 한일합방으로 우리 민족이 역사에서 몰락을 했습니다. 금년은 잃어버린 100년입니다. 잃어버린 100년 앞에 서서 앞으로 100년 후에 우리 후세들은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고민해 봐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많이 공부한 외국인 학자가 하버드 대학의 요한 와그너입니다. “역사의 대실패” 라는 두꺼운 책을 썼지요. 이 책에서 조선 왕조가 멸망한 원인,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원인을 놓고 20세기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바깥사회를 몰랐다. 밀려오는 서구 문명과 손잡았어야 할 시기에 우리 조상들은 수구를 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선교사, 외국인들이 문을 열라고 두드렸지만 우리 조상들은 끝내 문을 닫아걸어 버렸습니다. 일본이 명치유신을 통해 세계문화를 받아들였는데... 조선조 멸망의 첫 번째 원인은 “역사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는 것입니다.
둘째, 관료집단이 부패했다는 겁니다. 양반계급이, 지식계급이 썩어 버렸어요. 당시 고을 원님들이 천하의 악질들이었고, 농민을 엄청나게 수탈했어요. 원님들이 오늘날의 3권을 다 가졌습니다. 멋대로 법을 만들고, 행정력을 동원하고, 경찰력을 휘두르면서 농민을 학대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농민들이 이들에게 대듭니다. 이게 동학란입니다. 머슴과 주인이 싸우고, 양반과 상놈이 싸우고, 전 국토가 살인, 방화, 약탈의 난리 속에 들어갔습니다. 불행하게도 왕이 자기나라 군대를 가지고 난리를 다스리지 못했어요. 청나라에 구원병을 청합니다. 일본사람이 가만히 있어요? 지금의 남한산성, 구리시 주변에서 청나라와 일본군이 맞붙어 일본이 이겼습니다. 전쟁 후에 조약이 맺어지죠. 이 조약 내용이 치욕적입니다. 첫째, 일본사람에게 치외법권을 달라. 조선 땅에서 사람 죽여도 죄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무법천지가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일본상품에 세금을 받지 마라. 물건은 팔아먹으면서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 일본화폐를 유통해라. 말이 됩니까?
세 번째, 국론이 분열됐다는 겁니다. 다가오는 20세기 앞에 명치유신으로 일본이 야심을 키우고,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하고, 세계적인 식민지 국가로 영국이 커가고,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열어가고... 20세기를 앞두고 전세계가 분주해 있었는데 우리 조상들은 개화파와 수구파가 싸우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왕실에서 싸우고, 끝없는 싸움을 일삼아 역사를 놓쳤어요.
한민족의 잃어버린 100년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동족 500만 명이 죽었습니다. 100년 동안에 500만이나 죽은 민족은 우리 밖에 없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하다 총칼 맞아 죽은 사람이 70만이고, 찬송가 부르다 잡혀 죽은 기독교 신자가 30만입니다. 6.25동란 때 동족끼리 싸워 400만이 죽었습니다. 동족끼리 싸우다 400만이 죽은 민족도 우리뿐입니다. 미국도 남북전쟁 때 120만 밖에 안 죽었습니다. 이 땅에서 살 수 없어서 이민 간 사람이 400만입니다. 이중 300만은 만주로 갔습니다. 만주로 가면 부자가 될 줄 알았지요. 중앙 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을 가보세요. 제가 세 번 다녀왔는데 갔다 올 때마다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50여만 명의 고려인들,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하바로프스크에 살던 고려인들을 스탈린이 기차에 싣고 가서 중앙 아시아의 추운 얼음판에다 던져 버렸어요. 그 고려인들이 얼음판을 깨고서 농사를 지어 지금 50만이 살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가 보세요. 고려인들이 9만 명이나 살고 있는데 국적이 없어요. 지금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이 175개 국가에 750만 명쯤 됩니다.
비극적인 역사 앞에서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무거운 역사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 평생을 조국에 바친 사관학교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조국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를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정말 열심히 한 시대를 살아온 노학자입니다.
