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례파의 영향을 받은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영혼수면설’을 주장하고, 이들의 이단적 변형인 안식교•여호와의 증인은 ‘영혼멸절설’을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영혼수면설은 영혼멸절설의 서론이 되는 오해입니다. 구분선 아래에서 우르시누스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중 해당부분 설명을 읽어 보겠습니다. 줄친 부분을 중심으로 잘 읽어 보십시오!
57문) 몸의 부활은 그대에게 어떤 위로를 줍니까?
답)이 생명이 끝나면 나의 영혼이 즉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올려질 것이요, 또한 이 나의 몸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받아 다시금 나의 영혼과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된 몸처럼 될 것입니다. |
영혼은 불멸한가?
영혼의 불멸의 문제가 이 조목과 관련하여 개입된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죽었다가 다시 사는가? 하는 것을 살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헛된 것이 아니라 유익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이 멸해질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듯한 성경의 여러 본문들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해주며, 또한 옛적부터 영혼의 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사두개인들의 오류는 물론, 신자의 부활을 이미 과거에 일어난 것으로 보며 영적인 부활 이외에 다른 부활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오류를 반박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몇몇 재세례파들은 육체로부터 분리된 후에는 영혼이 미래에 다시 부활하여 다시 육체와 재결합하기까지 무활동의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로마 교황 바오로 3세는 임종 시에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평생토록 의심을 가져온 세 가지 의문의 진실성 여부를 알게 되었으니, 영혼이 과연 불멸한가. 지옥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시편과 솔로몬의 기록들에도 다음과 같은 비슷한 성경의 선언들이 여럿 있다.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전 3:19),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시 115:17). 그러므로 이 주제를 논하는 것이 정당하고 적절한 것이라 하겠다.
영혼의 불멸 교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언들에서 확증된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복하며 "(시 49:17.18),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흔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삼하 11:1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 10:28),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막 12:26, 27),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에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었고, 따라서 그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살아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 1:23)고 말씀하였다. 그는 죽음 이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안식과 기쁨을 지칭한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기쁨이나 복락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죽음 이후에 영혼이 잠잔다고 상상하면서 영혼의 불멸성을 부인하는 논리는 바로 이 성경의 본문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행 7:59),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8).
그러므로 영혼은 죽음 이후에 잠자는 것이 아니라 불멸의 생명을 누리며 또한 주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6:10에서는 순교한 자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서 큰 목소리로 외친다고 말씀한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그러니 그 영혼들은 살아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누가복음 16:22에서도, 나사로는 죽은 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고통의 장소인 지옥에 보내졌다고 말씀한다. 이런 성경 본문들은, 몸이 없이 영혼이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으나, 죽기 전 돌 안에 있을 때와 몸의 부활 이후뿐만 아니라 죽음과 부활 사이의 그 긴 간격 동안에도 영혼이 몸이 없는 상태로 존재하며 살아 있고 느끼고 이해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지극히 결정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몸의 부활도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하므로, 몸의 부활을 믿으면 영혼의 불멸성도 믿게 되며, 또한 영혼의 불멸성을 믿으면 몸의 부활도 믿게 되는 것이다. 다시 살아나게 될 몸이 그 전의 몸과 동일하므로, 과거에 지녔던 것과 동일한 영을 지니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형체가 바뀐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개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본질적인 형체를 지니고 다시 살아나면 그 개체가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영혼이 죽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른 영혼을 창조하셔야 하고 그것을 몸에 넣어주셔야 한다면, 그것은 죽기 전과 동일한 개체가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조목의 다섯째 질문을 논의하면서 보겠지만, 부활 시에는 동일한 몸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반론 1.) 그러나 전도서 3:19에서는 사람이 짐승보다 나온 게 없고 짐승과 똑같이 행한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불멸한 것이 아니다.
답변.) 결론이 부정확하다. 어느 특정한 점에서만 유사한 것을 모든 점에서 유사한 것으로 간주해 버리기 때문이다. 죽음의 필연성으로 보면 사람과 짐승은 똑같다. 사람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죽어서 금생을 떠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일이므로, 어느 누구도 금생에서 영구한 거처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사건과 그 이후의 상태에 있어서는 사람과 짐승의 상태가 동일하지 않다. 짐승의 존재는 멸절되고 사라지는 반면에,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 전제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전도자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말하되,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선인(人)과 악인이 당하는 일들이 비슷하게 보인다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판단에서 나오는 이런 불평을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의 교리와 연관지으면서, 결국 의인에게는 선이 베풀어지고 악인에게는 악이 베풀어진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반론 2.) 그러나 성경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라"(시 115:17).
