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로
흑사병이 우한에서 시작되었을 때 몽골 군대의 침공으로 중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사망자들이 속출하자 이웃 나라들로 흩어지게 되었지요.
특히 북경 주변으로는 무인지대라 할 만큼 처참했다지요.
그래서 명나라를 건국한 홍건적 즉 도적 떼 두목 출신 주원장이 수도이전을 북경으로 하려다가 보류할 정도였다지요.
목욕을 자주하고 위생 관념이 제대로 된 고려는 안전한 곳으로 인식 되어 명나라 중국인들이 고려의 공민왕 나라로 많이 유입되었다네요. 그들 중에 이성계의 아버지 화교 재벌 이자춘도 고려 함흥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아들이 최영 장군의 휘하장수로 까지 승진하였을 때, 어전회의에서 과거 조상들께서 사시던 곳 북경 일대까지 고토 회복하라고 명하시니 최영 장군께서 네가 그 지역을 잘 아니 가서 잘 보존하고 있으라고 명령하셨겠지요.
흑사병으로 다 죽어 빈 땅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가서 그냥 잘 수비하고 있으라는 명을 받은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직속상관 최영 장군을 살해하고 공민왕 정부를 뒤엎어 우왕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물밑에서 작당하여 1392년 조선을 건국하여 이성계로부터 사악하며 아둔하고 무능한 고종과 그의 아들 순종까지 이어 오게 되지요.
이씨 왕조 고종 내외는 물론 그의 식솔들까지 해방될 때 1945년까지 일본 정부의 녹봉을 받았고 한일합병 당시에는 거액의 일본 황실 하사금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받았지요.
매국의 주인공이면서 세계를 그나마 조금 읽을 줄 아는 신하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을사오적의 오명까지 덮어쓰게 하면서 자신은 매국노 아닌 것처럼 되었다지요.
고종의 왕비 민자영은 시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집안싸움 하면서 민씨 척족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나라 살림을 거덜 내더니 어전회의 때는 수렴청정 발 뒤에서 고종의 명령을 바꾸어 가면서 멸망의 나락으로 추락시킨 조역이라 해야겠지요.
세계사에서 이집트의 톨레미 왕조와 조선의 이씨 왕조는 타국인이 지배하는 나라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