저의 인생이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세 번이나 군대를 갔다 온 제 운명은 하늘이 축복해 주신 인생입니다. 1950년 고려대학에 입학하자마자 6.25가 터졌어요. 한강다리가 폭파가 되는 바람에 고향도 못가고, 6월 28일 미아리에서 북한 탱크가 들어오는데 하루아침에 서울이 인민공화국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의용군이 되어, 낙동강 전투에 끌려갔습니다. 영문과 4학년 선배가 "거기가면 다 죽는다. 미군이 돌아올 것이다. 도망가자." 밤 12시에 탈출했습니다. 고향 전북 김제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아버님은 면장을 했다고 반동분자로 갇히시고, 감자 캐 먹으며 숨어서 견뎠습니다. 9.18 수복 후 고려대 피난학교에 갔더니 교육도 시키지 않고 군복을 입혀 백마고지 전투에 투입했습니다. 미군 3사단하고 같이 열심히 싸웠습니다. 석 달간 고생을 했는데, 어느 날 영어하는 사람 손들라는 거에요, 제가 손들었더니 미군 3사단 노무자부대 통역관을 시켰습니다. 1년 2개월 열심히 통역을 했습니다. 1년 2개월 후에 노무자부대가 해체됩니다. 집에 와서 군대갔다 왔다고 병무청에 신고했더니 뭐라는 줄 아세요. 학도병은 군번이 없어서 또 군대를 가야 된데요.
그 때 마침 국비 해외유학시험이 있었는데, 유학시험에 합격을 하면 공부하는 동안 군대 징집을 연기해 준다는 특전이 있었어요. 군대 안가기 위해서 유학시험을 봤습니다. 전부 미국을 가는데 저는 서독을 택했습니다. 라인 강의 기적을 찾아 가보자. 그래서 우리나라 국비 장학생 제 1호로 서독에 갔습니다. 목숨 걸고 공부했어요. 1958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경제학박사 1호가 되어 1959년 12월 5일 돌아왔어요. 흑석동 중앙대학교 교수를 했습니다.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1961년, 군사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군사정부 첫 번째 조치가 병역 기피자 소탕작전인데 제가 걸렸어요.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화물차에 실려 논산 훈련소에 갔어요. 6천명 훈련병 앞에서 써주는 것을 읽으래요. "나 경제학 박사 백영훈 군대 안 갔습니다. 국가 위해서 충성하겠습니다." TV와 기자들이 와 있는데 써주는걸 일주일 동안 매일 읽었어요. 열심히 훈련받고 있는데, 하루는 중대장실에서 연락이 와서 보따리를 싸래요. 기차타고 서울역에 내렸더니 짚차 두 대가 와 있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습니다. 일주일 동안 세뇌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했냐하면 경제개발 제1차 5개년계획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세계은행 통계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세계 145개 국가 중 제일 못사는 나라가 인도였습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60이었어요. 그 바로 위가 south korea, $68입니다. north korea는 $78,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산다고 나옵니다. 거기서 제가 5개년 계획을 만들었는데 왜 만드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한국 군사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경제 원조를 끊어 버렸어요. 한국에서 쿠데타가 성공하면 동남아시아 국가 군인들도 일어난다는 겁니다. 미국이 경제 원조를 전부 중단할 때이니 혁명정부의 앞뒤가 콱 막혀 버린 것이지요. "라인강의 기적, 분단국가 서독에 가서 돈을 꿔 보자" 마지막 카드가 서독 정부였습니다. 육군중장 출신을 독일대사로 보냅니다. 대사가 부임해 가 봤더니 외교관 다섯이 있는데 독일 말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찾아 봤더니 독일서 공부한 경제학 박사 한명이 있다는 거에요. 최고회의 의장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논산 훈련소에 갔다는 거에요. 논산 훈련소에 갔더니 중앙정보부에 와 있더라는 거죠. 그렇게 해서 중앙정보부에 있다가 상공부 장관실에 갔습니다. 그때 상공부 장관이 여기 계시는 정래혁 장관이십니다. 상공부는 명동 입구에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을 쫙 모아놓고 발령장을 주는데 "상공부장관 특별보좌관 육군 이등병 백영훈" 이렇게 나오더라구요.