답변.) 죽은 영혼들은 우리가 금생에서 하듯 그렇게는 여호와를 찬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금생을 떠난 후에는 여호와를 전혀 찬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pp254∼255.
첫댓글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안식교와 여호와의 증인은 모두 영혼멸절설을 주장히는데, 재세례파의 영향인 영혼수면설을 업그레이드 한 오류이며 이단적인 교리입니다.
우리시누스는 물론이고 그 이전의 개혁자인 칼빈도 영혼수면설을 반박한 바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독교한국침례회와 미국 남침례교, 영국 특수침례교회 정도를 빼면 나머지 침례교회들이 이상한 곳이 많다고 하더군요.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노베 네, 알겠습니다.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해 잘못된 견해들이 있습니다.
1)영혼수면설 : 육체적 죽음 이후부터 부활 때까지 영혼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견히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물론 새로운 육체는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에 받게 되지만 영혼은 죽음 이후에 즉시 예수님을 섬기며 살게 됩니다.
2)연옥설 : 로마 가톨릭의 교리에 의하면 극소수의 거룩한 성도를 제외한 성도는 죽어서 연옥이라는 중간 장소에 간다고 합니다. 땅 위의 사람들의 기도나 제물의 공로로 인하여 그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연옥교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8603
위 링크 중 아래 내용도 아울러 잘 보아야 하겠습니다.
"5. 신자의 죽은 육체는 무덤에서 쉰다
신자의 죽은 육체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무덤에서 쉽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노베 네, 알겠습니다.
칼빈은 1542년에 개정된 『영혼의 잠』 (De Psychopannychia)을 1534년에 썼는데,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은 죽은 즉시 영혼이 수면 상태로 들어간다고 주장한 재세례파들의 중간상태에 대한 비성경적 주장을 반박했다.(37)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6181
다시 잘 읽어 보았습니다. 내용의 수준이 조금 높네요.
"영혼수면설"이란 사람이 사망한 후 부활과 최종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사람의 영혼이 ‘잔다’는 믿음입니다. 영혼수면설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이 죽음과 관련하여 사람을 ‘잠자는’ 것으로 묘사할 때(눅 8:52; 고전 15:6),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자는 것은 시체가 잠자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죽음을 묘사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입니다. 죽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됩니다(히 9:27). 신자들에게는 몸을 떠나는 것이 주님과 곧바로 함께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고후 5:6-8; 빌 1:23). 불신자들에게 죽음이란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눅 16:22-23).
하지만 마지막 부활 때까지 임시적인 천국이 있습니다. 바로 낙원입니다(눅 23:43; 고후 12:4) 또한 일시적인 지옥이 있습니다. 바로 음부(하데스)입니다(계 1:18, 20:13-14).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낙원이나 음부(하데스)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영혼이 천국이나 음부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의 몸은 "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 때에 이 몸은
"깨어나"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영원히 소유할 몸으로 변화됩니다. 낙원에 있던 사람들은 새로운 하늘과 새 땅으로 보내질 것입니다(계 21:1). 음부(하데스)에 있던 사람들은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계 20:11-15). 이 둘은 모든 사람들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목적지로서 전적으로 그 사람이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영혼수면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그리스도 형제파 등 여럿이 있습니다.
https://www.gotquestions.org/Korean/Korean-soul-sleep.html
@장코뱅 다시 읽어 보니 이 설명이 가장 초신자에게는 쉬울 것 같습니다.
@장코뱅 좋은 설명입니다.
몸이 자거나 죽는 것을 겉모양 만으로 오해하여 영혼이 잠 자거나 죽는다고 믿는 오해는 영혼이 불멸함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과 이단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좋은 포스팅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잠으로 표현했다는 말씀을 잘 유념해야겠군요. 죽음 이후 예수님의 재림 때 까지 영혼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깊은 수면에 빠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은 낙원에서, 불신자는 음부에서 의식이 있고 깨어 있는 상태로 대기한다는 것을 알면 되겠네요.
예수님 재림 이후에 신자들의 영혼이 새로운 몸으로 부활을 하고, 그리고 최후 심판을 거쳐서 천국과 지옥으로 각각 가게 되겠지요.
영혼 수면설이 영혼 멸절설로 가는 서론격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