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예와 재물 대신 자유를 택했던 젊은 날.
이제 와서 톡톡히 그 댓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는 여전히 좋다.
그 어떤 댓가 보다...
많은 것을 잃은 젊은 날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 보며
아침을 맞을 수 있다.
남은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혼자가 느껴진다.
외롭다기 보다 그 불투명한
미래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비 갠 후의 상큼한 공기를 맡으며 걷는
공원 숲 속 산책도 달콤하기 보다
쓰디 쓴 더블 샷의 커피 맛 같다.
향기는 비록 좋으나.
그러나 참 다행히도
저녁 무렵
반가운 손님이 왔다.
오래된 벗이 왔다.
여자 사람친구.
비록 여사친이긴 하지만
참 어린 벗이다.
그래도 그녀를 보면
그와 함께 하는 순간에는
모든 시름과 외로움이 사라 진다.
그런 그와 함께
우선 가까운 식당
남포동에 있는 한식당 큰집에서
가볍게 식사를 했다.
고급 한식당은 아니지만
부담없이 먹기에는 좋은 곳이다.
음식을 좀 남겨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식당.
그녀와 함께 간단한 단품 메뉴로
그러나 배를 퉁퉁 두들겨도 좋을만큼
넉넉하게 속을 채우고는
근처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사랑하는 연인처럼
그간의 안부를 소상하게 나누어 가며..
공원에는 마침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이라기 보다
부산 영화제 관련 대담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다지 흥미있는 주제가 아니라
곧 발길을 돌려 버렸다.
대신 어지간히 배가 꺼질 때까지
공원 숲속을 돌았다.
말 그대로 여시친이라
서로 손을 잡는 일은 없다.
아무리 반갑고 사랑스러워도...^^
다음 날.
간단하게 달걀 한알과 잼을 바른 식빵으로 요기를 한 후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아침부터 집에서 해 먹기도 번거롭고
딱히 대접을 할 요리 재료도 없다.
대신 일찌감치 집을 나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을 마신 후
영화관으로 향했다.
요즈음 한창 인기가 있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그러나
역시 재목처럼 영화가 재미 없다.
왜 무엇 때문에 만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둘 다 영화 내용에 실망하며
괜히 보았다는 의견이다.
역시 음식과 영화는
사람마다 그 취향이 다르나 보다.
다행히 그녀와 나는
여러모로 취향이 닮아 참 좋다.
그래서 이 긴 세월동안 벗으로 남아 있나 보다.
15~16년의 긴 연륜을 뛰어 넘어.
영화를 본 후 저녁은
식사 대신 횟집으로 가기로 했다.
서면 '거제도야' 횟집으로.
주변에서 꽤 가성비 있는 횟집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랍스타 회 한 상으로 주문했다.
2인용 회 한상은 75천원 이지만
랍스타 회 한 상은 125천원이다.
랍스타 값만 5만원이다.
대신
회와 찜으로 나온다.
일반회 한 상도 가성비 있게 넉넉하다.
회와 돌멍게, 생낙지도 나오고
전복죽과 매운탕도 나온다.
둘이 먹기에는
아주 넉넉하다.
식사를 마친 후 가게를 나오니
거리가 후덥지근 하다.
우리는 집에 오기 전
잠시
방금 먹은 음식도 소화하고
더위도 식힐 겸
남항 방파제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약간 비릿한 내음과 함께 밤바다의 바람이
시원하게 옷깃을 파고 든다.
좋다
남항 방파제의 밤 풍경이.
그렇게
그녀와 함께 한 짧은 시간.
그렇지만 잠시나마 행복했던 시간.
그 시간들은 훌쩍 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외로움은 내 몫이 아니다.
약간은 홀가분한 마음을 가지고
그녀와 함께 보지 못한 영화를
마저 보러 갔다.
'오펜하이머'
러닝타임만 3시간.
그러나 그 세시간이 어떻게 흘러 갔는 지.
영화를 보면서
문득문득 흘러가 버린 내 시간들도
되새김 해 보았다.
순간 순간 힘들었지만
꽤 늘씬 했던
내 젊음들....