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쌀밥 같은 토끼풀꽃,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어둠을 끌어다 죽이며그을린 이마 훤하게꽃등도 달아준다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일어서서 껄껄 웃으며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김용택,「섬진강 1」-
-2017 4 모평 해설-
「섬진강 1」은 섬진강과 그 주변의 자연물을 소재로 하여 끊임없는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의 고된 상황과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 농민들의 생명력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농민들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섬진강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 가며, ‘토끼풀꽃’, ‘자운영꽃’,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 껄껄 웃는 ‘지리산’, ‘노을 띤 무등산’등 섬진강 주변의 자연물들에 시선을 주며 시상이 전개된다.
‘그을린 이마’는 농촌의 고된 상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그들의 그을린 이마에 훤하게 ‘꽃등’을 달아주는 것은 고달픈 삶을 영위하는 농민들에 대한 위로로 볼 수 있다.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는 개울물은 고된 상황 속에서도 함께 생활하며 삶을 포기하지 않는 농민들을 나타낸 것으로, 농민들의 끈질길 생명력을 환기한다고 할 수 있다.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는 것은 끊임없는 수탈로 인해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공동체적 삶을 통해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고된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 일어서서 껄껄 웃’는 지리산은 고된 삶 속에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수탈을 당하면서도 삶의 여유를 잃지 않는 농민들의 삶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후레자식들이 /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끊임없는 수탈로 고통을 겪을지라도 농민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건강한 삶을 살아나갈 농민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