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호 물빛길(까꼬실) 생태문화 탐방교실
까꼬실 문화탐방(2022년 9월 24일)
「까꼬실(귀곡동) 지명의 유래
가슴에 묻은 진주인의 본향(本鄕)은 본디 살던 고향을 말한다.
진주에도 그런 곳이 있다. 지금은 물속에 잠겨버려 일부만 남은 기
억과 마음속의 고향, 섬 아닌 섬이 된 마을, 생각하면 그립고 아련한.
그래서 더 아쉽고 애잔한 그곳, 진양호에 수몰된 마음의 고향, 진주
인의 본향 까꼬실'이다.
꼬실은 1970년대 남강댐 건설과 숭상공사로 대부분 물속으로 사
라지게 되었다. 본향이라고 한 것은 4세기동안 진주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고향을 가슴에 묻어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때에 진주
목 서면 가귀곡리로 까꼬실 최초의 지명이 기록으로 표기되었다. 임
진왜란시에 진주목 관아의 피난처였고, 영조때 해동지도에는 처음
으로 가이곡리(加耳谷里)로 지명이 나타나며, 그 후 가이곡리(加伊
谷里), 가이곡면(加伊谷面), 가귀곡면(加貴谷面), 귀곡리(貴谷里)가
되고, 1973년 귀곡동이 됐다. 까막고개를 몇 개를 넘어야 마을이 나
온다하여 까꼬실이라 불리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의 고향이지만 이제는 이상향, 혹은 동경의 대상이 돼 버렸다.
사람들은 그 시절을 잊지 못해 동산이 보이는 곳 진양호 언저리에 망
향비를 세우고 명절 때나 혹은 수시로 찾아와 고향을 그리워한다.
'내 어릴적 놀던 내 고향보다 더 그리운 곳 세상에 없도다...'
까꼬실에 황학산, 분토봉, 꽃동실이 있다.
귀곡호에 승선한 탐방대원
귀곡호에서 바라본 지이산 상봉 중봉 써리봉
옜 귀곡교가 있던 탐방길을 걸으면서
귀곡교 졸업생 우근 문장 원근 대근(본인)
귀곡초등학교에 서 있던 충효비
첫댓글 였날 고향생각 이 납니다 열정에 찬사를보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