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헤어싸롱
뿌리를 살려주어야 해요
쓸쓸하고 윤기 없을 때도 최대한 뿌리를 살려
정중히 다시 세팅해 주어야 해요 그래야
볼륨도 끗발도 펑키하게 살아나거든요
지독히 느슨해진 상태라면
먼저 우스개나 너스레로 트리트먼트를 한 후
사소한 인연의 롤로 정성껏 말아 주시면
힘이 없던 것들 뽀글뽀글 피어난답니다
마르고 푸석했던 것들이 마법의 린스 한 방울에 탱글탱글 되살아난답니다
오랜 시간 허연 파뿌리나 키우던 모지에서 무슨 신호탄처럼
검은 깃발이 불쑥 솟아나 자지러지기도 하는데요
이것이야말로 봄의 페스티벌이죠
뿌리를 살리는 일이란
불 꺼진 아궁이 앞에서 철 지난 타블로이드판 신문 한 뭉치
돌돌 말아 쥐고
검지를 한껏 튕겨 딴죽을 걸 듯 성냥을 그어보는 것
거시기, 가버린 날들의 뒤통수가 납작해서 불만이신 분들
때때로 거울 앞에 앉아 롯드를 감아주시면
가장자리가 물씬 부풀어 오른 기가 막힌 컬이 나올 거예요
정수리에서부터 흐르는 멋진 옆 라인
다시 꽃이에요
간혹 뜨거운 콧노래로 포인트를 주시면
달콤 쌉싸름한 때깔 나는 열매를 맛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그 어떤 처음과 끝도 뿌리는 살아있어야 해요 아셨죠?
심하게 상한 것들은 까짓것 뭐
미련 없이 잘라 내시고요
이재린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흥 문학상 대상
바다 문학상 대상
<시집>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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