육군 이등병이 장관님을 모시고 독일에 갔죠.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밤잠도 설치며 매일 연구하고 호소하고... 눈물겨운 호소 덕으로 서독정부가 1억 5천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우리에게 주기로 합니다. 그 조건으로 광부, 간호사를 독일에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물어 옵니다. 석탄을 캐야겠는데 광부가 없다는 거죠. 병원을 짓는데 간호사가 없어요. 독일 대사가 최고회의 의장에게 긴급 전보를 칩니다. 광부 5천명, 간호사 2천명을 모집해서 빨리 독일로 보내주십시오. 광부 5천명 모집에 4만 7천명이 응시를 했습니다. 간호사 2천명 모집에 2만 7천명 왔어요. 독일에서 보내준 루프트한자기로 1963년 12월 26일 제 1진이 독일에 갑니다. 광부 500명, 간호사 50명, 당시 김포비행장은 눈물바다였죠.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대사관에서 그들의 고용계약서에 임금을 몽땅 독일 코멜스 은행에 예금한다는 각서를 넣어 월급을 담보로 또 돈을 빌립니다. 몸과 월급을 담보로 상업차관을 받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광부 간호사들이 참 열심히 일했습니다. 간호사들이 시골 병원에서 밥 한 끼 먹고 죽은 시체를 닦습니다. 마루 바닥 닦고, 청소하고 궂은일 전부합니다. 광부들이 지하에 내려갈 때 팬티만 입고 내려갑니다. 옷 입으면 더워서 못 내려가죠. 얼굴이 새까매서 올라옵니다. 독일 정부가, 독일 국민들이 이 광경을 TV로 봅니다. 그들이 감동합니다. 우리 간호사들 보고 코리아 엔젤이라 부릅니다. 이 감동이 나라를 살리죠. 1964년 12월 5일 뤼프케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독일로 초청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인정해 주지 않던 한국 대통령입니다. 광부들이, 간호사들이 뿌린 눈물가지고 독일 사람들이 감동해서 이런 민족은 좀 도와주자, 독일 국회 의결로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게 됩니다.
군대생활 끝나고 제가 중앙대학 교수로 복직한 다음의 일입니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서 갔더니 대통령이 "한번 더 도와주시오", "뭘 도와 드릴까요?", "독일 가는데 통역관이 없어요.”, "영광입니다. 제가 모시고 가죠." 대통령 경제고문을 맡고 독일정부가 보내준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타고 36명이 독일방문에 나섭니다. 우리나라 국가 원수가 해외에 나간 게 이 때가 처음입니다. 퀼른 비행장에 독일 사람들이 태극기를 가지고 우리 대통령 내외분을 환영해 주는 광경을 상상해 보세요.
다음날 광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탄광촌을 찾았습니다. 1000m 땅속에서 올라와 500명의 광부들이 차렷 자세로 앉았는데 얼굴이 새까매요. 대통령이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애국가가 나오는데 눈물이 바다가 되죠. 연설문을 끝내 다 읽지 못했어요. “여러분, 우리 후세에게 멋있는 나라 물려줍시다. 우리가 해냅시다. 대한민국 만세!” 서로 껴안고 눈물 흘리고... 지금도 이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단독 회담하는 장소에서도 에르하르트 수상의 손을 잡고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려요. “군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독일처럼 라인강 기적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공산당을 이겨야 합니다. 도와주세요.”
에르하르트 수상이 말합니다. "예, 우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가 장관시절 한국을 두 번 다녀왔는데, 한국은 산이 많았습니다. 산이 많으면 경제개발이 안됩니다. 대동맥을 뚫으세요. 내일 가시는 길이 독일에서 최초로 만든 아우토반입니다. 히틀러가 했습니다. 독일의 경제 기적은 히틀러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30년대 독일 경제가 엉망일 때, 대동맥을 뚫은 것이 히틀러입니다. 지금도 아우토반에 올라가면 저는 히틀러를 생각합니다. 히틀러는 정치에 실패하고 독재를 했지만 경제적으로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아우토반을 가서 보시고 한국도 고속도로를 뚫으세요. 폭스바겐 공장, 이것도 히틀러가 했습니다. 한국도 자동차공장을 하십시오. 자동차가 움직여야 동맥이 움직이고 경제도 일어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하십시오. 자동차 만들려면 철강 산업도 해야 합니다. 독일의 철강 산업도 히틀러가 했습니다. 독일 농촌에 가보십시오. 독일 농촌 사람들끼리 싸움을 하고 지역감정이 일어나서 히틀러가 농촌에 신(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농촌운동을 한국도 하십시오. 이건 모두 히틀러가 한 것입니다. 라인강의 기적을 만든 게 바로 히틀러입니다. 우리서독이 도와 드릴테니 열심히 하십시오."
그리고 에르하르트 수상이 부탁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일본과 국교를 맺으세요. 일본과 손을 잡으세요. 독일과 블란서도 16번을 싸웠습니다. 독일이 전투에서는 진 적이 없지만, 전쟁에서는 한번도 이긴 일이 없습니다. 아데나워 수상이 드골 대통령과 손을 잡았습니다. 지도자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보셔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불란서와 독일은 싸웠지만, 우리는 일본과 싸워 본 일이 없습니다. 항상 얻어맞기만 했고, 36년간 일본 지배하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자기 죄를 속죄하지 않습니다. 그런 민족하고 어떻게 손을 잡습니까?"
