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의 문명사>는 '문명은 문자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화장실과 함께 시작했다'는 논지 위에서 출발한 이색적인 문명연구서다. 흔히 문명의 발상지로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강 계곡에서 화장실의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는 비교문화 연구가로 나서기 전에 전 세계의 화장실을 직접 돌아다니며 조사하기 위해 8년 동안 항공기의 스튜어디스로 일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저자의 화장실 연구는 고대와 중세의 유물, 유적, 문헌 기록을 뒤지면서 진행됐고 그 연구 범위는 우주왕복선의 변기까지 아우른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고 여겼으며 자신의 신성을 유지하기 위해 남 몰래 궁궐 밖으로 나가 용변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시민들에게 공동화장실은 사교의 장이었다. 140여 개의 화장실에서 그들은 볼 일을 보면서 정치를 논했다.
영어의 privacy는 라틴어 privy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중세 성직자들이 화장실을 가리켜 '혼자서 책 읽기 좋은 곳'이라 불렀다는 데서 왔다. 마틴 루터는 변비로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주로 화장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때 나왔다고도 한다.
서구 최초의 수세식변기는 1449년 영국에서 발명됐다. 물탱크와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빗물이 내려와 내용물을 씻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변기는 물의 역류를 막아내지 못하는 결정적 결함을 안고 있었다.
서양의 18세기는 위대한 사상가들을 배출한 시대이자, 밸브장치를 갖춘 최초의 현대식 '수세식 변기'가 등장한 시대이기도 하다. 또 프랑스에서는 이때부터 비데bidet가 등장했다. 비데의 어원은 1534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는 당나귀를 뜻하는 말이었다. 당나귀나 말을 탈 때처럼 기다란 그릇 위에 걸터앉기 때문에 오늘날의 의미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의 비데 사용은 영국이나 다른 유럽인들에게 성행위 뒤에 생식기를 닦는 물건으로 비추어져 프랑스의 문란한 성생활을 상징하기도 했다.
도자기 기술의 발달로 요강은 공예품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질투심이 많았던 루이 16세는 애인이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반하자, 프랭클린의 얼굴이 새겨진 요강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왕과 귀족들은 요강보다는 더 고급스러운 변기 의자를 사용했고, 거기에 치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루이 15세의 변기의자는 검은 래커로 칠하고 그 위에 금으로 일본식 풍경과 새들을 그려넣었다. 화장지가 나오기 전 미국의 농촌에서는 물기를 머금은 옥수수 속이 애용됐다. 때로 옥수수 속을 여러 색깔로 치장하기도 했다.
우주개발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우주항공국이 만든 우주왕복선의 변기는 무려 2340만달러 짜리다. 단순한 변기가 아니라 무중력 상태에서 오물이 떠다니지 않도록 하는 하수처리 공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줄리 L 호란 지음/남경태 옮김/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