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저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아왔습니다. 정신분석가 융의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이론을 믿기 때문입니다.
꿈 일기도 쓰고, 저의 감정이 치솟을 때 그 이면에 무엇이 있나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의 무의식에 ‘수치심’의 감정이 깊이, 크게 심어졌음을 알았습니다.
심리상담가인 친구는 저의 말을 듣고 많은 여성들의 내면에 수치심이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 어렸을 적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아침부터 여자가 큰 소리를 내면 재수가 없다.”, “여자의 최고 덕목은 ‘현모양처’이다.” 등등의 말들을 못이 귀에 박히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 사회적 강압 속에서 자연스레 개인적인 꿈은 접고 아이들 키우는 게 첫 번째 의무라 생각하며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저의 내면엔 ‘여자다움’이 견고하게 자리잡아 있고, 그것이 깨질 때 수치심이 훈장처럼 주렁주렁 무의식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까지 크고 작은 수 많은 성추행들을 당해왔고, 그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워 무의식 속에 깊이 잠겨있습니다.
또한 ‘현모양처’와 ‘여자다움’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자기검열로 인한 자괴감과 수치심이 크게 또아리 틀고 있습니다.
‘여자이니까 ~~이렇게 해야만 했어.’란 무수히 많은 후회와 분노가 있습니다.
평상시엔 잊고 살다가 “80대 교수가 손녀뻘 여학생을 성폭행했다.”, “모르는 건장한 남자가 이유도 없이 지나가는 여자를 두들겨 팼다.”, “어떤 남성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스토킹하다 만남을 거부하자 여자를 살해했다.”란 기사들을 보면 분노와 두려움이 폭풍우처럼 몰려옵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든 폭행당하고 살해당할 수 있으니까요.
양성평등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꼭 필요하고, 한편으로 제가 잘 하는 명상을 통해 평화를 구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척추를 펴고 앉아, 밝고 아름다운 사랑의 기운이 저의 정수리를 통해 쏟아져 들어와 온 세상으로 퍼지는 상상을 합니다.
그 빛들이 저의 내면에서 울고 있는 어린 소녀를 따듯하게 꼭 껴안아 줍니다.
어린 소녀는 울음을 그치고 밝고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해 폭력을 저지르는 못난 소년들에게도 사랑의 빛을 보냅니다.
추하고 뾰족뾰족 모난 소년들이 따듯한 사랑의 빛 안에서 부드럽고 상냥하게 낯빛이 바뀌는 상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