에르하르트 수상이 하는 말이 "잘못은 뉘우쳐야죠. 저희들이 도와 드릴까요?" 회담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일본정부가 독일정부한테 부탁을 했답니다. 박정희 대통령 만나면 그 얘기를 잘해달라고...
서독 방문하고 돌아와서 1965년 1월 18일 오히라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에 와서 사과했고, 김종필 씨와 한일 국교정상화에 합의해서 3억 달러 청구권 자금, 2억 달러 유상원조 +알파를 받아서 경부고속도로 닦고,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만들고, 포항제철을 만들었습니다. 대통령이 독일 가서 공부한 그대로 추진했습니다.
오늘 2010년에 서서 잃어버린 100년의 역사 중 지난 개발연대를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누가 했습니까?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2차 대전 직후에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된 나라가 147개국입니다. 146개 국가는 지금도 일인당 GDP 2000불 미만의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20,000불을 넘어섰습니다. 금년에 우리가 G20 의장국이 됩니다. 세계에 이런 역사가 없죠. 세계사를 공부한 대학자들이 한국을 찾아 옵니다. 예일 대학의 유명한 폴 케네디도 자주 오죠. 저희들하고 함께 세미나를 하고 난 후에 이분이 하는 말입니다.
15c, 16c, 17c, 세계 역사의 중심이 어디였느냐? 로마였습니다. 로마, 희랍, 스페인, 포르투칼이 3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야말로 로마시대였습니다. 그런데, 18c, 19c, 20c 300년은 로마시대가 아니었습니다. 200년은 영국의 시대였고 100년은 미국의 시대였습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로마가 부패한 것입니다. 구라파 젊은이들이 자유가 그리워서, 민주주의가 그리워서 구라파를 탈출했고 미국을 개척했습니다. 미국 선교사가 전세계에 나가면서 미국시대를 연 것이 100년인데, 그 시대도 이미 지나가 버렸어요. 미국의 적자가 작년에 8천 5백억 달러이고 실업자가 8백 6십만 명입니다. 100년 동안 미국은 잘 먹고 잘 살았어요. 자기 집을 가질 필요가 없었죠. 평생 동안 은행에다 이자만 조금씩 내면 되는 집에 살았어요. 그런데 실업자가 생겼고 이자를 갚을 능력이 없어져 버렸어요. 이게 미국의 금융위기입니다. 미국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는 겁니다. 21c는 아시아 태평양 시대, 일본, 중국, 한국이 중심국가가 되는 팍스 아시아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작년에 폴 케네디가 동경대에 가서 연설을 했습니다. 100주년 기념관에서...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만, 아시아 태평양시대 중심국가가 누구냐? 한국이 중심국가가 된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21c 중심국가는 바로 한국이라는 겁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중심국가가 되는 요건 세 가지.
첫째 조건은 사회 도덕심을 갖춘 민족이어야 합니다. 사회의 도덕심은 종교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답니다. 일본은 종교가 없는 나라입니다. 중국 공산주의도 종교가 없어요.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한민족은 사회 도덕심이 있는 나라라는 겁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에는 도덕심이 없어요
둘째 조건은 문화에 혼(魂)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어야 합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한 민족은 혼이 없어요. 전 세계에서 1등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입니다. 일본에 영화가 없어서 우리영화가 일본에서 유명합니까? 우리 문화, 예술, 스포츠는 전부 혼입니다. 우리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혼(魂), 지금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시대가 왔습니다.
셋째 조건은 자유 민주주의 역량을 갖춘 민족이어야 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중국 공산주의는 더 안 됩니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시아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갖춘 민족은 한국뿐이다. 이제 당신들이 글로벌 컨텐츠를 가지고 전세계에 한민족 시대를 열어라 이것이 학자들이 우리에게 부탁하는 얘깁니다.
지금 세계 나라마다 한국학(Korea Study)이 유행입니다. 러시아 모스코바 대학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독일 본 대학에 한국학과가 있습니다. 왜 한국학이 유행하느냐? 선진국이 200년 걸어온 길을 30년 만에 따라잡은 한국의 저력이 무엇이냐? 하는 관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이 연구해 낸 한국인의 5가지 저력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저력 다섯 가지.
첫째 저력, 한국 문화는 독창성(Korean Cultural Identity)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는 세 가지 독창성이 있다고 합니다. 우선, 가난의 한(恨)이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가난에 한풀이를 했어요. 30년 동안 한국민의 70%가 고향을 버렸습니다. 고향을 왜 떠났습니까? 가난에 한풀이하기 위해서였지요. 도시로, 공장으로 인구의 70%가 대이동을 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문화에는 한국혼(韓國魂)이 있습니다. 아무리 눌러도 눌러도 일어나는 저력이 있어요. Korean spirit! 무서운 저력을 가진 불굴의 힘! 이것이 코리안 스피릿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문화는 신바람 문화입니다. 신바람이 어디서 오나요? 신바람은 옛날의 우리 종교입니다. 샤머니즘이 신바람이었어요. 지난 30년간 손에 손잡고, 잘 살아보세 노래를 부르는 신바람이 우리에게는 있었죠.
둘째 저력,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가정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가정 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세계에 없습니다.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정부가 아닙니다. 가정이 국가 경쟁력입니다. 충.효 사상. 어머님의 강한 힘이 있어서 결코 흩어지지 않는 답니다. 한국 어머니는 세 가지 힘을 가지고 있데요. 첫째, 대가족주의와 화합의 힘. 둘째, 포용력과 리더십. 셋째, 어머님 특유의 희생정신. 자식을 위해 끝까지 희생하는 어머님의 힘이 곧 한국 가정의 경쟁력이고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이라는 겁니다. 이런 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없어요
셋째 저력, 교육열입니다. 우리처럼 2세 교육에 많이 투자하는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계비를 조사해 보면, 평균 37.5%가 교육비입니다. 돈 벌어서 37%를 자식의 미래에다 투자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뿐입니다. 전 세계에 우리 유학생 60만 명이 나가있습니다. 이런 나라가 없어요. 독일에 가보세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는 학생이 20%도 안 됩니다.
넷째 저력, 기업가 정신입니다. 이민사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민족의 무서운 기업가 정신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토론토, 벤쿠버, LA 등 한국 사람만 가면 도시에 활력이 오릅니다. 열의가 올라요. 개척정신, 무서운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지요.
다섯째 저력, 젊은이들의 충성심입니다. Youth Power! 세계가 놀라고 있습니다. 2002 월드컵 때 500백만의 붉은 악마가 외치는 아! 대한민국! 소리는 세계의 지각을 흔들었습니다. 이렇게 모여서 발휘하는 힘을 우린 몰랐습니다. 이것이 어디서 오나요? 군대조직에서 왔데요. 징병제도! 군대 갔다 와서 충성심 배우고, 조직력 배우고... 징병제도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두 나라 밖에 없어요.
이 다섯 가지가 한민족의 저력입니다. 우리 문화만 가진 세 가지 독창성이 있고, 가정의 힘이 있고, 교육열, 기업가 정신, 젊은이의 충성심이 있습니다.
21c를 열어가는 한민족시대. 작년에 우리가 수출 4천 8백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휴전선 이남 우리나라 면적이 얼만지 아십니까? 8만 2천 평방 Km 정도 됩니다. 전세계 면적의 0.075%에 불과 합니다. 이 땅도 70% 이상이 산악지역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52개 국가가 있답니다. 작년에 우리가 수출한 4천 8백억 달러는 아프리카 전체 수출의 2배입니다. 세계가 놀라지요. 메마른 땅, 자원도 없는 땅을 가진 한국이 세계 수출 1등 상품 7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1등, 선박1등, 핸드폰은 세계 48%가 우리 꺼고, 컴퓨터, 노트북 전부 1등입니다. 에니메이션도 세계 1등이에요. 우리는 21c에 와서 세계 기적국가로 우뚝 올라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선배님들께 전해드릴 특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독일 철학자가 하이데커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역사란 무엇이냐? 역사는 영원에서 영원으로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강물의 중심에서 한번 흩어진 백성은 다시 그 중심에 돌아올 수 없다. 역사는 한번 놓치면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것이 하이데커 철학입니다. 세계사를 놓고 보면, 성공한 역사의 기록보다는 실패한 역사의 기록이 훨씬 많습니다. 21c 세계는 이미 바뀌어졌습니다. 2012년에 가면 주한미군이 작전권을 이양한다고 합니다. 미국이 한국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어졌습니다. 재정적자 1조 3천억 달러의 미국의회에서 늘 하는 얘기가 해외에 나가있는 미군 철수해라 미국이 살아야겠다 입니다. 중국이 수출 1등 국가로 올라왔어요. 중국이 이렇게 치고 올라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제 중국시대가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통일안보 정신을 후세에 불어 넣어야 합니다. 금년이 독일통일 20주년입니다. 한참 축제를 하고 있을 것 같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갈라졌던 민족 합치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통일 20년 전부터 서독사람들은 매년 100억 달러씩 통일기금을 모았습니다. 동독 사람이 넘어오면 집도 주고, 일자리도 주자. 10년간 통일기금 4천억 달러를 모았어요. 그것을 보고, 듣고 동독사람들이 서독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통일을 위해서 무었을 준비하고 있어요? 역사가 바뀌고 있는데 성명서 가지고 되겠습니까? 우리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전쟁개념이 달라지고 있고, 이북사람이 내려오고 있고, 이남 사람이 이북을 찾아가고 있고, 북한은 중국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는데, 미국을 우리가 붙잡고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켜 온 국토, 성명서 가지고는 안 되며, 역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합니다. 사관학교 선배님들이 뭉쳐서 순수한 민간 운동으로 통일에 앞장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 장군님들이 앞장서시면 국민이 따라옵니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킨 선배님들이 앞장서서 구석구석에 바람을 일으킵시다.
폴 케네디는 한민족이 안고 있는 다섯 가지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3만불, 4만불의 고지를 넘어야할 텐데 넘지 못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점 다섯 가지.
첫째, 세대 간의 가치관 충돌입니다. 가난과 6.25전쟁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와 우리는 가치관이 맞질 않습니다. 서울시청 앞에서 침묵 데모를 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은 평택 가서 반미를 외칩니다. TV를 보세요. 사치, 낭비, 부패, 허영, 섹스, 불륜, 흥미 위주로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광고 붙이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사회교육이 없어요. 사회교육이 없는 나라는 우리 뿐입니다.
두 번째, 갈등 비용의 심각성입니다. 공무원들이 노조를 만들고, 교육자가 노동자가 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국가가 보조금 주는 단체가 3만개가 넘어요. 시민단체에 국가가 돈 주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환경단체, 농민단체가 역사의 발목을 콱! 잡고 있습니다.
세 번째,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입니다. 우리나라 정부 투자기관 57개가 있습니다. 한국전력, 도로공사, 토지공사, 주택공사, 부채가 얼마인지 아세요? 6백 8십조입니다. 한국전력 부채만 39조에요. 한국전력의 하루 이자가 100억씩 나갑니다. 전력요금을 20년간 못 올리고 있어요. 대통령 단임 5년제 때문에 전기요금이 세계에서 제일 쌉니다. 요금을 올려야 할 텐데 못 올리고 있어요. 단임제이기 때문에 대통령들은 후세에 빚만 물려주고 인기만 관리하고 가버립니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네 번째, 중산층의 몰락입니다. 우리나라 전체가구 수가 1120만입니다. 이 중 3백 9십만 가구가 부채가 있고, 가구당 부채는 4천 2백만 원에 이릅니다. 신용카드 긁어서 갚지 못하는 사람이 750만입니다. 작년에 자살자가 9만 명입니다. OECD국가 중 자살자가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몰락하는 중산층, 국민부도 시대입니다.
다섯 번째, 국민 대다수의 무감각과 무관심입니다. 말로는 애국하지만 자기와는 관계없다는 겁니다. 1년에 천만명이 해외여행 나가고 골프치고... 대다수 국민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실천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나라, 이런 역사가 잘 될 수 있겠습니까?
21c 한민족시대, 우리의 글로벌 콘텐츠를 가지고 문화 강국을 만들어 나갑시다. 60년대 우리나라는 50%가 농업이었습니다. 작년에 우리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였습니다. 농민의 수가 300만도 안돼요. 반면에 제조업이 21%입니다. 75%는 지식산업, 서비스 산업입니다. 새로운 콘텐츠 가지고 우리들이 21c 열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학자 슘페터가 얘기하는 경영철학 다섯 가지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경영이란 인류의 미래를 창조하는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경영은 예술이고, 사상이고, 철학입니다. 경영은 보다 잘사는 미래를 창조하는 예술이며, 경영의 목적은 성취의 기쁨입니다.
두 번째, 경영은 실천을 위한 지혜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결단력, 개척정신, 모험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경영은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경영은 끊임없는 혁신의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을, 오늘보다는 내일을 더 혁신하는 끊임없는 노력, 그 과정이 바로 경영인 것입니다.
네 번째, 경영의 경쟁력은 곧 조직력이라고 했습니다. Team Work! 여러분의 조직력이 국가의 미래를 살릴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경영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인적자산이라고 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아닌,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경영에는 다섯 가지 구호가 있으니, 대화, 설득, 믿음, 참여, 성취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성 혁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1c 한민족 시대,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온 여러분들이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다시 한번 인생을 설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냥 놀고 있는 장군이 아니라, 훌륭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21c를 열어가는 주역되어야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토인비가 죽기 전에 제자들 앞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미래는 미래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미래가 온다고 믿지 않으면 미래는 그냥 지나가버린다.” 여러분, 한민족의 밝은 미래가 온다고 믿읍시다. 그래야 우리 앞에 미래가 다가옵니다. 우리 한번 크게 외쳐 봅시다. "미래는 미래가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감사합니다.
류재국기자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원본 블로그 보기 http://blog.daum.net/yjb0802/439
? <특별취재>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백영훈
"21세기 한민족 시대,
최고경영자의 비전과 선택"
지난 7월 28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사)인간개발연구원(회장 장만기)이 주최하는 목요조찬 강연회에 백영훈 원장(한국산업개발연구원)이 초청돼 200여명의 회원과 관련인사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이날 그가 발표한 주제는 "21세기 한민족시대, 최고경영자의 비전과 선택"이었다
1964년 12월 8일 오전 10시시55분.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서독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루르 지방 탄광 지대의 한 공회당에 도착했다. 막장에서 작업을 끝내고 급히 나온 약 500명의 광부들이 새까만 얼굴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단상에 오르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목이 메어 음악만 흐르고 가사가 나오지 않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한 소절 한 소절 불러가면서 조금씩 소리가 커져 갔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마침내 행사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대통령이 준비해온 연설문을 펼쳤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하지만 연설은 제대로 이어질 수 없었다.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커지더니 끝내는 대통령도 울었던 것이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의 강연이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 청중석은 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해졌다. 한국전쟁 중에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던 독일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났던 백 원장은 3년 만에 ‘경제학 박사 1호’가 되어 귀국했다. 백 원장은 중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는데, 1964년 서독 방문 당시 그는 통역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울자 육영수 여사도, 수행원도, 뤼브케 대통령도 울었다. ‘열심히 일합시다. 그래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봅시다.’ 대통령은 울음 섞인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나에게 그것은 가난을 반드시 끝장내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연설이 중단되고 밖으로 나오는데 1시간이 걸렸다. ‘손 한 번만 잡게 해주세요!’ ‘우리를 두고 어떻게 떠나시렵니까?’ 광부들이 줄지어 손을 내밀며 대통령에게 매달렸다. 밖으로 나오자 더 많은 광부들이 운집해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안녕히 가십시오.’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함성을 뒤로 한 채 간신히 아우토반에 오르자 대통령의 두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줬다. 앞좌석에서 나는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다.”
아우토반을 적신 ‘대통령의 눈물’
뤼브케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렇게 격려했다. “각하, 울지 마십시오. 잘 사는 나라를 만드십시오. 독일이 돕겠습니다.” 칠순의 노 대통령과 40대 후반의 젊은 대통령이 나누는 우정 어린 대화 내용을 통역하면서 백 원장 역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백 원장은 이후부터 한국이 왜 이런 눈물을 흘려야만 했는지 성찰했다고 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요한 바그너가 저술한 <역사의 대실패>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조선 왕조가 실패한 3가지 원인을 분석했는데, 공감이 갔다. 첫째, 바깥세상을 몰랐다. 개방을 선택한 일본과 반대로 쇄국을 선택한 결과 역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둘째, 관료사회와 지식그룹이 부패하고 타락했다.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봉기하자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세를 끌어들였다가 강화도조약 체결이라는 치욕적 수모를 당했다. 셋째, 위기 앞에서 국론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했다. 동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의 오랜 당파 싸움에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이 겹쳤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왕실에서는 시아버지(대원군)와 며느리(명성황후)까지 싸웠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왕조의 멸망은 불가피했다.”
백 원장은 조선 왕조의 몰락을 ‘테마의 부재’에서 찾았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독일에는 비스마르크, 중국에는 손문이라는 리더가 등장해 ‘도약을 위한 통일’이라는 테마를 추구하고 있었는데, 조선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망국 100년이 지나고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2011년에도 여전히 분단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적인 사가(史家)들은 한민족이 겪었던 지난 100년을 지구상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빈말이 아닌데, 지난 100년 동안 무려 500만의 한민족이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일제강점 기간 60만, 한국전쟁 기간 400만).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사망자가 120만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봐도 한국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전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전파 중에도 18만이 순교했는데, 찬송가 586장의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라는 가사는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1955년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의 인도 대표 메논은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겠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런던타임스’ 사이몬즈 기자도 같은 표현을 헤드라인에 올렸다.”
그러나 한국은 보란 듯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개도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한국이 피워낸 이 장미꽃을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백 원장은 “‘한강의 기적’이 ‘라인강의 기적’에 빚진 것이 많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1년 일어난 5.16은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였다.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쿠데타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경계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전면 중단했다. 원조 재개를 요청하기 위해 백악관까지 찾아갔지만 냉대만 받고 돌아와 확인해 보니 한국은행에는 2000만 달러밖에 없었다. 앞이 깜깜해진 박 대통령은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나를 불러 독일과의 교섭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눈물겨운 간청과 설득 끝에 독일 정부로부터 1억5000만 마르크 상업차관을 약속받았으나 지급보증을 할 담보가 없었다. 바로 그때 추진한 것이 광부 5000명 간호사 2000명 파견이었고, 그들의 3년간 임금을 담보로 간신히 ‘한강의 기적’에 시동을 걸 수 있는 첫 종자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CEO가 명심해야 할 5가지 경영철학
1963년 12월 20일 가장 먼저 선발된 광부와 간호원 150명이 독일로 떠났다. 그들이 가족과 이별을 고하던 김포비행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하지만 그들은 낯선 나라의 탄광 막장과 시골 병원에서 헌신적 노동으로 ‘코리아 엔젤’로 불리며 독일인을 감동시켰고, 마침내 나라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독일 의회가 여야 만장일치로 한국지원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21세기에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의 중심지는 15~17세기에는 로마, 스페인, 포르투갈이 주도하던 지중해권이었고, 18~20세기에는 영국, 미국이 주도하는 대서양권이었다. 그런 그가 일본, 중국, 한국이 주도하는 태평양이 앞으로 21세기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케네디는 작년 일본의 동경대에서 특강을 했는데, ‘아시아 3국 중 누가 중심국가 역할을 담당하는 리더가 될 것으로 보느냐?’는 민감한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케네디는 망설임 없이 'Never Japan, never China, only Korea'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도덕성, 정신적 문화력, 자유민주주의 역량 등 3가지 근거까지 제시했다.”
세계지도에서 한국 영토가 차지하는 비율은 0.075%에 불과하다. 이렇게 좁은 땅을 가진 나라가 작년 4900억 달러를 수출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 전체 수출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백 원장은 “이 엄청난 역사를 일군 사람은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원 등 근로자와 기업인”이라면서 CEO가 명심해야 할 슘페터의 경영철학 5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경영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닌 성취의 희열에 있다. 그래서 경영을 인류의 미래를 창조하는 예술, 사상, 철학으로 부르는 것이다. 둘째, 경영은 학문적 지식이 아닌 실천을 위한 지혜이다. 여기에는 결단, 개척, 모험 등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셋째, 경영은 끊임없는 혁신의 과정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영원한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한다. 넷째, 경영은 조직력(team spirit)이다. 이를 위해 리더는 조직 안에서 절대, 무한, 불멸의 책임을 져야 한다. 다섯째, 경영은 자본과 기술이 아니라 인적 자산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명령, 지시, 복종, 관리, 감독 등 행정 용어가 아니라 대화, 설득, 신뢰, 참여, 성취 등 경영 용어를 사용할 때 경영은 ‘휴머니즘 혁명’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백영훈 원장 약력>
▲ 고려대 상과대 졸업 ▲ 서울대 경제학 석사 ▲ 독일 Erlangen대 경제학 박사 ▲ 중앙대 상과대학 교수 ▲ 한국생산성본부 연구소 소장 ▲ 경제개발계획 자문위원회 위원장 ▲ 대통령 경제고문 ▲ 제9, 10대 국회의원 ▲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자문위원장 ▲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 <상훈> 대통령포상, 은탑산업훈장, 대통령 유공기 념비, 독일 민간외교훈장, 국민훈장모란장, 독일연방공화국 대십자훈장 外 <저서> 경제를 새로 쓰자, 위대한 한국시대를 위하여, 대한민국 그 위대한 힘 外
<류재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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